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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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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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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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레반티스 3

DUMMY

두 사람과 함께 산을 내려오니 주둔지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묘한 긴장감.

이질적인 분위기는 나와 노르트, 에반이 의료 막사 앞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 그래. 이상하게 소란스러운 것 같군.


우리가 산에서 잔뜩 캐온 아과를 의료 막사 옆에 내려놓는 순간, 막사 안쪽에서 데온과 콘라드 경이 나오는 게 보였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 꽤 심각한 얘기를 주고 받은 기색이었다.


"리안?

아아. 아까 아과를 캐러 간다고 했지."


나를 발견한 데온은 우리 세 사람과 우리가 내려놓은 자루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상하다.

뭔가 혼이 나간 느낌인데.


"양이 꽤 많구나.

이정도면 며칠은 괜찮겠어."


노르트와 에반, 두 사람이 욕심껏 채운 만큼 아과의 양은 평소보다 그 양이 두 배는 달했다.

데온은 만족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 반응에 노르트와 에반의 얼굴에 뿌듯함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솜씨가 좋구나.

노르트와 에반이라고 했나?"


자루 안의 아과들을 살펴본 데온의 감탄이 쏟아졌다.

약초를 직접 캐 사용하는 약제사로서 데온 또한 노르트와 에반의 솜씨가 얼마나 깔끔한지 알아봤기 때문이리라.


"네, 두 사람 다 윌덴 출신이래요."


"아, 윌덴. 그럼 그럴 법하지."


윌덴 출신이라는 말에 데온은 쉽게 수긍했다.

노르트와 에반은 둘 다 스물이 넘지 않은 소년이지만, 윌덴 출신이라면 어려서부터 사냥과 약초 채집으로 먹고 살았을 테니까.


"아과인가?"


옆에 있던 콘라드 경 또한 자루를 살피려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 콘라드 경과 대화할 일이 거의 없는 노르트와 에반은 긴장한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다행이게도, 콘라드 경의 질문은 두 사람을 향한 게 아니었다.


"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아과 잎사귀가 필요하거든요."


"흠."


아무래도 데온과 콘라드 경이 새로운 치료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콘라드 경을 턱 끝을 한 손으로 쓸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두 사람, 8분대 소속이 맞나?"


"네, 맞습니다!"


콘라드 경의 질문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평소의 흐물거리던 모습과 대조적인, 군기가 바짝 들어간 대답이었다.


"8분대 일과는 널널한 편이지?"


확실히 8분대의 일과는 다른 분대에 비해 널널한 편이었다.

미성년이 대부분이라 버겁거나 위험한 일을 잘 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게 사실일지라도 상사에게 '너네 남는 시간이 많지?' 라는 질문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네!"


······아무 생각이 없구만.


"그럼 8분대 업무에서 두 사람이 빠져도 되겠군.

앞으로는 약제사 님을 도와 아과를 캐라."


"······!"


콘라드 경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두 사람의 얼굴에 환희가 물들었다.

공식적으로 일과에서 제외된 기쁨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가봐."


좋은 티를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을 쫓아버리고 콘라드 경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물끄러미, 무언가를 고민하는 시선.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콘라드 경이 말했다.


"루카스 님이 홍화열에 걸리셨다."


······역시.


- 네 짐작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러게요.'


역시 루카스의 증상은 홍화열이 맞았다.

내 예상보다는 훨씬 이르지만, 괜찮다.

기초적인 밑밥은 깔아뒀으니까.

다만, 콘라드 경의 다음 말은 좀 뜻밖이었다.


"아과를 사용한 새로운 약이 있다고?"


······왜 그걸 나한테 묻지?


내가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자, 데온이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듯이.


"······네."


"그것도 아과 식용법을 가르쳐준 자가 알려준 거고?"


콘라드 경이 말하는 그것이란, 아과 잎사귀를 이용한 새로운 약을 의미할 것이다.

이상한데.

왜 그걸 나한테 직접 묻는 거지?


홍화열의 치료제를 내가 직접 만들지 않고 데온에게 알려준 것은, 내가 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부족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난 어린애니까.

하지만, 콘라드 경은 데온이 아닌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내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네. 그이한테 배웠습니다."


콘라드 경은 내 대답을 들은 후 다시 한 번 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물끄러미.


"······재료는 충분한가?"


한참만에 다시 입을 연 콘라드 경은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데온에게 물었다.

홍화열 치료제의 재료를 묻는 것이리라.


"에케네시아가 좀 부족하긴 한데, 소량은 가능합니다."


"1인분이라면?"


1인분.

당장 홍화열의 치료제가 필요한 사람을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루카스 레반티스였다.

데온 또한 콘라드 경이 말하는 바를 곧장 이해한 것 같았다.


"······그정도면,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만들어서 루카스 님께 올리게."


나와 데온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바로?


"아무리 그래도,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 다른 환자에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새로운 약.

나는 그 효과를 확신할 수 있지만, 데온은 물론이고 콘라드 경은 그 효과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그것도 루카스 레반티스처럼 귀족에세 쓰는 약이라면 더더욱.


원래이라면, 비슷한 증세의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본 후 사용해보려는 게 보통인데.

루카스의 상태가 그 정도로 안 좋다고?


"아니, 괜찮네."


콘라드 경은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뗴지 않으며 데온에게 대답했다.


"아이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



콘라드 경은 그렇게 말한 뒤 당황한 우리를 내버려두고 그대로 돌아갔다.

약이 완성되는 즉시 가져다 줄 것을 당부한 채.


그가 떠난 후 데온은 얼핏 보기에도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콘라드 경의 태도는 나를 주시하고 있음에 노골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노골적인 태도로 콘라드 경이 나에 대해 무언가 의심하는 것 같다, 까지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이유까지는 알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도 확신할 수 없는데 데온이야 당연하지.


"데온."


당혹감에 젖어있던 얼굴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해 내가 곤란해졌을까, 그런 생각이었을까?

자책이 그를 집어삼키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콘라드 경이랑 무슨 얘길 했는데요?"


"네 칭찬."


내 질문에 데온의 대답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거기에 담긴 감정 또한 거침없이 드러났다.

의아함.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칭찬들이 왜 이렇게 돌아온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당혹감까지.


"아닌가. 뭔가 실수했나?"


데온은 그렇게 말하며 제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냥 네 손이 야무져서 일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아과 얘기도 했고, 약차 얘기도 했고."


데온에게 나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자랑스러웠고, 기특했겠지.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아 데온이 이렇게까지 나를 좋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

벌써, 예전처럼 날 친자식처럼 여겼을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게 내 실수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내 실수.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아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데온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저 콘라드 경은 이것저것 운을 띄웠을 것이고 데온은 팔불출 자식 자랑하듯 의심없이 말을 늘어놓았을 뿐.

자신이 하는 말에서 콘라드 경이 무엇을 읽어내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데온의 잘못이 아니다.

콘라드 경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기민하고 눈치가 빨랐을 뿐.


"내가 뭘 잘못 말했구나."


데온은 황망한 얼굴로 재차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손쓸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의 반응이었다.


"······미안하다.

그냥 모른다고 하거나 대충 말을 지어낼 걸 그랬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텐데도 데온은 사과했다.

그를 이용하려고 한 건 나인데도 말이다.


"······데온이 곤란해질 거짓말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대는 백작가의 기사잖아요."


데온에게는 이미 충분히 신세를 졌다.

이번 생에서는 함께 한 시간이 고작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데온에게는 이미 저번 생에서 목숨을 빚졌으니까.

길 노인과 데온이 아니었다면 난 하얀 산맥을 넘어온 직후에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때 죽어버렸다면 회귀라는 기회는 얻지 못했겠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데온을 다시 찾아왔지만, 그를 곤란하게하면서까지 데온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데온은 웃었다.

괜찮다는 듯.


"너 때문에 내가 곤란할 일이 뭐가 있겠니."


데온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심하라는 듯이.

나도 데온을 향해 웃어보였다.

데온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진짜 아이처럼.


'······콘라드 경의 의심은 나쁜 쪽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솔직히 모르겠네요.'


- 나쁜 쪽이었다면 이미 목이 달아났겠지.


'적어도 데온이 곤란할 쪽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노르달은 레반티스 백작령 중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서 백작가의 기사가 평민 아이 하나와 약제사 하나를 죽인다 한들 크게 곤란할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일이 커져봐야 좀 귀찮은 정도겠지.


지금의 내 처지는 딱 그수준이다.

백작가의 기사에게 관용을 바라야하는 벌레와 비슷한 목숨.


- 무르군.


'데온이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데온은 안된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를 거둬키우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저번 생으로 족하다.

······최악의 경우 방법은······.


"리안? 왜 그러느냐?"


내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기자, 데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당장은 해야하는 일에 집중해야겠네.


"아니에요. 일단 약부터 만들어요.

루카스 님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요."


"아아, 그래. 그러자."


내 말에 데온은 노르트와 에반이 캐온 아과 자루를 열어 바닥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이 않은 잎사귀들을 골라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곁에 앉아 작업을 도왔다.


'······루카스 레반티스의 홍화열부터 낫게 해야, 그 기회가 오겠죠?'


- 그렇지. 그러니 집중해. 쓸데없는 걱정은 시간 낭비다.


아르다르보의 존재는 도움이 되었다.

쓸데없는 감상에 빠질 때마다 내 생각을 환기시켜 주었으니까.


집중하자.

뭔가 의심을 사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것 분명 내가 원했던 그 기회였다.

아니, 잘만 이용한다면 결과는 더 좋아질수도 있었다.


데온을 앞세워 홍화열을 치료하는 것보다 미심쩍은 의심을 사고 있긴 하지만, 내게 치료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공로를 주장하기에 더 적합했다.


애초에 내가 데온을 앞세우려고 했던 것은 내가 어린아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편견없이 인정받을 수 있다면 루카스 레반티스를 살린 공로는 오롯이 내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루카스 레반티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도 훨씬 많아질 터.

레반티스의 다음 백작에게 지울 수 있는 빚은 크면 클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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