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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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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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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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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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기사 4

DUMMY

약간의 대화를 통해 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가령, 라이너의 거짓말 같은 것.


내가 과장되게 감탄하며 라이너는 치켜세우자 라이너는 아닌 척 하면서도 제 모험담을 늘어놓았다.

나와 만난 날에 어떤 마물을 만났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부러 느지막히 물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라이너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단도직입적으로 곧장 묻는다면 경계를 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 내 노력 덕분인지, 라이너는 무척 의식하면서도 그날 무엇을 만나 그렇게 다쳤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질문자가 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궁금해 한 것이 데온이라면 이야기가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골의 어린 아이가 자신에게 가지는 동경.

그리고 그 동경 어린 호기심.

그러한 시선을 받는 자의 우쭐함에 사로잡힐 정도로 라이너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였다.


- 저런 놈이 기사라니.


라이너의 입이 조금씩 방정맞아지는 동안 아르다르보의 투덜거림이 머릿속에 계속 박혔다.

그 투덜거림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르다르보의 평가처럼 라이너가 무턱대고 어리석은 자도 아니었다.


며칠 동안 아픈 자신의 몸을 정성껏 돌봐주었다는 호감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에 대한 얕잡음.

라이너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이 두 가지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라이너는 먼저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라이너가 한 것은 내 질문에 대답들 뿐.


그 대답에 필수적인 요소에서 몇 가지가 추가되다 이윽고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 것은 약간의 조건이 만족되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자가 어린애라는 것. 그 어린애가 자신에게 동경을 가진 시골 아이라는 것.


'제가 잘하는 거라고 해줄래요?'


몇 번의 맞장구와 감탄어린 시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라이너의 이야기는 술술 이어졌다.


"그럼 흰 늑대에게 공격당한 건가요?"


"늑대는 아니야. 놈은 두 발로 뛰었거든."


라이너가 공격당했다며 주장하는 마물의 모습은 울프레버를 염두해둔 묘사 같았다.

흰 털로 뒤덮인 사람 같은 몸뚱이에 늑대 머리를 가진 마물.

라이너는 내가 평범한 어린애였다면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마수에게 쫓겼던 일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내가 울프레드에 대해 몰랐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라이너의 이야기에 홀릴 법한 시골 아이가 아니었다.


'역시 거짓말이죠?'


- 그래. 거짓말이다.


라이너의 주장에는 커다란 헛점이 있다.

내가 라이너를 발견한 산기슭와 울프레버의 서식지는 정반대편이라는 것.

무엇보다 라이너가 습격당한 것이 정말로 울프레버였다면, 라이너는 내가 발견하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울프레버는 양 앞발이 모두 독수(毒手)니까.


- 울프레버가 사나운 마수라는 것은 알아도 특징까지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


'울프레버에게 당한 시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에요.'


정말로 라이너를 쫓은 것이 울프레버였다면 라이너는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나 또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한 상처를 달고 울프레버에게 도망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차라리 울프레버를 잡아 죽였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됐을지도.


'데온에게 말을 아끼는 이유를 알겠네요.'


라이너의 이야기의 과반수는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어설픈 거짓말.

멋모르는 어린애라면 몰라도 노르달에서 나고자란 어른을 상대로는 전혀 먹히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허술하고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만나지도 않은 마수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유.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는 라이너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온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도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결국 누구에게 공격당한 것인지를 감추기 위한 의도라는 것은 같았다.


라이너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그럼 혼자 그 산을 넘어오신 거예요?"


"그래. 꽤 힘들었지."


라이너가 산을 넘어왔다는 방향은 내가 그를 발견했던 장소에서 정반대 쪽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랑게르나와 레빈티스 백작령의 경계선, 사잇길로 이어진다.

결코 정상적인 길이 아니다.


무언가 티가 났던 걸까?

줄곧 내 질문에 대한 대답만 하던 라이너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평소에도 산을 자주 가는 편이니?"


"자주는 아니구요."


"왜?"


"약초도 캐야하고······.

그날은 토끼 덫을 놓는 중이었어요."


숨길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 정도야 데온에게도 할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해 솔직하게 대답했다.

헌데, 라이너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토끼 덫?

그 나이에 산짐승을 잡을 줄 안다고?"


내 대꾸에 라이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네 나이가 몇이지?"


"봄이 오면 12살이 돼요."


열 살이라 말하면 믿지 않을 것 같아, 나이를 조금 올려 말했다.

지금도 또래보다 작은 편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 어린애 흉내가 어설프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신뢰를 얻으려면 최대한 나이를 높여야 했다.


"어허."


그 탓일까?

무언가 의심을 산 모양이었다.

좋지 않은데.

아직 물어야 할 게 남았단 말이다.


궁금증이 날로 커져갔으나 이 대화를 기점으로 라이너의 말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나도 그런 라이너의 반응을 의식해 말을 고르다 보니 자꾸 대화가 겉돌았다.


그렇게 라이너가 데온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 시작한 지 일주일.

어떡할까 줄곧 고심하던 중 또 다른 방문객이 데온의 집을 찾았다.


"콘라드 레펠트라고 한다."


레반티스 백작가의 또다른 기사, 콘라드 레펠트.

콘라드는 결코 작지 않은 키의 데온보다도 머리 하나가 컸고, 왼쪽 뺨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등에 진 그의 검.

그레이트소드 (Greatsword).


그레이트소드는 양손으로 쓰는 전형적인 대검이다.

왼뺨에 있는 흉터와 그런 대검을 한손검처럼 쓰는 거구의 기사.

이 레반티스에서 그런 특징을 가진 기사는 딱 한 명 떠올릴 수 있다.


철벽의 콘라드.

그리고 철벽의 콘라드는 명실공히 루카스 레반티스의 사람이다.


확실하다.

이번 토벌대의 지휘관은 루카스 레반티스다.

기사 콘라드는 루카스 휘하의 기사로 유명하니까.

콘라드가 왔다면 이번 토벌대의 지휘관은 틀림없이 루카스 레반티스라는 뜻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콘라드는 라이너의 몰골을 보더니 혀를 찼다.

영 마뜩잖다는 얼굴이었다.


"고작 순찰 임무에서 일주일이나 소식이 끊기다니.

기사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듣던 것보다 훨씬 꼬장꼬장한 걸.

콘라드의 쏘아붙임에 라이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수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라이너는 콘라드를 향해 제대로 된 말대꾸 하나 하지 못했다.


"고맙소. 우리 덜떨어진 막내가 신세를 졌군."


콘라드의 태도는 영 무뚝뚝했지만 적어도 예의를 아는 자였다.

기사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놈들을 숱하게 겪은 나조차 뜻밖일 정도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반면은 데온은 기사에게 감사를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듯 굴었다.

며칠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했다는 듯이.

그것이 날 불편하게 했다.

데온의 반응은 기사를 상대로 평민이 취할 수 있는 평범한 태도였음에도 그랬다.

용병질을 할 때 남은 기사들에 대한 앙금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다.


"아니오.

자네의 수고를 도련님께 꼭 전해드리지."


콘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마치 다른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실은 여기가 노르달의 유일한 약제사의 집이라 해서 찾은 거라오.

당신이 약제사 데온이 맞소?"


"네, 맞습니다."


약제사를 찾아온 거였나?

문을 열자마자 자연스럽게 라이너를 찾기에 당연히 그를 찾아온 줄 알았는데.

내가 의문을 떠올리자 아르다르보의 말에 머릿속에 꽂혔다.


- 라이너는 백작가에 전령을 보낸 적이 없지 않나?


'아, 그랬죠.'


전령을 보낸 적 없는데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실종된 기사의 흔적을 따라온 것, 혹은 라이너가 아닌 이 집의 주인에게 용건이 있었는데 우연이 라이너를 발견한 것.

마을의 약제사를 찾아왔다는 콘라드의 말을 근거할 때, 아무래도 후자가 맞았던 모양이다.


기막힌 우연이지만, 말도 안되는 우연은 아니다.

왜냐하면 슬슬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 슬슬 마물 토벌대가 꾸려진 모양이군.


콘라드의 목적이 라이너가 아니라 데온이라면 상상할 수 있는 이유였다.

역시나 이어진 콘라드의 말이 나와 아르다르보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겨울마다 마물 토벌대가 꾸려지는 걸 알고 있겠지?"


"네, 압니다."


"토벌대가 꾸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병이 돌고 있소.

치료할 손이 부족하오. 풍토병이라던데."


콘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데온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는 내가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부터 콘라드의 목적은 데온이었다.

정확히는 의사의 일을 보조할 만한 인력, 약제사를 구하기 위한 것이 방문의 진짜 목적이었다.


물론, 마물 토벌대의 진지에는 루카스 레반티스가 레반티스 백작가에서 데려온 의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라드가 데온을 데려가려는 이유.

지금 병영에 북쪽 지역에서 몇 년에 한번씩 번지곤 하는 풍토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는 몇 년을 주기로 이 풍토병이 창궐하는데, 안 그래도 겨울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노르달에서 이 풍토병은 겨우내 사람이 죽어나가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풍토병의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다.

그래서 초기에는 독감으로 착각하곤 하지만, 일반적인 독감과 이 풍토병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병을 앓고난 환자의 몸에 점박이 같은 붉은 흉터가 남는다는 것.

약한 기침으로 시작되는 이 병은 발병 2~3일째에 엄청난 고열과 기침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환자의 전신에는 열꽃이 핀다.

열꽃은 결국 흉터로 남고.


이 병의 이름은 홍화병.

홍화병을 앓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붉은 꽃처럼 흉터가 남기에 생긴 별명이다.


"홍화병이 돌고 있다고요?"


홍화병 자체의 치사율은 높지 않으나 겨울이 혹독한 북쪽에서는 가혹한 병이다.

충분히 먹고 쉬어도 제대로 낫기 어려운데 북쪽은 식량이 넉넉치 않으니까.

특히 추운 겨울, 주민 대부분이 굶지 않을 정도만 연명하는 노르달같은 지역에선 치명적인 병이다.


"그렇소. 덕분에 손이 부족한 실정이지."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토벌대 전체에 도는 전염병을 혼자 보는 건 무리다.

자잘한 부상이야 다른 병사들을 동원하더라도 의료 지식이 부족한 인원에게 전염병 치료를 위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의료 지식이 있는 사람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인 거겠지.


- 이걸 기다린 거냐?


'비슷해요.'


내가 꼭 데온의 조수가 되고자 한 이유.

홍화병이 돌고 있는 지금, 약제사의 조수는 그 병영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


이전 생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실력과 경험 때문에 따라가지 못했다.

데온에게 일을 배우고 있더라도 이때의 나는 두 달이 채 안된 실력이었으니까.

집에서 하듯 잔심부름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데온은 전염병이 도는 병영에 어린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데려갈 것이다.

데온이 날 데려가지 않으려 한다해도 꼭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건 데온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홍화병은 치료약이 없다.

데온이 마물 토벌대까지 따라가더라도 환자를 돌보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치료법을 알고 있다.

홍화병의 치료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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