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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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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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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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열 3

DUMMY

- 루카스 레반티스? 지휘관이 걸린다고?


'네, 그럴 거예요.'


내년으로 예정된 대재난.

대재난은 노르달 뿐만 아니라 레반티스 백작령에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

재난의 시작은 알브레히드 레반티스가 노르달을 날려버리는 것부터였지만, 마물이 치고 내려오는 것을 윌덴(Wilden), 아니 적어도 드리텐(Driten)에서만 막았어도 대재난이라 부를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레반티스 백작은 이번 마물 토벌에서 장자 루카스 레반티스를 홍화열에 잃는다.

알브레히드 레반티스의 헛짓거리를 수습해줄 장자를 잃는 것이다.

적어도 루카스 레반티스가 살아있었거나 알브레히드 레반티스가 제몫을 해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터.


알브레히드 레반티스를 개과천선 시키는 것보다는 루카스 레반티스가 죽지 않도록 돕는 쪽이 쉬울 거라 판단했다.

일단, 알브레히드 레반티스와 만날 기회를 잡으려면 1년은 기다려야할지도 모르는데다가 놈을 만났다고 제시간안에 제몫을 하도록 만들 자신은 없었다.

능력이 되는 루카스 레반티스를 살리는 쪽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


"뭘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야!"


알텐이 다시 한 번 더 윽박질렀지만 난 입을 다물었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


대꾸했다가 쓸데없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보자······.

아, 온다.


"알텐? 거기서 뭐하는 건가?"


역시 슬슬 나타날 줄 알았다.

기사 콘라드가 알텐이 나를 붙잡고 윽박지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내가 앉아 있는 새 막사쪽으로 걸어왔다.

하루에 한 번은 환자들을 확인하느라 들락거리니 슬슬 얼굴 보일 때가 됐지.


"아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길래······."


어린애를 상대로 열을 내던 게 부끄러운 일인 건 알겠나 보다.

알텐이 귀가 빨개진 채로 제자리에서 몇 걸음 물러섰다.

콘라드와 눈이 마주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고, 콘라드는 그런 나와 내가 손질하고 있던 아과를 번갈아 살폈다.


"아과? 이게 왜?"


"아니, 먹지도 못하는 것을······."


알텐이 투덜거리듯 변명했으나 그런 알텐을 바라보는 콘라드의 눈매가 묘해졌다.

나도 알텐을 싫어하지만 저건 절대 좋은 대답이 아닌데.


"데온이 아과를 먹을 수 있는 법을 알려줬다던데,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군?"


"예에?"


- 웃기는 반응이군.


'······진짜로 몰랐나 본데요.'


- 그런 것 같다.


분명 나는 아과에 대해 설명했다.

먹을 수 있으니 좀 캐오겠다고, 데온을 통해 허락을 받았으니까.

데온 또한 아과에 대해 설명했을 테고.

그럼에도 알텐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나나 데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는 의미였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무시했겠지.

그래서 내가 아과 손질을 헛짓거리 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고 있는 거고.


데온을 통해 허락을 구한 후, 병사 몇의 도움을 받아 근처에 있는 아과란 아과는 모두 캤다.

건장한 사내가 여럿이니 생각보다 아과는 생각보다 금방 모였고, 충분한 양이 확보되자마자 일을 함께한 병사들과 아과를 나눠먹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어 하던 병사들은 내가 먼저 먹어 몸으로 증명하자 안심하고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첫 아과를 나눠먹은 병사들은 아과가 먹을 만하다는 것을 병영 전체에 퍼뜨려주었다.

소문이 적당히 퍼지자 식사 담당이 내게 아과 삶는 법을 배워갔고, 병영 전체 식단에 아과가 추가되었다.

효과는 좋았다.

병사들은 나만큼이나 흑빵과 묽은 수프에 질려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평소 루카스 레반티스나 대장급들과 비슷한 식사를 하고 있는 알텐은 그 소식이 느렸을 것이다.

평소 일반 병사가 무엇을 먹는지 관심이 없었을 테니, 더더욱.

알텐이 제대로 된 의사였다면 병사들 식단이 바뀜과 동시에 알아차렸을 테지만, 그만한 관심과 관찰력이 있었다면 홍화열이 이 정도까지 퍼지지 않았겠지.


그리고 콘라드 또한 나와 같은 것은 생각한 것 같았다.


"치료에는 먹는 것도 중요하던데, 아니오?"


"그······ 렇죠."


콘라드의 질문에도 알텐의 대답은 영 떨떠름했다.

마치 그걸 왜 궁금해하냐는 것처럼.

지금 콘라드는 알텐에게 '네 역할을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돌려까고 있는 중인데도 말이다.


- 저런 놈이 백작가의 의사라니 정말 신기할 노릇이야.


'동감입니다.'


제 잇속만 챙기기 바쁜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한 인물.

그 레반티스에 고용된 의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수준이다.

저 알텐이 왜 이번 토벌대에 유일한 의사가 되었는지는 대충 알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쯤되면 실력이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의사 자격은 있는 걸까 의심스러울 정도니까.


- 이유가 있는 거냐?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꽂혔다.

내가 이유를 짐작하고 있다 여긴 모양이었다.

물론, 알긴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은.


'확신은 아닌데, 윤곽은 알 것 같아요.'


- 윤곽?


'라이너의 말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한 거 기억하시죠?'


- 그랬지.


'라이너와 알텐 둘 다, 같은 사람의 입김이 들어갔을 거예요.'


- 같은 사람?


'네, 같은 사람.'


루카스 레반티스가 죽길 원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회귀하기 전 이전 생에서는 그게 성공했던 사람 말이다.


"······쨌든, 도련님이 찾으시니 가보시오."


내가 아르다르보가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콘라드와 알텐의 대화가 대충 끝난 듯 싶었다.

집중하지 않은 탓에 다 듣진 못했지만, 대충 루카스가 알텐을 찾는 내용이었다.

저 영감 드디어 사라지겠군.


"······알겠수다."


알텐은 루카스 레반티스가 찾는다는 말에 나를 한 번 노려보더니 지휘관의 막사로 향했다.

루카스 레반티스가 평소 머무는 지휘관의 막사는 홍화열 환자들이 있는 이 막사와 정반대 방향에 있다.

한참은 돌아오지 않겠네.


알텐 영감이 절뚝거리며 멀어진 후까지 콘라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편한데.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결국 견디다 못한 내가 물었고, 콘라드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과가 식용 가능한 걸 네가 알아냈다지?"


······데온에게 들었나?

그렇게 묻는 콘라드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 네가 마음에 드나보군.


'······아닌 것 같은데요.'


아르다르보의 말에 동의하기엔 콘라드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경계심이 엿보였다.

어린애가 그런 걸 어찌 알았느냐는 호기심과 의구심이 뒤섞인 눈빛.


콘라드는 육중한 겉모습과 다르게 감이 날카로운 자였다.

신뢰를 얻기 어려운 타입 같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알아냈다기보단······.

어렸을 때 지나가던 상단에서 얻어먹어본 적이 있어서요."


"어렸을 때?


아, 젠장.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요."


실수 아닌 실수에 콘라드의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안 믿나?


"네가 지금 몇 살이지?"


"봄이 오면 열 둘이 됩니다."


"그래? 기껏해야 열 살 쯤 된다고 생각했는데."


미리 나이를 올려 말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솔직하게 열 살이라 말했으면 이상한 의심을 샀을지도.

어려 보인다는 것은 몸집이 작아 그렇단 의미 같았다.

콘라드가 곧장 이렇게 덧붙였으니까.


"열 둘 치곤 몸집이 많이 작구나. 잘 먹어야겠어."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요."


이건 꽤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노르달에선 먹거리가 충분치 않으니 노르달 출신 아이의 몸집은 콘라드가 아는 열 살 아이의 몸집보단 훨씬 작을 것이다.


"그런 것 같긴 하다만."


콘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꾀죄죄하고 또래보다 작은 몸집이 '넉넉지 않은 형편'이란 주장에 그럴듯한 근거가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명이 먹혔다, 고 생각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가 콘라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데온이 네가 사냥을 잘 한다던데.

토끼를 그렇게 잘 잡는다고."


사냥을 잘 한다.

이 사실은 내가 주장한 '형편이 넉넉치 않다'는 말에 엇걸리는 사실이었다.

사냥을 할 줄 안다면 노르달 사람 중 그나마 형편이 넉넉한 편에 속하게 된다.

짐승을 잡을 줄 모른다면 비축 식량이 부족해지는 순간 그대로 굶어야 하지만, 사냥을 할 수 있다면 굶기 전에 뭐라도 구해올 방법이 있다는 거니까.


뭐, 이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때 얘기지만.

문제는 데온이 내가 사냥을 '잘' 한다고 했다는 것.

······데온······.

어디까지 얘기한 거야!?


"······사냥은요. 그냥 덫이나 놓을 뿐인데요.

그렇게 잘 잡는 것도 아니고."


"그래?"


내가 애써 둘러댔지만, 콘라드는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신기하군.

노르달은 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 아닌데 말이지."


콘라드의 눈매가 다시금 가늘어졌다.

이것은 알텐에게 그랬듯 우회적인 추궁이었다.

'변변찮은 사냥꾼도 없는 마을에서 토끼 덫 놓는 법은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추궁.

나는 한숨이 나오는 걸 삼키며 데온에게 했던 변명을 똑같이 내뱉었다.


"아과 먹는 법을 알려준 이가 토끼한테 잘 먹히는 풀조합을 알려줬습니다.

토끼는 그걸로 잡아요."


"풀조합?"


"지빠귀 풀이라고······,

잡초처럼 취급하는 풀이 있는데 멍석 딸기랑 섞으면 토끼들이 좋아하거든요."


"그걸로 덫을 놓는다고?"


"네, 수면 효과가 있어서······."


콘라드의 질문이 이어질수록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콘라드와의 대화와 그의 의심은 큰 위협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콘라드가 날 수상하게 여긴다고 한들 불쾌한 심증 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봐야 병영에 출입 금지 당하고 데온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뿐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딱 한가지였다.

루카스 레반티스에게 닿기도 전에 위험 분자로 분류되는 것.

그래서 루카스 레반티스에게 닿을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


이 모든 게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짓일 수 있다.

하지만, 루카스 레반티스에게 닿는 것에 많은 것이 달린 이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다르보가 아니었다면, 일을 그르쳤을 수도.


- 리안, 진정해라.

그게 더 이상해 보인다.


보다못한 아르다르보의 말에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나도 모르게 호흡이 짧아져 있었다.


"아는 게 많구나. 손도 야무지고."


호흡을 되돌리자 콘라드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진정하자.

콘라드는 의구심을 가졌을 뿐 의심하는 게 아니다.


"덕분에 데온에게 일을 배우는 걸요."


호흡을 가다듬고 콘라드를 똑바로 마주보자 콘라드의 입매가 미묘하게 뒤틀리는 게 보였다.

······저거 웃는 건가?


"성격도 꽤 야무진 것 같군."


콘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이제껏 단단히 얽어놓았던 팔을 풀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대한 손이 머리 위로 다가오자 순간적으로 얼어붙었으나, 거대한 손이 내 머리 에 닿자 그 손길이 퍽 다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밥은 병사들이랑 같이 먹지?"


"네."


"오늘을 나랑 같이 가자."


"콘라드 경이랑요······?"


의아하게 묻는 내게 기다리던 말이 떨어졌다.


"도련님이 네 얼굴을 궁금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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