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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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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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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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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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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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발라내기

DUMMY

32화


“카벨씨... 괜찮을까요?”


유레하의 방. 그녀에게 잡혀 평소보다 과격하게 쓰담쓰담 당하고 있는 아셀이 창밖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발판위에 서서 공녀의 머리 장식을 마무리 짓던 엔야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유레하를 슬쩍 살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공녀였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짜증이 무표정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공녀니임... 이제 그만 화 푸시는 게 어때ㅇ...”

“싫습니다.”


너무 철벽인데? 내가 모시던 공녀님이 이런 분이셨나?


“에이~ 솔직히 카벨 씨가 의도하고 그 마족에게 ‘그걸’당한 게 아니잖아요?”

“마, 맞아요! ‘그거’ 말이죠!”


암묵 적으로 입맞춤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기로 잠정 합의한 엔야와 아셀이 시선을 마주쳤다.


하지만 유레하에게 서린 냉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엔야.”

“네에?”

“엔야가 어렵게 구해 밑 준비 까지 다 마친 고기를 마족이 한입 먹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족이요오?”

“어떨 것 같아요?”


곰곰이 떠올리던 엔야가 미간을 구겼다.


그건 용서 못하지. 어딜 내 고기를...!


서서히 공녀의 지론에 물들어가는 엔야에게 아셀은 다급하게 커다란 과자를 물렸다.


빠르게 독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누님까지 넘어가면 어떻게 해요! 지금 계속 이 상태로 가다간 카벨 씨가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 헤헤~ 미안. 꽤 그럴 듯해서.’


생각만으로 배가 고픈지 그녀는 자그마한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아셀은 가장 정상인인 레나가 보고 싶어졌지만, 마음을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 그러면 그 부분을 박박 닦아내면 되지 않을까요?”

“닦는 다고 끝이 아니라구! 마족이잖아!”“누님! 누구 편인지 확실하게 좀 해주세요!!”

“앗차! 마, 맞아요 공녀니임! 더러워 졌으면 씻으면 되죠!”

“찝찝함은요?”

[......]


그건... 못 지우지. 확실히.


둘은 할 말을 잃고 서로와 공녀를 번갈아 보았다.


특히 엔야는 유레하의 모습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자매처럼 같이 커왔던 공녀가 이렇게 강경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사랑...은 확실히 아닌데에...’


엔야는 요동도 없는 치마폭 아래 숨긴 꼬리 부분을 힐끔 거렸다.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공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수도 없이 보았으니까.


유레하가 어렸을 적, 인마전쟁에서 어머니를 잃고 홀로 살아 돌아왔을 때부터 계속.


“그, 그럼 그 부분만 발라내고, 찝찝하면 양념을 덧입히면 어떨까요!”


어렵사리 방법을 찾은 아셀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 순간 유레하가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조금 찝찝하긴 하더라도 문제없는 거잖아요? 찝찝함도 남지 않고요!”

“아...”


유레하는 무언가 감을 잡을 것처럼 중얼 거렸다. 천천히 면면에 스며있던 불만과 짜증이 녹아내리더니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만족스러운 반응에 아셀은 안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엔야는 사색이 되어있었다.


왜 그러시지?


‘왜 그래요 누님?’

‘아, 아셀.’

‘네?’

‘발라낸다는 거... 공녀님이 말한 예시에서 고기를 말한 것... 맞지?’

‘네! 좋은 방법이죠?’

‘발라내는 건 공녀님이고?“

‘그...쵸?’

‘그럼 고기는 누구?’

‘.........................’


아셀은 마음이 싸하게 가라앉는 기분에 다급히 유레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개운한 모습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머리가 싸해진 아셀이 무례라는 것도 까먹고 다급히 공녀의 드레스 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고, 공녀님!! 잠깐 생각 멈추세요!! 예시를 잘못 들었으니 다시...! 공녀니이임!!”

“으아아!! 안돼요! 발라내면 안돼요! 공녀니임!! 아셀! 얼른 검 치워!! 날붙이는 다!!”


엔야와 아셀이 부산을 떨어대는 와중에도 그녀의 미소는 봄처럼 피어났다.


+ + +


다음날. 예정보다 빨리 반려후보 결정전의 전야제가 시작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반려후보들이 빨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실용성을 중시하던 성 곳곳은 얼음 세공물들과 다양한 장식들로 채워졌고, 초청한 음유시인들의 노랫소리가 참가한 이들을 즐겁게 했다.


“드디어 공녀님을 뵐 수 있겠군요.”

“꿈에서도 잊혀 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또...!”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니 각오하십시오!”


모여든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왕국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백작가의 자제. 남부 이종족 연합국의 이름 있는 귀인족 영웅. 성국 성황의 아들까지...


북부의 유레하 공녀의 미색이 얼마나 드높은지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의 이권을 위해 온 사람도 있었지만.


찹찹찹찹-!!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곳은 영웅도, 부호도, 계속해서 음식들을 게걸스레 입에 우겨넣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 카벨이었다.


테이블 하나를 제 식탁처럼 차지한 그는 실용적인 정장차림으로 눈치를 주는 아셀을 무시하며 손을 놀렸다.


“카벨씨이! 제발 좀...!”

“시끄러 인마! 빌어먹을 대공이랑 드잡이 한데다 물약 때문에 먹어도 배고프단 말이야! 그보다 이거 진짜 맛있다!”

“나중에 먹으면 되잖아요! 다 보고 있는데!”

“허허.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군. 놔두게.”

“아...!”


온화한 말투와 함께 나타난 금색 옷을 입은 노인. 그 뒤에 있는 귀족들을 보며 아셀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갈드르 백작님! 죄송합니다! 못 볼꼴을...!”

“글리ㅍ... 아니. 아셀군 괜찮네. 그보다 잠시 서리의 검과 이야기를 하고 싶네만.”

“예! 카, 카벨씨! 카벨씨이이~!!”


칭얼대며 손목을 잡아끌자 비로소 음식물이 잔뜩 묻은 카벨이 고개를 들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말이야.


입안에 든 것을 쩝쩝댄 카벨은 대충 식탁보에 손과 입을 닦고 일어섰다. 그걸 보는 하인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저 새끼 이번에 꼭 뒈졌으면...


“예. 제가 그 서리의 검인가 뭔가 입니다만. 무슨 일ㄹ... 뭐, 뭐하는 겁니까?”


일제히 고개를 숙인 귀족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노년의 귀족 역시 허리를 떨면서도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귀족이 일반인... 은 아니지만 작위도 없는 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숙이다니...


당황한 아셀이 어쩔 줄 몰라 할 때쯤 고개를 든 귀족들이 카벨의 손을 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자네 덕분에 내 아들의 침식이 풀렸어!”

“크흡! 얼마 전에 마을에 출입이 허용된 이후 아버지를 만나고 왔네! 자네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 하시던지...!”

“자네는 우리의 은인이네!! 설마 침식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


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저마다 인간적인 감사를 전해왔다. 일부는 한참을 손을 잡고 어깨를 들썩이는 자들도 있었다.


잠시 후 진한 감사를 마친 뒤, 갈드르 후작이라고 불린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신사가 카벨의 손을 잡았다.


“자네 덕분에 내 아내의 침식이 풀렸네. 정말... 정말 감사하네.”

“...선의로만 한일은 아니니 이럴 필요 없습니다. 아직 신분이 회복 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허허허~ 그 부분은 이미 자네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모험가 길드라... 아주 재미있는 생각을 했더군.”


벌써 침식을 풀 수 있다는 것까지 귀족들한테 다 퍼진건가.


카벨은 앞쪽 무대 중앙에 마련된, 은빛의 거대한 빈 의자를 보며 귀찮은 티를 냈다.

의자 옆에서 흐뭇해하던 라셀 후작이 대답대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람이 되어서 어찌 이런 은혜를 입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와 여기있는 자들은 개인적으로 마을을 지원하기로 했네.”

“지원이요? 어! 그러니까 돈 준다는 거죠?!”

“카벨씨!!”

“허허~ 솔직하군 그래. 맞네.”

“하지만 공녀님의 영지이지 않습니까?”


많은 의문이 함축된 물음에 후작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졌다.


북부에서 불길함을 뜻하는 은색늑대수인인 공녀. 그녀의 영지에 지원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흠결이 될 가능성이 컸다.


-공녀님이 나서서 모두를 이끌어 주셨어요. 여보. 그분이 아니었다면...-

-마족을 몰아낸 이빨수집가도 대단했지만 설마 공녀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줄은...-


비로소 만난 가족들이 자기 이야기처럼 꺼낸 말들. 후작과 귀족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이미 가족들이 신세지고 있는 상황이니 흠결은 잡혔네. 그러니 더 지원한다 해도 딱히 문제없지.”

“...의외로 화끈하시군요”

“허허~ 아내를 만나 젊음을 되찾은 기분이라서 말일세.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게. 반드시 힘이 되어 줄테니.”

“공녀님을 지지해 달라고 해도요?”

“크흠 자네와 마을에 대한 지지 일세.”


아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갈드르 백작을 포함해 뒤에 있는 자들의 반절 이상은 북부에서 꽤나 발언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중 9년 전 인마대전에서 북부의 공신으로 봉해진 갈드르 후작의 신뢰와 지지는 무척이나 컸다.


대공의 힘이 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민심은 천심. 그 민심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자가 바로 갈드르 백작이기 때문이다.


“카, 카벨ㅆ...!”


이 상황을 빨리 귀뜸하려 카벨의 정복을 붙잡았지만, 이내 놓고 말았다.


그의 나름 카벨과 가깝게 지내온 아셀이기에 아는 입꼬리의 주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상황을 예상 했던 건가?


‘확실히 귀족들의 가족들이 있는 것도, 능력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들으셨을 테니...’


아셀은 새삼 카벨이 말했던 ‘선의로만 한 일은 아니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 눈도장을 찍은 귀족무리가 떠나자 아셀은 조심스레 물었다.


“다 예상 한거죠...?”

“했지. 내가 미쳤다고, 공녀 누울 자리 보는데 아무 마을이나 찍어서 죽어라 지켰을 것 같냐?”

“하...”

“공녀나 양산형 엘프한텐 말하지마. 나쁘게 말하면 가족 인질 잡고, 공녀에 대한 지지를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네! 두 분은 눈치가 절멸해서 모를 거에요!”

“...그렇게 까진...”


애를 너무 팼나? 아셀의 해맑은 폭언에 카벨은 조금 마음이 쓰려왔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금색 밤톨이 두 사람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헉, 헉! 여, 여기 있었구나...! 드디어 찾았다!!”

“엔야? 뭔데 그렇게 급하냐? 너도 고기 먹을래? 이거 맛있다.”

“먹을...! 아니! 그보다 빨리 준비해요오! 공녀님이 찾으시니까!”

“공녀가? 왜?”


행사에 그런 순번이 있던가? 분명 조금 있다가 대공이랑 공녀가 나와서 이야기 하고, 반려후보들 소개하는 걸로 끝날 텐데?


갸웃하며 고개를 돌리자, 몰래 쑥덕이던 아셀과 엔야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여, 여하튼 가시면 알거에요오! 빨리 빨리!!”

“아 쫌!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싸두겠습니다! 이거랑 이거죠? 걱정 마세요!”


묘하게 텐션이 오른 아셀을 의뭉스럽게 본 카벨이, 찜찜해 하며 엔야에게 끌려갔다.


홀로 남은 아셀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벨씨. 죄송합니다. 그래도 날붙이는 최대한 치웠어요...”


들리지 않을 사과가 번잡한 행사 분위기 속에 의미 없이 흩어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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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오랜만이구나 제자아! (이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24.09.08 10 1 16쪽
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1 1 16쪽
38 37화. 도둑 24.09.06 12 1 13쪽
37 36화. 루팅의 프로 24.09.05 12 1 15쪽
36 35화. 쯧 24.09.04 14 1 12쪽
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5 1 13쪽
34 33화. 쪽 24.09.02 15 1 14쪽
» 32화. 발라내기 24.09.01 16 1 12쪽
32 31화. 샌드백 24.08.31 19 1 14쪽
31 30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24.08.29 24 2 13쪽
30 29화. 전령 24.08.28 30 1 15쪽
29 28화. 봉이다! 24.08.27 30 1 19쪽
28 27화. 반려후보 결정전의 시작 24.08.26 32 1 18쪽
27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0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1 1 17쪽
25 24화. 후련할 것 같아서. 24.08.23 41 2 14쪽
24 23화. 선처하겠습니다. 24.08.22 34 2 19쪽
23 22화. 이놈이 먼저 끼어들었어! 24.08.21 32 1 16쪽
22 21화. 땜통 24.08.20 34 1 17쪽
21 20화. 공녀의 불씨 24.08.19 31 1 13쪽
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18 17화. 중급마족 24.08.16 32 2 15쪽
17 16화. 너무 좋은데? 24.08.15 35 2 12쪽
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6 2 15쪽
15 14화. 그게 뭔 좆같은 소리냐고!! 24.08.13 37 2 16쪽
14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24.08.12 45 2 18쪽
13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2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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