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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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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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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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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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3

DUMMY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별이 떨어졌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올랐으니,

불꽃은 주변을 모조리 삼켜 태운 후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불이 스러진 자리에는 잿더미가 가득했고, 그 잿더미에서 최초의 늑대가 태어났다.


별이 떨어진 자리.

산처럼 쌓인 잿더미 속에서 최초의 늑대는 오래도록 잠을 잤다.

별자리가 여러번 바뀔 정도로 세월이 흐른 후, 어떤 소년이 늑대를 찾았다.

소년이 물었다.


'여기서 무얼하고 있니?'


소년은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물었으나 늑대는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닿는 것은 모두 죽음에 이를테니 너는 나를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늑대가 경고했음에도 소년은 늑대를 멀리하지 않았다.


소년은 늑대의 곁에서 일곱 밤을 지새웠다.

일곱 번째 밤을 지새운 후 늑대는 마음을 열었고, 결국 소년을 따라나섰다.


소년을 따라 걷는 늑대의 걸음걸이마다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불길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이윽고 늑대와 소년의 발길이 세상의 끝에 닿았을 때 늑대는 소년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맹세했다.



*



내 짧은 이야기가 끝나자 아르다르보가 감상을 들려주었다.


- 동화로군.


"동화죠.

아이에게 자장가 삼아 들려주는 이야기니까요."


새삼스럽게 놀랐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입니까?"


- ······맥락은 대충 맞다.

사소한 부분은 좀 다른 것 같다만.


"예를 들면요?"


- 내 탄생 부분이나, 시벨리안을 처음 만났다는 부분.


"직접 얘기 해줄 수 있습니까?"


내 질문에 잠시 아르다르보의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나처럼 아르다르보도 기억을 더듬어 봐야 할테니까.


- 나는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럴 것 같았다.

아르다르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시벨리안 랑게르나와의 만남이라고 했으니까.


- 시벨리안을 처음 만난 것은 어떤 숲속이었다.


"숲이요?"


- 그래, 숲.

아직도 그곳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야기에서 최초의 늑대는 시벨리안과 만날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잠을 잤다고 했다.

아르다르보의 기억은 시벨리안 랑게르나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으니, 그 장소가 이야기에 전해지는 곳과 같은 장소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나저나 숲이라.

심연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대충 어디쯤인데요?"


- 서쪽 끝.

황무지 아래 너희 인간들이 어둠의 자락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어둠의 자락이요?"


랑게르나 영지가 있는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황무지라고 부르는 황폐한 땅이 있다.

죽음의 땅이라고도 부르는 그 땅은 랑게르나 주변의 마물의 숲만큼이나 다양한 마물들로 득실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어둠의 자락은 그 황폐한 땅 한가운데 있다 알려진 장소.

근데 거기 숲이 있었나?


"어둠의 자락이면 황무지 가운데 있는 곳인데, 거기 숲이 있어요?"


- 환경 정도는 바뀐다.

나와 시벨리안과 함께 한 것은 수백년이 넘은 이야기니까.


하긴.

수백 년이라면······,

황무지가 숲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인데 반대도 가능할수도 있겠지.


"시벨리안이 일곱 밤이나 찾아갔다는 것도요?"


- 굳이 일곱 밤인지는 모르겠다.

여러 번 찾아오긴 했지.


아르다르보의 입장에서 시벨리안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대충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까.


"시벨리안도 대단하네요.

어둠의 자락에 있는 숲으로 일곱 번이나 찾아갈 생각을 하다니."


- 고집이 센 녀석이었지.

이야기처럼 아이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아니었다고요?"


내 동심이 다시 한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외울 정도로 내내 들었던 이야기에서 시벨리안 랑게르나는 항상 아이였다.

아이는 잠들어 있던 최초의 늑대를 깨워 함께 심연을 벗어났고,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하면서 최초의 늑대와 자라났다.


근데, 아이가 아니라고?


- 내가 시벨리안을 처음 봤을 때 녀석은 딱 네 또래였다.


"열 살이요?"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으나 아르다르보는 멍청한 소리라는 듯 대꾸했다.


- 아니.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너.


"······아.

서른 정도 됐었군요."


생각해 보니 당연한 얘기였다.

이제까지 아르다르보의 이야기는 당연히 동화라고 생각했으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아르다르보와 시벨리안이 처음 만났다는 그 숲이 정말 어둠의 자락 안에 있는 거라면, 어린애 홀로 일곱 번이나 찾아갈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인간은 절대 그럴 수 없다.


- 대충.

나는 인간의 나이는 잘 모르니.


"······왕창 틀린 건 아니죠?"


알고 보니 아르다르보가 만난 시벨리안 랑게르나가 갓 스물의 청년이나 마흔이나 오십 대의 중장년 아니냐고.


- 그래도 아이와 성인은 구분할 줄 안다.


"······그걸 말이라고······."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으나 아르다르보는 당당했다.


- 녀석의 나이야 몇 살 착각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그게 그렇게 되나?

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 생각했기에 질문을 바꿨다.

다른 것이 궁금했으니까.


"동화에는 아르다르보와 시벨리안의 발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일었다고 하잖아요.

그건 어떤 비유에요?"


- 비유가 아닌데.


"비유가 아니라고요?"


이게 뭔 황당한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르다르보가 설명을 덧붙였다.


- 내 몸은 불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하다.


"최초의 늑대는 검은 털을 가진 늑대가 아니에요?"


최초의 늑대는 곧 아르다르보.

그리고 최초의 늑대의 모습은 집채만한 몸뚱이를 가진 검은 털의 늑대라고 전해진다.

랑게르나의 상징이 불과 검은 늑대가 된 건 그 때문이니까.


- 아니다.


"아니라고요?"


- 엄밀히 말하자면 애초에 난 늑대도 아니니.


"아르다르보가 최초의 늑대라면서요?

그렇게 전해지고도 있고."


- 시벨리안이 날 그렇게 불렀기에 나도 그리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내 형상은 늑대와 같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르지.


"형상······.

겉모습 말입니까?"


- 그래.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지만 아르다르보가 하고자 하는 말 뜻은 알 것 같았다.

겉모습이 닮았다고 반드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아르다르보의 근원은 3주신과 같은 초월자.

모습은 늑대를 닮았으되 늑대는 아니다.


- 내 형상은 검은 불꽃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랑게르나에게는 검은 털을 가진 늑대라 전해지는 모양이지.


검은 불꽃.

그제서야 랑게르나의 상징이 검은 늑대와 불꽃인 것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르다르보의 힘이 왜 불이라는 것까지도.


"그래서 랑게르나에게 불의 힘을 축복할 수 있었군요?

아르다르보가 불 자체라서?"


- 맞다.


시조와 함께한 가문의 수호자가 가진 본질이 불이니, 랑게르나가 당연히 불의 축복을 받을 수밖에.


"그리고 불꽃 자체니까, 정말 발닿는 곳마다 불이······."


- 그렇지.


"그럼 아르다르보가 시벨리안에게 처음에 말했던,

'내가 닿는 것은 모두 죽음에 이를테니' 라는 말은 그런 뜻이었어요?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불타리라는?"


- ······그래.


다소 풀이죽은 것 같은 대답이 들려오자 아차 싶었다.

신경쓰고 있었구나.


" ······그래도 즐거웠죠?"


- 응?


"시벨리안과 많은 곳을 여행했다던데요.

동화에선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


- ······그랬지.


아련함이 묻어나는 대답.

추억에 잠긴 목소리였다.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요?"


- 알고 있었을 거다.


나는 아르다르보와 대화하며 알아낸 사실들이었지만, 아버지는 잠시만에 아르다르보가 누군지 정확히 짚어내셨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가문에 내려오는 아르다르보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많았을터.

내가 놓친 이야기는 얼마나 많았을까.


- 네가 모르는 것은 내게서 들으면 된다.

어차피 나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


"······그렇겠죠."


어차피 가문 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 절반은 내가 활용할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가문이 숙부에게 넘어간 지금,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아드리안 랑게르나'에 국한된 것들일 테니까.


그리고 나 자체에 국한된 것들은 하나같이 아르다르보와 관련된 것들이다.

랑게르나가 가지는 힘은 대부분 최초의 늑대, 아르다르보에서 비롯된 것이니.


- 더 궁금한 게 있나?


"당장은 이 정도가 끝이에요."


내게 필요한 것은 본격적으로 마물의 숲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으니까.

확실한 파악없이 엉겁결에 상황에 휩쓸려가는 것은 더이상 사양이다.


"아르다르보가 왜 불에 집착하는지도 알았고."


- ······집착한 적 없다.


"잔소리가 심하긴 했죠."


- 랑게르나라면 당연히 불에 익숙해져야 하는 거 아니냐?


아르다르보가 투덜거렸으나 난 더이상 대거리 하지 않았다.

나쁜 뜻으로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르다르보의 기원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 그가 하는 잔소리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해야하나.


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초월자.

3주신과 기원을 함께 하는 자.

그런 존재라면 자신이 축복하는 인간이 당연히 불에 익숙해져야 생각할 법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연습하는 건 어려워요."


나만의 공간이 생기긴 했지만, 불을 다루는 연습을 여기서 했다간 자칫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불이 번진다면 수습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바깥에 나가기엔 눈에 띄는······.

······아.


"그러고보니 그림자 검 말이에요."


- 그게 왜.


"아버지도 아르다르보도 내게 그림자 검을 챙겨가라는 소릴 안 했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당시에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것은 이제껏 내게 의문으로 남은 점이었다.

그림자 검은 상당히 장검이다.

일단 겉모습은 일반적인 바스타드 소드니까.


지금의 내 몸집으로는 휘두르기는 커녕 가지고 가지고 달아나는 것도 버거운 일이라 가져가겠다고 우기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가져가라 하셨다면 어떻게든 가져왔을 것이다.


가지고 도망쳐 하얀 산맥 어딘가에 숨겨버리거나 했겠지.

그대로 가지고 다녔다가면 누군가에게 빼앗기기 딱 좋으니까.


"그림자 검은 온전한 랑게르나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고 했죠?"


- 그랬지.


"그땐 그림자 검이 이그니서스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아르다르보 덕분에 모든 랑게르나는 불꽃술사의 재능을 타고난다.

그리고 그림자 검은 가장 유명한 이그니서스다.


잿빛 성에서 도망치던 날, 아르다르보의 설명에 나는 그림자 검이 이그니서스이기 때문에 놓고 가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

하지만, 아르다르보는 분명히 말했다.


온전한 랑게르나가 아닌 자에겐 의미가 없으니 후일을 기약하자고.


이는 그림자 검이 이그니서스이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하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그니서스는 랑게르나가 아닌 불꽃술사의 재능이 있는 자라면 누구든 다룰 수 있으니까.


- 그림자 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하느냐?


"······손잡이부터 검날까지······,

새카만 검이었죠?"


- 그래.

그림자처럼 새카맣다고 해서 그림자 검이라고 부르지.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의 기억이었다.

아버지가 랑게르나의 보물이라며 그림자 검을 내게 보여주신 적이 있다.


- 그림자 검은 이그니서스다.

랑게르나가 아닌 불꽃술사는 그림자 검을 이그니서스로만 쓸 수 있다.


"······그럼, 랑게르나의 손에서는요?"


- 그림자 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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