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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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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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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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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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그렌 3

DUMMY

루카스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표정만 보면 긍정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백작 님께서 다른 이야기도 흥미깊게 들으셨지만, 가장 흥미롭게 들으신 건 아무래도 대형 마물의 출현이다."


루카스는 말을 돌렸다.

아예 다른 얘기는 아니었지만,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화제를 바꾼 것이다.

나는 장단을 맞췄다.


"노크시스요?"


"그래. 콘라드 경이 주둔지 근처를 추가 수색했던 건 알고 있나?"


알다마다.

노크시스를 사냥한 이후 주둔지를 중심으로 한 수색이 2번 더 있었다.

수색대는 콘라드 경이 다시 이끌었다.

이는 콘라드 경의 부상이 비교적 얕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 추가적인 발견은 없었다는 것도 들었지요."


그래서 토벌대의 빠른 철수가 가능했다.

혹시라도 다른 마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면 토벌대 철수가 아니라 지휘관의 교체가 이뤄졌을 것이다.

그건 오히려 좋지 않았다.

루카스 대신 올 지휘관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래, 그랬지."


그때 시종이 간단한 요깃거리와 차를 내왔다.

루카스가 응접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허기를 달릴 요깃거리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시종이 차와 군것질거리를 내려놓고 다시 빠져나간 후에 루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백작 님의 생각은 다르시더군."


시종이 내온 요깃거리를 훑어보던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숙였던 고개를 처들었다.

다시 마주 본 루카스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를 발견한 순간, 나는 이 직전에 루카스가 레반티스 백작에게 마물의 숲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확실히 하얀 산맥 전체를 훑기엔 토벌대의 인원이 부족했죠."


"턱없이 부족했지.

원래 인원도 많은 편이 아닌데다가 병사 과반수를 홍화열이나 마물과의 싸움으로 잃었으니."


"하지만, 수색은 필요하죠.

노크시스만한 마물이 하얀 산맥 반대편에도 있을 수 있으니."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루카스와 똑같은 미소를 그렸다.

이해했다.

마물의 숲의 이야기 직후에 마물 토벌대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그래, 반대편에 있을 수 있지."


이것은 말장난이다.

노크시스가 있는 곳에는 어지간한 마물은 지취를 감춘다.

노크시스는 마물 중 상위 포식자에 속하고 상위 포식자들은 제 영역을 좀처럼 공유하지 않으니까.


콘라드 경의 수색이 주둔지 근방에 그쳤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노크시스 사냥 이후의 수색에 따라가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콘라드 경이 확인한 것은 마물의 존재가 아니라 노크시스의 영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확인하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노크시스가 사라진 지금, 놈에게 억눌려있던 차상위 포식자들의 다툼이 시작될테고 놈들은 영역 다툼 때문에 한동안 마을까지 내려오지 않을 테니까.

그 범위가 마을에 닿지 않는지만 확인하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물의 생태에 대해 잘아는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노크시스같은 놈이 더 있을지 모르니 모든 영역을 뒤져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한다, 라고.

그리고 조사가 필요한 영역은 하얀 산맥에 국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그 옆에 붙어있는 마물의 숲이라거나.


"보름 후 2차 토벌대가 출발할 거다."


"다시 노르달로 가나요?"


"그래. 저번의 총 세 배.

이번엔 고위 사제 한 명과 마법사도 함께 간다."


고위 사제까지?

레반티스 백작이 아무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싶었다.

아니면, 루카스가 제 아비를 아주 잘 설득했든가.


명분은 그럴 듯했다.

노크시스 같은 대형 마물의 등장은 교단에게 손을 벌릴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될 테니까.

······그리고 레반티스 백장령에서 가장 세(勢)가 높은 교단이라면······.


'역시, 아에리온(Aeryon)일까요?'


바람과 하늘의 신, 아에리온.

아에리온은 레반티스를 포함한 북부에서 가장 인기와 세가 높은 교단이다.

그러고 보니 루카스의 마차를 얻어타고 오면서 아에리온 신전을 본 것 같기도 한데.


-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정말 고위 사제가 온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테고.


일반적으로 교단의 직급이 높을수록 가지고 있는 신성력이 높다.

무엇보다 마물 사냥에 고위 사제 정도 되는 자가 따라와준다면, 노크시스를 상대했을 때와 같은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콘라드 경이 노크시스를 상대하기 어려웠던 것은 무기의 문제지 실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혹시라도 노크시스와 비슷한 마물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위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위 사제는 기사의 무기에 축복을 내릴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데온도 다시 볼 수 있을 거다."


"······좋네요."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루카스와 마물의 숲으로 거래하기 잘한 것 같네.


"그러니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할 거다."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의아해하는 순간,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덧붙였다.


"기대하지."


······그러니까, 뭘?




***




루카스의 말한 기대가 무엇인지 하루가 채가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콘라드 경이 날 레반티스의 연무장으로 불러냈으니까.

그리고 무지막지한 수업(?)이 시작됐다.


딱! 따악!


허공에 퍼지는 요란한 소음.

소음의 근원은 아까부터 나와 콘라드 경이 휘두르는 목검끼리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콘라드 경은 평온한 얼굴로, 심지어 한 손을 뒷짐 진채로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반면 난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애초에 실력은 물론이고 덩치 차이가 너무 났다.

제대로 된 반격은 커녕 목검을 놓치지 않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결국.


따악!


"······!"


콘라드 경의 목검이 내 손목을 후려쳤다.

이를 악물며 새어나오는 비명을 참았다.

분명 적절히 힘조절을 했을 텐데도 무척 아팠다.


······아니, 조절을 해서 이정도인가?


"검을 놓지 않은 건 칭찬해 줄만하다만."


딱!


이어서 오금을 노리고 들어온 후려치기.

······젠장!


"어설퍼!"


손목을 후려친 것보다 훨씬 강하게 들어온 힘.

나는 결국 다리가 풀린 나머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퍼억!


"······으······."


맨바닥을 얼굴로 들이받듯이 자빠진 바람에 난 상당히 우스운 꼴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지금 이게 몇 시간째인지도 모르겠다.


- 괜찮으냐?


'······전혀요······.'


노르달에서 산을 타고 다녔기에 체력이 좀 붙었다고 생각했건만, 본격적인 훈련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기사한테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지.


"벌써 지친 거냐?"


핀잔 섞인 목소리에 나는 눈을 다시 한번 질끈 감았다.

아파 뒤지겠는데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영 한심하다는 어조였기에 때문이었다.


"······벌써라기엔 꽤 오래 한 것 같은데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한겨울이라 그런지 짚은 땅이 차고 단단했다.


"생각보단 체력이 나쁘구나."


콘라드 경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깐깐한 성격의 기사였다.

제 실력이 좋은 만큼 기준도 높은 편이고.


"노크시스 때도 그렇고 평소에 발발거리고 잘 다니기에 꽤 쓸만할 거라 기대했건만."


열 살짜리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내가 불만스럽게 속으로 되뇌었으나 머릿속으로 콘라드 경보다 한술 더 뜨는 아르다르보의 목소리가 들렸다.


- 틀린 말은 아니군. 이렇다 할 훈련을 한 적 없으니.


기가 막혀.

두 달, 아니 세 달 동안 그렇게 열심히 쏘다닌 게 기억나지 않는 건가.

콘라드 경의 반응은 자존심 상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르다르보의 말은······.


'내가 언제 놀고먹었습니까?'


- 따로 훈련을 한 건 아니지 않느냐.

스승이 없으니 검술은 몰라도 불의 힘은 단련할 수 있었을 텐데.


······아르다르보는 내가 랑게르나의 재능을 갈고 닦지 않는 것이 영 불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할 말이 있는데.

루카스와 랑게르나에 대해 비밀로 부치기로 약속한 이상 불에 힘에 대해서는 남몰래 단련해야 했다.

정말로 아무도 모르게.


게다가 하필 랑게르나의 힘은 불의 힘이다.

물이나 바람과 같은 눈에 띄지 않는 힘이 아니라 불의 힘.

불을 몰래 단련하는 건······, 힘들지 않나?


-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할 수는 있는데, 그것만 하고 끝나는 거 아니고요?'


- 랑게르나의 적장자가 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


나로서는 아르다르보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조급해 하는지 모르겠다.

숨을 고르고 있는 내게 콘라드 경이 물었다.


"정식으로 검을 배운 적 있나?"


엄밀히 말하자면, 있다.

하지만 진짜 내게 있어 그 경험은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어렸을 때 후계자 교육의 일환으로 조금씩 배웠던 게 전부니까.


정식으로 검을 배우기 전에 가문을 잃었고, 그 이후로 내가 배운 검술은 모두 어깨너머로 배운 실전형 검술들이었다.

제대로 된 체계 없이 오롯이 살기 위해 익힌 것들.


"······그냥 여기저기서 얻어 배운 게 전부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제대로 앉았다.

그리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대련이 얼마나 격했는지 아직 한겨울임에도 온몸이 땀투성이었다.


"여기저기라······."


콘라드 경은 못마땅한 듯 중얼거리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젠장, 불길한데.


"순간적인 반응은 좋지만 동작에 군더더기가 많다.

무엇보다 체력이 모자라."


오전 내내 나를 붙잡고 살핀 평가였다.

콘라드 경의 지적은 모두 내가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실전 위주로 혼자 배운 내 검술은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

이전 생의 내 실력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내가 불세출의 천재였다면 또 모르지만······, 그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됐으면 회귀를 안 했지.


"원래 단검만 쓰나?"


콘라드 경이 내 허리춤의 단검을 빤히 바라보았다.

노크시스를 잡았을 때도 그렇고 이그니서스를 떼지 않고 다니니 충분히 받을 법한 오해였다.


"다른 것을 배우기엔 충분히 자라지 못해서요."


난 그렇게 대꾸하며 입가를 닦았다.

꽤 재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콘라드 경은 눈을 가늘게 뜰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방패술은?"


안다고 대답하려다가 이번에도 생각을 바꿨다.

검술의 기초도 제대로 떼지 않은 아이에게 방패술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


"······전혀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콘라드 경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2차 토벌대 출발 전까지 나랑 아침저녁으로 두 번, 대련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알려준대로 개인 수련을 하도록."


콘라드 경의 말은 2차 토벌대 출발 전까지 하루 종일 훈련만 하라는 뜻이었다.

죽으라는 건가.

불만이 목 끝까지 찼지만 대답은 순순히 나갔다.

콘라드 경이 시킨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당장 부족한 것들이었기에.


"······알겠습니다."


문제는 콘라드 경의 훈련을 따르다 보면 내 개인 시간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쓰고 싶다는 종류의 사치스러운 이유가 아니다.

남들 몰래 해야할 일이 있어서다.


- 이그니서스는 언제 연습할 테냐?


'······시간이 안 날 것 같은데요.'


혼자 있을 때마다 틈틈히 검에 불을 싣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었지만, 루카스에게 선보인 수준 이상으로는 더이상 발전이 없었다.


-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이 부족할 것 같군.


'그것도 그렇고요.'


이그니서스를 달구는 정도는 이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쏟아도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 최대치는 루카스에게 선보인 딱 그정도.

그 정도의 불꽃을 올리는 것은 얕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전에서 쓰려면 어서 익숙해져야하는데 말이죠.'


노크시스의 싸움에서 불의 힘을 좀 더 능숙하게 쓸 수 있었다면 그것보단 덜 고전했을 것이다.

루카스도 꽤 예전부터 내가 랑게르나임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노크시스와의 싸움에서 불의 힘을 썼다고 결과가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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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밤손님 2 24.08.28 51 3 12쪽
22 밤손님 1 24.08.27 47 2 11쪽
21 루카스 레반티스 4 24.08.26 54 3 12쪽
20 루카스 레반티스 3 24.08.25 50 3 12쪽
19 루카스 레반티스 2 24.08.24 53 3 12쪽
18 루카스 레반티스 1 24.08.23 55 3 12쪽
17 홍화열 3 24.08.22 56 3 12쪽
16 홍화열 2 24.08.21 55 3 13쪽
15 홍화열 1 24.08.20 5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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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길 잃은 기사 3 24.08.17 57 3 12쪽
12 길 잃은 기사 2 24.08.16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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