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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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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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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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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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그렌 1

DUMMY

다시금 싸늘히 내려앉은 침묵.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거겠지."


라이너가 신뢰받고 있다면 내가 이런 말을 꺼낸 순간 내가 내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가 내 말을 진지하게 되물었다는 것은 루카스가 이미 라이너를 의심하고 있다는 뜻.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볼 정도로 말이다.


"네, 압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나를 사이에 두고 루카스와 요한 경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오갔다.

확실히 뭔가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발생한 또다른 무언가가.


"내가 라이너 경에게 받은 보고는 마물에게 쫓기다가 길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네 말을 믿는다면 라이너 경이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된다.

자신할 수 있는가?"


"울프레버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도, 최소한 마물에 의한 상처는 아니에요.

마물 때문에 생긴 상처가 그렇게 깨끗할 리 없거든요."


"콘라드 경이 라이너를 데리고 왔을 때, 상처를 다시 살핀 게 알텐이었나?"


루카스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지만, 이번 질문은 내가 아닌 요한 경을 향해 있었다.


"네, 그랬습니다."


"함께 본 사람은?"


"······제가 함께 봤습니다만······,

이미 일주일 이상 지난 상처라 리안이 말하는 걸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알텐은 뭐라던가?"


그렇게 묻는 루카스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였다.

양손을 맞잡아 턱을 괸 채로.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라이너의 상처가 정말로 검상이라면 '별다른 말이 없다'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이야기였다.

예기치 못한 습격을 당했음에도 루카스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

그럼, 루카스 쪽에도 마물에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일 텐데.


"······데온에게서도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군."


"라이너 경이 데온에게 마물 얘기를 꺼냈을 것 같진 않네요.

이 얘기는 제가 꽤 졸라 들은 얘기라서요."


"조르다니?"


요한 경이 의아한 물음에 두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계속 이어 말했다.


"라이너 경이 산에서 큰 상처를 입으셨다기에 무용담을 졸랐거든요."


"······네가?"


그렇게 내뱉는 요한 경의 표정이 영 미심쩍었다.

방금 전까지 루카스와 당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녀석이 할 법한 소리는 아니라 생각한 것처럼.


"······궁금해서요······."


내 대답을 들은 후 루카스와 요한 경의 눈이 동시에 가늘어졌다.

단번에 신뢰성이 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얼굴이었다.


- 그러게 적당히 하라니까.


젠장.

라이너 앞에서 애처럼 구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울 줄이야.


"······알겠다.

네 이야기는 내 기억해두지.

나가봐도 좋다."


이윽고 루카스의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뒤돌아 밖으로 나오는데 천장에 드리운 레반티스 백작가의 문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처음 이 막사에 들어왔을 때 발견했던, 날개달린 푸른 방패.


난로의 붉은 그림자가 방패 위로 어른거리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마치 불꽃이 방패를 잡아먹는 것처럼.




***




주둔지 철수는 루카스의 말대로 사흘 후 시작됐다.

그 사이 2번의 수색대가 조직되었고, 수색대는 주둔지 근방을 간단히 훑었다.

이는 혹시 모를 대형 마물의 출현을 걱정한 일이었으나 노크시스 같은 마물이 두 번이나 나타날 리는 없었다.


"레반티스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고?"


내가 데온에게 이야기를 전한 것은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잘 됐구나."


루카스가 내 후원자가 되어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다소 충격받은 것 같은 얼굴로 데온은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짐작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 전혀 몰랐나?


"내가 따로 도와줄 게 있을까?"


"아뇨. 이제까지 도와주신 걸로도 충분한 걸요."


내가 루카스와 만날 접점이 되어준 것만으로도 데온의 역할은 충분했다.


"레반티스라니······."


데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제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집에 들렸다 갈만한 여유는 없는 게지?"


"그럴 것 같아요."


데온의 군식구인 내게 짐이라고 해봤자 작은 배낭 하나 분량이 고작이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검과 내 목에 걸린 목걸이 뿐.

솔직히 다른 것들이야 다른 곳에서 새로 구해도 되는 것들 뿐이고.


"길 노인이 상심이 크겠는 걸."


아, 맞다.

길 노인.


홍화열 치료와 주둔지 생활에 정신이 팔려 길 노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데온이 종종 챙기는 것 같긴 한데······,

······인사하고 갈만한 시간은 없을 것 같네.


"어쩔 수 없죠. 안부 전해주세요."


신경쓰였지만 길 노인의 얼굴을 보고 가자고 나혼자 노르달에 다녀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홍화열은 나았으나 루카스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토벌대의 철수를 서두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다.


"그래."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으나 데온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쉬움과 별개로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내게 무척 좋은 기회였으니까.


내 진짜 출신이 무엇이든 지금의 난 이렇다할 뒷배가 없는 천애고아다.

그런 아이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루카스 레반티스가 후원자가 되어준다는데 그걸 거절할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놓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데온은 군식구를 감당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그러니 루카스를 따라가는 것이 데온에게도 내게도 좋은 이야기다.

······그러니······.


"······마물 토벌은 해마다 하잖아요."


"응?"


"열심히 하면 루카스 님을 따라 토벌대에 따라올 수 있을 거예요."


내년에는 알브레히드 레반티스의 차례였지만, 대재난이 일어난다면 알브레히드 레반티스 대신 루카스가 대신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루카스는 내가 넘긴 마물의 숲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아그렌으로 돌아가 곧장 마물의 숲과 관련된 일을 계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일 정도로.

내년 대재난은 몰라도 마물에 숲과 관련된 일에 나를 빼놓을 순 없을 테니 적어도 1~2년 안에는 노르달에 다시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때 잊지 않고 다시 올게요."


내가 다짐하자 데온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기가 돌아왔다.

영영 못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구나.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말하며 데온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헝클였다.

단단히 묶은 머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




아그렌.

레반티스 백작령을 구성하는 3개 도시 중 하나이자, 주도(主都).


이전 생에서 노르달에서 2년을 살았지만, 노르달을 제외하곤 레반티스 백작령 방향으로 가본 적이 없었기에 아그렌을 방문하는 것은 나로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레반티스 백작령을 구성하는 3개 도시 중 가장 크고,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한 아그렌.

그 첫인상은······.


'······꽤······.'


- 크군.


아그렌은 같은 변경백 도시인 랑게르나 백작령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산지가 많은 랑게르나와 다르게 아그렌의 지형은 평지에 가까웠다.

농지는 적었지만, 적어도 지형이 험하지는 않다고 해아하나.

덕분에 널따란 평야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성벽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랑게르나의 잿빛 성이 마물의 숲에 둘러싸인 덕분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나온다면, 레반티스 백작가의 성 자체로 위협적이라고 해야하나.

과연 카르세디아(Karsedia)의 방패라고 불리는 레반티스의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었다.


하얀 산맥을 기점으로 랑게르나와 맞붙어 있는 노르달과는 또다른 느낌의 풍경.

레반티스가 속한 카르세디아가 벨모르보다 좀 더 자연환경이 온후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날씨도 좀 나은데요.'


하얀 산맥에 곧장 붙어있는 노르달과 다르게 아그렌의 날씨는 좀 더 온화했다.

노르달에서 챙겨입은 옷가지가 조금 더울 정도로.


- 같은 변경백령인데도 많이 다르군.


'아무래도 랑게르나는 산이 많아서요.

이곳과는 다르죠.'


"루카스 님이 오셨다!"


성문에 다다르자 루카스의 마차를 알아본 경비병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레반티스의 장자가 돌아왔다, 는 외침이.


- 소란스럽군.


'뭐, 그럴 만하지 않을까요?'


루카스의 마차가 아그렌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전령이 본성에 닿았을 것이다.

전령은 루카스의 도착 사실과 함께 간단한 이야기도 전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루카스가 잡은 노크시스라든가.


"저게······."


"······오오······."


"세상에, 저걸 사냥하셨다고?"


뭐, 정확하게는 나와 콘라드 경이 잡은 거지만 결국 성과는 루카스 레반티스의 이름으로 알려질 테니까.


"아쉬운가?"


내가 마차 창문으로 밖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내 건너편에 앉은 루카스가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무엇이요?"


"저 칭송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노크시스는 너의 공이 아닌가."


콘라드 경이 노크시스을 상대했을 때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구구절절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고.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난 솔직하게 대꾸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제 공은요. 다 콘라드 경이 하신 건데요."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 생에서도 노크시스만한 마물을 잡아 본 일은 손에 꼽는다.

애초에 이그니서스나 그에 맞먹는 무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대형 마물 사냥은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곤 나설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 단검이 이그니서스인 걸 알았다면 몰라도 이전 생에선 그걸 전혀 몰랐기에 대형 마물 사냥에 나서본 적도 손에 꼽는다.

그 경험조차도 실력에 자신이 붙어서가 아니라 돈이 궁해서 토벌대에 끼어든 것에 불구하니까.


게다가 이 몸집으로 노크시스를 잡았다는 사실이 퍼졌다간 거짓말이란 모함을 들을 수도 있었다.

해낸 나도 잘 얼떨떨한데, 다른 사람의 반응이야 당연하지.

······뭐, 됐다.


"흐음."


내 겸손어린 대꾸에 루카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최근 들어 자주 보는 표정인데.

좋은······ 거겠지?


"······도착했다."


루카스의 말에 다시 창밖을 보자 거대한 성의 윤곽이 보였다.

작은 창을 통해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성.

레반티스의 성, 알바렌이다.


"오셨습니까."


마차가 열리고 집사로 보이는 사용인이 마차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루카스가 먼저 내리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내리자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


'······집안의 사용인이란 사용인은 다 나온 것 같은데요.'


오랜만에 돌아온 장자를 마중나왔다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인원.

이 정도면 성의 사용인 전부가 나온 게 아닌가?


- 글쎄. 성 안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진다만.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당황한 내 머릿속으로 더 당황스러운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꽂혔다.


- 잊었나 본데, 잿빛 성에도 늘 이 정도 인원은 있었다.


'······잿빛 성에서도요?'


- 병사 수는 이곳이 좀 더 많군.

하지만, 잿빛 성에는 마물의 숲이 방벽 역할을 하니 전력으로 따지자면 잿빛 성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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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홍화열 1 24.08.20 5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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