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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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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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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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갈레아스 1

DUMMY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콘라드 경은 대련에 가차 없었다.

당연히 힘 조절은 했지만, 봐주는 것 없이 착실하게 날 두들겨 팼다.


"······와, 이러다 골병 들겠는데요."


오늘치 아침 대련이 끝나고 나니 이미 죽을 것 같았다.

개인 수련에 저녁 대련까지 남았는데.


- 콘라드 경은 널 딱 골병들기 직전까지만 굴리고 있는 것 같군.


"······그게 뭔가요."


- 훈련에 도가 튼 사람 같다는 거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몰아붙인다는 뜻인가.

내가 느끼기엔 진작에 뻗었어야 할 것 같은데 용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아르다르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목검으로 땅을 짚었다.

콘라드 경이 보면 단박에 불호령을 내릴 행동이지만, 직전까지 날 두들겨패다가 갔으니 저녁 때까진 이쪽으로 오지 않을 거다.


"그래도 시간이 좀 더 넉넉했으면 좋을 뻔 했어요."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목표가 체력을 기르는 것이라 더더욱.

기초 체력은 단순히 조급해한다고 빨리 늘어나는 게 아니니까.


- 그래도 많이 늘었다.


"그건 그런데······."


······응?


'저거 알브레히드 레반티스 맞죠?'


- 그런 것 같군.


내가 연습하는 연무장은 외곽에 있어 본채 쪽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시야가 트여있어 성문부터 본채까지의 길목이 아주 잘 보였다.

이는 하루종일 레반티스 성에 새로 오고가는 손님을 관찰하기 좋은 위치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연무장을 뛰는 열흘 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알브레히드 레반티스가 성문으로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게 보였다.


콘라드 경 말론 루카스가 아침에 나갔다고 했는데······.


백작이 직접 마중 나올 필요는 없으되 자리를 비운 장남 대신 차남이 직접 마중나가야 할 정도의 신분.

그리고 저 독수리가 그려진 깃발.


"독수리면 아에리온 교단 인가요?"


- 차림새도 그렇고 아에리온이 맞는 것 같군.


금실로 장식된 하얀 로브차림.

레반티스를 방문한 아에리온 교단의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눈처럼 새하얀 로브 때문에 하나같이 눈에 띄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차림은 한 사내였는데, 걸친 로브의 자수 장식이 다른 일행보다 무척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쪽이 그 고위 사제겠네요."


- 그런 것 같군.


정말로 아에리온에서 사제를 데려왔네.

이번 토벌에 백작이 얼마나 진심인지 잘 알겠다.


'······지휘관은 루카스인데 하필 루카스가 자리를 비운 날 방문이라.'


가볍게 생각하자면 하필 타이밍이 안 맞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라이너 경의 경우도 있었고······.


- ······귀부인 하나가 이쪽을 보는군.


생각하느라 떨궜던 시선을 올리자 과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여자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바깥에 나와있는 사람 중 유일한 여자.

그것도 꽤 화려한 차림의 귀부인이었다.


아아.


- 아는 얼굴인가?


'카밀라 레반티스일 거예요."


난 입을 다물고 머릿속으로 속삭였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부터 아르다르보와 할 말은 입을 조심해야 하는 이야기 였기 때문이었다.


- 누구?


'레반티스 백작 부인이요.'


- 그럼 저이가 루카스와 알브레히드의 어미인가?


'정확히는 알브레히드 쪽 어머니죠.'


- 알브레히드 쪽이라고? 루카스는?


'루카스와 알브레히드는 어머니가 달라요.

카밀라 레반티스는 레반티스 백작의 두번째 부인일 거예요.'


카밀라 레반티스의 결혼 전 이름은 카밀라 솔트리어.

카르세디아 남부 곡창지대 대부분을 차지한 솔트리어의 외동딸이다.


- 왜 쳐다보는 거지?


'쳐다보는 건 뭐, 그럴 수 있긴 해요. 신기할 테니까요.'


카밀라는 제 아들인 알브레히드를 다음 백작으로 만들기 위해 루카스를 몹시 견제한다.

그런 루카스가 후원을 하겠답시고 바깥에서 웬 어린애 하나를 주워왔으니 흥미를 가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 계속 쳐다보는군.


'그건 이상하네요.'


내가 자신의 시선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법한데, 카밀라 레반티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쥐고 나온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나를 계속 힐끔댄다.

눈앞에 아에리온의 사제가 있는데도.


'······흥미 수준이 아닌 것 같죠?'


- 확실히.


아무래도 이건 흥미 이상의 관심인데.

이유가 뭘까 궁리하는데 아에리온 사제 일행과 알브레히드가 주고받던 대화가 끝난 건지 대부분의 일행이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알브레히드 또한 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알브레히드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하자마자, 얼굴에서 걸려있던 접대용 미소가 사라지고 험악하게 구겼으니까.


- 밉보였군.


'그랬을 것 같긴 했어요.'


물론 후회하진 않는다.

알브레히드는 멍청한 놈이고 잘 보여봤자 얻을 이득이 조금도 없으니까.


그렇게 내가 레반티스 모자(母子)와 아에리온 사제 일행에 눈을 떼지 않는 사이 반대편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요한 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요한 경은 아그렌으로 돌아와서는 만난 적이 없으니 거의 열흘 만이었다.

나타난 방향을 보아 후문으로 들어온 듯한데······.

······루카스가 돌아왔나?

요한 경은 다른 기사들과 달리 루카스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아에리온에서 사제들이 도착했나 보구나."


요한 경은 내 인사를 받고는 내가 이제까지 바라보고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한 경과 이야기를 하는 잠깐 사이 어느새 아에리온 사제들은 대부분 성 안쪽으로 들어간 후였다.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어요."


엄밀히 말해 내가 관찰하던 것은 카밀라 레반티스였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기에 핑계를 댔다.

요한 경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처럼.


"사제를 처음 보나?"


"전 노르달 출신이었으니까요."


요한 경은 내 진짜 출신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난 뻔뻔하게 내 거짓 배경을 읊었다.

요한 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를 잘랐구나."


"눈을 가리는 게 나을 거라고 하셔서요."


아예 덮어버린 건 아니지만 앞머리를 내렸다.

방금 전까지 레반티스 모자를 거리낌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만한 거리에선 내가 어딜 보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테지.

조금만 가까웠거나 아에리온의 교단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쫓아와 잔소리를 퍼부었을 테고.


카밀라 레반티스는 몰라도 알브레히드는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았다.

다소 지저분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한 경 또한 이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누구의 조언인지도 이유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요한 경은 내 말을 이해했다.

루카스와 거래할 때 옆에 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어딜 다녀오시나요?"


"루카스 님과 바깥에 다녀오는 길이지."


요한 경은 거기까지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더이상은 이야기 해줄 수 없다는 듯.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할만하더냐?

콘라드 경 말로는 네가 꽤 열심히 한다는 것 같던데."


······이건 또 새로운 사실인데.

대련 때마다 잔소리를 퍼붓길래 마음에 안 들어하는 줄 알았더만.

뒤에선 나름 내 칭찬을 하고 다니신 모양이었다.


"글쎄요, 열심히는 하는데······."


난 제대로 된 대꾸를 하지 못한 채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침에 잔소리 폭탄을 맞고 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칭찬을 들으니 영 멋쩍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되고 있는 건 체력 훈련 뿐이고 그마저도 마음같지 않아 아르다르보와 투덜거린 게 정말 방금인데 말이다.


"콘라드 경은 말주변이 없는 편이니 혹시 서운한 소릴 들어도 너무 신경쓰지 말고."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다.


"아에리온 사제들이 왔으니 며칠 안에 2차 토벌대가 출발할 거다.

필요한 것은 콘라드 경이 알려줄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루카스 님께서 말씀하시기엔 저번 토벌의 2~3배는 될 거라 하셨는데, 맞나요?"


"그럴 거다."


"아에리온 사제들도 함께 가고요?"


루카스에게 다 한 번씩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요한 경에게 재차 물었다.

내가 레반티스 성에 와서 한 거라고는 콘라드 경과 함께 한 수련 뿐이었으니 무언가 달라졌더라도 알 수 없었다.


요한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마법사도 함께."


"······훨씬 대규모겠네요······."


루카스가 내게 했던 말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처음 들었던 인원에서 아에리온 교단의 인원수가 조금 달라지는 정도랄까.

그래봤자 차이는 미미하다.


- 레반티스의 사병이 그 정도로 많은가?


'일부는 용병이겠죠. 토벌대인데.'


전쟁도 아니고 국경과 가까운 지역의 마물 토벌대다.

레반티스의 정식 사병일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그 비율인데.

이 자리에서 요한 경에서 그것까지 물어볼 수 없었다.

이런 걸 아는 어린애는 없을 테니.


······여기서 물어볼 수 있는 건······.


"마법사는 백작가의 마법사인가요?"


아이의 호기심이 닿을 수 있는 건 이 정도.

기사 만큼이나 어린아이들에게 신비로운 것은 마법사니까.


"그래. 에르마르 님이 함께 가실 거다."


레반티스에 마법사가 몇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셋이 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마법사는 그만큼 귀한 재원이니까.

백작이 있는 레반티스 성이 아닌 토벌대에 따라나선다는 것을 보면 두 명 이상일 것 같긴 하다만.


"에르마르 님은 뵌 적이 없던가?"


"네, 아직."


내 방과 연무장만 죽어라 왕복하는 내가 귀한 마법사와 만날 일이 뭐가 있으랴.

카밀라 레반티스는 물론 알브레히드 레반티스도 열흘 만에 봤는데.

뭐, 그 두 사람은 내가 연무장을 뛰는 날 성 안에서 구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쪽에서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토벌대가 떠나기 전에 얼굴을 익힐 기회가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요한 경은 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들어갈 요량인 것 같았다.

바쁜 사람이니 마냥 나와 수다를 떨 여유는 많지 않겠지.

역시나 요한 경은 발걸음을 옮겼다.


"열심히 하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덧붙이면서.




***




요한 경이 말한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백작의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았기 때문이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난 공식적으로 평민 고아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었다.


"······제가요?"


"왜, 싫으냐?"


"그건 아니지만······."


당황스러웠다.

자리에 루카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레반티스 백작 내외와 아까 도착한 아에리온의 고위 사제라는 갈레아스 사제가 함께 한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상대하기도 머리 아픈 상대들인데 한꺼번에 셋이라니.

머리 터지겠는데.


하지만, 내가 내켜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리 없는 루카스는 계속 웃는 낯이었다.


"갈레아스 사제 님이 네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더구나."


"사제 님이요?"


아, 그래서구나.

아에리온의 입김은 상상 이상이다.

기화가 있다면 친목을 다져놓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백작 부인도 참석하시는 게 아닌가요?"


다른 자리도 아니고 백작의 이름으로 초대되는 식사자리다.

최대한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참석해야 할테고 그럼 애써 덮은 머리를 올려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백작 부인이 내 눈동자 색을 알아보고 의미를 깨닫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내 물음에 루카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약간의 사이를 두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겠다만, 백작 부인은 오늘 만찬에 나오지 않으실 거다,"


루카스는 단언했다.

사실 곤란해지는 건 나보다 루카스일지라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루카스가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뭐, 본인이 괜찮다면.


"그럼 참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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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도시, 아그렌 2 24.09.03 40 3 12쪽
28 도시, 아그렌 1 24.09.02 48 4 12쪽
27 거래 2 24.09.01 43 3 12쪽
26 거래 1 24.08.31 47 4 12쪽
25 밤손님 4 24.08.30 4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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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밤손님 1 24.08.27 47 2 11쪽
21 루카스 레반티스 4 24.08.26 54 3 12쪽
20 루카스 레반티스 3 24.08.25 50 3 12쪽
19 루카스 레반티스 2 24.08.24 52 3 12쪽
18 루카스 레반티스 1 24.08.23 54 3 12쪽
17 홍화열 3 24.08.22 55 3 12쪽
16 홍화열 2 24.08.21 54 3 13쪽
15 홍화열 1 24.08.20 5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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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길 잃은 기사 3 24.08.17 5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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