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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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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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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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밤손님 4

DUMMY

시신을 모두 옮기고도 여전히 타고 있는 노크시스의 사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서, 해가 거의 중천에 뜨고서야 난 콘라드 경과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니 병사 몇이 화장(火葬)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파놓은 구덩이는 딱 9개.

이는 바스톤을 제외한 4분대 전체의 몫이었다.

4분대는 바스톤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사망했으니까.

내가 구덩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콘라드 경이 나직이 말했다.


"······화장 밖에는 방법이 없다."


콘라드 경은 북부에서는 화장이 흔하지 않기에 내가 눈을 떼지 못한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북부에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죽음은 딱 둘 뿐이니까.

전염병 혹은 마물, 딱 둘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죠. 다 노크시스에게 당한 시신이잖아요."


나도 안다.

마물에게 죽은 시체에는 정화가 필요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반드시 불에 태워야했다.

그 시체가 다른 마물을 불러들일 수 있으니까.


본래, 전쟁터나 전염병으로 발생한 시체가 제대로 된 장례 절차를 거칠 수 있는 것은 소수 귀족만 가능하다.

그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런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하물며 사망자는 모두 평민.


이해한다.

아무리 루카스가 인망깊은 지휘관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화장되는 시신들이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이 너무 허무했으므로.


-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사제가 없나보군.


'외곽의 마물 토벌이잖아요.

애초에 이만한 규모를 정화해 줄 만한 사제는 일반 사제(Priest)로는 안돼요.'


시신이 10구 가까이 되고 마물의 시체도 대규모다.

애초에 노크시스의 기운을 정화하려면 일반 사제가 아닌 고위 사제(High Priest)가 필요하다.

그만한 인력이 노르달 같은 외곽까지 올 리 없으니, 불로 태워버리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간단하고, 효율적인.


기분이 더러웠다.


"이만 물러가도 될까요?"


축객령이 떨어지기까지 기다리기엔 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날밤을 샌 데다가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마물과 싸우기까지 했다.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좋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그대로 내 막사로 향했다.




***




날밤을 새고도 번잡스럽게 움직인 탓에 기절할 듯 피곤했다.

데온과 함께 지내는 막사로 돌아가니 데온은 이미 기절할 듯 침대에 뻗어있었다.

책상에 엎어져 잠든 것을 보니 날 기다리다 그대로 잠든 것 같았다.

나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은 뒤 똑같이 뻗어버렸다.

뒤집어쓴 게 마물의 피가 아니었다면 옷조차 갈아입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날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였다.


"······아, 머리야······."


무리를 한 탓인가.

잠을 깨자마자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두통이 쏟아졌다.


- 거의 기절했던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래 잤나요?'


- 그래도 많이 잔 건 아니다. 대충 저녁 때즘 된 것 같군.


'반나절쯤 지난 건가요?'


- 그래, 그 정도.


······머리는 왜 이렇게 아프담.


잠에서 깨고도 한참을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움직이지 못하는데, 누군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데온이었다.


"일어났느냐?"


"······네······."


목이 잠겼다.

이 추위에 바깥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인가?

······설마 홍화열은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목을 가다듬는데, 큼지막한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목이 잠겼구나.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어제 바깥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요."


"좀 더 누워있을 테냐?"


데온의 제안에 잠시 유혹에 빠졌으나, 이내 떨쳐냈다.

밤낮이 뒤집히면 곤란했다.

궁금한 것도 있고.


"······아뇨······.

슬슬 일어나야죠. 벌써 저녁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래. 곧 해가 질 거다."


데온은 그렇게 대꾸한 뒤 반대편에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은 약제사의 책상답게 온갖 종류의 약초로 어지러웠다.

그중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코 아과 잎사귀였다.


데온은 그 산더미 같은 약초들을 헤치고 그 사이에 들고 온 접시를 내려놨다.

내용물은 아과 한 덩이와 건더기가 꽤 충실한 수프였다.


"배고프지?"


그러고 보니 밥때가 한참 지났구나.

노크시스의 피에 절여진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그대로 뻗었으니까.

주린 배를 움켜쥐는데, 내 뱃골이 나를 대신에 대답했다.


꾸르르륵.


······지금 내 얼굴은 홍화열을 방불케 할 만큼 새빨간 게 틀림없었다.

방금 전까지 열이 없었었던 얼굴 전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으니까.


"······먹어야겠네."


다행히 데온은 내 민망함을 모른 척 해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침대에 앉은 그대로 데온이 내민 수프를 먼저 마시고 아과를 베어 물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수프도 아과도 슬슬 질려가고 있었건만 이 순간만큼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 하루를 꼬박 굶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굶은 채로 움직였고요.'


그런 상태로 용케 뻗지 않았구나.

두 달 동안 데온과 지내면서 체력이 좀 붙었나 보다.

토끼 잡는다고 그렇게 산을 쏘다녔으니까 그럴 만도.


"······루카스 님은 좀 어떠세요?"


아침에 요한 경을 통해 홍화열 치료제가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까진 들었다.

하루에 절반쯤 다시 지났으니 그것보단 훨씬 좋아졌겠지.

예상대로 내 질문을 들은 데온의 표정은 밝았다.


"많이 좋아지셨다.

네가 알려준 약이 효과를 톡톡히 봤지."


슬슬 해가 지고 있으니 아직 저녁약까진 안 먹었을 거고······.

기껏해야 2회분인가.

2회분으로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제대로 된 효과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효과가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 자신 있는 게 아니었나?


'약 자체는 홍화열에 효과가 있으리라 자신 있었어요.

제가 걱정한 건 루카스의 증세가 특이했던 부분이에요.'


너무 빠르게 오른 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난 증상.

일반적인 홍화열이라기엔 많이 독한 것처럼 보였던 루카스의 병세.

그것 때문에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기우였던 모양이다.

상태가 무척 호전되었다고 하니까.


"어제 만든 건 다 썼고요?"


"안 그래도 새로 만들거다."


데온의 책상에 수북이 쌓인 약초들은 아무리 봐도 홍화열 치료제의 재료들이었다.

어제 만든 것이 고작 10회분이었으니, 빨리 추가분을 만들지 않으면 바로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에케네시아가 부족할 텐데?


어제 치료제를 만들면서 고작 10회분만 만든 것은, 딱 그 정도가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최대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 만들기엔 재료도 원재료를 손질하기 위한 시간도 부족했다.

그중 가장 부족했던 것은 에케네시아.


에케네시아는 홍화열 치료제 뿐만 아니라 열이나 감기에 관련된 약엔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라 비축되어 있는 양이 많다.

덕분에 구하기도 쉽지만 동시에 그만큼 빨리 소모된다.


내 의문이 무색하게 데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막사 입구에서 자루 하나를 집어왔다.

자루의 크기는 내 몸통 만했으나 데온이 가뿐하게 들어 올리는 것을 보니 내용물이 꽤 가벼운 것처럼 보였다.


설마, 벌써?


"그거 에케네시아에요?"


"응. 이게 전부지만."


"빨리 왔네요.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윌덴에서 받아온 거라더라."


"아아."


의문은 빠르게 해결됐다.

레반티스 백작령에서 생산되는 모든 약초가 생산되는 윌덴이라면, 이 겨울에 에케네시아의 물량도 충분할 테고 레반티스 성이 있는 아그렌(Agren)보단 윌덴이 훨씬 가까울 테니까.


그걸 감안하더라도 고작 이틀만에 이만한 양이 도착한 것은 무척 빠르다.


- 윌덴이 노르달과 얼마나 멀지?


'걸어서 하루 정도요.'


- 말을 타면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겠군.


'다녀오기만 하면 그렇겠죠'


- 이틀만에 이만한 양을 모아오는 건 빠른 건가?


'무척 빠른 거죠.'


아르다르보에게 대답한 뒤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윌덴과 노르달이 가까워도 이만한 양을 이틀 만에 모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왕복하는 시간을 제한다면 주어진 시간은 하루가 재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루카스의 입김이 들어갔나보네요.'


일을 서두르라는 압박을 넣었겠지.

그리고 그 압박이 루카스 본인의 목숨을 살렸다.

뭐, 당장 에케네시아가 부족하다면 루카스의 약을 먼저 만들어내긴 하겠지만, 재료가 넉넉하고 넉넉하지 않고의 차이는 크다.


기존에 있던 양만으로는 자칫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뻔했으니까.


"······왜요?"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데온의 시선이 내게 한참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묻자 데온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친 곳은 괜찮으니?"


"······다친 곳은 없는데······."


내가 말끝을 얼버무리자, 데온이 내게 손을 뻗어 날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내 소매를 겉었다.


"글쎄, 아닌 듯 싶은데."


불빛 아래서 자잘한 상처가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베인 상처에 이미 딱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이 정도야 생채기 정도고······."


내가 어설프게 대답했으나 데온은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데온은 상처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단호한 사람이었으니까.


"흉진다. 이리 와봐."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데온의 곁에 앉자, 데온은 외상에 좋은 연고를 서랍에서 꺼내 내 상처들에 발라주었다.

나는 데온이 하는 양을 지켜보며 잠자코 있었다.

나로서는 별 것 아닌 상처였지만, 데온의 말대로 그대로 두면 흉으로 남을 만한 상처이기도 했으니까.


"······걱정했단다."


한숨처럼 쏟아지는 말.

나는 깜짝 놀라 데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앞으로 쏟아진 머리카락 때문에 데온의 표정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다.

지금 데온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데온이 지금 지을 법한 표정은, 내가 결코 잊지 못했던 표정 중 하나니까.


"자, 다 됐다."


약을 바르고 붕대까지 깔끔하게 묶어준 데온이 그대로 손을 털었다.

상처만을 감싼 간단한 조치였지만, 데온이 얼마나 뛰어난 약제사인지 잘 느껴지는 깔끔한 솜씨였다.


"······감사해요."


"무얼. 이게 원래 내가 하는 일인데."


데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에케네시아의 자루를 뒤집어 그 위에 쏟았다.

덕분에 책상은 이제까지 데온이 손질하던 약초들과 새로 내려놓은 에케네시아로 꽉 찼다.


"도와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곁에 섰다.

아과 잎사귀는 대부분 손질이 끝난 상태였고, 다른 재료들 또한 세부적인 계량만 하면 끝나는 수준으로 손질이 끝난 상태였다.


"좀 더 쉬지 않고?"


"괜찮아요."


이번에는 데온도 말리지 않았다.

내가 도우려는 일은 품이 많이 들 뿐 어려운 일이 아니고, 할 일이 워낙 많아져서인듯싶었다.

손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는 작업이니까.


"······알텐 님은요?"


한참은 그렇게 약초 손질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약초 손질이 기초 지식이 없는 초보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니 다른 병사들 도움을 얻기 어려울지라도, 의사인 알텐 영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일이 바쁜가?


"알텐 님은 의료 막사 쪽 일이 바쁜 듯 싶더라."


······그런가?

곧이곧대로 믿기엔 데온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또 뭔 일 있네.

알텐 영감, 간밤에 뭔 짓을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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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홍화열 1 24.08.20 5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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