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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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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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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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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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2

DUMMY

"······랑게르나의 축복에 대해서는 내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하지만, 그걸 온전히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은데."


루카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더더욱 짙게 웃으며 물었다.


"그중 루카스 님의 마음에 드시는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예를 들어?"


"잿빛 성을 둘러싼 마물의 숲에서 랑게르나가 어떻게 자유로운가, 라든가요."


루카스의 입매에 나와 비슷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이해했구나.


"······확실히 그런 쪽은 흥미로운 이야기였지."


레반티스에게 하얀 산맥이 있다면, 랑게르나에겐 마물의 숲이 있다.

마물의 숲은 랑게르나가 가진 최고의 방벽이었다.


랑게르나의 잿빛 성이 제이베르의 군대에 그토록 쉽사리 무너진 것은 마물의 숲이 가진 이점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 이반테스 랑게르나를 포함한 잿빛 성의 모든 이들은 제이베르의 군대가 마물의 숲을 가로질러 나타났을 때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에 잿빛 성은 그토록 쉽게 무너졌다.


고작.

고작 하룻밤 만에.


잿빛 성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온전하진 못해도 분명 랑게르나 중 하나인 벤야민 랑게르나가 제 살을 깎아먹는 짓거리를 할 줄은.


내 숙부가 한 짓은 랑게르나의 가장 높은 방벽을 스스로 무너뜨려 적군을 랑게르나의 앞마당까지 끌고 온 것과 다름 없었다.


"그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랑게르나의 축복을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있다는 건가?"


루카스의 목소리에 탐욕이 깃들었다.

탐나겠지.

마물의 숲은 위험하지만, 마물이 많다는 것은 마물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 또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물의 부산물은 마물을 잡아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놈들의 서식지에서도 생산되니까.


"랑게르나의 축복은 오롯이 온전한 랑게르나를 위한 것입니다."


빠르게 깃드는 실망감.

아니.

포기는 일러.

그렇게 빨리 실망하지 말라고.


"허나 마물에 숲에 대해서라면, 랑게르나의 축복과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압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카스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은 노골적이었다.

루카스 레반티스 정도 되는 자가 이만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일부러든가 그 정도로 마물의 숲이 탐이 나든가.


나는 둘 다 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그걸 알려줄 텐가?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몇 년 뒤면 다 퍼질 거.'


랑게르나가 아닌 자들도 마물의 숲을 무사히 통과하는 방법.

이 방법은 어차피 몇 년 뒤, 내가 아닌 숙부를 통해 퍼질 정보다.

그렇다면, 내 입으로 레반티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이미 잿빛 성을 잃었고 그것을 온전히 되돌리기엔 늦었다.


아르다르보는 내게 인과(因果)를 이야기 했다.

잃어야 하는 것이 인과라면, 잃지 않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랑게르나를 되찾을 방법은 잃지 않는 방법이 아니었다.

되찾는 것이지.


"그게 뭐지?"


"그건 제 후원을 확정해주시면 알려드릴 수 있겠군요."


내 대답에 루카스의 창백한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가관이었다.

아까부터 반쯤 감은 채 나를 내려다보던 눈이 동그래졌고, 내내 우아하게 비틀렸던 입매가 천천히 벌어졌다.

마치 내가 자신을 상대로 조건을 내세우리라 생각치도 못한 것처럼.


그리고 잠시 뒤 갑자기 쏟아지는 웃음.


"아하하하하하하하!"


그 웃음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아니.

이건 너무 좋아하는데.


- 네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보군.


'그러게요. 데온이랑 비슷한 과인가.'


이전 생의 데온도 가끔 화를 내야 할 것 같은 타이밍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데온과 헤어진 뒤 용병질을 할 땐 이런 식으로 대답할 때마다 처맞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데온이 내 당돌함을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 했으리라 짐작할 정도로.


이제 보니 루카스도 비슷한 타입인가 본데.


"그래. 내 네가 평범한 어린애가 아니었다는 걸 잠시 잊었구나."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말을 듣고 나니, 루카스 레반티스라는 인물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졌다.

적어도 허례허식을 중시하거나 쓸데없는 것이 집착하는 타입은 아닌 모양.

루카스 레반티스가 알텐 영감 같은 이였다면 내가 얼마나 큰 가능성을 제시하든 진작 이 자리에서 쫓겨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부족하다.

네가 하는 것들은 추상적인 가치들에 지나지 않아.

동시에 당장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도 하지."


이것봐라.


루카스의 말은 마물의 숲이 가진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 하는 말이었다.

이는 내가 열 살짜리 꼬맹이라 마물의 숲이 가진 잠재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리라 지레짐작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의 얼굴에는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미 날 후원하기로 결정한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는.


뭐, 장단은 맞춰주지.

물론 내 방식대로.


나는 말없이 품을 뒤져 지도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가 줬던 배낭에 들어있던 그 지도였다.

두 달 동안 내가 몇 가지를 추가해 넣은.


"그게 뭐지?"


"근방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지도는 레반티스에도 있다."


물론 있을 것이다.

마물의 숲까지 포함한 지도는 아닐 테지만.


"지도의 범위가 마물의 숲을 포함하는데도요?"


내 설명에 루카스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마물의 숲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순간, 루카스의 머릿속에 그려졌던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도는 루카스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내게서 마물의 숲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얻자마자 해야할 첫번째 작업이었다.


시간도 돈도 많이 소모되겠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

내가 이 지도를 넘겨준다는 것은 그 작업 과정을 크게 단축시켜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마물의 숲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과 그 지도를 넘겨주는 게 네 조건인가?"


"제가 루카스 님께 첫 번째로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죠."


"첫 번째?"


"네. 첫 번째요."


첫 번째가 있으면 두 번째도 있다.

그리고 세 번째도 있을 수 있겠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맹랑한 녀석이군."


꽤 투덜거리는 어조였지만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입가에는 흡족함이 묻어났다.

마음에 들었구만, 뭘.


"좋다. 루카스 레반티스의 이름으로 널 후원하도록 하지."


······됐다!


"대신 나 또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네 이름을 밝히지 말 것. 그리고 불꽃술사의 힘을 사용하지 말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루카스는 벤야민 랑게르나의 뒤를 봐주는 자가 누군지 알고 있을 테니, 나를 후원하는 일을 공공연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레반티스는 분명 굳건한 장벽이지만 한낱 백작가가 제국을 상대하기엔 무리니까.


그리고 나로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루카스가 날 온전히 지켜주지 못한다면 차라리 정체를 숨기는 것이 낫다.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전 생과 다른 것은 뚜렷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긍정적인 미래를.


"예, 그리 하겠습니다."


난 그리 대답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흘 뒤 나는 아그렌(Agren)으로 돌아간다.

그때 리안, 너도 함께 가도록 하지."


루카스가 홍화열에 걸렸던 영향일까?

이번 마물 토벌대는 예년보다 일찍 돌아갈 모양이었다.


아그렌은 레반티스 백작령의 주요 3도시 중 하나로서 레반티스 성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니까.

루카스가 아그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레반티스의 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랑게르나의 잿빛 성처럼.

그리고 그 레반티스의 성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나에 대한 루카스의 후원을 공공연히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본래 목표했던 수의 마물은 토벌하지 못했지만, 노크시스를 사냥한 것으로 큰 수확이다.

그리고 노크시스에게 콘라드 경과 네가 살아남은 것은 주둔지 전체에서 유명한 이야기지."


······과연.


나를 후원하는 핑계로 노크시스를 사냥한 것과 연관지을 생각인가.

이건 나도 생각치 못한 부분이었다.

뭐, 어차피 루카스가 알아서 해결해야하는 부분이니까 신경쓰지 않은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노크시스가 거기에 나타나는 건 원래 없던 일이기도 하고.


"분대 하나를 통째로 잃은 것은 뼈가 아프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인정해야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방비도 없이 고작 분대 하나를 잃고 노크시스를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내 손에 이그니서스가 있던 것이 루카스에겐 천만 다행의 일일 것이다.

콘라드 경조차도 노크시스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라이너 경은 어떻게 되었나요?"


"라이너 경?"


"네. 꽤 큰 상처를 입으셨으니까요."


라이너는 데온과 함께 홍화열 환자를 돌보게 된 뒤로 본 적이 없다.

궁금했다.

슬슬 완치됐을 되었을 테니, 주둔지에 모습을 보일 법도 한데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까.


"······라이너 경은······."


헌데 루카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무언가 껄끄러워하는 것 같은······.

······아하.


"······그러고 보니 라이너 경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무슨 얘기?"


"산에서 라이너 경을 발견했던 게 저였거든요.

그때 상처를 입게 된 이야기를 들었어요."


루카스와 요한 경의 시선이 내게 동시에 꽂혔다.


"상처를 입었을 때?"


"라이너 경은 그 상처가 울프레버에게 당한 상처라고 했지요."


내 말에 요한 경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요한 경이라면 내 말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마물 토벌에 여러 번 참가했을 요한 경이라면 콘라드 경처럼 마물에 식생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정말인가?"


"정확히는 울프레버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저 덩치가 큰 흰 늑대에게 당했다고 했죠."


하지만, 그게 그 소리다.

하얀 산맥에서 만날 수 있는 마물 중 덩치가 큰 흰 늑대 모습의 마물, 그것도 두 발로 걷는 마물은 울프레버 밖에 없으니까.


"그게 왜?"


요한 경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가는 동안 루카스가 되물었다.

아, 루카스는 울프레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구나.

나는 웃으며 이어 말했다.


"울프레버는 양손이 모두 독수(毒手)니까요"


이번에는 루카스 또한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았다.

루카스의 얼굴이 요한 경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었으니까.


마물의 독.

마물의 독에 당한 상처는 결코 자연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다.

마물에게 죽임 당했을 때처럼 정식 사제가 정화하는 수밖에 없는 상처.


하지만, 라이너는 데온에게 치료 받았을 뿐이고 사제에게 치료는 커녕 상처를 보인 적도 없다.

노르달 근처에 사제가 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으니까.


"라이너 경이 거짓말을 했다는 뜻인가?"


"네. 적어도 저는 믿지 않았어요."


"······그럼 네가 생각했을 때 라이너 경의 상처는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요한 경이 한참만에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은 채 그 물음에 대답했다.


"라이너 경의 상처는 검상(劍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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