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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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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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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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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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

DUMMY

- 랑게르나가 아닌 자들에게서 전해지는 최초의 늑대 이야기는 어떻지?

랑게르나에서 이야기되는 것과는 다른 얘기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죠."


랑게르나가 아닌 자들이 최초의 늑대에게 가진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최초의 늑대 전설 자체가 최초의 늑대를 악의 근원처럼 암시하고 있으니까.


"세간에서 전해지는 최초의 늑대는 '떨어진 별에서 태어난 자' 잖아요.

혼돈에서 떨어진 별은 심연으로 추락했으니 랑게르나가 아닌 사람들의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심연은 마물이 태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심연으로 떨어져 거기에서 태어난 최초의 늑대에 대해 자연히 부정적인 연상을 하게 될 수밖에.

랑게르나가 아닌 자들은 최초의 늑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 없을테니까.


"근데, 확실히 궁금하긴 하네요."


- 뭘?


"아르다르보는 정말 심연에서 태어났어요?"


전설에는 최초의 늑대가 떨어진 별의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심연은 정말로 존재할까?

혼돈에서 떨어진 별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관념적인 이야기보단 구체적 실제가 궁금했다.


- 모른다.


"······모른다고요?"


-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나지 않아.


"원래 몰랐어요?"


- 그것도 모른다.

원래 몰랐던 건지 잊은 건지 모르겠어.


"······최초의 기억은 뭔데요?"


- 시벨리안 랑게르나.


"제 시조(始祖)요?


- 그래.

최초의 랑게르나, 시벨리안 랑게르나를 만난 것이 내 최초의 기억이다.


······이상한데.

시벨리안 랑게르나가 오래 전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최초의 늑대라는 아르다르보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오래 전 사람은 아니다.


"시벨리안 랑게르나와 만나기 전까지의 기억은 잊어버린 건가요?"


- 그건 맞을지도.


가문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잠들어 있던 최초의 늑대를 깨운 것은 시벨리안 랑게르나라고 한다.

아마 아르다르보의 기억은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은데.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질문했다.


"목걸이에는 어쩌다 들어가게 된 거예요?"


-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아르다르보 기억에 문제 있다니까요."


- 무리도 아니다.

나는 무척 오랫동안 잠을 잤으니, 기억이 온전할 수 없겠지.


하나하나 짚어보니 중요한 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목걸이에 잠들어 있었는지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 분명한 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잤다는 거다.


"그런 것 같네요."


내가 들어온 최초의 늑대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에 가까웠다.

누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와 실제 대화가 가능하리라 상상할 수 있을까.


- 그 잠에서 깨고 보니 시벨리안의 후손이 곧 죽기 직전이었고.

그것도 온전한 랑게르나의 마지막이라니.


"······하하······."


민망함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르다르보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짝이 없을 거란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정신을 차렸더니 맹우(盟友)의 씨가 마르게 생겼을 테니까.


"깨어나게 된 계기가 제 피입니까?"


- 그렇지. 그건 이야기 해준 것 같은데.


대충 기억 난다.

명확하게 표현해준 것 같진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피로 된 봉인이라······.

이유를 기억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억나지 않아.


"기억해낼 방법은 없어요?"


- 힘을 되찾는다면 가능해질지도 모르지.


"······힘······."


힘이라.

그러고 보면 아르다르보의 힘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적었다.

시벨리안 랑게르나와 함께 한 최초의 늑대.

불을 쓰는 초월적 존재.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아르다르보의 전부였다.


"아르다르보의 힘이 정확히 뭡니까?"


- 불.


"······그건 아는데요, 다른 것은요?"


- 다른 것?


"시간을 되돌려 내게 기회를 줬고 랑게르나에게 축복을 내렸잖아요.

이 두 가지는 불과 상관없는 힘 아니에요?"


- 상관없지만 아예 별개라고도 할 수 없다.


"어떻게요?"


- 시간을 되감은 것은 내 존재를 희생한 대가다.

랑게르나의 축복은 마물의 숲과 관련된 걸 말하나 본데, 엄밀히 말하면 그건 힘이 아니다.


"존재를 희생해요?

아니, 마물의 숲에서 랑게르나가 자유로운 게 아르다르보의 힘이 아니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지?

두 가지 질문의 대해 쏟아진 아르다르보의 대답은 내 상상력을 벗어났다.

이해를 못하고 있는 내게 아르다르보가 설명을 덧붙였다.


- 마물의 숲에서 랑게르나가 자유로웠던 것은 마물의 숲에 있는 모든 마물이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르다르보를 두려워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 내가 너희를 수호하기로 맹세했으니, 모든 랑게르나에게서 나를 보는 거다.


······아. 그렇구나.

즉, 아르다르보의 말은 마물의 숲에서 모든 랑게르나가 자유로운 것은 마물의 숲의 마물들이 모든 랑게르나를 아르다르보로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 태양 아래서 축복이 의미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나의 힘은 불.

불은 곧 빛이니 불의 영향 아래선 내 그림자가 더더욱 짙어지기 때문이다.


"마물들이 왜 아르다르보를 두려워하는 거죠?"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이야기긴 했지만 확실하게 물었다.

맥락을 통해 상상하는 것과 명확한 단어로 표현된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 하고 있는 우리의 대화는 그 간극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 나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가 모두 거짓은 아니니까.


"무슨 이야기요?"


- 모든 마물은 내게서 비롯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아르다르보가 심연에서 태어난지는 모른다면서요?"


- 그것은 모르지만, 모든 마물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안다.


내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뜨는데, 갑자기 아르다르보가 화제를 돌렸다.


- 현재 대륙에서 아에리온 만큼 세가 강한 교단이 더 있나?"


"네레이스, 베리투스.

아무래도 이 둘이겠죠."


갑자기 바뀐 화제가 의아했지만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필요한 이야기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심연의 네레이스와 진리와 생명의 베리투스 그리고 아에리온.

이 세 교단이 대륙에서 가장 인기있는 교단이다.


- 그 중 가장 득세한 교단은 아에리온이고?


"그렇죠."


가장 신도가 많고 가장 많은 지역에서 섬기는 신.

바람의 아에리온은 그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신이다.


- 혹시 네레이스와 베리투스, 아에리온 모두 태초의 존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아느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각 교단의 신도라면 모르겠지만, 딱히 종교가 없었던 나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잠깐. 태초의 존재라면······.


"태초의 존재라면 혼돈을 말하는 겁니까?"


- 그렇게도 부르더군.


"······3주신이 혼돈에서 비롯되었다고요······?"


이 이야기가 나와 아르다르보 만의 대화인 게 다행이다.

같은 자리에 네레이스, 베리투스, 아에리온 셋 중 하나의 신도라도 함께 있었다면 불경죄로 종교 재판을 당하지 않았을까?


-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아까는 시벨리안 랑게르나랑 만난 게 첫 기억이라면서요?"


- 최초의 기억이 그거라는 거지.


"태초의 존재와 3주신과 관련된 이야기면 시벨리안 랑게르나보다 오래된 이야기 아니에요?"


기가 막혀 묻는 내게 잠시 고민한 아르다르보가 내뱉었다.


- 그렇겠군. 정정하지.


"······아니, 좀······."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양쪽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니, 가문과 아르다르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3주신의 비밀이라니?

나는 지끈거리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요?"


- 내 기원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지.


"······뭐요?!"


이번에는 진정할 수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리안,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은데.


아르다르보가 내게 주의를 주었으나 나는 진정할 수 없었다.

혼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까.


"아니, 아니. 잠깐······.

그건 최초의 늑대가 3주신과 같은 기원을 가진 신이라는 뜻이잖아요?

아르다르보가 신이에요?"


- 신이라는 존재의 기준을 모르겠다만, 내가 네레이스, 베리투스, 아에리온, 이 셋에 뒤지지 않은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미친······."


어쩐지.

아무리 최초의 늑대가 위대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은 일을 쉽사리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3주신과 비슷한 수준의 존재여야 가능······.


"······아까, 분명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르다르보의 존재를 희생한 대가라고 했죠."


- 그래.


"정확히 무슨 말이에요?"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존재를 희생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 나는 너희가 3주신이라 부르는 그들과 같은 관념적인 존재다.

힘이 존재이고 존재가 곧 힘이지.

그러니 힘을 소모한 것은 존재를 사용한 것과 같다.


"······그럼 존재를 희생했다는 건······."


- 없는 힘을 끌어다 썼으니 내 존재가 위태로운 것이 당연한 결과다.


"없는 힘을 끌어다 썼다고요?

아르다르보는 3주신과 비슷한 존재라면서요?"


3주신과 비슷한 존재라면 그 힘도 비슷해야 하지 않나?


- 기원은 같으나 이미 많은 힘을 잃었다.

지금의 난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지.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힘을 써서······."


- 그건 아니다.


아르다르보가 부정했지만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독한 빚을 진 느낌이었으니까.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습니까?"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랑게르나다.

내 입장에서 회귀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한 선택이지만, 그 기회를 준 아르다르보에게선 그만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모르는 아르다르보의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 너는 랑게르나이니까.


"······."


- 신경쓸 것 없다.

네 목적은 나와 같고, 어차피 세상에서 온전한 랑게르나가 사라진다면 나 또한 사라질 테니.


너무나 당연한 듯 쏟아지는 대답에 나는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르다르보에게 랑게르나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알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으나 이번에는 아르다르보의 대답이 곧장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르다르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저로서는 태초에서 비롯되었다는 아르다르보가 왜 랑게르나와 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나요?"


- 랑게르나에겐 최초의 늑대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지.


"네. 여태 그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요."


- 그 얘기를 유모한테 들었었다고?


"네."


- 얼마나 기억하지?


"······글쎄요, 대략적인 건······."


아르다르보의 물음에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잿빛 성에서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명 행복한 기억이지만, 잃어버린 것을 절실히 깨닫게 만드는 기억.

기억을 상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별이 떨어졌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올랐으니,

불꽃은 주변을 모조리 삼켜 태운 후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불이 스러진 자리에는 잿더미가 가득했고, 그 잿더미에서 최초의 늑대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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