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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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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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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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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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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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토벌 2

DUMMY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기에 주둔지로 돌아가는 대신 야영을 결정했다.

이는 수색조 전원이 화정석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마물이 생각한 것보다 더 없네요."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닥불에 감자를 밀어 넣었다.

콘라드 경이 간이 막사를 설치했지만, 자리가 넉넉지 않아 식사는 가져온 간편식으로 때워야 했다.

그나마 감자라도 구워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참고로 나는 막사 설치를 돕겠다 나섰다가 콘라드 경에게 쓸데없이 군소리만 들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루카스 말상대나 하란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겠지."


좀 더 안쪽.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등 뒤편으로 향했다.

저 방향으로 똑바로 가면 마물의 숲이다.


"내일 중에는 도착할 수 있겠군."


루카스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들여다보곤 그렇게 말했다.

한 달 전 1차 토벌 때 내가 건넨, 마물의 숲과 하얀 산맥 전체를 아우르는 그 지도였다.


"본대를 기다리지 않으실 건가요?"


"······괜찮을 것 같다."


내 질문에 루카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제오늘 겪은 것으로 미뤄볼 때 무리가 되는 일정은 아니라고 판단되는 모양이었다.


이 며칠 곁에서 직접 본 루카스는 의외로 강골이었다.

병약해 보이는 안색이나 홍화열을 겪은 후유증 때문에 꽤 걱정했는데 제 한 몸 건사할 정도의 실력은 있어보였다.


- 보기보단 튼튼하군.


'친모가 어쨌든 그리멘하임 가문 사람이니까요.'


아무리 요절했다지만 루카스의 친모인 엘리자베트 그리멘하임의 가문은 레반티스의 산하 가문 중 하나이자 북부에서 꽤 유명한 무가(武家) 중 하나다.

어쨌든 루카스도 그 피를 이어받았다는 거겠지.


콘라드 경은 막사를 모두 세운 후 잠시 정찰을 나갔다.

라이너 경을 데리고서.

야영을 위해 주변을 훑어보려는 정찰일 테니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다.


잠시간 편안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모닥불을 뒤적이며 감자를 구웠고 루카스는 내게서 받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내일의 동선을 짰다.

요한 경은 나와 루카스가 앉은 모닥불에서 두 걸음 정도 떨어진 나무 둥치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겨울 산은 고요했고 가운데 모닥불 타는 소리만 사위를 조용히 채웠다.


비명이 솟은 것은 그때였다.


으아아악!


"?!"


멀지 않은 곳에서 솟은 비명.

이 목소리는 분명 라이너 경의 목소리였다.

비명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리가 들린 쪽은 내 뒤편.

마물의 숲 방향이었다.


원래라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우리 세 사람 중 누구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포위 당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건 뭐지."


내 무릎께나 올 법한 크기와 가로로 쭉 찢어진 눈매에 뾰족한 귀.


"······루터······ 같습니다."


루터는 마물이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종류다.

장난기가 많아 종종 귀찮은 일을 저지르기는 하는데, 신체 능력이 워낙 하찮아서 큰 해는 없다.

······해는 없는데······.


"원래 이렇게 많나?"


루카스의 목소리에 긴장이 서렸다.

나 또한 긴장감으로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하나둘씩 나타나는 눈동자들이 지나치게 많다.


"······아뇨······."


하나, 둘, 셋······.

······서른.

아니 마흔?


루터가 원래 이렇게 몰려다녔었나?

아니, 일단 이렇게 몰릴 때까지 셋 중 누구도 몰랐다고?

한 명은 요한 경인데?


- 과하게 많은데.


'······그렇죠?'


원래 무리 지어 다니는 녀석들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열 마리 내외다.

이렇게까지 모이지 않는데?

빠르게 드러난 기척을 세는데 나보다 아르다르보가 빨랐다.


- 주변에 달라붙은 것만 오십이 넘는다.


미친.


오십 마리라면 주변을 포위하고도 남는 숫자다.

이렇게까지 몰릴 때까지 왜 몰랐지?

그나마 다행인 건, 루터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마물이라는 것.


"공격의사는······."


"······없는 것 같아요, 일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 사람은 동시에 검로 손을 뻗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목소리는 분명 라이너 경의 것입니다."


"거리는?"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한 경의 분석에 루카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의 비명 소리, 그럼에도 교전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좋은 뜻은 아닌 게 확실했다.


"아까 비명을 끝으로 조용한 걸 보면 콘라드 경과 라이너 경이 갈라진 모양인데."


그리고 라이너 경은 죽거나 그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라이너 경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우리 세 사람에게는 다행이었다.

이는 콘라드 경이 라이너 경을 공격한 마물을 피해 야영지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것보다······.


"이상하네요."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루카스가 고개만을 내 쪽으로 살짝 틀었다.


"콘라드 경이 떠난 방향에도 가득한 걸 보면······."


"······그 사이에 몰려들었다는 거군."


아무리 루터가 공격성이 낮은 마물이라도 이만한 숫자가 주변에 깔려있었으면 콘라드 경이 모르고 지나쳤을 리 없다.

콘라드 경이 라이너 경을 데리고 정찰을 나간 건 3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그럼 30분 사이에 이렇게 모여 들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냥 죽이면 안되나? 우리 셋이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10분 가까이 루터들이 달려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루카스가 물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한데, 틀렸다.


"루터 자체는 문제가 안되는데, 이놈들 비명 소리가 꽤 크거든요.

다른 놈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운이 나쁘면, 울프레버 같은 것들이요."


울프레버는 머리가 늑대를 닮아 귀가 밝은 편이다.

게다가 노크시스보다는 훨씬 덩치가 작으니 노크시스가 죽은 지금 하얀 산맥에 최상위 포식자는 울프레버 정도의 마물일 확률이 높았다.


"울프레버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나?"


"한두 마리가 아닐 테니까요?"


"······소리를 듣고 몰려온다는 건가?"


"네."


원래 울프레버는 단독 행동을 하지만, 루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하얀 산맥 전체에서 여러 마리가 몰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울프레버보다 더한 놈이 몰려선 곤란하고.


"그럼 콘라드 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콘라드 경이 오셔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요."


큰 소란 없이 이만한 숫자의 루터들을 잡는 것은 검으로는 불가능하다.

가능한 것은 넓은 범위의 마법, 혹은.


'아르다르보.'


- 왜.


'루터가 모닥불을 무서워할까요?'


- ······없는 것보단 낫겠지.


마지못해 대꾸하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난 한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마물은 불을 무서워하잖아요?'


- 놈들은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을 무서워하는 거다.

일반적은 불을 너무 꺼지기 쉬워. 놈들도 그걸 안다.


약간의 희망을 가졌던 내가 실망감에 입술을 짓씹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 뿐이라는 거잖아!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천천히 이그니서스를 뽑았다.


"제가 유인해 보겠습니다."


"죽이면 안된다며?"


요한 경이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면 루카스는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위험하지 않겠나?"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이제까지도 루터들에게서 딱히 공격 의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냥 콘라드 경을 기다리는 건?"


"콘라드 경이 오셔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게다가······, 계속 이러고 있는 것도 안 좋아요."


루터가 공격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곁에 두는 건 위험하다.

루터가 위험한 게 아니다.

마물은 마물을 부르니까.


"이것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이만한 숫자가 몰려 있으면 근처의 다른 마물이 몰릴 겁니다."


"죽어서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그것보단 효과가 적겠지만요."


선택해야 했다.

콘라드 경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학살을 시작하든가 아니면 내가 유인해서 놈들의 이목을 돌리든가.

······후자가 압도적으로 나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전자보다 후자에 몰려든 마물의 수가 훨씬 적을 테니까.


- 괜찮겠느냐?


'이판사판이죠, 뭐.'


현재 내 밑천은 두 가지였다.

내가 랑게르나라는 것.

신성력을 제외하고 마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의 힘이라는 것.

아, 하나 더.


남은 사람이 콘라드 경이 아닌 요한 경이라는 것.

내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제 변명거리는 두 분이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이그니서스를 중심으로 불꽃을 상상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꽃을.


"······!"


끼이이이이이!


이그니서스에서 불꽃이 솟음과 동시에 루터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목숨이 떨어질 때만큼의 강렬한 비명을 아니었지만, 소란이 번진다.


'······생각보다 시끄러운데······!'


끼이! 끼이이이!


쥐새끼같은 비명.

상당한 소음에 귀가 아팠음에도 나는 참고 기다렸다.

그러자.


끼?

낏?

끽! 끼기기기······.


'······통한다!'


내가 이그니서스에 불을 일으킨대로 한참을 기다리자, 루터들은 내가 저들을 해칠 마음이 없다는 걸 이해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뾰족한 귀가 쫑긋거리고 찢어진 눈이 주변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렸지만 비명 소리를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소란이 가라앉을 때 즈음 나는 천천히 발을 디뎠다.


끼!


동시에 맨 앞에 있던 놈이 기겁을 하며 다시 뒷걸음쳤지만, 나는 딱 한 발자국만 딛고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비명을 질렀던 놈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끼?


다시 두 번째 걸음.

이번에는 어떤 루터도 기절할 것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와 박자를 맞춰 조심스럽게 뒷걸음쳤을 뿐.


······끼이······.


이윽고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나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루터 무리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나를 따라 주변을 둘러쌌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나는 곧 루카스와 요한 경이 있던 자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


뒤에서 루카스와 요한 경이 내게 말을 걸려는 낌새가 느껴졌지만, 뒤돌아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급하게 움직이면 루터 무리가 한꺼번에 흩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 어디까지 가려고?


'충분히 멀어져야죠.'


이그니서스로 위협하자 루터 무리는 무리 없이 날 따라왔다.

정면으로 조금 걸어가면 적당한 거리에 동굴이 있으니 루터 무리를 그쪽으로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놈들을 몰아넣고 입구에 불을 피우면 적어도 오늘밤은 우리를 다시 쫓지 못할 테니까.


그때였다.


그르르르······.


"······아르다르보, 이거 설마······."


- ······곤란하게 됐군.


루터 무리를 몰아오느라 주변을 신경쓰지 못한 탓일까.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마물 하나를 보지 못했다.

왜 못 봤을까?

이토록 눈에 띄는데.


"······젠장······."


루터 무리에 신경을 쏟아부은 탓일까.

나는 직전의 루카스와의 대화에서 '가장 나쁜 상황' 중 하나에 봉착했다.

두 발로 걷는 흰 늑대.

울프레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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