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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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최근연재일 :
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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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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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토벌 3

DUMMY

그르르르······.


다행히 울프레버는 나를 먼저 발견했음에도 곧장 달려들지 않았다.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위협할 뿐.


'저거 이빨에······.'


- 피다.


'라이너 경의 피일까요?'


마물의 피는 검은색에 가깝다.

하지만, 울프레버의 입가에 묻은 피는 선명한 붉은색이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직전에 들었던 라이너 경의 비명소리.


내가 의심스럽게 물었으나 아르다르보는 확언을 보류했다.


- ······적어도 주변에 시체는 없군.


시체가 없으니 단순히 판단할 거리는 아니었지만, 울프레버는 두 발로 걷는 마물이기에 보통 공격에는 입이 아닌 손을 쓴다.

입가에 피가 묻어있다는 건 뭘 먹었다는 것.

울프레버가 먹은 것이 라이너 경인지 산짐승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 그리고 금방 식사를 한 것 같으니 당장 덤벼들 것 같진 않군.


마물의 생태는 짐승과 같다.

입가가 붉게 번들거리는 것을 보아 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뜻.

그럼 굳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르르르르······.


'아닌 것 같은데요?'


괜찮다고 판단하기 무섭게 울프레버가 이를 드러내며 내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낮추며 나를 사납게 노려본다.

저건, 아무리 봐도 공격 의사가 가득인데?


- 너를 두려워하는군.


'······왜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놈의 절반도 되지 않은 몸집을 한 어린애일 뿐인데?


- 이그니서스.


······아, 젠장.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내가 쥐고 있는 이그니서스를 횃불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보름간 겪은 콘라드 경과의 훈련이 이런 식으로 효과를 볼 줄은 몰랐는데.

이젠 단순히 쥐고 있는 것만으로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불 자체에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힘을 거두기엔······.


- 안돼.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아르다르보가 다시금 내 생각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이제와서 불을 꺼뜨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울프레버는 내게 이미 적의를 품었고, 불을 꺼뜨리는 순간 기회라 생각하고 오히려 곧장 달려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서서히 뒷걸음질쳤다.

뒤에는 루터 무리가 있었지만, 쓸데없이 가까이 있다가 울프레버에게 공격받느니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그때였다.


끽!

끼기긱!

끽!

끼기기기기긱!

끼릭!

끼이이이이이!

끼이이익!


나를 애워싼 루터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소란은 비명보단 함성에 가까웠다.

마치 사기를 북돋는 병사들의 외침같은 그런 비명.


그리고 그 외침들과 함께 루터들이 울프레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어지간한 성인 두 배는 넘는 덩치의 울프레버를 향해 오십여 마리의 루터가 달려드는 것은 그야말로 진풍경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성인과 아이의 싸움.

아니, 어린애와 성인의 싸움도 이 정도로 격차가 나지 않을 것이다.


"······뭐······."


갑자기 펼쳐진 진풍경에 나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울프레버가 긴 팔을 이용해 독수(毒手)를 휘두르자 루터 서넛이 한꺼번에 쓰러진다.

루터의 피가 흐르고 시체가 쌓인다.

하지만, 앞서 달려든 루터들이 얼마나 쓰러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루터들이 울프레버에게 달려들었다.

그 맹목성에 울프레버 또한 당황한 듯 보였다.


각각을 보면 어린애보다 못한 무력을 가진 것이 루터다.

하지만, 그 숫자가 오십이 넘다보니 울프레버가 버거워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루터들은 앞선 루터들이 계속 죽어나가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끊임없이 울프레버에게 달려들었다.


울프레버는 내키는대로 거대한 앞발을 내저으며 그런 루터들을 밀어냈지만, 루터들은 그런 울프레버의 손짓에 낙엽처럼 쓸려가면서도 놈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공포라는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한참을 개미떼처럼 몰려든 루터들에게 둘러싸여있던 울프레버가 찢을 듯한 괴성을 지른 것은 그때였다.


캬아아아아아악!


"······!"


온힘을 다해 제 몸에 달라붙은 루터들을 떨쳐내고 지른 괴성.

이는 궁지에 몰린 마물의 위협이었다.

아니,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울프레버의 발악에 가까웠다.

울프레버의 울부짖음은 마물의 울부짖음임에도 당혹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울프레버와 비교하자면 루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같은 마물인 이상 본능에 충실해야 마땅할텐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제게 달려드는 루터들에게 울프레버는 공포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울프레버 자신이 수십 배는 강할 텐데도.


마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가지는 걸까?


"······."


울프레버의 괴성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있는 힘껏 떨쳐낸 덕분인지 울프레버와 루터 무리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 공간을 사이에 두고 짧은 대치 이뤄졌다.


그르르르르르······.


이제 울프레버는 내가 아닌 루터 무리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위협을 가했다.

짧은 싸움이었지만 울프레버의 흰 털들은 루터들의 피로 엉망이었고 오십에 가까웠던 루터 무리의 숫자는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울프레버는 여전히 사나운 얼굴로 이를 드러냈으나 울프레버는 꽤나 지쳐보였다.


그르르르르······.


둘의 싸움은 루터들의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잠깐 사이에 그 많던 숫자의 절반이 도륙 당했으니까.

하지만, 루터가 아니라 울프레버 쪽에서 더이상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상대는 압도적인 무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불사하는 루터들이었다.

울프레버가 질 싸움은 아니었지만, 놈에게 이득이 없었다.

무엇보다 놈은 배가 불렀으니까.


크르르르······.


울프레버는 다시 한번 이를 드러내며 나와 루터들을 향해 위협을 가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반대편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날 노려보던 노란 눈동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숨막히는 긴장감에 억눌렀던 숨을 내쉬자 머리가 아찔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펼쳐진 이 상황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로 날 공격한 건 아니지만 그대로 대치 상황이 길어졌으면 분명 울프레버는 날 공격했을 것이다.

놈은 분명 배가 불렀지만 내 이그니서스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날 당황시킨 것은 루터들의 행동.

비교적 온순한 마물인 루터들이 울프레버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그것도 제 무리의 죽음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루터들의 그 행동은 마치 루터들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울프레버와 나 사이에서 나선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끼?


당황으로 정신이 흐트러진 탓에 이그니서스의 불꽃이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그 탓일까?

루터 무리가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왔다.

숫자는 스물 남짓.

울프레버와 싸우느라 무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숫자였다.


끼? 끼이이!

끽.

끼끼끼끼!


하지만, 나 대신 울프레버와 대치한 덕분인지 루터들이 직전과는 다르게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보니까 좀 귀여운 것 같······, 지는 않구나.


'······왜 이러는 걸까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루터가 아무리 온순한 편인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을 지키기 위해 다른 마물과 싸운다?

이는 듣도보지 못한 행동이었다.


- ······아주 오래 전에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언제요?'


- 시벨리안이 살아있을 때에.


뜻밖에 튀어나온 이름에 난 눈살을 찌푸렸다.


'······시벨리안 랑게르나요?'


- 그래.

마물들이 시벨리안에겐 유난히 호의적이었지.


'두려워한 게 아니라요?

애초에 마물들이 랑게르나를 꺼리는 건 아르다르보의 기운과 착각해서라면서요?'


- 그건 후손들 이야기다.

내 축복은 시벨리안이 랑게르나의 땅에 자리 잡은 후에 내린 거니까.


'아르다르보와 만나기 전부터 마물들이 시벨리안을 꺼렸다는 건가요?'


- 꺼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벨리안을 기꺼워하고 따르는 것에 가까웠지.


······난 이제껏 랑게르나의 특별함이 최초의 늑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르다르보가 하는 말은 그런 내 전제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게 했다.

아르다르보와 만나기 전에 시벨리안이란 사람이 이미 특별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끼이?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온 루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내 반응을 기다리는 것 같은 행동.

고민하던 나는 이그니서스의 불꽃을 조금 더 줄였다.

그러자 이제 검은 붉게 달군 쇳덩이에 불과했다.

주변에 은은한 불빛을 뿌리는 광원(光源)처럼.


끼! 끼이! 끽!


얼핏 웃음소리가 같은 소음이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커다란 입매가 묘하게 뒤틀리고 쭉 찢어진 눈매가 미묘하게 휜다.

저게 웃는 건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각인가요?'


- 아니. 나도 그렇게 보인다.


마물이 웃는다니.

그것도 섬뜩한 비웃음이 아닌 무언가 즐거운 것 같은 그 웃음 소리가 나를 얼떨떨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이는 자신에게서 모든 마물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아르다르보조차도 처음보는 광경인 것 같았다.


한참을 엉거주춤 서있는 동안 한쪽 끝에서 루터 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터 무리 전체가 그 몇 마리의 루터들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나를 안내하는 듯한 움직임.


- ······따라오라는 것 같군.


끊임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키득대는 루터들은 앞장서더니 천천히 길을 앞장서기 시작했다.

스물 남짓한 루터들이 일렬로 서서 길을 앞장서는 모습.

실로 괴이한 광경이었다.


'이 방향은······.'


- 마물의 숲 방향이군.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루터 무리는 날 마물의 숲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순간 뒤에 남겨 둔 루카스와 요한 경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내 그 생각을 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곧장 따라오지 않자 루터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따라오라는 듯이.


- 따라올 때까지 기다릴 셈인가본데.


'······가야겠네요.'


난 터져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루터들의 뒤를 쫓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울프레버에게 달려들어준 녀석들인데 이제와 내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아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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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차 토벌 1 24.09.11 20 2 12쪽
36 대화 4 24.09.10 15 3 11쪽
35 대화 3 24.09.09 26 4 12쪽
34 대화 2 24.09.08 25 3 12쪽
33 대화 1 24.09.07 26 3 12쪽
32 사제, 갈레아스 2 24.09.06 24 3 12쪽
31 사제, 갈레아스 1 24.09.05 32 3 12쪽
30 도시, 아그렌 3 24.09.04 32 3 13쪽
29 도시, 아그렌 2 24.09.03 42 3 12쪽
28 도시, 아그렌 1 24.09.02 51 4 12쪽
27 거래 2 24.09.01 44 3 12쪽
26 거래 1 24.08.31 49 4 12쪽
25 밤손님 4 24.08.30 51 3 12쪽
24 밤손님 3 24.08.29 49 3 12쪽
23 밤손님 2 24.08.28 52 3 12쪽
22 밤손님 1 24.08.27 49 2 11쪽
21 루카스 레반티스 4 24.08.26 56 3 12쪽
20 루카스 레반티스 3 24.08.25 51 3 12쪽
19 루카스 레반티스 2 24.08.24 54 3 12쪽
18 루카스 레반티스 1 24.08.23 56 3 12쪽
17 홍화열 3 24.08.22 57 3 12쪽
16 홍화열 2 24.08.21 56 3 13쪽
15 홍화열 1 24.08.20 54 3 13쪽
14 길 잃은 기사 4 24.08.19 63 3 12쪽
13 길 잃은 기사 3 24.08.17 59 3 12쪽
12 길 잃은 기사 2 24.08.16 64 3 12쪽
11 길 잃은 기사 1 24.08.15 7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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