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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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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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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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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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기사 1

DUMMY

내 사냥 실력을 증명한 이후 데온과 나의 분업이 이뤄졌다.

산에 자주 오르지는 않았다.

산짐승을 잡아오거나 아과를 캐오는 것은 일주일에 2~3번이면 충분했으니까.


남는 시간은 데온에게 약초를 손질하고 조합하는 법을 배웠다.

어쨌든 난 약제사의 조수일을 하기로 하고 데온에게 신세를 지는 중이었으므로.


며칠 전부터 데온을 도와 하고 있는 작업은 말린 약초를 분류하고 계량하는 일이었다.

얼핏 쉬워보이지만 정리하는 동시에 쓸 수 없는 부분을 추려내야 해서 손이 꽤 많이 가는 작업이다.


원래 데온은 이 작업을 겨우내 한다.


"검정 엉겅퀴랑 꿈덩이 풀은 그대로 둘까요?"


이제까지 작업하던 발광초 잎을 모두 뜯어낸 것을 확인한 뒤 데온을 향해 물었다.

대답을 짐작했으나 나는 일부러 물었다.

다음 작업에 대한 판단은 약초를 고작 한 달 배운 아이가 할만한 판단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물음에 데온은 테이블 위에 늘어진 두 가지 약초를 손끝으로 훑었다.

그리고 내뱉었다.


"조금 더 말려야 할 것 같구나."


데온의 지시가 떨어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정리했다.

이제 손질이 남은 것은 대여섯가지 뿐이었다.

이 작업은 원래 데온이 혼자 겨우내 하던 일이었지만, 내가 도운 덕분에 대부분 끝나가고 있었다.


"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났다.

일도 예상보다 곧잘 배우고."


아과에 대한 것이나 사냥 때 쓰는 덫을 놓는 법과 달리 약초에 대한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해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데온의 가르침에 아는 척하기보다는 불세출의 천재를 흉내 내고 있는 중이었다.

척하면 척, 한 번 배우는 것처럼.


"아주 흡수가 빨라."


"뭘요. 데온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인데요."


물론 아르다르보는 그런 내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지만.


- 기만이다.


'그럼 어떡해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배운 건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내 약초 지식의 대부분은 데온에게 배운 것이다.

그걸 솔직하게 말한다?

미친 놈 취급 당하기 딱 좋지.


- 아무리 그래도 랑게르나가 거짓말이라니.


'저번 생에는 거짓말이 특기였어요. 뭘 새삼.'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쉬운 법이다.

랑게르나란 이름을 잊어야 했으니 내겐 적당히 둘러댈 신분이 필요했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쌓여 큰 거짓말이 되었다.

이전 생의 나의 신분은 거짓말로 점칠된 '리안'이었다.


첫 거짓말의 시작은 이름이었고, 출신이었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용병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 적당한 신분이 필요해 뒷골목에서 신분을 샀다.

그렇게 나는 아드리안 랑게르나가 아닌 '용병 리안'이 되었다.


'아드리안 랑게르나'라는 이름은 잿빛 성을 떠나면서 버렸다.


'이번 생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지만.'


아버지의 소원이자 나의 소원.

그리고 아르다르보의 소원.

그것은 '랑게르나의 이름이 잊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랑게르나의 이름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나의 시조 시벨리안 랑게르나처럼 대륙 전체에 랑게르나의 이름이 떨쳐지도록 만드리라.


"저녁에는 산에 다녀올 거냐?"


"네, 이제 슬슬 덫을 확인해야 해요."


어제도 그제도 안 갔으니 슬슬 올라갈 때가 되었다.

덫을 확인할 뿐이지만, 너무 자주 들락거리면 산짐승의 경계를 사기에 주변을 맴도는 건 최소로 줄였다.


"가는 길에 노인장에게 들릴 건데, 드릴 것 없을까요?"


한 달 동안 내가 덫으로 잡아들인 토끼는 총 12마리였고, 그중 2마리는 손질해 이웃 노인에게 나눠주었다.

틈틈이 산에서 캐온 아과도 함께.


"아, 그럼 이거 가져가라. 만들었다."


데온이 건넨 것은 내가 잡은 토끼를 손질하고 나온 털로 만든 목도리였다.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고치는 데온은 손재주가 꽤 좋았다.

해본 적 없을 토끼 고기 손질과 털, 가죽 손질을 고작 몇 번 만에 혼자 요령을 익힐 정도로.


데온은 고기 손질 후 가장 처음 나온 털로는 내 목도리를 만들었고, 그 뒤 나오는 털들로 장갑과 조끼를 만들어 나와 노인장에게 주었다.

데온은 노르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만큼 겨울에 무엇이 가장 필요할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길 노인이 좋아하시겠어요."


목도리는 최근에 잡아온 토끼 털로 만든 것인지 백색에 가까웠다.

토끼는 참 고마운 동물이다.

고기로 식량이 넉넉해짐은 물론이요, 털 덕분에 노인장이 얼어 죽을 거란 걱정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전 생에서는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 노인장을 생을 달리했으니까.


노인장의 그 죽음은 못내 마음에 걸렸던 일이었다.

데온을 만나게 된 것도 내 목숨을 처음 살린 것도 노인장이었는데 제대로 은혜조차 갚지 못했던 셈이니까.

이번 생에서 내가 노인장을 유난히 챙기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갚지 못한 빚을 함께 갚는 심정으로.


"너무 늦지 말고. 위험해."


"네. 저녁 먹기 전엔 돌아올게요.

반나절이면 될 거예요."




***




- 반나절?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요."


아르다르보의 핀잔에 난 투덜거리며 멍석 딸기를 다듬었다.

망가진 덫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며칠 만에 산을 올라왔더니 다른 산짐승이 덫을 건드린 모양인지 걸리라는 토끼는 걸리지 않고 덫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아마 늑대나 다른 맹수인 듯한데······, 덫은 반쯤 부수고 걸린 토끼를 빼간 걸 보면 보통 영리한 놈이 아니었다.


- 흔적이 늑대 같군.


"구별이 가요?"


- 대충.


의외였다.

내가 토끼 덫을 놓는 한 달 내내 별말이 없길래 사냥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냥 덫 놓는 것 정도는 시시해서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 흔적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런 것도 볼 줄 알아요?"


- 무시하지 마라.


장난스러운 핀잔에 아르다르보가 툴툴거렸다.

아르다르보의 말이 아니어도 난 꽤 서두르고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은 덫이 부서진 것이 적어도 하루가 지났다는 걸 의미했지만, 다른 흔적들이 놈이 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는 놈이 덫의 위치를 기억해뒀다가 정기적으로 확인했다는 뜻이다.

덫만 부수고 토끼를 빼간 것도 그렇고, 보통 영리한 놈이 아니다.


'활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내가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검 뿐이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불의 힘을 단련하고 있었고, 불의 힘을 한달 전보다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늑대를 만나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간신히 틈을 만들어 도망갈 수 있을 정도랄까.

어차피 도망갈 틈을 벌 용도라면 검보단 활이 나았다.


- 활이 있었으면 좋겠느냐?


"활이 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토끼말고 다른 것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활이 필요했다.

문제는 내가 활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

활은 사냥용도로 배웠지 주무기로 활용한 적은 없어 기본만 쓸 줄 안다.

활에 익숙한 자들은 만들어도 쓰던데 나는 그정도까지는 무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배워둘 걸 그랬나.


노르달에는 제대로 된 사냥꾼이 없었다.

나처럼 산을 오르는 자들은 몇 있었지만 딱 내 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중 제일 나은 편이었다.

다른 이들은 토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자신은 있고?


"새 잡는 정도야 쉽죠."


대단한 명사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실력도 아니었다.

숲을 뒤져 먹을 만한 짐승을 잡을 수 있을 정도.

내 활솜씨는 딱 그 정도였다.


- 새라······.

하긴 슬슬 토끼 고기가 질릴 법도 하군.


겨우내 흑빵과 구황작물로 연명했던 이전 생에 비하면 배부른 이야기였지만, 확실히 맞는 소리였다.

토끼 고기만 내내 먹다 보니 질린다.

토끼 털은 얻을 만큼 얻었고.


- 다른 함정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


"토끼 덫 말고요?"


- 그래. 사슴이라던가.

가끔 보이던데.


하얀 산맥에 사는 짐승이 토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덫에 걸린 토끼를 훔쳐간 늑대도 그렇고 찾기만 하면 사슴이나 멧돼지같은 대형 초식 동물도 있다.


"저 혼자는 무리에요."


- 데온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덫에 걸린 토끼는 내가 제압할 수 있지만, 사슴이나 멧돼지는 무리다.

어쨌든 숨통을 끊어야 마을로 들고 내려 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데온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안될 거 같은데요."


무엇보다 이제까지 내가 토끼 덫만 줄창 만든 것은 내 덩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토끼 덫 정도까지였기 때문이다.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으려면 훨씬 큰 덫이 필요하다.


- 그럼 토끼 고기로 만족하는 수밖에.


"그래야죠, 뭐.

······다 됐다."


한참이 걸린 토끼 덫 수리가 드디어 끝났다.

질리긴 했어도 못 먹는 것보다 나으니 그대로 계속 토끼 덫을 놓을 생각이었다.


"······음······."


실컷 고쳐놓고 나니 아르다르보가 지적한 늑대의 흔적이 더더욱 눈에 띄었다.

그냥 부서진 걸 내버려두고 다른 곳에 새로 덫을 놓을 걸 그랬나?


"그냥 수리하지 말고 다른 곳에 새로 놓을 걸 그랬나 봐요."


- 다 고쳐놓고, 왜?


"덫을 부순 늑대 말이에요, 고친 덫에 토끼가 새로 걸리면 또 올 것 같아서요."


- 이왕 고쳤으니 한 번 만 더 내버려두는 게 어때?

어차피 재료도 부족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잠시 상념에 잠겨있을 때, 아르다르보가 나를 불렀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가벼움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서렸다.


- ······리안.


그리고 나 또한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한 명인가요?"


- 그래, 한 명이다.


사람의 기척.

난 꽤 예민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지척에 올 때까지 몰랐다.

방향은······, 동서쪽인가.


- 기척이 이상한데.


아르다르보의 지적대로 기척의 낌새가 이상했다.

가까웠으나 나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내 존재를 깨닫지 못한 느낌.

······이건 마치······.


- 다친 것 같군.


아르다르보의 다음 말과 동시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고 훅 끼치는 짙은 피 냄새.


"거기, 나와라."


다듬으려 노력했으나 헐떡임이 섞인 목소리.

노르달에서 사냥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냥꾼들은 내가 모두 안다.

그들의 목소리 또한 모두 안다.


하지만, 가려진 시야 너머에서 피 냄새와 섞여 날아드는 목소리는 내가 모르는 목소리였다.

짙은 피 냄새와 이 시기에 나타난 낯선 사내.

그대로 달아날까 싶었지만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손에 쥔 단검을 허리에 비껴 찼다.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검을 감추되 필요하면 곧장 꺼낼 수 있도록.

그리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었다.


"······."


나무가 우거진 방향이라 유난히 시야가 좁았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공간이 나타났고, 정면으로 성인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어지러이 섞여 자란 나무들 사이에 주저앉은 남자.

모피로 목덜미가 장식된 망토와······ 검.

그리고 가슴팍을 장식한 검 두개를 장식한 문양.

기사다.


"······어린애로군."


가까이 서 본 남자의 차림이 지저분했다.

전체적으로 고급품이었으나 전투를 치룬 건지 망토가 피에 젖어있었고, 남자 또한 부상을 입은 듯 숨을 헐떡였다.

그럼에도 기세가 대단해서 내가 평범한 아이었다면 묻는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근방에서 사는 아이냐?"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물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진짜 기사라면 내게 쓸데없는 위협은 가하지 않을 것이다.

기사는 명예를 중시하는 자들이니까.


"어찌 혼자 계십니까?"


의아함에 그렇게 물었지만 남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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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홍화열 1 24.08.20 5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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