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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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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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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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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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임무(3)

DUMMY

에릴단은 어둠 속성 위스프이자 미궁 1층의 필드 보스 중 하나.


하지만 그 위상은 여타 필드 보스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리 면역에, 마법도 상성에 맞는 속성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전위를 통과하거나, 마력량이 적은 대상부터 공격하는 습성까지 있어서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런 녀석을, 하유성은 슥슥 칼을 휘두르더니 죽여버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보다 언제 나타난 건데?”


“다른 놈들이 밝은 빛을 비추니까 짙어진 그림자에 숨어서 천천히 기어오더구려. 그래서 찔렀는데, 찔러졌소.”

하유성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쪽은 베어보니 베어지고, 찔러보니 찔러지는군요?”

로엘리아가 자기 마력이 잘린 데 아직 앙심을 품은 듯 말했지만, 하유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은 칼을 습관적으로 털어냈다.


“그쪽은 생각보다는 수다스럽소?”


“칫···. 재수 없어.”


“정말 인챈트가 걸린 검을 쓰거나, 사실은 저희 모르게 검에 마력을 실을 수 있으신 것 아닙니까?”


안젤로가 재차 물었다.


“난 아직 검기를 쓰기엔 실력이 부족하오. 검도···잘은 모르지만, 그냥 가게에서 산 거고.”


“정말 그냥 네프툰 외피로 만든 검이 맞군요···. 근데 어떻게···.”


“찌르니까 찔러졌다니까.”


물론 실상은 하유성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에릴단은 보통의 위스프와 달리 서너 개의 작은 점처럼 된 핵이 있었고, 하유성은 그걸 한 번에 부숴버렸다.

원래라면 한쪽이 파괴돼도 다른 쪽 핵이 남아있으면 금방 복구되는 게 에릴단이 가진 방어력의 비밀이었지만, 하유성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짧은 검으로 빠르게 세 번 연달아 찔렀을 뿐이었다.


“허···참.”


그걸 제대로 보지도 못한 안젤로는 필드 보스가 검 한번 찔렸다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


‘즉사에 관한 능력도 있나···?’

가끔 마신을 추종하는 신앙의 길을 걷는 이단들이 제물을 바치는 걸 조건으로 그런 저주를 쓴다는 건 들어봤지만, 그건 아주 고레벨의 축복이었고 검과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제 볼 일은 다 봤으니 빠르게 2층으로 가도 좋소.”


“···알겠습니다.”


안젤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탈을 향해 길을 잡았다.


에릴단의 영역을 통과한 덕에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게 됐다는 게, 영 이상한 기분이었다.


‘고레벨 파티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전투가 두려워 일찌감치 개척자의 꿈을 접고 정보 장사를 하고 있던 안젤로는 새삼 이거저거 걱정하지 않고 미궁을 돌파하는 하유성의 모습을 보고 일종의 낭만을 느꼈다.


“이제 최단 거리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가 열과 성을 다해 지형을 분석하고 루트를 짠 덕에 세 사람은 정말 금방 2층으로 내려가는 포탈을 찾게 됐다.


포탈은 묘하게 단단하게 굳은 사막 모래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수많은 언덕 중 딱 그 언덕을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혼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참 금방 찾는구려.”

하유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하하, 아무리 미궁 내부의 지형이 빨리 바뀌어도, 포탈 위치는 그대로니까요. 지형의 변화 과정을 파악하는 몇 가지 기술만 터득하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원래 포탈은 이렇게 찾기 어려운 곳에 있나요?”

로엘리아가 마력의 흐름이 이상한 걸 느끼며 물었다.


“이상하게도 그렇습니다. 사냥꾼이나 탐색꾼 계열이 없으면 미궁 탐사가 힘든 이유기도 하죠. 뭐 마탑에 따르면 차원 사이를 잇는 포탈에서 나오는 마력이 주변 지형에 영향을 끼쳐서 그렇게 된 거라는 데···. 복잡한 사정이야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뭐, 일단 들어가 보지.”


세 사람은 포탈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하유성은 그동안 다시 포탈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그러자 안쪽에 쏟아지는 별 무리만큼이나 무수한 선과 점이 얽혀있는 게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지금 건드릴 수도 없겠군.’

그는 본능적으로 그게 느껴졌다.

얼추 보이긴 하지만, 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검을 댈 수도 없다는 걸.

‘언젠가 검으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과 함께 포탈에 뛰어들었다.


벌써 네 번째 포탈을 겪자 점점 부유하는 상태가 짧아지는 것 같았고 하유성은 느꼈다.


그들이 빠져나온 곳은 울창한 숲속이었다.


다만 청량한 느낌이 드는 숲이 아니라, 빼곡히 들어선 높은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어 어두컴컴하고 땅이 조금 질퍽거리는 느낌마저 드는 불쾌한 숲이었다.


“2층에는 숲과 동굴, 초원이 있죠. 여기는 보시다시피 숲이네요.”


“이딴 게 숲이라니···.”


로엘리아가 불평을 내뱉었다.


안젤로는 임무 개요에 대해 다시 설명했다.

지도를 갱신해야 하는 지역은 숲에서 북쪽으로 가야 나오는 동굴 지대.

숲에 서식하는 건 주로 동물과 작은 지성체 마물.

동굴 안에선 기존 지도를 바탕으로 매핑 마법을 사용하며 이동···.


“지성체? 마물에게 지능이 있소?”


“어떤 마물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능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지성이라는 건···.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란 뜻이죠.”


수스스스―스스스

안젤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에서 많은 숫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벌써 오는 군요. 재수없게 영역을 침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 있는 지성체는 보통 고블린, 랫맨, 페어리······.”


“어차피 말해도 잘 모르오.”

하유성도 쉬는 동안 책에서 읽긴 했지만, 어차피 글이나 삽화로는 정확한 특성을 알 수 없었다.


‘역시 검을 부딪쳐봐야 아는 법이지.’


세 사람은 포위당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형까지 달리며 이동했다.

로엘리아는 마법사인데도 다른 두 사람 못지않게 숲길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결국 세 사람이 도달한 곳은 살짝 고지대에 있는 넓은 공터.

기척을 느껴가며 몰이를 잘한 덕에 마물의 기척은 앞쪽에서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쫓던 마물이 시야에 보였다.


쿠쉭―뀌이이익


나타난 건, 대여섯 마리의 거대한 돼지.


“실컷 얘기했는데, 지성체가 아니군요.”


“멧돼지···?”


“퓨리호그에요. 송곳니와 발굽에 마력이 집중되어 있죠.”

이번에 설명한 건 로엘리아였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나타난 돼지 마물의 송곳니는 거의 하유성의 단검만큼이나 길게 자라나 있었고, 발굽 또한 눌러붙은 흙 사이로 강철처럼 번쩍이는 게 보였다.


‘500근은 되겠군···.’

일으켜 세우면 하유성보다도 몸집이 클 것 같은 다섯 마리의 퓨리호그가 취익거리며 발로 땅을 찼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데요. 어쩐지 기척이 고블린 수십 마리 같더라니.”


하지만 하유성의 감상은 달랐다.

‘처음 보는 마물. 좋군.’

“지원을 부탁하지.”

하유성은 전위답게 검을 휘적이며 앞으로 나섰다.


투두두두두―

마침내 퓨리호그가 달려왔다.

달려오는 힘 그대로 머리로 박으려는 것 같은 기세.


하유성은 쓸 수 있는 패를 점검했다.

‘천원지살(天元誌殺)로는 안 된다.’

제 일 식. 천원지살은 기본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은 다음 내미는 카운터 찌르기.


그러나 저런 다수의 돌격형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는 효과가 없었다.

짧은 검으로는 돌격을 다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후의 찌르기로 하날 처리한다고 해도

뒤따라오는 돌진에 받쳐 곤죽이 되고 만다.


‘제 이 식 지복천번(地覆天翻)도 마찬가지.’

이화접목의 묘리로 공격을 비틀어 엉키게 하는 지복천번은 상대의 팔다리를 꼬거나 공격을 되돌리는 데에나 유용하지, 저렇게 큰 힘은 버틸 수 없다.

어찌어찌 뿔이나 발굽은 비틀더라도 몸 전체가 날아오는 건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하유성이 선택한 건 오히려 선공(先攻).


하유성은 질주하는 퓨리호그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주의를 끌고, 좌우로 보법을 밟아 돌진 방향을 조금씩 뒤튼다.


녀석들은 돌진이 빗나가도 능숙하게 제동을 걸며 다시 돌진했지만, 이제 하유성이 날뛸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생긴 상태.


파천이검(破天二劍)

제 삼 식(第 三 式)

천룡휘보(天龍撝步)


용이 하늘을 찢어발기듯,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보법 중심의 제 삼 식.


하유성은 순식간에 한 놈에게 달라붙어 단검으로 얕게 벤 다음, 장검을 뿔에 검을 부딪쳐 그 반동으로 다시 뛰쳐나갔다.


특수한 보법을 밟아 다른 녀석 앞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등을 돌린 채, 검 하나로 베고 다시 다른 검 하나를 돌진하는 퓨리호그의 뿔에 휘두르며 재도약하기를 반복.


원래는 병장기를 든 여럿을 상대할 때 쓰는 초식이었지만, 마침 적에게 적당히 단단한 뿔이 있기에 하유성은 이 초식을 골랐다.


캉 ! 캉 ! 캉 ! 캉!

뿔에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유성의 신영이 순식간에 이동했다.


조금씩 상처를 입혀 주의를 끄는 것과 동시에 녀석들의 진형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하유성은 일부러 한 놈의 머리에 칼을 꽂는 것 같은 치명타는 넣지 않았다.

깊게 공격했다가는 다른 녀석의 공격을 피할 시간이 없어 당할 수 있었기 때문.


파바바바밧!!!!!!!!

그가 사방팔방을 점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치명적인 일격을 넣는 건 후위의 몫.


[마나 스피어!]

로엘리아는 자잘한 상처가 누적되어 잠깐 이동을 멈춘 녀석들의 몸통에, 아직 1레벨에 불과해 뚜렷한 속성이 실리지 않은 마나의 덩어리가 투박한 창의 형태로 날아가 꽂혔다.


쿵!

퓨리호그의 거대한 몸이 하나하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녀석들은 어찌나 맷집이 좋은지, 하유성의 칼에 계속 상처를 입으면서도 한 마리당 마나 스피어를 거의 두 대씩은 맞아야 쓰러졌다.


마침내 마지막 한 마리에게 돌진하던 하유성은 돌진하는 힘 그대로 뛰어올랐다.


파밧!! 부우우욱!

공중에서 돌진을 피하며 검 두 개를 녀석의 머리에 갔다 대자, 그대로 양쪽의 가속력으로 인해 퓨리호그의 거죽이 등까지 갈라졌다.


“휴우······.”

체력 소진이 큰 초식을 전투 내내 사용한 하유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와우! 엄청나군요. 정석적인 5~6인 파티가 아니라 걱정했는데, 두 분이서 이 정도 규모의 마물을 쉽게 처리하다니. 꽤 강한 놈들인데요.”


“마냥 쉽지는 않았소. 역시 2층 마물은 다르구려.”


“···생각보다 훨씬 강했어요.”

로엘리아도 마력을 많이 썼는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저 인간, 혼자서 완벽하게 마물의 주의를 돌리고, 체력까지 빼놨어. 나는 거의 주워담기만 했고···.’

위스프나 에릴단을 잡을 땐 그래도 뭔가 특수한 이능력 때문에 강한 거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순수한 전투 센스와 전투 수행 능력.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무인이라면 후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마물을 죽이는 데 집중했겠지만, 그는 마물이 뒤쪽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까지 신경 쓰며 싸웠다.


‘전투에서만큼은 확실히 도움이 돼···.’

이 세계에 떨어져서 강제로 목에 폭탄을 걸었고, 성 노예로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들으며 억지로 미궁에 향했다.

미궁 안에서도 처음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노동력만 갈취당하고 보상인 마석은 받지 못했다. 충분히 마석을 모은 다음 로엘리아가 자는 사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것.

그 후에는 억지로 혼자 고생하며 일 층의 필드보스를 겨우 잡아 마석을 하나 얻은 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와 대박이에요! 마석이 세 개나 나왔어.”


“마석은 2층 정예 마물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오?”


“이런 짐승형 마물들은 정예와 일반이 정확히 구분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큰 마물한테 마석이 나오는데, 얘네는 다섯 마리 중에 세 마리나 마석이 나왔어요. 이건 진짜 쉬운 전투가 아니었을 텐데···.”


마석이 체내에 생성된 마물은 그렇지 못한 마물보다 월등히 강력하다.

그렇게 강화된 정예급 마물이 세 마리나 껴 있었던 것.


“이번에는 수입이 꽤 짭짤하겠는데요?”

안젤로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봤자 인간은 인간.’

로엘리아는 흔들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하유성은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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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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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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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마검(3) 24.08.25 98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0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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