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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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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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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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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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레반티스 1

DUMMY

콘라드 경이 앞장섰고, 난 그 뒤를 따랐다.

루카스 레반티스가 기거하는 지휘관의 막사는 의료 막사와 반대편에 있었다.


몇 개의 막사를 지나쳐 도착한 막사는 주둔지의 다른 어떤 막사보다 크고, 두터워보였다.

그리고 그 입구를 지킨 두 명의 병사.

막사 입구를 지키던 병사 중 하나가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어, 꼬맹이!"


'이름이······. 뭐더라.'


분명 4분대였던 것 같은데.


- 토벤일 거다. 분대장.


아 맞다.

4분대 분대장, 토벤.

오가면서 통성명만 주고받은지라 거의 잊고 있었다.

아르다르보가 대신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 먼저 말을 건넸던 토벤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선 다른 병사가 물었다.


"약제사 님 조수?"


"응, 그 조수."


토벤 말고 다른 병사는 내가 모르는 이였지만, 병사는 날 아는 모양이었다.

뭐, 주둔지에 내 또래가 더 있을 리는 없으니 얼굴을 몰라도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으리라.


"아과가 네 생각이었다며?"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거지.

뭐라고 대답할까 머리를 굴리는데 다행히 콘라드 경이 끼어들었다.


"도련님이 부르신다.

잡담은 나중에 해."


짧게 자르며 콘라드 경이 안쪽으로 들어섰고, 나도 그를 뒤따랐다.

토벤은 입을 꾹 다문채로 나와 콘라드 경의 뒷통수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저거 표정이 뭔가 불길한데.


-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군.


······내 소문에 뭐가 추가될지 알 것 같은 걸.


콘라드 경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꽤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지휘관의 막사는 지휘관 혼자 사용하는 만큼 사용자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루카스 레반티스의 막사는 귀족의 막사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출했다.


중앙에 회의용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테이블 하나.

한쪽 구석은 루카스의 생활공간을 겸하는 듯 침대와 작은 테이블, 그리고 나무 의자 하나가 덜렁 놓여있을 뿐이었다.

침대의 모피가 아니었다면 지휘관의 침대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소박함.

저 모피마저도 추위 때문에 가져다 둔 필요에 의한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침대 옆, 무기 걸이에 있는 검과 갑옷이 더 화려해 보일 지경.


- 상당히 실리적인 성격인 것 같군.


'루카스 레반티스는 사치랑 거리가 먼 타입이긴 해요.'


루카스 레반티스가 어렸을 때부터 마물 토벌대를 포함한 현장을 많이 겪은 터라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는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태생 귀족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리는 사치스러움이 있는 법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당연히 누리는 것 같은 종류의 사치.


'······덕분에 루카스 레반티스가 홍화열에 왜 이렇게 신경 쓰는지도 알겠네요.'


타고난 귀족이 이만한 실리주의자라는 것은 현장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알브레히드 레반티스였다면 알텐 영감보다 앞장서서 환자들을 닭장처럼 막사에 몰아넣고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다 죽여버렸을 테니까.


아니, 그런 식의 해결은 알브레히드 레반티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수의 귀족들이 사용하는 해결법이기도 했다.

발병자가 소수고 전염되는 병이라면 전염될 수 없도록 모든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하지 않는다.

알아서 나으면 사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죽으라는 것이다.


그게 싸게 먹히고 품도 덜 드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병사의 과반수는 영지 내에서 징집하는 영지민이고 모자란 수는 영지 외부에서 고용한다.

헐값에 고용한 자들.

그들에게 삯을 주고 치워버리는 것이 귀족들의 방법이었다.


"루카스 님."


"아, 콘라드 경."


콘라드 경의 거대한 몸집 너머로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보였다.

저 사내가 루카스 레반티스.


"잠시만 기다리게."


루카스 레반티스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뛰어난 지휘력과 처세로 유명한 자라기에 당당한 풍채의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루카스는 체격이 작고 마른, 꽤나 병약해보이는 사내였다.

하지만, 나즈막한 어조에는 특유의 위엄이 있었다.


"상황은?"


루카스 레반티스는 알텐과 대화 중이었다.

콘라드가 알텐을 루카스에게 보낸 뒤 시간이 좀 지난 후였지만, 그 이야기가 좀 길어졌던 모양이다.

나와 콘라드의 대화도 그리 짧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했고,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또?"


알텐의 대답에 피로가 가득한 얼굴이 설핏 구겨졌다.

격하진 않았으나 불쾌함은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아무래도 홍화열인지라.

홍화열은 워낙 치사율이 높아서······."


알텐의 말이 변명처럼 이어졌다.

데온의 발언권이 높아진들 현재 총 책임자는 알텐이었다.

상황이 지지부진 하면 어쨌든 책임을 지는 이는 알텐이란 뜻이다.


"그래, 홍화열.

홍화열은 제대로 된 치료약이 없다지."


낮은 목소리에 한숨이 서렸다.


"······아무래도······."


알텐이 다시 입을 열었으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다.

할 말이 떨어진 것이다.

결과가 없으니 보고할 거리도 마땅치 않을밖에.


"······알겠소. 나가보게."


루카스 또한 그것을 깨달았는지 알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텐이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간 후,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루카스의 시선이 나와 콘라드를 향했다.


"그래, 약제사의 조수라고?"


루카스의 시선이 완전히 나를 향하기 전, 나는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레반티스 백작가의 장자.

쓸데없이 시비를 걸릴 필요없으니까.


"네, 리안이라고 합니다."


나를 대신해 콘라드 경이 대답했다.

스치듯 눈에 박힌 루카스의 눈동자는 회청빛이었다.

랑게르나의 붉은 눈동자와는 또다른 섬뜩함을 주는 서늘한 빛깔.


"리안······."


루카스는 내 이름을 듣더니 곱씹듯 되뇌었다.


"고개를 들어라."


고개를 들자 얼핏 스쳤던 회청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붉은 색이라.

흔한 색은 아닌데."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뒤편의 테이블에 슬쩍 걸터앉았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알텐 영감한테 답답한 보고를 듣느라 기분이 상했으리라 짐작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날 바라보는 루카스 레반티스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그래, 리안.

데온에게 들었다.

아과에 대해 알려준 것이 너라지?"


······역시 이 질문인가.

나는 루카스에게도 이제까지 했던 대답과 완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


"네, 예전에 마을을 지나던 상단에게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먹어봤다는 거군."


"네."


"좋은 발견이야.

아과라면 겨울 기근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루카스 입가의 미소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알겠군.

홍화열 발생과 별개로 아과가 먹을 수 있는 열매라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 정보니까.


"불편한 건 없고?"


"루카스 님의 배려에 모든 것이 과분할 따름입니다."


내 거침없는 대답과 함께 이어진 침묵.

······너무 과했나?

열 두 살이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


회청빛 눈동자가 말없이 내 얼굴을 샅샅히 훑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라 허락했다고 해서 나 또한 루카스의 얼굴을 뜯어볼 수는 없었다.

상대는 귀족이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리는데, 미묘한 것이 눈에 띄었다.


'······?'


기묘한 위화감.

시선을 내리니 루카스의 목덜미가 조금 붉은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눈가도 좀 붉은 것 같은데.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미묘한 차이였지만, 확실했다.


'아르다르보.'


- 왜.


'걸린 것 같죠?'


- 루카스 레반티스?


'네. 홍화열, 걸린 것 같아요.'


깊은 피로감과 함께 올라오는 열.

그리고 간간히 이어지는 얕은 기침.

저 증상은 분명 홍화열의 전조다.


상황이 달랐다면 다른 병일 가능성 또한 있지만, 지척에 홍화열 환자가 스물 가까이 된다.

죽거나 회복한 환자까지 더하면 거의 서른이 되는 상황.

비슷한 증상이 보인다면 홍화열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디서 걸린 거지?


지휘관이자 귀족인 루카스 레반티스는 나와 데온, 알텐이 살다시피 하는 의료 막사에는 오지 않는다.

병사가 홍화열로 쓰러지는 것과 지휘관인 루카스가 홍화열로 쓰러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이전 생에서 루카스 레반티스가 홍화열로 사망했다는 걸 알았을 땐 당연히 병영 전체가 홍화열이 퍼진, 확산 후반부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빠르다고?


'알텐이나 다른 사람한테 옮았다기엔······.

······아니야,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아직 증상이 완전하지 않은 환자에게 옮았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옮긴 사람 또한 루카스 레반티스 만큼의 증상은 보여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줄어든 인원 중에서도 루카스와 얼굴을 맞대는 인원은 총 다섯.

최측근 기사인 요한 그리무어.

콘라드 레펠트.

라이너 발덴.

종자인 하인리와 의사인 알텐.


그 중 라이너는 아직 거동이 불편해 루카스가 현장에서 배제 시켰으니, 제외.

콘라드 경은 홍화열은 커녕 약간의 피로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강건했다.

요한 경은 오가며 얼굴을 익힌 게 전부지만, 그쪽도 뭔가 걸린 것 같지는 않고.

알텐 영감도 아까도 나한테 소리 지르던 걸 보면 멀쩡한 것 같고.


'남은 건, 하인리······.'


고개를 돌릴 수 없는 나 대신, 아르다르보가 하인리를 살폈다.

하인리는 요한 경의 반대편에 가구처럼 조용히 서있었다.


- 저쪽이 하인리인 모양이군.


'하인리가 아파 보이나요?'


- 아니. 아주 건강해 보인다.


아르다르보의 시야가 나보다 조금 넓은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미묘한 차이라서 실감하고 있지 못한 차이였는데도.


'······그럼, 병세가 보이는 건 루카스 레반티스 뿐이라는 거네요.'


- 일단은, 그래.


확률은 낮지만, 저 넷 중 하나가 무증상(無症狀)일 경우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걸려야 하지 않나?

알텐은 몰라도 종자인 하인리와 기사 요한, 콘라드는 일과 대부분을 루카스와 함께 할텐데.


한 명이 무증상인 것도 드문데 다섯 중 둘 이상이 무증상?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 관찰이 끝난 건지, 루카스가 다시금 내뱉었다.


"듣자하니, 재주가 많다던데."


"······변변찮은 것들 뿐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대꾸가 한박자 늦었다.

루카스의 오른쪽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변변찮은 것치곤 꽤 많더군. 병사들한테 평판도 괜찮고.

증세가 경미한 환자는 네 덕에 빨리 나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무슨 말을 꺼내려고 갑자기 칭찬을······.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이렇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송구합니다."


내 대답에 루카스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구나.


"알텐에게 말해둘 테니, 기존 의료 막사 일도 돕도록 해."


"기존 막사를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물음에 내 어깨를 지긋이 누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건 콘라드 경의 손이겠지.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알텐의 방식에 환자가 낫지 않는다면, 네 방식이 필요할 듯 싶다."


내 방식을?

······내 방식이랄 게 있······.

······아, 그렇구나.


- 데온이 말을 얹은 모양이군.


"성과를 기대하지."


다른 사람이라면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맡은 막사에서 환자들이 호전되었다 한들 그건 운이라 여겼을 거니까.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게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치료법을 안다.

홍화열의 제대로 된 치료법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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