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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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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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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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밤손님 1

DUMMY

"이쪽인가?"


"조금만 더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

달까지 구름에 가려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정도는 불평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줄곧 느껴지는 시선에 비하면.


- 저 기사, 네게서 눈을 떼지 않는군.


'······알텐 영감이랑 다른 방향으로 귀찮은데요.'


나를 따라붙는 콘라드 경의 시선은 적의보다 호기심에 가까웠다.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관심에 가까웠지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관심을 단단히 끌었나 본데.


무엇보다 내게 꽂히는 시선은 콘라드 경의 것만이 아니었다.


- 사랑받고 있구나.


'이게 그렇게 보여요?'


내가 질색하자 이어지는 아르다르보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날 놀리는데 재미붙였어.


- 신기한 건 맞나본데.


'야간 수색인데 병사도 아닌 애를 데려가니까, 당연하죠.'


주둔지를 출발할 때부터 힐끔거리는 시선.

콘라드 경과 딱 붙어서 가고 있으니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4분대 병사들 전체에서 궁금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어제 지휘관의 막사 앞에서 나와 마주쳤던 4분대의 분대장, 토벤에게선 말을 걸고 싶어 몸부림치는 기색이 느껴졌다.

물론 콘라드 경이 지켜보고 있어서 진짜로 시도하진 못했지만.


노르트나 에반이라면 콘라드 경을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4분대에는 그 두 사람만큼 넉살이 좋은 병사는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나랑 친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토벤은 서로 통성명만 한 사이니까.


잠시 후 내가 이야기 한 장소에 도착하자 4분대 전체가 2인 1조로 나뉘었다.

근방을 넓게 수색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콘라드 경과 함께 낮에 나이트펭을 발견한 위치로 향했다.


"여기서 봤다고?"


"네. 저기에서 저랑 눈이 마주쳤어요."


나이트펭에게는 눈이라고 할 게 없었지만, 나이트펭과 마주쳤을 때의 경험은 '눈이 마주쳤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흠······."


내가 정확히 짚어낸 자리에 다가간 콘라드 경은 그대로 한쪽 무릎 꿇더니 맨바닥을 살폈다.

발자국을 보는 듯했다.

콘라드 경은 마물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거짓말을 하던 누구와는 달리, 나이트펭이라는 마물의 습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살핀 후 내게 이렇게 물었다.


"사슴 발자국이군.

사슴 껍질을 뒤집어 썼더냐?"


"네······.

얼핏 보기에 거대한 숫사슴처럼 보였어요."


나이트펭은 시체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같은 마물을 사냥하는 마물이다.

때문에 나이트펭은 개체마다 겉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그러니 내가 본 나이트펭은 사슴 가죽을 뒤집어쓴 놈일 것이다.


"사슴 껍질이라면 그래도 좀 시간이 있다는 건데."


콘라드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제 입가를 쓸었다.

······시간이 있다, 라.


"시간이라면, 마물이 몰려들 때까지 시간이요?"


내가 질문하자 콘라드 경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설명했다.


"아니. 위험한 것들이 몰려들 때까지 시간."


위험한 것들?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콘라드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의 털며 이어 말했다.


"사슴은 초식 동물이니, 뒤집어 말하면 사슴 껍질을 뒤집어 쓴 나이트펭은 딱 사슴의 껍질을 벗길 수 있을만한 녀석이란 거다."


"······그럼 맹수 껍질을 뒤집어 쓴 놈은······."


"그래. 사슴 껍질을 쓴 놈보다는 강한 놈이겠지."


나이트펭은 피식자를 흉내내는 마물이다.

마물이 잡아먹는 큰 동물들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자신을 공격하는 마물을 골라서 잡아먹는 마물.

사슴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나이트펭은 사슴을 잡아먹으려 드는 마물을 잡아먹는다.

맹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나이트펭은······, 맹수를 잡아먹을 정도로 크고 강한 마물을 잡아먹는 나이트펭이다.


즉, 발견된 나이트펭이 사슴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다는 건 놈이 노리는 마물이 아직 덜 위험하고 작은 개체라는 뜻.


또한 나이트펭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근방에 놈이 노리는 마물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콘라드 경에게 나이트펭을 봤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이트펭이 위험한 것은 나이트펭 자체보다 그 습성 때문이니까.


- 결국 맹수 껍질을 뒤집어 쓴 나이트펭이 노릴 법한 마물은, 위험하다는 뜻이로군.


'토벌대에서 상대하기에 말이죠.'


상대가 위험한 마물이라도 개체수가 적다면 요한 경이나 콘라드 경의 활약으로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하지만, 콘라드 경이 나이트펭의 존재를 통해 걱정하는 것은 그러한 마물의 개체수가 대규모일 상황이었다.

나이트펭은 사냥할 만한 마물 '무리'를 찾아다니니까.


"그나마 흔적은 한 마리 뿐이라 다행이군."


나이트펭은 기본적으로 혼자 다니지만, 가끔 암컷은 새끼를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새끼를 끼고 있는 나이트펭이 원하는 것은 보다 사납고 거대한 덩치의 마물이다.


"그리고 이쪽을 온 건 우연인가본데."


그렇게 말하는 콘라드 경의 시선이 좀 더 깊은 산속을 향했다.

흔적이 그쪽에서 이어진 모양이다.

이는 더더욱 다행인 일이었다.

나이트펭이 여기까지 내려온 게 우연이라면 주서식지가 아직 이 근처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걱정했던 것보단 심각하지 않······."


누군가가 콘라드 경의 이름을 외친 것은 그때였다.


"콘라드 경!"


콘라드 경을 부른 것은 4분대의 분대장, 토벤이었다.

나와 콘라드 경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심각한 얼굴로 소리치는 토벤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토벤이 서있는 방향은 나와 콘라드 경이 있는 곳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무가 빼곡해서 헤치고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곳.


"뭔가?"


"마물의 피입니다."


토벤은 그렇게 설명하며 자신이 발견한 핏자국 위로 횃불을 비췄다.

과연 그 자리에는 흘린지 얼마되지 않은 마물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피가.


"횃불 이리 줘보게."


콘라드 경은 토벤에게 횃불을 받아들더니 그 핏자국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피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남은 흔적까지.

그렇게 콘라드 경이 주변의 흔척을 한참을 살피고 있자, 토벤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싸움의 흔적 같죠?"


주변을 넓혀 밝히자 잘 보이지 않았던 흔적들까지 발견되었다.

얼어붙은 땅 위에로 검은 핏자국이 어지럽게 얽혀있었고, 바위가 많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바위 곳곳에 움푹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그위로 사정없이 문질러진 흔적들.


"······덩치가 큰데요?"


흔적을 좀 더 쫓자, 반대편 땅바닥에서 길게 문질러 끌린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넘어지고, 굴러, 가까스로 땅을 디딘 자국이다.


"한 놈이 치명상을 입었군."


"두 놈인가요?"


"두 놈이다."


흔적을 살피며 어떤 종류의 마물이 싸운 걸까 추측하는데 줄곧 말이 없던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 한 놈은 노크시스(Noxis) 같군.


'······노크시스라고요?'


노크시스.

뱀의 몸통에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마물.

과연 편견을 버리자 바닥이 잔뜩 쓸려있는 흔적은 뱀이 지나간 흔적을 연상케 했다.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아니, 이유는 안다.

왜냐면.


'노크시스는 겨울에는 동면하잖아요?'


노크시스는 겨울잠을 잔다.

곰이나 뱀같은 짐승처럼.


- 그렇긴 해.

하지만, 이 흔적은 노크시스 밖에 없다.


아르다르보의 말이 맞았다.

이토록 노골적인 뱀의 흔적.

이만한 크기의 뱀의 형상이면서 검은 피를 흘리는 마물은 노크시스 뿐이다.

······게다가 노크시스의 크기가 이정도라는 건·····.


- 성체로군.

그것도 꽤 나이가 많은 놈이다.


성체 노크시스의 덩치는 어지간한 집채만하다.

이만한 놈이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말이 안되잖아요?'


- 지금 말이 안 되는 게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거기에 한둘 추가된다고 새삼스러울 것 같진 않다.


······그건 분명 그렇긴 한데, 그래도 노크시스라니······.


-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다.


그래.

안일하게 있다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보다 지나치게 조심하게 되는 게 차라리 낫다.

아직 고민에 빠진 콘라드 경과 토벤을 향해 내 의견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


캬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치솟은 괴성.

그리고 흩어지는 피냄새.


"마물이다!"


"불!"


"이쪽이다!"


비명이 치솟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어둠이 통째로 구불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어둠에 잠긴 검은 비늘.

끝없이 이어진 매끄러운 갑각은 아름답다 생각될 정도였다.

그것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노크시스······."


옅은 달빛 아래로 서서히 드러난 얼굴은 뱀이 아닌 사람의 것이었다.

꼭대기에는 염소를 닮은 한쌍의 뿔이 양쪽으로 솟아있었다.

움푹 패인 눈구멍은 어두웠고,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무척 탁했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 탁한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귀와 코가 빨갛게 익어버릴 정도로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식은 땀으로 속옷까지 흠뻑 젖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없는 걸까?

조금도 깜빡이지 않은 한쌍의 눈동자는 더더욱 시체 같았다.

그 안에는 감정이 없었다.


인형같은 한 쌍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사이, 그 아래 자리잡은 입이 천천히 위아래로 벌어졌다.

그리고 쇠긁는 듯한 웃음소리가 그 입을 통해 쏟아졌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


"······!!"


곧장 귀를 막았으나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웃음소리가 속이 메스껍게 했다.


옆에 있던 토벤은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토벤의 입에서 기가 막힌 듯한 목소리가 쥐어짜듯 흘러나왔다.


"······지금은 겨울인데, 어째서······."


낮에 저것과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을까?

공포에 빠지지 않은 것은 오직 한 사람, 기사인 콘라드 경 뿐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콘라드 경의 목소리는 평소에도 작지 않았지만, 작정하고 내지르니 그 목청이 우레와 같았다.

덕분에 혼란에 빠졌던 병사들의 과반수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


노크시스에게 특수 능력이 있었나?

순간적으로 홀렸던 모양인지, 콘라드 경의 외침으로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찔한 통증이 머리를 관통했다.


"큭!"


- 정신 차려! 놈과 격차가 너무 커서 순간적으로 마비 효과가 나타났다!


착각이 아니었구나.

난 먹먹해지는 귓가를 문지르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콘라드 경과 토벤은 나와 가까웠지만, 다른 병사들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도 이만한 거리면······.


- 리안! 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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