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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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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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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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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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1

DUMMY

다시 이틀이 지났다.

그 사이 콘라드 경을 따라 노크시스의 사체를 수습했고, 틈틈이 아과를 캐모았다.

루카스 레반티스가 날 부른 것은 그렇게 이틀이 지난 저녁이었다.


"루카스 님이 부르신다."


의료 막사에서 데온의 일을 돕고 있는 나를 부른 것은 요한 경이었다.


'······드디어.'


요한 경을 따라 지휘관의 막사에 이르자, 입구를 막아선 콘라드 경이 보였다.

루카스가 홍화열에 걸린 후부터 지휘관의 막사는 요한 경과 콘라드 경이 번갈아 지키고 있었다.


"······어서와라."


이틀만에 만난 콘라드 경의 얼굴을 무언가 어두워보였다.

고민이 생긴 사람처럼 보인달까.


자못 신경쓰이는 반응의 콘라드 경을 두고 요한 경을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쪽은 내 기억보다 조금 더 어두웠다.


루카스는 중앙의 의자가 아닌 침대에 걸터앉은 채였는데, 아직 병색이 남아있는 탓인지 안 그래도 창백한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보였다.

그럼에도 회청빛 눈동자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요즘 네 이름이 자주 들리는군."


"송구합니다."


"아과에 홍화열 치료제.

콘라드 경의 말로는 네가 노크시스의 급소까지 알고 있었다지."


고개를 숙인 탓에 루카스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는 내가 원했던 것보다 많은 것이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리안이라고 했나."


"······예."


"나이가 열 둘이라고 했고."


"······예."


다시 이어진 침묵.

허락 없이는 고개를 들 수 없어 루카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것들을 묻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너도 알고 있다시피,

노르달은 하얀 산맥을 두고 벨모르 왕국과 인접해 있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꺼내는 걸까.

불길함이 엄습했지만, 가까스로 찍어 누를 수 있었다.

루카스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 전까지.


"최근 잿빛 성의 주인이 바뀌었다지."


갑자기 튀어나온 잿빛 성의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쳐들렸다.

정확히는 주인이 바뀌었다, 는 그 이야기에.


"······!"


고개를 쳐들자 마주친 것은 나를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동자.

나를 내려다보는 루카스의 눈빛은 마치 도사린 맹수와 같은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잿빛 성의 주인인 랑게르나 가문은 붉은 눈동자가 특징이라 들었다.

그리고 전 랑게르나 변경백의 외아들의 나이가 올해로 열 살이라지."


아주 천천히, 루카스 레반티스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운다.

여전히 그 눈을 내게서 떼지 않은 채로.


"너는 열 둘이라기엔 지나치게 작군."


- ······네가 이반테스 랑게르나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있구나.


'······젠장······.'


날 수상히 여기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몰아붙이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정체를 들키기 전이었다면 다시 고개를 숙였겠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봤다.


이제부터는 기세 싸움.

밀리면, 진다.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난롯불이 회청빛 눈동자 위로 붉은 그림자를 만든다.

숨막힐 것 같은 침묵이 한참을 이어진 끝에서 루카스 레반티스가 입을 열었다.


"오히려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네가 원하는 게 무어냐?"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요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제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내 발언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요한 경의 표정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방금 전의 대화로 내가 누구인지 짐작할 텐데도 말이다.


"괜찮다."


하지만, 루카스 레반티스는 그런 요한 경을 저지했다.

회청빛 눈동자에 흥미가 깃들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내가 그래야 하는 이유는?"


루카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아주 재밌다는 듯한, 상당히 기꺼워보이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당돌함을 보여 기회를 얻었으니 그 기회가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선을 넘었다간 그대로 목이 달아날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먼저 밝혔다.


“제 이름은 아드리안.

아드리안 랑게르나.

랑게르나의 축복을 계승한 마지막 랑게르나입니다.”


내가 입을 떼기 무섭게 아르다르보의 노성이 머릿속을 관통했지만 말이다.


- 리안!


나는 아르다르보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옷 안에 감춰진 목걸이의 보석을 움켜쥐었을 뿐.


"······랑게르나의 축복을 계승한 마지막 랑게르나라."


루카스 레반티스는 내 말을 두어번 되뇌며 곱씹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되짚어보는 사람처럼.

내 말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했다.


내가 가진 랑게르나의 축복의 존재.

그리고 내 숙부, 벤야민 랑게르나의 제대로 된 계승자가 아니라는 것.


"알려진 건 전대 랑게르나 백작이 사망하고 그 동생이 작위를 이었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현실에 속이 쓰렸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헌데, 네가 랑게르나의 축복을 계승한 마지막 랑게르나라고?

그건 지금 랑게르나 백작이 정당하지 않은 랑게르나란 뜻인가?"


루카스는 빗대어 확인하는 대신 내게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얘기는 가문의 치부이자 비밀, 외부인에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입니다.

정당한 랑게르나에겐 대대로 가문이 축복이 내려지고, 현재로선 저만이 그 축복을 온전히 이어받은 유일한 랑게르나입니다."


어차피 랑게르나의 축복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만한 비밀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레반티스의 이름을 얻을 수 없다.


"······분명 세간에는 랑게르나의 축복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지.

그런데 그 축복이라는 것이 가문의 정통성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군."


"당연하지요. 이것은 가문의 비밀이자 치부이니까요."


나를 마주한 루카스의 입매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적어도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가문의 비밀이자 치부를 나와 공유하겠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믿습니다."


"증명할 수 있나?"


그 순간, 나는 사납게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눈앞의 상대가 감히 랑게르나의 적장자에게 그 정통성을 의심하는 질문을 던졌기에,

그 질문 자체가 내게 모욕이 되었기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져 묻거나 되갚아줄 수 없는 내 처지가 무척 화가 나서.


"······."


잠시 호흡을 고른 나는 허리춤의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행동에 요한 경이 나와 루카스 레반티스의 사이에 섰으나 루카스가 그런 요한 경을 다시 한번 만류했다.


“괜찮다.”


루카스는 그저 흥미롭다는 듯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얼마든지 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이라는 것처럼.

나는 그런 루카스를 똑바로 마주한 채 천천히 단검을 검집에서 꺼냈다.

그리고 손잡이를 쥔 그대로 검의 칼날은 왼쪽 손바닥 위로 올린 뒤 상상했다.

타오르는 불꽃을.


“······!”


단검, 이그니서스를 매개로 한 불꽃이 칼날을 불태웠다.

내가 아닌 타인에 눈에도 띌 정도로, 확연하게.


"랑게르나에 불꽃술사가 많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레반티스는 랑게르나와 하얀 산맥을 두고 거의 이웃에 있다.

랑게르나의 축복에 대해 알고 있으니, 당연히 랑게르나의 혈통이 갖는 특징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제 이 적안(赤眼)과 불꽃술사의 재능.

이 두 가지가 제가 축복받은 랑게르나라는 증거입니다."


그렇다.

각각을 따로 떼놓고 보자면 드물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드문 것이 동시에 깃든 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랑게르나인 나는 단순한 불꽃술사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다


이 적안(赤眼)과 불꽃술사의 재능.

내가 랑게르나가 아니라면 누가 랑게르나란 말인가.

타오르는 단검, 이그니서스를 바라보는 루카스 레반티스의 입매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

네가 랑게르나라는 증명은 그것으로 충분하겠군."


루카스가 확언을 하자, 나는 검에서 불꽃을 거두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이만한 불꽃을 이그니서스에 품어내는 것은 꽤 체력을 잡아먹는 일이었다.

단순히 단검에 불을 입히는 것과 달리, 이만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건 소모되는 체력이 남달랐으니까.


"노크시스의 비늘을 뚫은 것도 그 검이겠구나.

이그니서스인가?"


내게 묻는 루카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불꽃으로 뒤덮였음에도 멀쩡한 날을 보며 알아챈 것 같았다.

내가 불꽃을 피운 것보다 검이 이그니서스인 게 더 신기한 모양이다.


"네. 아버지의 유품입니다."


"그렇군."


유품이라는 말에 루카스는 물론이고 은근히 흥미를 보이던 요한 경까지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잠시간 이어진 침묵.

하지만, 길어진 침묵 끝에 루카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야기는 내가 원하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네가 축복받은 랑게르나라는 것은 알겠다.

그것이 랑게르나의 정통성을 입증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네 후원자가 되어줘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


- ······저······.


뜻밖으로 쏟아지는 이야기에 이제껏 잠잠하던 아르다르보의 노성이 다시 한번 터졌다.

얼마나 화가 뻗쳤는지 아르다르보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진정해요.'


- 미쳤느냐?

저자는 네가 마지막 남은 랑게르나임을 밝혔는데도 어찌 저리 오만방자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이냐!


아르다르보의 분노가 어찌나 큰지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나는 아르다르보를 달래지 않았다.

루카스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에요.'


- 뭐?


'객관적으로 보면, 마지막 랑게르나인 나를 후원하는 건 리스크가 크거든요.'


- 왜?


'숙부의 뒤를 제이베르 제국이 봐주고 있잖아요.'


벤야민 랑게르나는 제이베르 제국을 등에 업고 잿빛 성을 무너뜨렸다.

잿빛 성이 불탄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지금, 자세한 자초지종까지는 아니어도 잿빛 성을 불태운 군대가 어디서 온 건지 정도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루카스 레반티스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내 적이 누구인지를.

그런 상태에서 나를 후원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랑게르나라는 것은 전혀 이점이 아니었다.


- ······그럼 굳이 랑게르나의 치부를 밝히지 않았어도······.


'필요해서요. 일단 가만히 있어봐요.'


일단 길어지는 아르다르보의 말을 막을 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루카스 님은 제가 레반티스의 후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으신 거겠죠."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루카스 레반티스라면 순순히 내 후원자가 되고자 자청하지 않으리란 생각은 했다.

루카스 레반티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보다 손에 잡히는 물질적 이득을 원하는 자니까.


내가 루카스에게 가문의 치부와 함께 유일하게 축복받은 랑게르나임을 밝힌 것은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세간에 알려진 랑게르나의 가장 큰 축복, 마물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아까 랑게르나의 축복에 대해 소문을 들으셨다고 하셨죠.

루카스 님께서는 랑게르나의 축복에 대해, 어떤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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