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최근연재일 :
2024.09.14 22:2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2,363
추천수 :
116
글자수 :
208,719

작성
24.08.26 20:20
조회
54
추천
3
글자
12쪽

루카스 레반티스 4

DUMMY

약은 거의 한밤중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내가 제조법을 알고 있고 약제사인 데온이 함께라지만, 홍화열 치료제는 우리 두 사람 다 처음 만들어보는 약이었다.


심지어 먹여야 할 상대는 귀족.

만에 하나 약을 먹은 후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면 나와 데온 모두 경을 치를지도 모른다.


콘라드 경은 약이 완성되는 대로 가져오라 했지만, 곧장 지휘관의 막사로 향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와 데온이 만들어낸 치료제는 약 10회분.

어차피 1회분을 만드는 수고와 10회분을 만드는 수고는 비슷했다.

나와 데온은 여유분만큼의 약을 증세가 심각한 환자 4명에서 먼저 나눠주었다.


가장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것은 중심이 되는 재료인 아과 잎사귀의 독성 제거.

다른 환자들에게 먼저 약을 나눠준 결과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약 1시간 가량.

경미한 차이였지만, 다른 약은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치료제에 대해 확신이 생긴 나와 데온은 완성된 치료제를 가지고 루카스가 있는 지휘관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입구에는 다른 병사 대신 요한 경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콘라드 경이 말한 치료제로군."


나와 데온을 발견하자마자 요한 경이 그렇게 내뱉었다.

아마 콘라드 경과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요한 경은 나와 데온이 들고 온 치료제를 확인한 뒤, 우리를 막사 안으로 들였다.

막사 안쪽은 어제보다 장작을 넉넉하게 넣은 난로의 열기에 후끈했다.

환자가 있으니 평소보다 난방에 신경을 더 쓴 거겠지.


"이쪽이네."


요한 경을 따라가자 한쪽에는 루카스 레반티스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전날 봤던 단출한 침대에 누워있는 루카스의 얼굴이 붉었다.

얼핏 봐도 고열이 들끓는 환자의 얼굴이었다.


"좀 어떠신가?"


"열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요한 경의 질문에 루카스의 곁에 앉아 그를 돌보고 있던 하인리가 대답했다.

루카스를 돌보는 하인리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다른 병도 아니고 홍화열.

걱정이 될 만도 하지.


게다가 어제의 루카스는 비교적 상태가 괜찮았다.

증세가 있어도 그의 위엄을 보일 수 있을 만큼 경미한 증상이었으니까.


'······고작 하루이틀만에 이정도로 상태가 나빠지다니.'


- 진행이 빠른 건가?


'엄청 빠른 거예요.'


약이 효과가 있겠지?

홍화열의 치료제에 대해 꽤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다른 루카스의 증상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약간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나와 데온이 모두 곤란해진다.


"보겠소?"


요한 경이 데온을 향해 그렇게 물었고, 데온은 그대로 루카스의 상태를 살폈다.

알텐 영감이 홍화열이란 확진을 내려줬을 테지만, 약을 쓰기 전 상태를 확인하는 건 필수적인 절차였으니까.


"······."


루카스를 살피는 데온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나와 함께 만들어 온 약이 효과가 없다면 가망이 없을 정도로 루카스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홍화열이 맞군요.

루카스 님. 약을 가져왔습니다."


약도 의식이 있는 자가 마실 수 있다.

데온이 나직이 말하자 루카스의 감은 눈꺼풀이 힘겹게 위로 솟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요한 경이 하인리에게 내가 들고 온 홍화열 치료제를 받아 건넸다.


"확인해보게."


하인리는 요한 경이 내민 잔을 받더니 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목걸이 끝에는 손톱만한 금속이 달려있었는데, 하인리는 익숙한 동작으로 약을 덜어 그 금속 위로 떨어뜨렸다.

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혹시나 모를 유해한 것이 섞여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어 하는 일반적인 검사였다.

물론, 금속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하인리의 확인이 끝나자, 요한 경은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루카스의 얼굴은 고작 하룻밤만에 반쪽이 되어 있었다.

땀으로 절여진 실내복과 초점이 가물거리는 회청색 눈동자.

형형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피폐해진 모습이다.


- 홍화열에 유난히 약한 체질인가 보군.


'네. 그대로 뒀으면 심각해졌을 거예요.'


드물긴 하기만, 홍화열에서 자연 치유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증상이 경미하다.

눈앞의 루카스 레반티스처럼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저절로 치유되길 바랄 수 없다.


'괜히 홍화열로 죽을 예정이었던 게 아니네요.'


난 비록 건강한 상태의 루카스 레반티스의 모습을 본 적 없었지만, 적어도 잔병치레 걱정 한 번 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 아니란 건 알 것 같았다.


상상보다 왜소한 체격에 창백한 얼굴도 그렇고.

아무리 겨울이라도 볕에 탄 흔적조차 없는 얼굴이라면, 평소 외부 활동을 별로 안 좋아하는 타입 같았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외부 활동을 안 좋아하는 타입은 체력이 약하다.


'게다가 병이 어느 정도 유행하고 난 뒤라······.

좀 더 독한 것 같아요.'


고작 이틀.

만으로 하루 만에 깊어진 증상이다.

마지막으로 봤던 루카스의 안색이 단순히 피로한 사람에 불과해보였다면, 지금의 루카스의 안색은 곧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 콘라드 경이 재촉한 이유를 알겠다.


'네. 조금만 더 늦었어도 큰일날 뻔 했어요.'


콘라드 경이 일단 1인분이라도 만들어서 가져와라, 고 재촉한 이유.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약을 쓰겠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루카스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리라.


기존의 약은 듣지도 않았을 거고.

원래 홍화열에 쓰던 약들이 효과가 있었다면 이정도까지 열이 치솟지 않았을 테니까.


"······후······."


하인리의 도움을 받아 약을 삼킨 루카스는 깊 숨을 내쉬었다.

약은 기껏해야 서너 모금 정도.

루카스는 그것마저도 버거운 듯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약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좀 더 걸릴 거고.

다른 환자들처럼 대충 한 시간쯤 걸리려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데온이 입을 열었다.


"······약은 아침저녁으로 두 번 올리겠습니다.

막사로 바로 가져오면 될까요?"


데온이 루카스를 향해 물었으나, 정작 루카스는 거기에 대꾸할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앉은 자세 그대로 눈을 천천히 깜빡였고, 그를 확인한 요한 경이 대신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무언의 축객령이 떨어졌다.

데온은 고개를 숙였고, 나 또한 데온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침묵 속에 막사를 나오자 안에서는 보지 못한 콘라드 경과 마주쳤다.


"······콘라드 경."


거대한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선 콘라드 경을 마주친 데온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늘 간단한 경갑 차림이던 평소와 달리 콘라드 경의 손에는 그의 그레이트 소드가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물의 검은 피가 말라붙은 채로.


"마물이 나타났나요?"


얼어붙은 데온을 대신해 내가 물었다.

내가 묻는 동안에도 데온은 콘라드 경의 뺨에 말라붙은 마물의 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콘라드 경 또한 그를 의식한 모양인지 제 뺨을 한 번 문지른 뒤 입을 열었다.


"그래. 걱정할 건 없다.

다 잡았으니."


콘라드 경이 한창 약을 끓이던 때 들리던 소란의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당사자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는 것 보면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까웠나요?"


주둔지 근처였냐는 물음이었다.

콘라드 경은 나를 평범한 열 두 살 아이로 보지 않는 모양이니, 내가 묻고 싶은 것을 꺼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역시나 콘라드 경은 내 말에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짧게 덧붙였다.


"조금."


······가까웠다라.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콘라드 경을 그대로 불러세웠다.


"콘라드 경."


나를 지나쳐가려던 순간 불러세운 덕분에, 콘라드 경이 멈춰선 것은 바로 내 곁이었다.

거의 내 두 배는 달하는 그 덩치에 위압감을 느꼈으나, 이것은 마물이 지척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안 이상 반드시 전달해야할 사실이 있었다.


노르트, 에반과 함께 목격했던 마물에 대해서.


"나이트펭을 봤어요."


"나이트펭? 어디서?"


"오늘낮에······

노르트, 에반이랑 같이 산에 올라갔을 때요."


"오늘?"


"네."


내 말을 재차 확인한 콘라드 경의 눈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나이트펭을 목격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마물 토벌을 여러번 경험한 콘라드 경이라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오늘 낮이라면, 아과를 캐러 가서 봤다는 거냐?"


나는 고개를 다시 끄덕였고 콘라드 경의 얼굴은 한층 더 심각해졌다.

콘라드 경은 고개를 돌려 데온을 향해 물었다.


"그 새로운 약, 루카스 님께 드렸소?"


"네. 방금 드시는 것까지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약효는 언제쯤 나타나지?"


"적어도 한두 시간은 있어야 합니다."


연달아 이어진 대답에 콘라드 경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는 콘라드 경이 무엇을 고민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지척으로 다가온 마물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나와의 대화.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콘라드 경이 지휘관인 루카스가 상의할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데온도 같은 것을 짐작한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증상이 깊어보이시는데, 원활한 대화가 되려면 하룻밤은 있어야 합니다.

처음 써보는 약이라 증세가 호전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저도 정확히 알 수 없고요."


"······그렇군.

리안. 잠깐 여기서 기다려라."


데온의 이야기를 수긍한 콘라드 경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한 뒤 막사 안에 들어가 요한 경을 데리고 나왔다.

갑자기 바깥으로 끌려나온 요한 경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뭔가?"


요한 경이 황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으나 콘라드 경은 팔짱을 끼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네가 설명하라는 듯한 얼굴로.


"리안이 나이트펭을 봤다는군."


"나이트펭을?"


요한 경 또한 나이트펭이라는 말에 삽시간에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다.


"언제? 어디서?"


"······의료 막사 쪽에서 정면으로 조금 올라가면 공터가 있습니다.

그 근방에서 봤습니다."


내가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자 콘라드 경과 요한 경이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 다 내가 말하는 곳을 대충 아는 모양이었다.


"······그 방향이면······."


요한 경과 콘라드 경이 동시에 서로를 마주봤다.

같은 것을 떠올린 것 같았다.

이번에는 요한 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고가 필요한데."


"그렇지."


"······하지만, 루카스 님의 용태가······."


"그래서, 자네를 바깥으로 부른 거고."


두 기사는 다시 한 번 서로를 마주본 채, 말이 없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먼저 입을 연 것은 요한 경이었다.


"수색대를 보내야겠군.

이번에는 내가 가지."


이는 방금 전까지 마물과 전투를 하고 온 콘라드 경을 배려한 말이었지만, 콘라드 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가겠네.

요한 경은 날이 밝거든 추가 보고를 해주시게."


"괜찮겠나?"


"뭐, 나 혼자 갈 것도 아니고.

4분대를 데려가지."


두 사람의 대화는 그 후로도 조금 더 이어졌다.

옆에 있는 나와 데온의 존재를 잊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래.

뭐, 버틸만했다.

콘라드 경이 이렇게 묻지만 않았다면.


"혹시 같이 가줄 수 있겠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의 복수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안내 24.09.15 5 0 -
39 2차 토벌 3 24.09.14 10 1 11쪽
38 2차 토벌 2 24.09.13 12 1 12쪽
37 2차 토벌 1 24.09.11 20 2 12쪽
36 대화 4 24.09.10 15 3 11쪽
35 대화 3 24.09.09 25 4 12쪽
34 대화 2 24.09.08 25 3 12쪽
33 대화 1 24.09.07 25 3 12쪽
32 사제, 갈레아스 2 24.09.06 24 3 12쪽
31 사제, 갈레아스 1 24.09.05 31 3 12쪽
30 도시, 아그렌 3 24.09.04 32 3 13쪽
29 도시, 아그렌 2 24.09.03 41 3 12쪽
28 도시, 아그렌 1 24.09.02 49 4 12쪽
27 거래 2 24.09.01 44 3 12쪽
26 거래 1 24.08.31 48 4 12쪽
25 밤손님 4 24.08.30 50 3 12쪽
24 밤손님 3 24.08.29 48 3 12쪽
23 밤손님 2 24.08.28 51 3 12쪽
22 밤손님 1 24.08.27 47 2 11쪽
» 루카스 레반티스 4 24.08.26 55 3 12쪽
20 루카스 레반티스 3 24.08.25 50 3 12쪽
19 루카스 레반티스 2 24.08.24 53 3 12쪽
18 루카스 레반티스 1 24.08.23 55 3 12쪽
17 홍화열 3 24.08.22 56 3 12쪽
16 홍화열 2 24.08.21 55 3 13쪽
15 홍화열 1 24.08.20 53 3 13쪽
14 길 잃은 기사 4 24.08.19 62 3 12쪽
13 길 잃은 기사 3 24.08.17 58 3 12쪽
12 길 잃은 기사 2 24.08.16 64 3 12쪽
11 길 잃은 기사 1 24.08.15 73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