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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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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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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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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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홍화열 1

DUMMY

콘라드를 따라 도착한 마물 토벌대의 본진.

홍화병이 돌고 있다는 병영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런."


간의 의무실로 마련된 막사에 빼곡하게 드러누운 환자의 수는 거의 총 스물 남짓.

토벌대 전체가 100명이 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무엇보다.


'너무 빼곡한데.'


간의 의무실로 주어지는 막사는 평균적인 다른 막사보다는 조금 컸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물 가까이 되는 환자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작았다.

그탓인지 아픈 병사들은 콩나물처럼 가까이 붙어 드러누워있었다.

부족한 침상 탓에 몇몇은 바닥에 자리를 잡은 채로.


환자간 간격이 이정도라면······, 낫다가도 재감염이 일어날 판이다.

데온도 보자마자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혼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환경이다.


- 환자가 꽤 많군.


'그러게요.'


환자가 이 정도 숫자라면······.

최초 발병자가 나온 게 며칠 됐다는 소린데.

아마 초기 진단을 일반 감기로 잘못 내린 모양이다.


- 하나 있는 의사의 실력을 알 것 같군.


최초 진단을 제대로 내렸으면 벌써 이만한 숫자가 퍼졌을리 없다.

첫 번째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적어도 그 환자가 열이 오르기 시작한 첫날에 격리를 시작했다면 상황이 이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단순 감기라 여겨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겠지.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간이 막사를 대충 훑어본 후 데온은 여러가지를 콘라드에게 물었다.

콘라드 또한 성심성의껏 데온의 질문에 대답했다.


"6분대 전원이 감염됐고, 막사가 가까웠던 5분대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했소."


"사망자는 나왔습니까?"


"4명. 나머지 10명 중 2명의 상태도 많이 안 좋고."


벌써 사망자가 나왔나.

좋지 않다.

데온도 같은 생각인 듯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최초 감염자는 6분대입니까? 아니면 5분대?"


"6분대요."


"죽었고요?"


"그렇소."


콘라드의 대답을 들은 데온은 고민에 빠졌다.

최초 감염자와 감염 경로를 고민하는 모양이다.

정식 의사가 아닐 뿐이지, 데온의 상황 판단력은 좋은 편이다.

솔직히 이곳의 하나 있는 의사라는 놈보다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분대 당 인원이 10명입니까?"


"그렇소."


"6분대 전원과 5분대 일부라고 하셨으니······.

나머지는 어느 분대입니까?"


"저쪽 셋은 3분대, 이쪽 병사는 8분대요."


다시 이어진 침묵.

데온의 머릿속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들이 계속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환자의 수가 예상보다 너무 많았고 환경도 좋지 않다.

데온이 가지고 있는 약초들로는 이만한 수의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막사를 추가할 수는 없습니까?"


"왜지?"


"환자간 간격이 너무 좁아요.

이런 식으로 환자를 눕혀두면 나을 환자도 나을 수 없습니다."


데온의 설명에 콘라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왤까.

합당한 이유이고 레반티스 백작가라면 막사 하나 추가로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인텐데.


"거기에 대해선 알텐과 직접 이야기해 보시오."


"알텐이 누굽니까?"


데온이 의아하게 물었으나 나는 그 알텐이라는 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막사의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콘라드도 알고 있는 눈치.

헌데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면, 두 명이 떠올랐다.


마물 토벌대의 지휘관인 루카스 레반티스와 이 토벌대의 의사.

상대가 루카스 레반티스라면 데온에게 '이야기 해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카스는 보고의 대상이지 상의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러니 알텐은 환자들을 보살피는 노동을 할 본인, 의사일 확률이 높았다.


콘라드는 자리를 비운 알텐을 데려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잠시 뒤, 콘라드 없이 알텐 혼자 막사로 돌아왔다.


"노르달의 약제사라고?"


꽤 지긋한 나이.

왼쪽 다리를 조금 절고 얼굴 전체에 주름이 짙은 노인이었다.

상당히 고집스러운 인상이다.


"알텐이네."


"데온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알텐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뭐냐는 듯.


"아, 리안이라고 합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아입니다."


"어린애를 뭐하러?"


"이래뵈도 손이 야무져서요. 도움이 될 겁니다."


영 탐탁지 않은 알텐의 눈길이 내 얼굴로 꽂혔다.

나는 그 시선을 맞받아치는 대신 순순히 눈을 내리 깔았다.

아직은 의사의 입김이 강하니 쓸데없는 반감은 사지 않는 편이 좋았다.

어차피 잠깐만 참으면 되니까.


"혹시 막사를 하나 더 세울 수는 없습니까?"


아까 콘라드에게 했던 말의 연장선이었다.

콘라드는 알텐이 동의한다면 막사를 추가로 세워주겠다고 했다.

알텐이 동의한다면 말이다.


콘라드의 말은 기묘했다.

막사를 추가로 세우는 것을 의사인 알텐이 반대한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왜?"


"환자들의 간격이 너무 좁아요.

이런 환경이라면 낫던 이도 다시 아플 것 같군요."


아니나 다를까, 데온의 지적에 알텐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가 노인의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막사가 두 개면 환자 돌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예?"


"늙은이 혼자 스물이 넘는 놈들을 보는 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안 그래도 손이 나 하나뿐인데 막사를 둘로 나누면 어쩌라는 겐가!"


기가 막혔다.

지금 오롯이 제 편의를 위해 작은 막사 하나에 이 많은 환자를 우겨넣었단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으나 데온이 나와 알텐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가 왔으니 막사 하나가 더 늘어도 괜찮을 겁니다.

리안도 있고요."


"어린애를 어디 쓰나!"


기본도 지키지 않는 당신보다 내가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난 알텐을 쏘아보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열어 속마음을 내뱉진 못했다.

지금 알텐을 상대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데온이었으니까.

내가 말을 잘못하면 데온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이전 생에서 데온 혼자 얼마나 개고생했을지 알 것 같네요.'


능력도 없이 자존심만 쎈 빌어먹을 노친네 같으니.

빨리 주도권을 뺏아와야겠는데.




***




한참의 실랑이 끝에 데온은 결국 알텐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데온은 이전 생에선 나도 없는 상태로 알텐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을 테니, 이번에도 당연히 성공할 거라 믿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노친네.'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볼 안쪽을 짓씹었다.

환자들 상태가 갈수록 안좋아지는데에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다니, 제길.


다행히 알텐의 동의를 얻을 후로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콘라드는 약속대로 알텐의 동의를 얻자마자 곧장 새 막사를 기존 막사의 건너편에 바로 세워주었다.


새로운 막사 쪽은 내가 살폈다.

데온과 알텐이 기존 막사에서 환자들을 보살피는 동안, 다른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세로운 막사를 정리하는 게 내 일이었다.


"꼬마가 일을 잘하는구나."


몇 명의 병사가 새 막사를 세워준 후 묵묵히 자리를 치우고 있는데, 밋밋한 얼굴을 한 병사 하나가 새로 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이게 제가 하는 일인 걸요."


병사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짧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가 깔고 있던 모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짓하며 말했다.


"노르달 약제사의 조수라지?

이건 내가 할테니 다른 정리나 해줘라."


힘을 쓰는 건 제가 할테니 내겐 나만 할 수 있는 걸 하는 의미였다.

그 도움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데온의 짐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약초에 대해 모르니 내가 정리하는 쪽이 효율이 훨씬 좋았으니까.


거진 정리가 끝나자 다른 병사 몇 명이 건너편 막사에서 환자들을 옮겨왔다.

옮기는 환자들은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너무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무리가 될 테니까.


"여기 눕히면 되나?"


"그래, 조심하고!"


새로 세운 막사로 옮긴 환자는 모두 8명.

예정에 없던 막사라 부상자를 위한 간이 침대는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모포를 두 겹씩 깔고 그 위에 옮겨온 환자들은 눕혔다.


최소 간격이 마련됐기 때문일까?

옮겨진 환자들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보였다.


"뭘하면 될까?"


처음에 내게 말을 걸었던 밋밋한 얼굴의 병사가 물었다.

새 막사로 옮긴 환자들은 기침과 열은 있었지만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

감기를 치료하듯 적당한 약과 휴식을 취한다면 적어도 악화되진 않을 것이다.


"약제사 님이 약을 알려주셨거든요.

그걸 끓여올 테니 환자들 몸 좀 닦아주세요."


데온은 알텐과 반대편 막사에서 증상이 훨씬 심각한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증상이 덜한 환자들에게 데온이 내릴 처방은 나 또한 알고 있었으므로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알텐 영감을 상대하는데 바쁠 데온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했다.


"오······.

조수라더니 진짠가 보네?"


내가 부탁한 일은 금방 끝난 모양이다.

막사 입구에서 약을 끓이고 있자니 일을 끝난 병사 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얼굴이 밋밋한 병사와 환자를 옮겨 주었던 다른 병사 중 한 명이었다.


"뭘 만드는 거야? 약?"


내가 끓이고 있는 것은 데온이 나와 처음 만난 날 만들어 줬던 그 약차였다.

에케네시아와 엘더베리, 생강 등의 약초를 넣고 끓인 약차.

별다른 가공없이 재료만 넣고 끓이면 되기에 내가 지금 만들 수 있느 가장 쉽고 빠른 약이었다.


"좀 드릴까요?"


한참을 신기한 얼굴로 곁에서 보기에 권했더니 좀 더 밋밋한 얼굴의 병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네.


"우리가 먹어도 돼?"


"민간요법같은 거라 감기에 다 쓰는 차에요.

두 분 다 환자랑 가까이 계시니까······."


환자 본인들은 물론이고 환자를 옆에서 보살피는 사람들 또한 건강에 신경 써야한다.

자칫 병이 옮을 수도 있으니까.


"오, 고마워."


처음 말을 걸었던 병사가 내가 건넨 잔을 받아들었다.


"난 에반. 이쪽은 노르트."


노르트는 나와 에반이 통성명을 하는 동안 내가 내민 약차를 입에 댔다.

그리고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윽, 매워!"


- 저런.


아.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어서 생각을 못했다.

노르트가 왜 저런 비명을 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생강이 들어가서 그래요."


"······으······."


노르트는 질색하는 얼굴로 혀를 내밀었고 에반은 그런 노르트를 힐끗거리며 조심스럽게 약차를 머금었다.

노르트의 호들갑 덕분인지 적어도 에반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좀 맵긴하다."


얼굴이 잔뜩 찡그리는 걸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생강은 꽤 귀하기 어려운 재료다.

감기 같은 병에는 효과가 즉각적이지만 생강을 평소 잘 쓰지 않는 평민들에게는 낯선 맛일 수밖에 없다.


- 생강은 냄새부터 맵지 않나?


'많이 넣은 건 아니거든요.

다른 거랑 섞여서 생강 특유 향은 좀 줄었고."


다른 약초랑 섞였어도 생각 자체가 워낙 향이 강렬한 재료라 분명 인상적일 정도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생강 자체를 접할 일이 별로 없을 두 사람에겐 인상적인 냄새에도 불구하고 '약차가 매울 것이다'란 상상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걸 나눠주면 되나?"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달고 있는 노르트 대신 에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잔에 약차를 나눠 담아주었다.


"좀 자극적인 거 아냐?"


"이정도는 괜찮아요."


원래 막사에 남아있는 환자들에겐 줄 수 없지만, 옮긴 환자들에겐 괜찮다.

새 막사로 이동한 환자들은 피를 토하지 않으니까.


"알았어, 그럼."


짧은 사이에 신뢰를 얻은 것인지 노르트와 에반은 순순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두 사람에게 환자들에게 나눠줄 약차를 나눠담은 뒤 남은 찻잎들에 물을 넣고 다시 한 번 더 끓였다.


치료용으로는 첫물만 의미가 있지만 몸을 보하는 목적으로는 두어번 더 끓여먹어도 좋으니까.

이건 다른 병영의 멀쩡한 병사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

그들이 멀쩡한 것이 정말로 멀쩡한 건지,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뿐인지 알 수 없으므로.


두번째 약초물을 끓이고 있을 때 건너편의 원래 막사에서 데온과 알텐이 나왔다.

두 사람 다 환자를 살피느라 고생한 탓인지 이 추운 날에도 땀범벅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알텐과 눈이 마주쳤다.


"뭐하고 있는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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