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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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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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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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대공의 호의

DUMMY

26화


대공의 방은 넓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간소한 집기도구로 인해 더 넓어보였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 해봐야 구석에 놓인 화장대와 무기걸이 정도였다. 실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공다운 방이었다.


대공은 북부의 눈 내린 평야 같이 새하얀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보다 가라 앉아 있는 갈색 눈에 달빛이 일렁였다.


“단순한 쭉정이는 아니라는 건가.”


대공이 방금까지 읽고 있던 두터운 양피지에서 비로소 눈을 떼며 중얼거렸다.


감정을 배제하고 본다면 무척, 아니 정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그게 그 검정 쭉정이가 제안한 게 아니 꼬을 뿐이다.


‘넘기기엔 유레하에게도 아까운 기회다.’


그런 공녀에게 제대로 된 머물 곳이 생기고, 세력까지 생길 가능성이 찾아왔다.

또한 공녀도 마을을 관리하여 정치력도 키우고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넘기기엔 너무나도 큰 기회였다.


“제법이군.”


대공은 그를 조금이나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가 맹세를 이행하여 공녀의 편이 되어준다면, 이상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었다.


유레하가 계속 그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고까웠지만... 사적인 감정을 제외하고 본다면 어떤 포상을 내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똑똑-


그때 겸손함과 사무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조심스레 문이 열리며 검은색 상복을 한 라셀이 추레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요 며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집무에만 열중한 탓에 목이 거북이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심복을 보니 대공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대공전하 찾으셨습니까.”

“내일부터 너에게 휴가를 주겠다.”


어제와 똑같은 명령투에 라셀은 한숨으로 먼저 답했다.


“전하 말씀드렸지만 제가 쉬면...”

“되었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대공이 테이블에 놓인 함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함을 받아든 라셀은 강경한 말투에 당황했다.


“단. 휴가 첫날 잘라내기 마을에 둘러 상태를 보고 와라.”

“예...?”

“안내할 자를 접견실에 부를 테니 얼굴을 익혀두도록.”

“전하! 가족 중 죽은 자가 있을 땐, 사사로이 그 마을에 가지 않는 것이 북부의 법이옵ㄴ...!”


쿵-!!


어느새 무기걸이에서 뽑혀 나온 대검이, 대공에 손에 들려 바닥을 찍었다.


라셀은 육중한 소리에 순간 피로를 잊을 정도로 움찔 했다.


“왕명이다. 싫으면 네놈도 내 검을 받아내던가.”

“......”


라셀이 침음하며 입을 다물었다. 대공의 곁을 지킨 지 오래. 저렇게 나오는 대공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고개를 조아리며 라셀은 방을 나섰다. 대공의 눈이 힘없는 그의 등을 조용히 쓸어내렸다.


“포상이라... 칫.”


잠시 양피지더미를 내려 보던 대공이 결심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내할 자를 접견실에 부를 테니 얼굴을 익혀두도록.-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 라셀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대공의 명령에 따라 접견실에 앉아있었다.


안내할 자를 굳이 만나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


똑똑-


[안내하실 분이 드셨습니다.]

“들라하시게.”


라셀후작은 피로한 기색을 헛기침으로 쳐내곤 자세를 바로잡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추레한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들어섰다.


“으음...”


라셀후작은 단숨에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배움이 미천하다고 해도 이야기를 할 땐 얼굴을 보이는 것이 예의거늘...


하지만... 라셀은 이후 후드 아래로 드러난 얼굴을 보고, 절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생채기가 난 얼굴에 뒤로 짧게 묶은 부스스한 금발머리, 연신 커다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맑은 푸른색 눈동자.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아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 아셀...!”

“아버님...!”


라셀후작은 더러운 복색에도 개의치 않고 아들을 끌어안았다.

슬픔을 잊기 위해 일에만 몰두하느라 식음을 전폐 했지만, 거짓말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언어를 잊은 것처럼 서로를 연신 불러댔다. 불러도 닿지 않던 그 시간을 되찾으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 이게 어찌 된 것이냐! 어떻게 여기 온 것이야...! 죽은 자는 성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괜찮습니다. 아버님...! 대공전하께서 카벨씨의 동행자로 특별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전하께서?! 카벨이라니... 그 외부인 말이냐?”


라셀후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까운 신하라고 하지만, 대공이라도 북부의 법을 위배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가혹한 북부에서 법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대공이 이런 특례를 신하를 위해 마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라셀 후작역시 아비였다.


머리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울고 있는 아들의 못 본 새 수척해진 얼굴을 잊지 않으려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얼굴이 이게 무엇이냐...! 며칠 사이에 무슨 고생을 했길래... 몸은 괜찮은 것이냐! 침식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고?!”

“아버님. 이제 다 괜찮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사랑이 고픈 어린아이로 돌아간 아셀은 코를 먹는 것도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말했다.


“카벨씨가 저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침식을 풀어 주고 있으니까요!”

“뭐라...?!”

“뿐만 아닙니다! 카벨씨가...!”


아셀은 영웅의 무용담처럼 카벨이 했던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들을 라셀 후작에게 이야기 했다.


영웅담에서 점차 말도 안 되는 계획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자, 눈두덩이가 붉게 변한 후작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



“후우...”


늦은 밤 객실 뒤쪽의 공터. 카벨은 감시가 심해진 공녀를 피해 나뭇가지를 들고 집중했다..


천천히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내리던 마력색의 오러가 이내 안쪽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먹빛의 빗금들이 나무 주변에 일렁이기 시작하자...


뿌득-


기세를 버티지 못한 나뭇가지가 터지듯 박살났다. 잔해들이 카벨의 발치에 있는 수많은 파편위에 떨어졌다.


“기껏 성질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는데, 마음처럼 안 되네. 기초 오러 운용법의 한계인가.”


카벨은 답답한 기분에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를 긁었다.


애초에 그가 가지고 있는 오러의 성질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그 한계를 재단하는 것은 바로 카벨의 오러 운용법이었다.


현대의 헌터 가이드 북에 나와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기초적인 기술이 바로 그 모체였다.


기초라고 해도 가이드북의 검술과 운용법은 상당한 것이었다.


헌터들을 통해 누적된 데이터로, 개정에 개정을 거친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기초기술이다. 최상급은커녕 상급 오러만 되도 안정적인 제어가 불가능 했다.


애초에 가이드북의 기술은 거쳐 가는 용도지, 끝까지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공의 오러를 보고 그것을 훔쳐 배울 생각으로 주기적인 대련을 요청했지만... 보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하. 어디서 친절한 소드마스터 하나 뚝하고 안 떨어지ㄴ...”


쿵-!!


“뭐, 뭐야?!”


그때 무언가 떨어지며 커다란 흙먼지와 함께 쌓여있던 눈이 솟구쳤다. 습격인가? 카벨은 벗어둔 장비가 놓인 곳으로 물러섰다.


뒤이어 불어온 칼바람이 흙과 솟구친 눈을 걷어내자, 그곳엔 절대 친절하다고 할 수 없는 괴물이 서 있었다.


거대한 근육질 몸과 그에 걸맞는 거대한 대검. 내리는 눈 속에서 늑대처럼 빛나는 짙은 갈색의 눈동자. 대공이었다.


“대, 대공전하...?!”

“음.”


얼떨떨해 하는 카벨을 대공은 대답 없이 가만히 노려보았다.


“여, 여긴 어쩐 일로...”

“가끔씩 검을 섞어달라고 한건 네놈이 아닌가.”


그건 그랬지만 설마 이 밤중에... 설마 갑자기 독대해 들이받은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걸까?


최근 데릭을 통해 다시 중급 물약 재료를 다시 정상적으로 풀어달라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기다릴걸 그랬군.


복잡한 카벨의 심상 따윈 상관없는 듯, 대공은 위아래로 그를 훑었다.


잡아먹히기 전 살집을 확인당하는 가축의 기분이 이런 느낌이군. 카벨은 추위에 상관없이 몸이 떨려왔다.


“흥이 식었다.”


대공이 짤막한 감상을 내뱉곤 뒤돌아섰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평가 질... 카벨의 눈썹이 살짝 뒤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공은 눈밭으로 나가 대검을 들고 조용히 호흡했다.


“감각이능을 가지고 있다지.”

“예...? 아 예.”

“흠.”


그것을 끝으로 대공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검을 들고 집중할 뿐이었다.


고오오-


나이 들었지만 탄탄하고 두꺼워 보이는 대공의 피부를 따라 오러가 넘실거렸다.


순백색의 오러는 이내 타오르듯 대공의 주위에서 넘실거렸다. 오러가 흔들릴 때마다 내리는 눈이 밀려나듯 궤도를 바꿨다.


“후우...”


깊고 중후한 숨소리. 불어오는 강풍에도 대공의 오러는 강한 자기주장을 뽐내며 흔들리기를 거부했다.


카벨은 저도 모르게 그 풍경에 빠져들었다. 뚜렷하게 드러난 대공의 오러가 감각스킬을 통해 느껴져 왔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가 조금씩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화아악-


잘 단련된 오러가 천천히 대검으로 흘러들어 군청색으로 불타올랐다. 그러더니 천천히 검날의 형태를 갖춰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카벨이 대공의 오러 블레이드를 본 것은 이것으로 두 번째다.


때문에 굳이 저렇게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훨씬 빠르게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은 오히려 그게 목적이라는 듯 천천히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었다.


한번은 느리게, 한번은 빠르게. 마지막은 더욱 느리게.


검을 받아내는 내기를 할 때, 상당히 봐주고 있었군.


카벨은 새삼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흡.”


부웅-!!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어진 오러블레이드의 궤적에 공간이 일렁였다. 마치 자연현상 그 자체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마치 검 자체가 이치라고 주장하듯 설원의 풍경 위로 궤적을 남겼다.


대공은 운용법을 보일 때처럼 각각의 빠르기로 기본 검세를 보였다. 새하얗게 불타는 오러가 힘의 분배를 따라 기세를 더하거나 빼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쿵-!!


비로소 대공이 오러를 거두곤 대검으로 바닥을 찍었다. 어느새 그 오러에 매료되어 있던 카벨도 뒤늦게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긴 3일 동안 내가 쓰겠다.”

“예? 제 객실 앞입니다만...”

“불만인가.”


그러면 또 한 번 받아 내보던가. 카벨은 말하지 않은 뒷말이 들리는 것 같아 냉큼 도리질 쳤다.


그 패기 없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대공은 구겨진 얼굴로 욕을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터벅터벅 본성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대공이 멀어지자 카벨은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뭐야 저 인간? 갑자기 와선...”


하지만 투덜대는 것도 잠시. 카벨은 방금 전 눈앞에 일어난 오러의 움직임이 눈앞에 떠올랐다.


애초에 소드마스터의 오러 운용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 한순간 한순간이 잊힐세라 복기했다.


“잠깐. 설마 일부로 보여주려고 한건 아니겠지?”


그 대공이 왜? 씹어 먹지 못해 안달 났으면 났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앞으로 3일. 대공이 이곳에서 연습한다고 했으니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고오오-


카벨의 오러가 감각스킬에 잡혔던 대공의 오러를 흉내 내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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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오랜만이구나 제자아! (이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24.09.08 10 1 16쪽
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1 1 16쪽
38 37화. 도둑 24.09.06 13 1 13쪽
37 36화. 루팅의 프로 24.09.05 12 1 15쪽
36 35화. 쯧 24.09.04 14 1 12쪽
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34 33화. 쪽 24.09.02 15 1 14쪽
33 32화. 발라내기 24.09.01 16 1 12쪽
32 31화. 샌드백 24.08.31 19 1 14쪽
31 30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24.08.29 25 2 13쪽
30 29화. 전령 24.08.28 30 1 15쪽
29 28화. 봉이다! 24.08.27 30 1 19쪽
28 27화. 반려후보 결정전의 시작 24.08.26 33 1 18쪽
»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1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2 1 17쪽
25 24화. 후련할 것 같아서. 24.08.23 42 2 14쪽
24 23화. 선처하겠습니다. 24.08.22 35 2 19쪽
23 22화. 이놈이 먼저 끼어들었어! 24.08.21 33 1 16쪽
22 21화. 땜통 24.08.20 34 1 17쪽
21 20화. 공녀의 불씨 24.08.19 31 1 13쪽
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18 17화. 중급마족 24.08.16 32 2 15쪽
17 16화. 너무 좋은데? 24.08.15 36 2 12쪽
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6 2 15쪽
15 14화. 그게 뭔 좆같은 소리냐고!! 24.08.13 37 2 16쪽
14 13화. 빌어먹을 양산형 엘프 놈이...! 24.08.12 45 2 18쪽
13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2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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