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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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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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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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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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선처하겠습니다.

DUMMY

23화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 지붕 위. 더듬이 수염은 그곳에 서서 전장을 내려 보았다.


하지만 상태가 이상했다. 초점 없이 비어있는 동공과 입과 귀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더듬이 수염은 어둠을 머금은 입을 비죽 올리며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흘렸다.


=아주 흥미로워...=


그가 입을 쩌억 벌리자, 투툭 거리며 턱뼈가 빠지고 볼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온통 파란색인 그것은 후드를 젖히듯, 더듬이 수염의 턱을 찢으며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검은자위에 야생동물 같은 샛노란 눈동자. 베르토와 달리 반가량이 붉은 색인 뿔.

이성을 뒤흔들 모든 생김새를 총집한 듯 아름다운 외형의 중급 마족이었다.


스르륵-


그때 마족여성의 파란색 몸을 타고 거대한 연가시 같은 것이 뱀처럼 손을 타고 올라왔다. 베르토에게 심어두었던 기생생물이었다.


잠시 후 생물의 입에서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벨과 베르토였다.


-어, 어떻게 네놈이 사기를 벨 수 있는 거지...!-

-헉, 헉... 그거 꼭 지금 설명해야 돼?-

-설마... 그 검 때문인가...!-


콰득-!


불길한 소리를 끝으로, 연체동물은 그녀에게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 녀석을 죽일 방법이 이런데 있을 줄이야.=


나른한 시선이 붉게 빛나는 마을에서 피어오른 흙먼지를 향했다. 그녀의 눈꼬리가 먹잇감을 발견한 여우처럼 휘어졌다.


+


‘저저 망할 공녀가...! 대공만 아니었으면 콱!’


유레하 공녀, 벨티오와 지들 딴엔 감동적인 해후를 마친 뒤, 카벨은 도끼눈을 떴다.


후드를 벗어 훤히 드러난 은색늑대의 아름다운 형상과 만신창이가 된 몰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레하를 걱정하며 따르는 마을 사람들까지...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상황만 아니었다면, 한바탕 들이받았을 지도.


“그래서. 이건 또 뭡니까?”


카벨은 관절을 모조리 뺀 덕에 연체동물처럼 널브러진 기사와 마법사를 가리키며 유레하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갑자기... 아. 그보다.”


스스럼 없이 카벨의 손은 잡은 유레하가 새벽빛 같은 희미한 웃음을 띠웠다.


그 애절한 표정에 카벨은 오랜만에 머리를 박아 이것저것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 쳤다.


“무사하셨군요. 올 것이라 믿고 있었어요.”

“무사? 공녀님이 약속한 걸 죄다 어긴 덕택에 대공께 무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선처한다고 했지 지킨다곤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우리 신뢰관계에 대해 얘기 좀 합시다.”

“선처하죠.”


카벨은 다시 웃음꽃을 피운 그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울화가 스르륵 녹아버렸다.


이세계 치트의 0티어는 역시 외모라니까...


“됐고. 잠깐 빠져서 몸 좀 사리고 계시죠.”

“남작도 더 이상 발뺌할 수 없으니 다 끝난 것 아닌가요? 기사나 마법사도 모두 무력화 된 것 같고.”

“...중급 이상의 마족이 한 마리 더 있습니다.”

“....!!”


마족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느슨해 졌던 유레하의 마력이 빠르게 정돈되는 것이 카벨에게 느껴졌다.


전장에서 살았다고 하더니 그 값은 하는군.


카벨은 감각을 한껏 끌어올리고 주변에 오러를 흩뿌렸다.


잠시 뒤 천천히 이동하는 불온한 기척이 느껴지자, 망설임 없이 남작을 향해 돌진했다.


“너네들은 등장 타이밍이 어째 짠 것처럼 똑같냐!”

“흐, 흐어억?!”


카앙-!!


검이 남작의 머리털을 가른 순간, 허공이 일렁이며 푸른색의 피가 솟구쳤다. 동시에 아름다운 푸른 손에서 뿜어진 마력이 카벨을 가볍게 쳐내버렸다.


=후후... 눈치가 빠르네? 감각이능의 소유자다워.=

“르, 르네!!”


코가 으스러진 발데크 남작이 구원 받은 것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자, 잘왔다! 빨리 날 구해다오! 이 녀석들을 모두 죽여!! 그리고...!”

=그리고?=

“...그걸 내게...! 어, 어서!!”


남작이 절박하게 르네라는 마족의 허벅지에 매달려 개처럼 푸른 피부를 핥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킥킥대던 르네의 피부에서 검은색 액체가 땀처럼 맺혀흘렀다.


“오오!! 오오오...!!”


남작은 귀족이란 체면도 잊고 정신없이 검은 액체를 핥고 또 핥았다.

르네는 무료한 표정을 짓고 코웃음을 쳤다.


=이제 그만. 치덕거리는 건 매력 없거든~? 너보다 더 중요한 볼일이 있으니까 얌전히 있어줄래?=


휘오오-!


“으윽!! 이거...!”

“사기가...! 다들 마력을 거둬!”


그녀의 검은 액체로 가득한 손에서 짙은 농도의 사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약한 자들은 일어나지 못하고 꺽꺽 소리를 냈고, 멀쩡한 이들 역시 괴로워하며 주저앉았다.


“마, 마족 년! 사, 살려...!”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작과 그의 병사들은 목을 부여잡고 켁켁 거렸다. 하지만 마족 여성의 시선은 황금색 검에 꽂혀 있었다.


그때...


=흐음...?=


르네의 시선이 유레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빛나는 은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마족여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공녀. 널 위해 준비해 온 사기지만... 오늘 관심 있는 건 네가 아니라 다른 거니 안심ㅎ...”


쉬이익-!!


보라색 머리카락 몇 올이 황금색 검에 잘려 허공에 휘날렸다.


“그 관심. 아까부터 애매하게 무시당하고 있던 나한테 좀 쏟는 게 좋을텐데!”

=어머. 남자의 질투는 추한데~ 뭐, 이미 추하니 더 해 봤자 상관없나~?=


울컥-


“...방금 뭐라고 그랬지?”


순간 앞에 있던 남자가 지었던 얼굴에, 르네는 몇 십 년 만에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억눌렀다.


르네가 인상을 쓰며 거리를 두자, 카벨이 추격하여 무형의 오러로 연이어 몰아쳤다.


‘빌어먹을 사기 때문에,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해.’


슈우우-


황금색 검에 미약하게 흩날리던 마력과 닮은 무형의 오러가 순식간에 검안으로 압축 되었다.


최대한 정순한 오러를 담기 위해 깊고 느린 들숨을 마신 카벨이 전신해방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기출 변형. 이지선다. 괴물을 가르는 베기나 베기.”


뿌드득- 뿌득-!!

쉬이익!!


같은 궤도의 두 가르기가 거리를 벌리려던 르네의 어깨에 망치와 정처럼 연속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스겅-!!


황금색 검은 마치 굳기 전 고형물을 휘저은 막대처럼 르네의 몸을 반쯤 가르다 멈춰 섰다.


당황한 카벨이 바로 검을 빼내려 했지만, 검은 강철에 박힌 것처럼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헉, 헉... 권능인가? 망할 하필 이때...!”


카벨은 검을 빼내기 위해, 사기가 침식되는 것도 감수하고 오러를 흘려보냈다.

그 억척스런 발버둥이 귀여운 듯 르네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만 놓지 그래? 이 검은 내가 잘 써줄테니까.=

“왜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중요한 물건이라서 말이야!”

=흠~ 내가 노린 물건에 상처가 나는 건 싫은데. 아 그렇지. 그냥 팔 째로 찢어 버ㄹ...=


티틱-


그 순간 카벨의 검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윽고 부식된 금속이 떨어져 나가며, 녹슨 쇳가루가 균열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여유롭던 르네의 얼굴이 처음으로 당혹감에 물들었다. 다만 카벨은 절망감도 충격도 아닌 묘한 시선으로 균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안 돼! 사기를 베는 검이...!=


퍼서석-! 캉!


뒤늦게 검을 몸에서 때려고 했지만, 황금색 검은 순식간에 녹 가루를 흩날리며 부서져 버렸다.


마족여성이 부서진 검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검 조각들은 바닥에 닿자 모래더미 같이 무너져 버렸다.


어떻게 검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풍화된 탓이었다.


=너어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ㅎ...!!=

“멈춰라 마족 놈!!”


쇄애액-! 퍼퍽!


청록색 오러가 담긴 화살과 마른 나무 장벽이, 달려들려는 르네의 앞을 막아섰다. 벨티오와 엔야였다.


벨티오는 짙은 사기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핑크색 프릴을 휘날리며 화살을 연사했다.


그 기괴한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뿜었지만, 그럴 때 마다 정확히 귀를 스치고 날아오는 빈 화살대에 모두들 입을 틀어막았다.


카벨 또한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자, 그의 성난 시선이 은색의 칼날과 함께 날아왔다.


챙-!


은색 까마귀 문장이 새겨진 숏소드. aka 바프라 불리는 것.


젠장 머릿속에 이름이 남아버렸어.


“오래 못 잡아 둔다! 빌려줄 테니 어떻게든 해라!!”


바프를 잡은 카벨의 입가엔 처음 보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서려 있었다.


“약속은 지켰다고 할망구.”


키이잉-!


카벨의 검에 피어오른 무형의 오러에서, 기이한 공명음과 먹색의 선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불길함을 감지한 르네는 붉은 사기와 검은 액체로 거대한 얼음송곳을 만들었다.


+


한밤 중 병사들을 모아 부랴부랴 잘라내기 마을로 보낸 직후. 조금 호전된 침상의 대공 곁에선 레오닐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공께선 왜 그 외부인에게 그 목걸이를 준 것입니까?”


대공은 탐탁찮게 혀를 찼다. 카벨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은 모양이다.


“검은 보면 사람을 아는 법입니다. 마법검 같은 것에 의지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은 없습니다.”

“흠...”

“대공전하의 검을 받아낸 것도, 요행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크큭... 크하하하!!”


별안간 터진 웃음에 레오닐 원수는 멍하니 대공을 응시했다.


“전하. 제 말에 무슨 문제라도...”

“그건 마법검이 아니다. 그냥 고철이지.”


고철이라니... 동요한 레오닐 원수의 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공은 웃는지 화내는지 모를 사나운 얼굴로 잔웃음을 뱉었다.


“어렸을 적 수련을 위해 성국에 갔을 때, 그런 비슷한 짓을 하는 놈을 봤다.”

“비슷한 짓이라면?”


대공은 오랜만에 떠오른 옛 기억에 서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가장 약한 금속으로 검의 형태를 만드는 거다. 조금만 잘못 흔들려도 부러질 정도로.”

“그러면 가지고만 다녀도 부서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러지지 않게 계속 오러를 주입하는 거다. 잠들 때도, 쉴 때도 말이지.”


드리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대공만큼은 아니지만 북부 내에선 따라올 자가 없는 강자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러를 검에 불어넣는다? 그것도 며칠, 몇년에 걸쳐서 계속? 생각 만해도 기력이 빨리는 것 같았다.


“그럼 계속 그 짓을 영원히 계속 하는 것입니까?”

“아니다. 그 검이 스스로 낡아 부서질 때 까지다.”


짐승 같은 웃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하지만 드리갈은 여전히 납득 할 수 없었다.


“왜 정석에 역행하는 일을 하는 겁니까? 오러는 신념과 마음의 힘. 개성을 약하게 만드는 짓 일터...”


마법사가 마법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 듯이, 기사역시 오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오러를 사용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신념과 마음을 갈고 닦아, 원하는 상황에 폭발시켜 강대한 힘을 내는 것이다.


그게 불안정한 마음의 힘을 사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니까. 그것을 거스르려는 자는 없었다.


그에 대공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답했다.


“버텨내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오러 통제 능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러의 질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더니, 설마 거기서 파생된 건가?


레오닐 원수는 아직 남은 의구심을 넘기면서 대공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공께서 말씀하신 그자는 성공했습니까?”

“반만 성공했다. 놈은 성질이 급해서 말이지.”

“누굽니까? 그자는”

“지금은 ‘호염의 소드마스터’라 불린다.”


레오닐 원수의 몸이 떨렸다. 무기를 다루는 사람치고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자가 없었다.


서쪽 성국 이데시아의 수호기사 호염의 소드마스터. 소문으론 몇 백년 전 날뛰다 성국에 의해 봉인된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난 자였다.


빈틈 없이 풀플레이트로 무장한 채, 불타는 오러로 자신까지 태우는 것 같은 모습은 그자를 본 많은 이들의 동경을 자아내곤 했다.


레오닐 원수는 지금껏 업신여기던 이야기의 대상이, 동경하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 몸을 떨었다.


그를 본 대공이 히죽 웃었다.


“며칠 전 그 건방진 놈과 내기를 할 때. 아무리 손속을 뒀어도 내가 부딪힌 건 오러 블레이드였다.”

“.....”

“아마 그 녀석이 끝까지 자기 검을 고집했었더라면 검 채로 베였을 테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


드리갈은 머리가 정돈 되지 않았다. 호염의 소드마스터와 그 남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제자? 아니면 그저 지인?


하지만 대공은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애써 마음을 다스린 드리갈이 헛기침을 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렇지만, 왜 대공께선 그 자를 건방진 놈이라 하는 것입니까?”

“음...”

“목걸이를 주었다는 건, 조금은 인정한 것 아니십니까? 인재를 아끼는 대공께서 어찌...”


순식간에 언짢아진 대공이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진 놈이지 않나. 내 검을 훔칠 요량으로 대련을 요청했으면서, 다른 놈의 가르침을 관철하다니.”“...예?”

“게다가, 내 딸이 그놈을 싸고도는...!! 으억!!”


뒤늦게 천불이 올라온 대공이 뒷목을 감싸자, 졸고 있던 치료사들이 허겁지겁 침상으로 다가왔다.


드리갈은 부산스런 대공의 침대 곁에서 대공이 한 말의 저의를 헤아렸다.


+


“도깨비 장난을 가를 정도의 베기.”


스걱-!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르네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베여있었으니까.


가장 믿기지 않는 점은 자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얼음송곳이, 놈의 기묘한 검로에 마력으로 환원되어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기로 강화되어있는 얼음 화살이 말이다.


뿌드득- 뿌득-

파지직-! 캉!


기괴한 소리와 함께 르네가 정신을 차리자, 카벨이 든 검이 폭발하듯 부서지고 있었다.


“헉, 헉... 오랜만에 쓰는 거라 감이 안 잡히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는 카벨의 손에서 무형의 오러와 기묘한 먹색 선들이 일렁였다.


온몸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도 그가 마주서자, 르네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들썩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


르네는 광소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마력이 주변을 뒤흔들며 쩌렁쩌렁 울렸다. 웃음소리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자들이 하나 둘씩 기절하기 시작했다.


그극- 극-


사기를 베는 기술과 해방. 몸과 정신력에 무리가 가는 두 가지를 한 번에 사용한 카벨도 여파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쓰는 자신의 상급 오러의 증표인 ‘성질’. 몸은 이만 쉴 것을 권하고 있었다.


‘쓰러지면 안 돼...!’


다행히 다짐이 무너지기 전, 광소는 끝났다. 반쯤 얼굴을 가린 그녀의 손 사이로, 불이 붙을 것처럼 흥미가 가득 서린 샛노란 눈이 번뜩였다.


=검이 아니었어. 사기를 베는 건 너였구나~? 후후, 그렇다면 너와 싸울 필욘 없지.=

“시비 걸어놓고 깽값도 없이 가게? 그렇겐 못하지!”

=허세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너 정도는...=

[와아아-!!!]


그때. 마을 저편에서부터 수많은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선두에 세워져 있는 공국기. 대공의 병사들이었다.


남작의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공국병의 군대에 놀라 우왕좌왕 했고 일부는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르네 역시 예상치 못한 병사들의 출현에 시종일관 유지하던 여유로움이 박살났다.


“마음만 먹으면 뭐? 계속 말해. 듣고 있으니까.”

=칫! 대공의 병사들이 올 줄은 생각하지 못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 겠어.=

“마족의 애프터 신청 따위 받을 생각 없거든? 신경써야 할 건 하나만으로 족해서 말이야.”

=후후~ 공녀 말인가? 그렇다면 혹할 만한 초대장을 보여줘야겠네~?=


르네의 발치에서 천천히 검고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혔다. 그러곤 카벨의 귓가에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반려후보 중에 공녀의 죽음을 사주 받은 암살자가 있어.=

“.....?!”

=그게 누구인지는... 다음에 만나면 알려줄지도~?=


쪽-


부웅-!!


볼에 닿은 보드라운 감촉에 카벨은 전력으로 부서진 검을 뻗었다. 하지만 검은 마력의 잔재만이 헛되게 흩어질 뿐이었다.


수많은 의문더미가 뒤늦게 카벨의 머릿속을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 곧 누구보다 걱정해야 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아 맞다 공녀!! 공녀님! 괜찮습니ㄲ...”


카벨은 마저 하려던 걱정을 삼켰다. 평소도 얼음같은 무표정이지만, 왠지 더 날이 선 시선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넌 또 왜 그러는데? 무섭게...


“마, 마족이 물러갔다!!”

“정말 지원이 왔어!! 살았어... 살았다고!!”

“공왕국의 병사다! 공녀님께서 병사를 데려오셨어!!”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카벨은 유레하의 냉랭한 시선을 오랫동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바, 바프으!!!”


그렇게 모두가 얼싸안고 환호하는 가운데, 부서진 검을 쥔 벨티오의 절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저거. 힘이 풀린 카벨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러자 백 여명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순식간에 마을로 들이 닥쳐 남작의 병사들을 포위 했다.


남작의 병사들과, 쓰러진 발데크 남작. 그리고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 지휘관과 병사들은 이 상황이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듯 했다.


그러자 엉망이 된 유레하가 지휘관 앞으로 나섰다.


“발데크 남작은 마족과 거래하고 주민들을 괴롭혀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해하려 한 중죄인입니다.”


그들의 시선에 혐오가 차오르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련자들을 묶어라!! 연행해서 정황을 샅샅이 확인해!! 2소대는 남작령으로 가서 증거를 확보해라!”

[예!!]


병사들의 움직임 속에서 카벨은 온몸을 두들기는 피로와 고통에 비로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듯 마을에 색채를 덧입히는 아침 해를 맞이했다.


“카벨씨.”

“예?”

“말씀하셨던 저희 신뢰 관계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것. 좀 더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선처 하겠습니다.”


왠지 등에 유레하의 칼끝이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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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약속을 지킬 때이니라. 24.09.07 11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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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루팅의 프로 24.09.05 1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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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평생 벗지 말아야지. 24.09.03 16 1 13쪽
34 33화. 쪽 24.09.02 1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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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대공의 호의 24.08.25 30 1 12쪽
26 25화. 건방진 놈 24.08.24 32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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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선처하겠습니다. 24.08.22 35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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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공녀의 불씨 24.08.19 31 1 13쪽
20 19화. 정체가 뭐야? 24.08.18 32 2 17쪽
19 18화. 그냥 쏠 걸. 24.08.17 35 2 18쪽
18 17화. 중급마족 24.08.16 32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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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미안해요. 24.08.14 36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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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그거 아닌데. 24.08.11 42 2 12쪽
12 11화. 물어 24.08.10 46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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