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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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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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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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기사 2

DUMMY

"여기가 어디쯤이냐?"


남자는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렇게 물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목소리는 꽤 뚜렷했다.

정신력이 상당한데?


"레반티스 령 노르달이라는 마을 근방의 산기슭입니다.

조금 내려가면 인가가 있습니다."


남자는 내 대답에 원하는 정보를 얻은 모양인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버거운 숨을 고르듯, 잠시 말이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남자의 몸을 감싼 망토도 갑옷을 장식한 문양도 모두 색이 짙어 내 쪽에서는 핏자국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동하는 피냄새 덕분에 남자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이 가깝다면 어른을 불러다오."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하는 태도로 보아 실랑이라도 벌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튀어나온 게 아이라 남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모양이었다.


"제가 상처를 봐도 될까요?"


나는 남자의 요청대로 마을로 내려가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그대로 남자만 두고 마을에 다녀오기엔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피 냄새가 너무 짙었다.

내가 마을에 다녀오는 사이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네가?"


"마을에서 약제사의 조수일을 합니다.

지금 간단한 약초도 가지고 있고요."


내가 그렇게 대꾸하며 가까이 앉자 남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조수?"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 데다가 고작 약제사의 조수라는 녀석이 무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함축된 물음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의아해하는 남자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테지만, 그럴 겨를이 없어 보였다.

가까이 붙어앉으니 피 냄새는 더더욱 짙어졌고 남자의 눈이 가물거리는 것이 뚜렷이 보였으니까.


남자는 약제사의 조수라는 말에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다음 말을 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깊어 보이는데, 제가 마을에 다녀오는 사이 숨이 끊어질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해."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금 눈을 감았고 난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상처를 살폈다.

단단히 묶인 겉옷을 끌러내자 칼자국이 남은 가죽 갑옷이 드러났다.


'갑옷을 뚫고 들어갔다고?'


남자가 방한복 안에 받쳐 입은 가죽 갑옷은 상당히 질이 좋은 갑옷이었다.

간단한 공격은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단단히 묶은 가죽 갑옷까지 벗겨내자, 깊은 자상이 나타났다.

상처가 깊고 흐른 피가 상당했다.

여태 기절하지 않은 게 용하네.


- 상처가 깊군.

제대로 들어갔어.


'그렇네요.'


아르다르보의 말처럼 상처가 깊었다.

두꺼운 셔츠 위에 가죽 갑옷을 걸쳤음에도 그것을 뚫고 들어간 검상이다.

적어도 다친 이 남자와 비슷한 실력의 상대가 낸, 그런 검상.


- 그래도 내장을 다친 건 아닌가 보군.


피 냄새가 너무 짙어 내장까지 다친 상처가 아닐까 염려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저 상처가 크고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피가 너무 많이 난 듯했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쓸 수 있는 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토끼 덫 때문에 들고 올라온 지빠귀 풀과 근처에서 따온 멍석 딸기 뿐이다.

그리고 약간의 붕대.

멍석 딸기는 사람의 상처는 쓸모가 없고 지빠귀 풀은······.


······지혈초.


"지혈초 가지고 계신 거 있습니까?"


내가 묻자 남자의 감긴 눈꺼풀이 잠시 위로 솟았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이듯 내게 내뱉었다.


"반대편······,

허리에 있는 주머니."


역시, 남자 또한 응급용 약초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지리에 익숙한 자가 아니라면, 산길 자체가 위험하니까.


"다른 짐은 없으십니까?"


치료를 하며 훑어본 남자의 짐은 겨울산을 오르기엔 지나치게 단촐했다.

짐은 단촐했으나 차림은 분명 기사였다.

입은 옷가지들은 떠돌이 용병이 갖추기엔 지나치게 좋았고 무엇보다 남자의 가슴팍에 있는 문양은 내가 아는 문양이었다.


검 두 개를 교차한 문양.

내가 아는 한, 저것은 레반티스 백작가의 문양이다.

노르달을 포함한 레반티스 백작령 전체를 다스리는 레반티스 백작가의.


'레반티스 가문의 기사가 왜?'


최근 노르달에 레반티스 백작가의 기사가 방문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노르달은 작은 마을이니 기사 씩이나 되는 인물이 방문했다면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터.

그런데도 소문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산을 넘어왔나?'


산을 넘는 길은 두 가지다.

내가 온 마물의 숲 방향과 레반티스 백작령 방향.

남자가 마물의 숲 방향에서 왔을리는 없으니 레반티스 백작령 쪽에서 왔다는 말인데······, 그건 그거대로 이상했다.


땅의 주인이 정문이 아닌 샛길로 들어올 필요는 없다.

샛길이 필요한 경우라면······.

누군가를 속여할 필요가 있을 경우.


"······두고 왔다."


남자는 내 질문이 영 탐탁지 않다는 듯 남자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섞였다.

이런.

질문은 그만해야겠군.

남자가 정말로 레반티스 백작가의 기사라면 난 남자의 호감을 사야 했다.


"좀 아플 겁니다."


상처의 반대편에 묶인 작은 주머니를 뒤지자 몇가지 약초가 나왔고 난 그 중에서 지혈초를 찾아냈다.

그리고 찾아낸 지혈초에 지빠귀 풀을 약간 섞었다.

비율이 좀 모자라지만······, 지혈초만 쓰는 것보단 효과가 훨씬 낫다.


"······으······."


내 물통에 있던 물을 써 상처를 씻은 뒤 지혈초와 지빠귀 풀을 섞은 것을 남자의 상처에 발랐다.

그리고 최대한 단단히 붕대를 묶었다.

남자의 신음이 새어 나왔으나 크지는 않았다.

상처가 커 꽤 아플 텐데도.


"시간이 좀 걸릴테니 이걸 물고 계세요."


처치가 끝난 뒤 남자에게 내민 것은 지혈초와 섞고 남은 지빠귀 풀의 줄기였다.

지빠귀 풀은 아무리 잘 말려도 줄기 부분은 너무 거칠고, 그런 거친 약초를 상처에 곧장 바르기는 부적절하다.

지혈초에는 잎사귀 부분만 썼지만 그렇다고 줄기를 통째로 버리기는 아까우니 차라리 씹는 대용으로 남자에게 준 것이다.

지빠귀 풀에는 미약하지만 마취 효과가 있으니까.


"이게 뭐지?"


"지빠귀 풀이에요.

통증을 덜어줄 겁니다."


"지빠귀 풀?"


남자는 그렇게 되물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영 터무니 없는 반응은 아니었다.

지혈초면 몰라도 지빠귀 풀에 대한 효능은 사냥꾼들 사이에나 알려진 지식이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결국 손을 뻗었다.


"윽!"


"······입에 넣어 드릴까요?"


"······그래."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벌렸다.

나는 지빠귀 풀줄기를 남자의 입에 넣어주곤 일어섰다.


"정신을 잃으면 안됩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요."


남자에게 그렇게 당부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




"······이걸 네가 했다고?"


이는 나를 따라 산을 올라온 데온이 남자의 상처를 살핀 뒤 보인 반응이었다.

놀란 얼굴로 묻는 데온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빠귀 풀이랑 지혈초 섞는 법은 누구한테 배웠어?"


"······토끼 덫을 알려준 사냥꾼한테······."


"허어······."


내 대답을 들은 데온은 진심으로 감탄한 눈치였다.

지식을 알고 있어도 현장에서 바로 생각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머리로 달달 외운 것을 즉석에서 생각해내는 건 어려우니까.

아마 데온이 감탄한 부분은 그 부분일 거다.


"힘이 모자랐을 텐데, 붕대도 잘 감았고."


데온이 다시 상처를 살필 것을 의식해 붕대는 일부러 어설프게 묶었다.

최대한 단단하게 묶었지만 어설프게.

이론은 알지만 실전엔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할 법한 그런 모양으로 말이다.

덕분에 데온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고 오히려 칭찬까지 들었다.


"아주 잘했다."


데온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뿌듯한 결과였다.

나와 데온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아르다르보가 한마디 던지지만 않았다면.


- 거짓말에 능숙한 랑게르나라니.


'······언제까지 투덜거릴 거예요.'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다르보는 내가 하는 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르다르보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르다르보를 내버려두고 데온에게 물었다.


"상처가 낫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내 질문에 데온은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차지한 것은 데온의 침대였다.

노르달에서는 약제사인 데온이 의사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외부인 환자가 발생하면 데온의 집에서 돌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글쎄 워낙 상처가 깊어서······.

다행히 내장은 다치치 않았지만 위치가 좋지 않아.

제대로 움직이려면 적어도 한달은 있어야 할 거다."


"······한 달······."


한 달이라.

아마 데온이 말한 한 달은 넉넉하게 잡은 기간일 것이다.

다친 남자는 아무래도 기사처럼 보였고, 기사 수준으로 몸을 단련한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환자보다 회복 속도가 배는 빠르니까.


'그럼 2~3주 정도려나.'


이 2~3주는 완치가 아닌 움직일 수 있는 수준 기준이었다.

저 남자가 정말 레반티스 백작가의 기사라면, 거동이 가능하게 되자마자 돌아가려고 들겠지.


- 무얼 하려고?


'친해져야죠.'


친해진다.

정확히는 눈에 들어야 했다.


- 왜?


저 기사가 레반티스 백작가 중 누구의 휘하에 있는 기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방문 가능성이 높은 레반티스 백작가의 사람이라면 딱 두 명이다.

레반티스 백작가의 장자 루카스 레반티스와 차남 알브레히드 레반티스.


데온의 집이 있는 노르달은 하얀 산맥을 사이에 두고 랑게르나의 마물의 숲과 맞닿아있다.

마물들은 마물의 숲은 물론이고 하얀 산맥 쪽에도 서식하지만, 먹이가 풍부한 계절에는 깊은 산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마물이 인가로 내려오는 것은 먹을 것이 줄어들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겨울.

때문에 마물이 인가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겨울에는 레반티스 백작의 주도하에 마물 토벌대가 꾸려진다.


'겨울마다 레반티스 백작가에서 마물 토벌대를 꾸려요.

그리고 현재 레반티스 백작인 리하르트 레반티스 백작은 그 지휘관으로 백작의 두 아들을 번갈아 임명하죠.'


- 저 기사가 백작의 두 아들 중 하나의 기사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마물 토벌대는 꾸려질 테고, 그 지휘관으로는 루카스 레반티스나 알브레히드 레반티스가 임명된다.


'올해가······.

루카스 레반티스 차례일 거예요.'


- 확신하는 거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맞아요.'


노르달은 내년 겨울, 평년보다 수십 배는 늘어난 마물의 습격을 받고 그대로 지도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데온의 조수일을 하며 약초에 대해 배우며 적응해가던 내가 노르달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였다.


내가 노르달에 매년 꾸려지는 레반티스 백작가의 마물 토벌대의 지휘관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노르달이 지도에서 지워진 그 해, 마물 토벌대의 지휘관이 멍청한 알브레히드 레반티스가 아닌 루카스 레반티스였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데온을 포함한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난 그것이 원통해 노르달이 없어진 해의 마물 토벌대의 지휘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년이 알브레히드 레반티스 그 새끼니까 올해는 루카스 레반티스겠죠.'


내년이 알브레히드 레반티스의 차례니 올해는 루카스 레반티스가 왔을 것이다.

그렇게 추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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