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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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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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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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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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레반티스 2

DUMMY

루카스 레반티스의 지시로, 새 의료 막사 외에 기존 의료 막사의 일까지 돕는다고 해서 내 일이 엄청나게 늘어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기존 의료 막사의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여전히 알텐과 데온이 도맡아 했으니까.


애초에 내가 기존의 의료 막사, 즉 심각한 수준의 환자들에게는 접근하지 못하고 경미한 수준의 환자들만 돌본 것은 알텐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니고 약제사도 아니고 약제사 조수인 나를 용납할 수 없었겠지.


유의미하게 달라진 것은 딱 한 가지.


내가 매일 끓이는 데온의 약차를 기존 의료 막사의 환자들에게도 나눠주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의미있는 변화이기도 했다.

홍화열 치료제의 핵심 재료인 아과 잎사귀를 가장 심각한 환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경로로 먹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도 알텐은 이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을 테지만, 생각보다 대놓고 시비를 걸진 않았다.

역시 지휘관인 루카스 레반티스의 직접적인 언질을 들었겠지.


물론, 그렇다고 알텐의 시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비를 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 리안.


'네.'


- 뒤통수 안 따갑나.


'따가워요.'

아까부터 알텐 영감이 죽일 듯한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잖아요.'


나는 알텐의 시선을 무시하며 기존 의료 막사 안을 돌아다녔고, 데온의 약차를 보다 심각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물론 증세가 심각한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약차에는 생강을 뺐다.

생강이 들어간 약차는 효과는 좋지만, 고열과 잦은 기침에 시달린 환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데온에게는 내가 그동안 환자에게 주었던 약차에 아과 잎사귀를 섞어넣었노라고 고백했다.

역시나 데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아과 잎사귀를?"


"네. 약차의 기본 조합에 에케네시아가 있잖아요?

에케네시아랑 섞이면 잎사귀의 독이 중화되요."


"왜 섞을 생각을 했지?"


"아과 먹는 법을 알려준 상단에서, 아과 잎사귀를 감기약으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 조합법도 받았고?"


이건 완전한 거짓말이었지만, 더이상 그럴듯하게 지어낼 재간이 없었다.

원래 쓰던 조합법이 있다, 고 적당히 지어내는 수밖에는.

다행히 데온에게는 내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 것 같았다.


"감기약으로 썼으니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


데온은 내가 한 말을 되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만큼 실마리를 줬으면 데온이 알아서 알아낼 수 있겠지.


"그 감기약 조합법, 알려줄 수 있겠니?"


"네, 물론······."


나는 감기약, 즉 홍화열 치료제의 조합법을 그대로 읊었다.


홍화열 치료제 핵심 재료는 아과 잎사귀다.

아과 잎사귀를 중심으로 에케네시아까지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홍화열의 치료와 아과 잎사귀에 대한 독성을 중화까지 동시에 해결된다.

나머지 재료는 이 두 재료의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보조하는 역할일 뿐.


약초에 대해 잘 아는 데온이니 이 조합 중 무엇을 빼도 되고 안되고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보다 효과적인 약 조합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고.


"자네, 심부름 하나만 해주겠나."


고민이 끝난 데온이 병사 하나를 불러다가 필요한 약초 목록을 적어 건넸다.

아과의 잎사귀는 충분할 테니 부족한 것은 에케네시아와 다른 약초들일 것이다.

에케네시아는 감기 증상에 두루 쓰이는 약초라 환자 전체에게 다시 쓸 약을 조합하려면 부족할 것이다.


"리안."


"네."


"너는 아과를 좀 더 캐와라.

내가 콘라드 경께 이야기해 도와줄 손을 부탁해보마."


식용으로 쓸 뿌리가 아닌 아과의 잎사귀를 캐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루와 삽을 챙겼다.

막사 밖으로 나오니 마침 노르트와 에반이 보였다.


- 저 두 사람은 늘 붙어다니는군.


'18살이면 한창 몰려다닐 시기잖아요.'


두 사람 모두 윌덴 출신이랬나.

윌덴은 노르달보다 비교적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보단 숲이 많아 노르달보다 사냥꾼도 약초꾼도 많다.

······아니, 노르달은 그냥 인구가 없구나.


그 덕분인지 두 사람은 나보다 산은 못 탔지만, 약초는 잘 찾았다.

심지어 두 사람 중 노르트는 나도 놓친 약초를 찾아낼 정도로 눈이 좋았다.


"또 아과 캐러 간다고?"


"네. 같이 가실래요?

이번엔 많이 필요해서 어차피 지원자 받을 것 같은데."


"그래?"


아과를 캐러 다녀오면 일과를 빠져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르트와 에반은 이 며칠 나를 꾸준히 따라 아과를 캐왔다.

나도 다른 사람보단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두 사람이 편하기도 하고.


"약제사 님한테 말씀드리고, 같이 가요."


"어어, 그럼 잠깐만."


에반이 빠르게 안쪽에 들어가 데온의 허락을 맡고 돌아왔다.

잠깐 사이에 신이 난 얼굴이 되어서.


"산에 있는 아과, 씨를 말릴 기세로 캐오라고 하시는데?"


왜 신이 났는지 알겠군.

잠깐이 아니라 아예 아과 채집 담당자가 되어버렸으니까.

아과를 캐러 산을 돌아다니게 되면 일과에서 많이 제외된다.

두 사람은 지금 훈련에서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게 되어서 기뻐하는 것이다.

겨울산을 헤는 건 고된 일이지만, 훈련보다야 훨씬 재밌는 일일 테니까.


"오오오오!"


역시나 에반도 무척 기뻐하며 노르트가 받아온 자루를 받아들었다.

한 손에는 곡괭이, 반대쪽 손에는 자루.


- 난장판이군.


18살다운 혈기로 거침없이 앞장서는 노르트와 에반.

뭔가 평소보다 정신없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그 뒤를 따랐다.




***




반나절쯤 산을 헤맸을까?

해가 중천일 때 산을 올랐건만, 어느덧 하늘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와, 개무거워."


"아과가 이렇게 많았나?"


호들갑을 떨며 아과를 발견하는 족족 캐대던 노르트와 에반은 평소보다 두 배는 될 법한 양의 아과를 캤다.

소중한 잎사귀까지 온전하게 캔 것은 물론이다.


"근데······.

이거 잎사귀가 중요하다던데, 멀쩡한 게 별로 없다."


노르트가 마지막 자루에 손에 쥔 아과를 털어내곤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아무래도 겨울이라서요."


이만한 추위라면 멍석 딸기 말고는 어지간한 식물은 다 동면 상태다.

멍석 딸기도 슬슬 안보이기 시작하는데, 아과의 잎사귀라 한들 멀쩡한 게 있을리가.


'실컷 먹을 때 잎사귀 좀 쟁여둘 걸.'


12월에 아과를 막 캐러 다니기 시작할 때의 아과에는 그래도 잎사귀가 좀 붙어 있었다.

그때 아과 잎사귀를 모아놨다면 훨씬 일이 쉬웠을 것 같아 아쉬웠다.


'······홍화열이 이정도까지 퍼졌다는 걸 몰랐으니까, 뭐.'


- 노르달까지는 안 퍼졌던 거냐?


'안 퍼졌어요.

애초에 마물 토벌대 내부에서 끝났나봐요.'


마물 토벌대의 주둔지는 마을과 좀 떨어져있다.

약제사였던 데온 말고는 노르달과 교류가 없었으니 번지지 않았던 거겠지.

데온까지 걸렸다면 큰일이었겠지만, 데온은 걸리지 않았다.


'감기가 좀 돌긴 했는데, 홍화열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홍화열 대신 감기에 시달렸다.

길 노인에게 처음 발견됐을 때 한 번, 그리고 이맘때 즈음 한 번.

꽤 지독하게.


'덕분에 데온의 특제 약차만 줄창 마셨죠.'


내가 데온의 약차에 익숙해진 계기다.

귀족 출신이라 생강 맛에 익숙한 편인데도 데온의 약차는 독했다.

데온이 내 약에는 생강을 아끼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덕분에 매운 거 잘먹잖아요.'


- 네가?


'······이정도면······?'


내가 미심쩍게 중얼거렸지만 아르다르보는 동의하지 않았다.


- 흠. 글쎄.

네가 익숙한 건 생강 만 아닐까?


'······뭐가 달라요?'


- 다르지.


'······뭐가······.'


아르다르보와 대화가 시덥잖은 쪽으로 빠지려는 순간, 노르트가 나를 불렀다.


"리안!"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르트와 에반이 제가 들고 온 자루를 벌려 내게 보였다.

두 사람의 자루 모두 아과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이정도면 된 것 같지?"


얼핏 보기에도 자루를 꽉 채운 것은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온전한 아과들이었다.

도구가 곡괭이 뿐이라 제대로 캐기 어려웠을 텐데도.

둘 다 윌덴 출신 아니랄까봐 깔끔한 솜씨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라면 다시 캐러 오면 되니까요.

해도 슬슬 지고 있고, 충분한 것 같아요."


나도 노르트와 에반도 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해가 진 후의 산은 위험하다.

특히나 겨울은.

그러니 슬슬 내려가야 할 때였다.


"······어, 잠깐만."


주변을 정리하는데, 에반이 그렇게 내뱉으며 제 입가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저쪽."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

에반보다 가까이 있던 노르트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노르트는 천천히 에반이 바라보는 방향을 손가락질 했다.


기만하기 곤두세운 감각을 노르트가 가리킨 쪽으로 집중하자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뿔을 가진 짐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슴······!'


토끼는 꽤 여러 번 봤지만, 사슴을 보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다.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야 있지만, 사슴의 서식지는 내가 평소 다니던 길보다 훨씬 안쪽이니까.

나로서는 잡을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사슴의 서식지까지 안으로 파고들어가 갈 필요도 없고.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순간 나를 관통했으나 어둠속에서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저거, 그냥 사슴이 아니라······.


- 아니. 사슴이 아니다.


거대한 뿔 아래에 익숙한 실루엣.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그것은······.


"······!"


사슴의 주둥이가 있어야 할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마치 강한 힘으로 뜯겨나간 것처럼 일부가 없어져 너덜거리는 겉가죽.

턱 아래부터 길게 찢어진 목덜미 안쪽으로 뼈가 드러나보였고, 그 안쪽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저 안쪽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

번들거리는 10개의 눈동자와 그 눈동자를 빼곡이 감싸고 있는 이빨.

초식 동물의 겉가죽을 뒤집어쓴 잔혹한 괴물의 얼굴을.


- 나이트펭(Nightfang)이로군.

하얀 산맥에는 흔한 개체가 아닌데.


······아.

홍화열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마물의 숲에서 흩어진 마물들이 하얀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원래 하얀 산맥에서 살고 있던 마물들을 좀 더 멀리 쫓겨나리란 것을.


"······가요."


나는 이제껏 사슴, 아니 나이트펭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에반과 노르트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영 아쉬운 눈치였다.

지금 '사슴' 사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그런 희망을 깨기 위해 나직히 내뱉었다.


"저건 사슴이 아니에요."


"사슴이 아니라고?"


"턱 아래를 잘 봐요."


내가 지적하고서야 '사슴'을 자세히 살핀 노르트와 에반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저거, 마물······!"


노르트가 새된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에반이 재빨리 그 입을 틀어막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후, 내가 나직히 덧붙였다.


"먼저 공격하는 놈은 아니니, 조용히 가요."


다행인 것은 나이트펭은 인간을 건드리지 않는다.

마물을 뜯어먹고 사는 마물.

그게 나이트펭이니까.


다만.


'······나이트펭이 보인다는 건'


마물의 행동양식은 일반적인 짐승과 비슷하다.

먹이를 따라 이동하고 서식지가 바뀐다.

나이트펭이 이 주변에서 보이지 시작한다는 것은 주둔지 주변의 마물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환자가 늘어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도, 최소한의 토벌은 계속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마물이 줄지 않고 늘어났다라.


'······이거, 생각했던 거보다 빠를지도.'


좀 더 서둘러야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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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홍화열 1 24.08.20 5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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