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최근연재일 :
2024.09.14 22:2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2,338
추천수 :
116
글자수 :
208,719

작성
24.09.06 20:20
조회
23
추천
3
글자
12쪽

사제, 갈레아스 2

DUMMY

저녁 때가 되자 나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루카스를 따라갔다.

루카스를 따라 향한 곳은 만찬장이 아닌 가족 식당이었다.


'만찬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 그만큼 인원이 적다는 뜻이겠지.


만찬의 장소가 만찬장이 아닌 가족 식당이라는 것.

이는 오늘 만찬의 구성원이 성의 주인인 레반티스 백작과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아에리온의 사제, 그리고 루카스가 전부일 확률이 높았다는 의미였다.

그럼 인원은 나까지 총 4명인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알브레히드랑 카밀라 레반티스가 빠지는 게 다행이긴 한데······.'


- 왜?


'무슨 얘기가 나올지 감이 안 잡혀서요.'


아에리온의 사제가 날 보자고 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단순히 노르달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내 얼굴을 궁금해하는 정도의 호기심이라면 따로 나를 부르면 될 터.

굳이 레반티스 백작과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 날 불렀다는 것은······.

······젠장.


- 생각이 많구나.


'당연하죠.'


"아버지는 좀 늦으실 것 같으니 일단 앉자."


내가 복잡해지는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루카스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아에리온 사제는 아마 레반티스 백작과 함께 들어올 모양이었다.

일단 나는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식탁은 호화로웠다.

중앙을 차지한 메인 요리는 아무래도 사슴 고기 같았고 그 주변으로 버터에 구운 송어와 감자, 절인 양배추 등의 온갖 요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과 요리가 있네요?'


몇 가지 요리가 아과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난 많이 놀랐다.

아과는 귀족이 즐길 법한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과 식용법을 배운 남쪽에서도 아과는 평민의 식재료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아과를 먹지 않던 레반티스에서? 그것도 귀족의 식탁에?


루카스의 말로는 레반티스 백작이 꽤 흥미를 보였다더니.

손님을 대접하는 식탁에 올릴 정도였나?


물론 눈앞에 있는 요리는 아과를 사용한 요리라고 할지라도 백작의 식탁에 올라온 이상 내가 이제껏 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였다.


노르달과 주둔지에서는 물론이고 이전 생에서도 아과의 요리법이란 간단하게 찌거나 굽는 정도.

평민들이 주로 먹는 식재료이기에 복잡한 요리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유가 있다면 사냥한 야생동물 고기와 함께 요리하는 것이 가장 복잡한 요리법라 구분될 정도로.


하지만, 지금 백작의 식탁에 올라온 아과 요리는······.


'호화롭게 짝이 없네요.

아과 요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내가 알아본 아과 요리는 총 세 가지였다.

아과를 얇게 채썰어 튀긴 뒤 꿀에 절인 견과류를 곁들인 것,

삶아서 으깬 것에 버터와 치즈를 올린 것,

그리고 평범하게 고기와 함께 구운 것.


날 한 번 더 당황시킨 것은 아과와 함께 구운 고기였다.

아과를 곁들여 구운 고기는 식탁 중앙에 있는, 사슴 고기였기 때문이었다.


'아과랑 사슴 고기라니.

레반티스 백작은 생각보다 편견이 없나봐요.'


아무리 귀족이라 할지라도 사슴 고기를 자주 먹지 않는다.

사슴은 사육되는 게 아니니 사냥으로 잡아야 하니까.


"사슴 고기는 처음 보나?"


"······처음은 아닙니다만,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보는 거야 몇 번 봤다.

랑게르나의 이름을 잃은 후에도 사슴은 종종 잡아봤다.

내가 직접 먹을 수 없었을 뿐.

귀족이 아닌 이들에겐 사슴 고기는 직접 먹는 것보다 팔아치우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잿빛 성에서 살 때 몇 번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없다' 가 맞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먹어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루카스가 잡았구나.


양입끝이 움찔거리는 걸 보면 무척 자랑하고 싶은 모양인데, 루카스에겐 안타깝게도 그 순간 식당 문이 열렸다.

뒤늦게 도착한 레반티스 백작과 아에리온의 사제였다.


"레반티스 백작 님을 뵙습니다."


레반티스 백작이 들어옴과 동시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됐다. 앉아라."


레반티스 백작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았다.

백작과 함께 들어온 아에리온 사제는 루카스의 반대편에 앉았다.


'······존재감 대단한데요.'


시선을 내려야 했기에 얼핏 스쳤을 뿐이지만 카르세디아의 변경백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

아버지가 생각날 정도였다.

그리고.


- 고위 사제인 것 같군.


'네. 저 사람이 토벌대에 함께 간다는 그 사제 같아요.'


난 루카스와 나란히 앉았기에 아에리온 사제와는 마주 보고 앉은 상태였다.

덕분에 상석에 앉은 레반티스 백작보다는 아에리온의 사제를 훨씬 자세히 뜯어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아에리온의 사제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나이들어 보였다.

토벌대에 함께 간다기에 그래도 좀 정정한 사람을 생각했는데, 웬걸.

실물을 직접 마주하니 아에리온의 사제, 갈레아스는 노르달의 길 노인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하신 양반이었다.


만찬의 인원이 모두 자리에 앉자 간단한 통성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온 첫 번째 화제.


"루카스 님이 직접 잡아오신 사슴이라니 늙은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시 루카스가 잡은 거구나.

아에리온의 사제가 사슴 고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자 루카스의 입매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내게 자랑하고 싶었던 걸 못했는데, 갈레아스 사제가 대신 루카스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준 모양이었다.


"갈레아스 사제 님이 몸소 레반티스를 방문해 주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카스가 너스레를 떠는 사이, 시종이 메인 요리인 사슴 구이를 각자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아니, 메인은 사슴 고기가 아닌가?

요리 자체는 사슴 고기가 메인이었으나 중심 화제는 아닐지도.

갈레아스 사제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이게 아과군요."


갈레아스 사제는 자신의 접시 위로 큼지막하게 덜어진 사슴 고기보다 가니쉬로 곁드려진 아과에 더 흥미를 보였다.

그 반응에 내가 왜 이 자리에 불려왔는지를 깨달았다.

갈레아스 사제가 왜 내 이야기를 궁금해했다는 건지도.


레반티스 백작이 와인이 든 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했다.


"꽤 흔한 작물이지만 이제까진 먹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소.

먹는 방법을 알아낸 건 아이의 공로지."


의외의 연속이었다.

일단 루카스의 공로로 돌린 다음 루카스가 내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레반티스 백작이 내 공로를 직접 언급할 줄은 몰랐다.


레반티스 백작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갈레아스 사제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갈레아스 사제는 흥미와 호기심이 동시에 깃든 눈동자로 나를 찬찬히 살폈다.


"이름이 리안이라고 했느냐?"


심지어 레반티스 백작과 갈레아스 사이에선 대략적인 이야기는 끝낸 듯 싶은 분위기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사제 님."


"노르달에서 왔다지?"


"네, 노르달에서 루카스 님을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갈레아스 사제에게는 대답을 잘해야 했다.

바로 곁에 레반티스 백작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신성력을 가진 사제에게 입을 잘못 놀렸다간 내가 되려 골탕 먹을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상대는 고위 사제.

배는 조심해야 한다.


"듣자 하니 노크시스를 잡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고?"


이 얘기까지?

나는 놀라 루카스와 레반티스 백작 쪽을 훑었으나 두 사람 모두 큰 반향 없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이것도 사전에 얘기된 사항이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콘라드 경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갈레아스 사제에게 노크시스의 숨통을 내가 끊었다는 소리까지 들어갔을리 없으니 일단 발뺌했다.

루카스가 거기까지 백작에게 이야기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는지 갈레아스 사제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눈썰미는 꽤 좋은 것 같던데."


노크시스의 급소를 알아챈 것 말이구나.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아르다르보가 알려줬던 사실이었지만 구별해봤자 의미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과를 활용할 생각도 한 것도 그렇고."


"알고 있는 사실을 전달한 것 뿐인데요."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더라도 활용하지 못한 자들도 많단다."


그렇게 말하는 갈레아스 사제의 눈가와 입가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런 의미로 나는 네가 무척 큰 공을 세워주었다고 생각한단다."


-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었다.

오전에 알브레히드와 카밀라 레반티스 모자(母子)가 갈레아스 사제를 마중 나간 것을 보고 혹시나 카밀라 레반티스의 영향력이 아에리온에게까지 뻗친 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이정도로 날 마음에 들어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감사합니다."


공손히 감사를 표하자 날 바라보는 갈레아스 사제의 표정이 한층 더 흐해졌다.

······이거, 잘하면 2차 토벌대에서 내 입장이 꽤 편안해질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이제까지 나와 갈레아스 사제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레반티스 백작이 입을 열었다.


"이번 토벌에서 노크시스 정도의 대형 마물 토벌에 성공한다면, 갈레아스 사제께서 정식으로 네 신분을 보장해주시기로 했다."


뜻밖의 이야기에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음식물을 거의 내뱉을 뻔했다.


"사제께서 말입니까?"


현재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단은 모두 세 군데.

그 중 아에리온은 제외한 다른 두 교단은 귀족이 후원하는 아이를 보증하는 일에 대가를 받는다.

보통 기부금의 형태를 띄긴 하지만, 반드시 대가를 받는다.

아에리온을 제외한 다른 두 교단은 그렇다.


하지만, 아에리온의 보증 방식은 다르다.

교단을 구성하는 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아에리온에서는 기부금 같은 대가를 받는 보증은 결코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아에리온이 아예 신분 보증을 하지 않느냐?

아니. 그것은 아니다.

방식이 많이 다를 뿐.


아에리온은 신분 보증의 대가로 딱 한 종류의 방식만 요구한다.

아에리온의 신도가 되는 것.


하지만, 이는 귀족들은 결코 원하지 않는 대가이기도 했다.

아에리온의 방식은 제 가문의 돈을 쏟아부은 아이를 그대로 아에리온 교단 영향력 아래 밀어넣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니까.


레반티스에서 그런 식의 보증을 할리가 없는데?


내 얼굴이 점점 의아함으로 물들어간 탓일까?

갈레아스 사제가 웃으며 레반티스 백작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에리온의 보증을 받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봅니다."


"영리한 녀석이니 놀랄 것도 없군."


레반티스 백작이 빙긋 웃으며 와인 잔을 다시 제 입으로 가져갔다.

······라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그 조건은 아닌가 본데.

내가 아에리온의 보증을 받는 대가로 아에리온의 신도가 되면 나보단 레반티스 백작가가 더 손해를 볼 테니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2차 토벌이 성공한 후에 하는 게 좋겠구나.

내가 널 보증해주는 건 토벌이 성공하는 게 조건이니 말이다."


갈레아스 사제는 그렇게 말하며 레반티스 백작과 어떠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책임이 막중해지는데요.'


- 자신 있느냐?


'어느 정도는요.

갈레아스 사제와 레반티스 백작이 거래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그 거래가 나온 배경은 대충 짐작이 가요.'


- 어떤 배경?


'레반티스 백작은 2차 토벌대가 마물의 숲까지 들어갈 걸 알고 있으니까요.'


노크시스만 한 대형 마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그건 하얀 산맥 같은 일반적인 지형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노크시스만 한 대형 마물?

잿빛 성을 둘러싼 마물의 숲에선 잘 뒤져보면 두셋 정도는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터.

레반티스 백작은 지금 내게 그걸 잡아오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 양반이잖아.'


하지만, 그걸 잡아오는 것이 레반티스 백작이 내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면 들어줄 수밖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의 복수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안내 24.09.15 5 0 -
39 2차 토벌 3 24.09.14 10 1 11쪽
38 2차 토벌 2 24.09.13 12 1 12쪽
37 2차 토벌 1 24.09.11 20 2 12쪽
36 대화 4 24.09.10 15 3 11쪽
35 대화 3 24.09.09 25 4 12쪽
34 대화 2 24.09.08 24 3 12쪽
33 대화 1 24.09.07 24 3 12쪽
» 사제, 갈레아스 2 24.09.06 24 3 12쪽
31 사제, 갈레아스 1 24.09.05 30 3 12쪽
30 도시, 아그렌 3 24.09.04 31 3 13쪽
29 도시, 아그렌 2 24.09.03 40 3 12쪽
28 도시, 아그렌 1 24.09.02 48 4 12쪽
27 거래 2 24.09.01 43 3 12쪽
26 거래 1 24.08.31 47 4 12쪽
25 밤손님 4 24.08.30 49 3 12쪽
24 밤손님 3 24.08.29 47 3 12쪽
23 밤손님 2 24.08.28 50 3 12쪽
22 밤손님 1 24.08.27 47 2 11쪽
21 루카스 레반티스 4 24.08.26 54 3 12쪽
20 루카스 레반티스 3 24.08.25 50 3 12쪽
19 루카스 레반티스 2 24.08.24 52 3 12쪽
18 루카스 레반티스 1 24.08.23 54 3 12쪽
17 홍화열 3 24.08.22 55 3 12쪽
16 홍화열 2 24.08.21 54 3 13쪽
15 홍화열 1 24.08.20 52 3 13쪽
14 길 잃은 기사 4 24.08.19 61 3 12쪽
13 길 잃은 기사 3 24.08.17 57 3 12쪽
12 길 잃은 기사 2 24.08.16 63 3 12쪽
11 길 잃은 기사 1 24.08.15 72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