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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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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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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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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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기사 3

DUMMY

- 루카스 레반티스에게 볼 일이 있나?


'네. 그가 내 첫번째 디딤돌에 될 거예요.'


아르다르보가 마물의 숲에서 내게 해줬던 이야기.

회귀 때문에 마물에 숲에 대한 아르다르보의 지배력이 약해진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마물의 범람은 내년이 아닌 이번 겨울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다.


원래라면 통제를 벗어난 마물들이 숲을 벗어나 산맥을 넘기까지 1년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그 속도가 훨씬 빨라질 테니까.

잿빛 성이 무너진 이후로도 마물의 숲에 마물을 붙잡아놨었던 아르다르보의 지배력, 그게 약해졌으므로.


문제는 저 기사의 존재.

이전 생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데온은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약제사로서 의사 역할을 대신한다.

물론 산에서 남자를 발견한 건 나지만, 다른 집에서 남자를 발견했더라도 결국 데온의 집으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노르달에는 아픈 외부인을 돌볼만한 시설이 없으니까.


아니, 사실 이런 경우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인 환자라니.

평범한 방문자도 거의 없는 이 마을에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다.


'없었던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드문 일이 있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리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데온의 침대를 차지한 남자는 꼬박 이틀을 기절해 있다가 깨어났다.

빠른 처치 덕에 회복은 순조로운 편이었지만, 워낙 피를 많이 흘린 탓이리라.


기사의 이름은 라이너 발덴.

예상했던 대로 그는 레반티스 백작가의 기사였다.


어쩌다 그토록 다쳤냐는 물음에 라이너는 마물에게 습격당했다, 고 대답했다.

산에서 응급처치를 해줬던 나는 라이너의 상처를 이미 봤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의 시선으로 라이너의 상처를 봤던 아르다르보 또한 의견이 같았다.


- 아니. 그건 마물한테 당한 상처가 아니야.

분명 검상(劍傷)이다.


마물과 싸우다 난 상처라면 분명 여러 방향으로 상처가 얽혀 있어야 맞다.

반면 라이덴의 옆구리에 난 상처는 한 줄로 깊게 난 상처였다.

그것은 각각의 상처를 한 번 이라도 제대로 살펴본 자라면 헷갈리지 않을 차이였다.


하지만, 라이너는 거짓말을 했고 데온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라이너의 상처가 검상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혹은, 알았을지라도 못 본 척 하는 사람처럼.


데온이 정말 마물에게 입은 상처와 검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상대는 기사.

사실 꼭 필요한 몇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라이너의 상처가 무엇에 의한 상처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독에 당한 것 같은 종류의 특수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하는 입장에선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중요했다.

라이너가 거짓말을 한 이유가.

정확히는 앞으로 내가 할 결정에 어떤 변수가 될지 몰랐기에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라이너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 마물의 습격 쪽이 설명하기 쉬워서일도.

이맘때는 산에서 마물한테 당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니까.'


상대는 평민.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해결을 논의해야할 대상이 아니니 대충 둘러댔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한두마디면 끝날 이야기가 검상이라 밝히는 순간 수십 문장으로 늘어날 수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 습격자의 정체를 숨기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가장 높은 확률은 이쪽이 아닐까?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 교란의 목적.


'뭐, 확인할 방법은 하나 뿐이죠.'


대화.

그리고 내겐 라이너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아주 좋은 조건이 있었다.

나이 말이다.


- 아주 네 조건을 알차게 써먹는구나.


'밖에 못 나가게 됐으니 이거라도 해야죠.'


토끼를 잡고 아과를 캐기 위해 산을 쏘다니는 동안 산에서 데온 몰래 했던 몇가지 작업은, 라이너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보류되었다.

라이너 때문에 늘어난 데온의 일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라이너를 산에서 데려온 후 데온의 잔소리가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라이너가 다친 건 마물 때문이니, 위험하다나?

해가 중천인 한낮에만 산에 오르겠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내가 산을 오가며 부지런히 캐온 덕분에 아과도 여유분이 상당하니 굳이 산을 오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 랑게르나에게 마물을 조심하라니, 원.


내가 랑게르나인 이상 햇빛 아래서는 안전하다.

적어도 데온이 걱정하는 마물에 관해서 만큼은.


내가 마물이 마을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산맥을 거리낌없이 드나드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아르다르보의 축복이 마물의 숲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지금 그걸 아는 건 나 자신과 아르다르보 뿐이다.


'데온은 그걸 모르니까요.'


그러니 데온의 걱정도 영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겨울 산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고 식량이 충분하다면 굳이 산을 오를 이유는 없으니까.


'라이너의 상처, 확실히 마물의 짓은 아닌 것 같죠?'


- 그건 확실해.


상처의 모양도 그렇고, 라이너의 상처가 정말 마물의 짓이라면 라이너와 가까이 있던 내가 무사할 턱이 없었다.

기사에게 그만한 상처를 입힐 정도로 사나운 마물이 근처에 있었는데, 나도 아르다르보도 그 낌새를 못 느꼈다고?

전혀 말이 안된다.


다시 사흘이 지나자 라이너는 제자리에 무리 없이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앉을 수 있게 되자 라이너는 눈에 띄게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낫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소?"


"보통 이정도 상처는 완치까지 2달 걸립니다.


"······너무 오래걸리는데."


"걷기만 하는 거라면 한달이면 됩니다."


"그것도 너무 긴 것 같소."


"평균보다 회복속도가 빠르긴 한데, 그래도 2~3주는 더 누워계셔야 합니다."


"너무 길어. 슬슬 돌아가야 하오."


막무가내였다.

치료하는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옆에서 보는 내게도 데온이 터져나오는 한숨을 애써 참는 것이 보였다.


"안돼요. 적어도 2주는 누워계셔야 합니다."


"사흘."


"안됩니다."


"그럼 일주일은?"


"최소 2주 입니다."


"일주일."


막무가내로 조르는 라이너를 대하는 데온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상대가 기사인지라 데온도 많이 참는 것이리라.

라이너가 아닌 노르달 사람이 저렇게 우기고 있었다면 당장에 데온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건데.


- 고집이 대단하군.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는 거겠죠.'


역시 마물에게 습격 당했다는 말은 거짓말 같았다.

보고가 정 급하다면 전령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노르달이 아무리 작은 마을이어도 레반티스 백작령의 소속의 정식 마을이다.

소속령으로 보내는 전령 정도야 해결할 수 있으니까.

라이너가 서두르는 이유에는 직접 해결해야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환자의 꺾이지 않는 고집에 결국 데온이 손을 들었다.

보통 평민이라면 모르되 상대는 기사.

데온이 말린다고 말려지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질린다는 얼굴로 데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해야 하는 처치를 끝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내게 데온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지시하며 겉옷을 챙겼다.


"나가시게요?"


"실비아가 감기에 심하게 걸린 모양이야. 다녀오마."


또 감기 환자인 모양이었다.

며칠 전부터 노르달 전체에 감기가 크게 돌고 있었다.

필수적인 처치만 데온이 직접하고 라이너를 돌보는 건 내게 일임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라이너가 데온의 인내심을 자꾸 시험하는 건 덤이다.


'실비아······.

집이 마을 가장 안쪽이었죠?'


- 그랬을 거다.


며칠 전에도 데온이 다녀왔던 집의 아이라 기억하고 있다.

얼굴은 이번 생에선 한번도 본 적 없으니까 전혀 모르겠고.


'오래 걸리겠네요.'


노르달은 인구에 비해 마을이 넓다.

정확히는 외진 곳에 집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고 해야 하나.

때문에 데온이 왕진을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시간이 꽤 소모되었다.


"내가 저녁까지 못 돌아오면, 리이너 경이랑 같이 먼저 먹어라.

식사 후엔 이것들 꼭 챙겨드리고."


데온은 꼼꼼하게 지시사항들을 전달한 뒤 문을 나섰다.

열린 문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스며들었다.


'자, 그럼······.'


문단속을 단단히 한 후 나는 라이너 곁으로 가 자리 잡았다.

간단한 소일거리를 가지고서.


- 뭘 하려고?


'친해져보려고요.'


나는 아르다르보에게 그렇게 대꾸하며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열 살 아이처럼 보이도록.


"······?"


라이너는 말투가 투박했지만 이 며칠 꽤 극진히 시중을 들어준 덕분에 날 대하는 태도만큼은 많이 누그러져있었다.

산 위에서 날 처음 만났을 때는 찢어죽일 듯 노려봤던 것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눈빛.


"왜."


"심심하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대꾸하며 라이너를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다.

머릿속으로 아르다르보가 질색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심심한 건 네가 아니고?"


삐딱하게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서렸다.

처음 봤을 때보단 말투도 말의 내용도 무뚝뚝함이 많이 걷혀있었다.

계속 붙임성 있게 말을 건 보람이 있구만.


"빨리 가셔야 해요?"


"왜?"


역시나 데온이 물었을 때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대꾸가 튀어나왔다.

같은 질문을 해도 약제사가 하는 질문과 아이가 하는 질문은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모처럼 손님인데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서요."


라이너는 내가 노르달 출신이 아니란 걸 몰랐다.

데온도 말해줄 생각이 없을 것이다.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내용이기도 했고 자랑거리도 아니니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해는 내가 이용하기 딱 좋았다.


"마을 바깥 이야기가 궁금해서?


외진 곳에서 약제사의 조수일을 돕는 어린아이.

내 외견은 낯선 외부인에게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였으니 라이너 또한 내 모든 질문을 아이의 호기심이라 여길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기사 님이라고 들었는데, 정말이에요?"


한껏 기대에 부푼 표정을 흉내내며 라이너를 향해 몸을 기울이자, 라이너의 양 눈썹이 위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걸 어디서 들었냐는 듯.

그 표정을 알아채자마자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풀이 죽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해요. 데온이랑 말씀하시는 걸 들어서······."


- ······이런.


'나도 간지러워 미치겠으니까, 조용히 해요.'


평소라면 몰라도 이번만큼은 아르다르보의 투덜거림에 맞장구 쳐줄 여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하는 건 정말 '아이다운 연기'였으니까.

호기심 많고 동경으로 가득 찬 '아이'.


"괜찮아.

그게 왜 궁금하지?"


"제가 시골 출신이라 기사 님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내 말은 교묘했다.

나는 라이너에게 내가 노르달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다.

시골 출신이라고 했을 뿐.


거짓말은 아니다.

어찌보면 랑게르나 또한 시골이다.

레반티스 또한 시골이다.

변경백령이란 모든 나라의 국경선을 의미하니까.


내 조잘거림에 라이너는 편하게 뒤로 기대면서 팔짱을 꼈다.

어디 더 해보라는 듯.


"마물을 사냥하러 올라가셨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


얼핏 싱거운 반응이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라이너의 어깨에 뿌듯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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