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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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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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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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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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화 1

DUMMY

아무래도 레반티스 백작과 갈레아스 사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내 신분 보증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 이어지는 이야기는 잡다한 이야기일 뿐.

혹은 내가 알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절반은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면 각별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이 시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되짚어보게는 계기가 된달까.

이를 테면, 이런 것.


"마물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야기 줄기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이야기는 최근 늘어난 마물의 숫자가 늘어났다는 갈레아스 사제의 이야기였다.

듣자하니 마물의 움직임이 예년과 다른 것이 노르달 근처만 그랬던 게 아니었나보다.


"마물의 움직임이 예년과 다른 것이, 레반티스 근방만 그랬던 게 아닌가봅니다."


"카르세디아 전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게 사실이오?"


"정확히는 하얀 산맥을 따라 그 근방에서 마물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머릿속에 아르다르보의 침음성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 ······으음······.


'왜요.'


-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뭔데요?'


- ······확실하진 않지만······.


'뭔데요.'


아르다르보가 답지 않게 뜸을 들이자 나까지 덩달아 심각해졌다.

조금 더 망설이던 아르다르보가 말했다.


- 마물의 범람이 하얀 산맥 주변부에서 시작됐다면, 너와 내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


이게 대뜸 뭔소리인가 싶었지만, 아르다르보의 말에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마물의 숲에서 아르다르보가 내게 했었던 말.

그리고 아르다르보의 다음 말이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해주었다.


- 하얀 산맥은 랑게르나의 마물의 숲과 연결되어 있다.


'······설마요.

마물의 숲에서 풀려난 마물들이 그정도까지 영향력 가진다고요?'


하얀 산맥은 동네 뒷산이 아니다.

레반티스가 있는 카르세디아와 랑게르나가 있는 벨모르,

그리고 제이베르 제국을 모두 맞대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아무리 마물의 숲에 다양한 마물들이 살고 있다한들, 그만큼 거대한 영역의 생태를 바꿀 수 있을 리가······.


'······제가 모르는 게 있습니까?'


아르다르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다르보?'


- ······나도 모른다.


내가 재차 되묻자, 아르다르보는 자신감이 부쩍 줄어든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확신 없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다행이 레반티스 백작도 루카스도 갈레아스 사제도 저들끼리의 대화 때문에 나한테 신경쓰지 않는 상태였다.


'모르겠다고요?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추측을 하는 겁니까?'


- 예감이다.


'······예감이요?'


- 그래, 예감.


예감은 무작정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감이란,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짚어내는 감각적 예측에 가까웠다.

근거 없는 예감은 없다.

그 근거를 스스로 짚어내지 못할 뿐이다.


······동시에 내게 떠오른 가설 하나.


'아르다르보.'


- 그래.


몇 번의 공백.

그리고 기시감.

이전부터 가슴 언저리에서 날 불편하게 하던 의심.


'혹시 기억에 문제가 있습니까?'


- ·····무슨 말이냐?


하지만, 아르다르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러니까······.'


곁에 앉은 루카스가 나를 향해 말한 것은 그때였다.


"리안이 슬슬 지루한가보군요."


아르다르보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바람에 내가 너무 얌전히 있었나보다.

다른 이에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와 머릿속으로 대화 중이니 겉으로 보기엔 내가 영 심심해 보였을 것이다.


어디까지 들었더라?


내가 아르다르보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전, 세 사람의 이야기가 카르세디아 전역으로 퍼진 마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까지 기억났다.

그리고 아무래도 눈치를 보아하니 그 주제는 마무리 단계인 모양.

루카스의 말 덕분에 다른 두 사람의 시선 또한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아이가 흥미로워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입니다."


갈레아스 사제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갈레아스 사제의 선한 웃음은 내게 약간의 죄책감을 유발했다.

날 무척 착한 아이로 생각하는 미소였던 탓이다.


루카스와 갈레아스 사제의 말에 동의하는 모양인지, 레반티스 백작의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졌다.


"식사가 끝났으면 먼저 일어나도 좋다."


먼저 일어나도 좋다는 허락 아닌 허락.

반쯤 명령인 허락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없어야 하는 이야기가 슬슬 시작될 모양이다.


잘 됐다.

어차피 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아르다르보와 방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하고 마무리 짓고 싶었으니까.

때문에 난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시 자세히 말해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답답하게 목을 옥죄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끌러내렸다.

만찬 때문에 차려입은 셔츠는 평소의 입는 옷과 달리 옷깃이 높아 무척 불편했다.


- 무얼?


"마물의 범람이 하얀 산맥 주변부에서 시작됐다면, 아르다르보와 제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 그랬지.


"근거는요?"


- 예감이라고도 대답한 것 같은데.


"저는 근거 없는 예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반티스 백작가에서 내게 내어준 방은 성의 3층 서쪽 끝에 있다.

나는 이 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방은 잿빛 성의 내 방의 1/5도 안되는 작은 크기였지만, 오롯이 나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사용인 대부분이 3~4명이서 방 하나를 공유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내 방을 가져본 게 얼마만이더라?


하루이틀 묵는 여관을 제외하고······,

어딘가에 오래 머물러 살아본 건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으니 이는 무척 감회가 새로운 일이었다.

노르달에서 데온과 함께 지낼 때도 온전한 내 방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니까.


게다가 방 자체는 물론이거나와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이게 의도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외따로이 떨어진 위치 덕분에 레반티스 성 안의 수많은 시선들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니까.

아르다르보와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 받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분명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기억을 못하는 거 아니에요?"


- ······기억을 못한다라······.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내 말에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아르다르보가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 앉았다.


피곤한데.


백작의 만찬 때문에 콘라드 경과의 저녁 대련은 빼먹었지만, 레반티스 백작과 루카스 레반티스, 아에리온의 고위 사제인 갈레아스 사제 사이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하느라 평소보다 배는 지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푹신하게 닿는 침구의 감촉은 무척 유혹적이었다.

침대는 잿빛 성의 내 방 침대보다는 못했지만, 충분히 좋은 침대였으니까.


프레임의 디자인은 소박했지만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고, 침구는 질 좋은 린넨.

싸구려 여관 방을 전전하며 짚이나 건초로 엮은 침대에 더 익숙해진 나로서는 감지덕지 할 정도로.

회귀한 다음에 하룻밤도 보내지 못했으니 그런 고급 침대는 20년이 넘은 아득한 기억이었다.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참았다.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눈가를 문지르며 등잔에 불을 붙였다.


-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르다르보와 이야기하다보면 종종 뜬금없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이게까지는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요."


- ······그랬다고······.


반응을 보아하니 아르다르보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빈 기억을 확인하는 방법은 보통 하나다.

잃어버렸을 법한 기억 주변부를 훑어보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의 주변부를 살펴보는 건······.

······그냥 차근차근 짚어볼까?


"짚어보죠.

아르다르보는 최초의 늑대라고 했잖아요.

최초의 늑대가 정확히 뭐예요?"


일단 최초의 기억부터.


- 최초의 늑대라······.

리안, 너는 최초의 늑대를 뭐라고 생각하지?


"······솔직히요?"


- 그래, 솔직히.


난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르다르보가 스스로를 최초의 늑대라고 소개했을 때, 내가 랑게르나가 아니었다면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내게 깃든 악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랑게르나의 시조, 시벨리안 랑게르나와 최초의 늑대 이야기를 몰랐다면 말이다.

랑게르나를 제외한 이들에게 사실 최초의 늑대란, 좋은 이미지가 아니니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아는 게 없어요.

최초의 늑대는 최초의 불. 그리고 마물의 근원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내가 아는 최초의 늑대란, 어린 시절 유모가 베갯머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

하지만, 가문을 잃고 용병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 듣게 된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 ······역시 그런가.


"몰랐어요?"


- 네 시간을 되돌리기 전까지 나는 그 목걸이에 잠들어 있었다.

의식이 없었으니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떠돌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르다르보에게서 목걸이 얘기가 나오자 나는 무심코 가슴께에 걸려 있는 깨진 보석을 손 끝으로 더듬었다.


"잠들어 있었다면, 아르다르보가 깨어난 지금 이 목걸이는 의미가 없나요?"


- 그래, 평범한 돌조각에 불과하다.


보석으로서의 가치조차 없는 깨진 돌.

색이 바래고 금이 갔지만 나는 이 목걸이를 버릴 수 없었다.

이 목걸이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내가 시간을 되돌아 왔다는 증거이니까.


"내가 모르는 최초의 늑대 이야기가 있나요?"


- ······네가 날 부정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내가 시벨리안과 함께한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나보구나.


"네. 제가 처음 접한 최초의 늑대 이야기는 유모가 어린 시절에 해준 시벨리안 랑게르나와 최초의 늑대 이야기니까요."


- 생각해보면 내 이름을 알아차린 것은 네가 아니라 네 아비였지.


"······그랬죠."


생각해보면 아르다르보의 이름은 시간을 되돌린 후 아버지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다.

아르다르보는 스스로를 최초의 늑대라고 소개했을 뿐이니까.


- 처음 네가 잿빛 성을 떠났을 때가 열 살 때였으니 가문의 이야기를 온전히 배우지 못할 법도 하군.

미안하다. 내가 간과했어.


"아뇨,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이제까지 꺼내지 않은 얘기니까요."


기회는 많았다.

공식적으로 레반티스 백작의 후원을 받기로 하고서야 혼자 있을 공간을 얻게 되었지만, 그전까지도 혼자 잘도 돌아다녔으니까.

하고자 하면 머릿속으로도 가능한 대화인데 이제껏 이 이야기를 미뤄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피할 수 없다.


2차 토벌대를 따라나서기 전에 마물의 숲에 대해 정확히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루카스는 물론이고 토벌대를 함께 할 갈레아스 사제는 결코 어리숙하게 내게 속아넘어갈 사람이 아닐 테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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