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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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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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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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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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능력

DUMMY

다행히, 그리고 의외로, 내상은 전혀 없었다. 마정을 품은 채 전음입밀과 사자후를 구사하는 강적을 마주하고도 내상이 없다는 점은 거의 기적이었다. 비록 수많은 외상을 입어 몰골은 크고작은 칼날에 난도질 당한 걸레짝 같았지만, 내상이 없다면 치유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가슴의 상처가 깊긴 해도 위급하진 않아. 무리하지만 않으면 회복할 수 있다.’


뼈가 보일 정도로 넓고 깊게 벌어진 가슴의 상처에서는 이미 피가 멎은 채 속살이 부풀어 맞닿고 있어, 벌써 회복 단계에 돌입한 모습이었다. 운공에 집중하여 출혈을 막고 독기를 몰아낸 덕이었다. 내상을 입었다면 이 과정이 훨씬 어려웠을 테니, 내상이 없는 게 천운인 이유였다.


'회영도 혈을 뚫어 놓았으니 비슷하게 몸을 다스리고 있겠지. 나만큼 빠르진 못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며, 주옥은 남은 외상을 다스리려 곧 무아지경에 빠졌다.


잠시 후,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사방이 온통 하얀 공간이었다.


‘여긴 뭐지. 내가 언제 이런 곳을···’


이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동작이 어딘가 이상했다. 일어서는 움직임이 너무 간결했다. 게다가, 분명 몸을 다 일으켰는데도 눈의 높이가 너무 낮았다. 키가 작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주옥은 급히 양손으로 몸 곳곳을 더듬어 보았다.


‘손?’


급히 온몸을 더듬던 양손을 내려다 보았다. 손이 맞았다.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을 되찾은 것이다. 순간 다시 인간이 되었다는 짜릿함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지만, 그 다음 곧바로 상황을 바르게 파악했다.


‘젠장. 꿈이네. 꿈이야.’


아무 이유 없이 다시 인간이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는 어떤 경계도 없이 그저 사방이 하얀 이질적인 공간 속에 서 있었으니, 가장 타당한 결론은 이곳이 꿈 속이란 점이었다. 기껏 되찾은 몸이 그저 꿈 속의 착각일 뿐이라니,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주옥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나마 인간의 몸을 되찾은 게 어디야. 지금이야말로 천천히 이 몸의 감각을 음미할 때다. 언제 다시 경험할 지 모르니.'


어찌 됐건 인간의 몸은 여전히 반가웠던 것이다. 온몸의 근육을 이래저래 움직여 보니, 사람이었던 시절 몸을 움직였던 그 감각이 여전했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던 몸의 근골이 사실은 이렇게 정교했음에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인간의 몸을 되찾은 김에 무공을 한 번 써 볼까? 꿈이라면 안 될 것도 없잖아?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고.’


말로서 살고 있는 현생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지금처럼 무공이 있는 말로 살 것인가, 예전처럼 무공 없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오랜 고민을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공 있는 말로 살 것인가, 무공 있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건 궁극적 목표 중 하나기도 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이 꿈은 그 목표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주옥은 서서히 단전의 내력을 끌어올려 전신에 휘감았다. 그리고는 일생 가장 많이 가르쳐 본 권각술, 그리고 말의 몸으로도 애용하고 있는 나찰무의 움직임에 내력을 실었다.점창 무공의 뿌리, 나찰무가 천천히 펼쳐지는 가운데 창천심결의 내력이 한 푼의 이질감 없이 순조롭게 얹혀 혼연일체가 되었다.


나찰무라는 이름에 대한 세간의 평은 미묘한 데가 있었다. 자세히는, 무공 자체의 난도에 비해 과분한 이름 아니냐는 얘기였다.


실제 이 무공은 점창 맨손 무공의 기초로, 내력을 획득한 어린 제자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권각술이었다.숙련도를 충분히 쌓은 제자들은 기초 검법인 십영검을 익혔고, 그 이후엔 적성에 따라 장로들의 직전제자로 들어가 상승무공을 익혔다.


그리 하여, 나찰무는 모든 점창 무공의 뿌리가 되었다. 심지어 내공이 없던 인간 시절의 주옥도 나찰무의 형만큼은 질리도록 연습하여 몸에 익혀 두었다. 말이 된 후 가장 먼저 펼친 초식이 나찰무 3초 무우각인 이유가 있었다.


다시 인간이 되어 그 무공을 펼쳐 보니, 그 이름의 무게감을 폄하하는 무인들의 식견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찰이란 불교에 귀의하여 수호신이 된 악귀를 뜻했으니, 나찰무는 꼭 그 이름처럼 패도적이었으나 사이하다 할 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춤이라는 이름에 모자람 없이 모든 동작이 유려하게 이어졌으니, 경지에 이른 무인의 몸으로 펼치는 나찰무는 그 이외 다른 이름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순했다.


‘이런 무공을 말이 되고 나서야 알아보다니. 내공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생전 온 천하의 무학(武學)을 그리 파고들었는데도...’


잔잔하게 느껴지던 아쉬움은 서글픔에 가까워졌다. 꿈에서 깨어나 말의 몸으로 돌아가면, 나찰무 전 초식을 구사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나찰무의 초식을 변형시켜 봤지만, 사람의 무공을 네 발 짐승의 몸에 우겨넣는 꼴이라 대부분의 초식은 버려졌다. 꿈 속에서 원래 모습의 나찰무를 펼쳐 보고, 이 무공에 숨겨진 오묘한 요체를 깨달은 직후였으니, 마지막 초식을 마무리하는 주옥의 움직임에는 어느 새 애환이 깃들었다.


짝짝짝-


지면에 수직으로 발차기를 뻗으며, 나찰무가 끝이 났다. 그러자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그 방향을 돌아보니, 다름아닌 태상노군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연령과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 몇 번을 봐도 저 얼굴엔 익숙해질 수 없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는 주옥에게 태상노군이 말했다.


“역시 나야. 봐라. 그 몸으로 돌아다니니까 한 달만에 이렇게 실력이 는 것 아니냐.”


태상노군이 즐거워 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옥의 표정이 푹 썩는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태상노군의 저 모순된 낯짝도 이런 식으로 생겨난 게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 동안 태상노군이 뻔뻔하게 말했다.


“재밌게 지내는 모양이더구나.”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어떤 감정을 뜻하는 지 절절히 체감하는 순간. 그런 주옥이 태상노군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대답했다.


“당신, 몇 주 전에 만났으면 흠씬 두들겨 패 줬을텐데.”


“그래서 지금 온 거다.”


태상노군의 뻔뻔한 대답에,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엄살은. 말이나 그렇게 해 본 거지, 당신이 작정하면 손끝 하나 닿기야 하겠어?’


옥황상제보다도 높은 취급을 받는 인물이 태상노군이다. 그런 인물이 고작 말 인간에게 얻어맏는 걸 겁낼 리가. 이 주제로 입씨름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다른 점을 따져 물었다.


“그 말은 계속 날 지켜보고 있었단 얘기군.”


“당연하지. 태상노군이니까. 게다가 넌 내가 스스로 고른 놈이잖냐. 역시 재미있더군.”


재미? 그러고 보니 지난 만남에서도 태상노군은 자신에게 재미있네, 어쩌네 말했었다. 재미라.


두 번째 듣는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청호를 만난 뒤 완전히 달라졌다. 머릿속에 한 단어, 아니, 개념이 떠올랐다. 연기(緣起). 눈앞의 태상노군과 청호가 같은 말을 하고있는 게 과연 우연일까?


“당신, 그 호랑이의 삶에도 개입했나?”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질문이 튀어나왔다. 태상노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난 원칙적으로 모든 생명의 삶에 개입하지만, 너나 그놈처럼 유독 재미있는 놈들에겐 마음을 더 쓰지. 네가 장요, 공손정에게 더 마음을 쏟았듯 말이다.”


그거랑은 다른 것 같은데. 나한테 힘이 있었으면 그 두 녀석을 말 따위로 부활시킬 것 같아?


장요, 공손정은 인간 시절의 주옥이 유독 아끼던 제자들이었다. 점창의 문규상 환속하지 않는 한 가정을 이룰 수 없었으니 사부에게 직전제자란 아들들이나 다름없었다.


직전제자가 없던 주옥에겐 방금 언급된 두 명이 그러했다. 그런 이름들을 저리 쉽게 언급하는 모습을 보자,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일부러 날 도발하는 이유가 뭐지? 당신이라면 그 이름들이 내게 어떤 의미인 지 알 텐데.”


따지고 드는 주옥을 보자, 태상노군은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을 해? 자기가 먼저 사람 속을 긁어 놓고.


이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태상노군이 입을 열고 말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의외였다.


“아직 인간을 버리기엔 멀었구나. 조금 더 수련해 봐라.”


이건 또 무슨 소리. 물론 청호와의 사투를 통해, 인간으로 사는 것과 짐승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정도는 실컷 체감했다.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온단 말인가?


최소한 제대로 따져묻기 위해서라도, 주옥은 한 발을 성큼 앞으로 내딛었다. 그런데,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태상노군이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 하나로 짚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은 돌아가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손가락 하나가 이마를 밀어붙였다. 그닥 힘을 준 것도 아닌데 그대로 떠밀려 뒤로 넘어진 주옥은, 자신의 몸이 끝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망할 노괴자식!!!”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내 주옥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았다.


* * *


헉!


눈을 뜨자, 태상노군과 흰 공간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청호와 싸웠던 그 초원이었다. 저 멀리 청호의 사체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야생마들은 주변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울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모든 게 멀쩡한데 나만 태상노군의 세계를 왔다갔다 한단 말이지? 순전히 그 늙은이가 나를 점찍어둔 덕분에.’


허탈함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몸은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시간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작은 생채기 정도는 벌써 흔적도 없이 아물어 있을 정도였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회복력이었으니, 그 동안 영약을 먹어 가며 해 쌓은 공력과 청호마정의 힘이 더해진 게 분명했다. 다음은 회영. 여전히 옆으로 누워 쉬고 있는 회영에게 다가가, 요혈을 짚어보았다. 그리고는, 그 회색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부 혈행이 약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안정돼 있어. 살았다고 봐도 되겠어.’


그 때, 물끄러미 바라보던 회영이 고개를 홱 치켜들고는 주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누워있는 지금 상태로 온몸을 써서 말의 언어를 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뭐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아, 먼저 묻기로 했다. 주옥은 회영이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몇 걸음 자리를 옮겨 몸짓으로 물었다.


‘궁금해?’


궁금한 게 있어? 라는 의미였다. 회영은 그렇게 말하는 주옥을 잠깐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픽 떨구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끼힝.”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 모습이 왠지 달관한 듯 보여 기분이 묘했다. 달관? 야생마들이 그런 것도 할 줄 알았던가? 자연적으로 시선이 다른 말들에게 향했다.


‘너희들도 나름 지능 계발을 하는 모양이지?’


머릿속에서는 절로 이런 독백이 나왔다. 이상한 것은, 그 독백이 끝나자마자 말들의 시선이 주옥에게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여섯 개의 눈 사이, 주옥은 적잖이 당황했다.


‘왜, 왜 날 봐? 내가 못 할 소리 했어? 아니, 애초에 소리는 전혀 안 냈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유성이 뚜벅뚜벅 다가와 몸짓 언어로 이렇게 말해 왔다.


‘두목, 말했다. 소리.’


무슨 소리? 게다가, 말을 했다고? 황급히 되물었다.


‘무슨 소리?’


‘어려운 말, 했다.’


‘내가?’


‘확실.’


하지도 않은 말, 그것도 말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말이 그들에게 전해졌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자신이 한 말이 확실하다니, 이런 능력이라면···


‘설마 전음입밀?’


다시 한 번 경악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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