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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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최근연재일 :
2024.09.07 16:53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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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93

작성
24.08.2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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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DUMMY

100년 전, 내가 플레이하던 아카데미물 게임 세상에 소환되었다.

그렇다면 솔직히, 조금은 기대해도 되지 않는가?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레어스킬을 얻고, 히든피스를 파밍 하며, 기연을 만나고 히로인들을 공략하는 그런 아카데미 생활.

그러나 내가 소환당한 곳은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게임에서의 주 무대였던 아카데미는 가끔가다가 주위에서 시비 거는 귀족 장교나 떨거지 마법사들의 출신 학교로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시점 또한 작중 시점에서 한참 전, 그러니까 인간과 마족의 세기말 병신 퍼레이드가 한창 벌어지는 중인 시점이다.

 

이세계에서 기다리는 건 예쁘고 아름다운 히로인이 아닌, 징그러운 입을 벌리고 침을 줄줄 흘려대는 역겨운 마물이었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검을 휘둘러야 했다.


다른 건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마물도, 악마도, 인간도, 모든 것이 적인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검과 죽음뿐이었으니까.

 

그들의 목을 베어버릴 때는 항상 그들의 이빨이나 손톱이 내 배에 꽂혀 있었으며, 때로는 팔다리가 뭉개지기도 했다.

흘러나오는 내장을 부여잡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그것들의 뱃속을 파헤쳤다.

 

도대체 어디를 부숴야 죽는 것일까.

죽어가는 몸뚱아리를 일으켜 세워, 하나 남은 팔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피칠갑 속에서 마침내 약점을 발견하고 검을 찔러넣어, 하나, 둘. 그들을 죽이고, 때로는 씹어 삼키기까지 했다.

 

또다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앞으로도 이 짓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사제들에게 구걸해서 얻은 싸구려 포션을 들이부었다.

나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도 했으며, 또한 경험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 칼끝이 내 목을 더 깊숙이 찌르려 할 때마다, 그 칼을 부수며 나 자신이 점점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순간 속에서, 세상조차 불가능하다고 판정한 일을 뒤틀고 해내면 세상은 나에게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러야 찢어졌던 마물의 가죽이, 무심한 칼질 한 번에 갈라지게 되었다.

마경의 법칙을 뒤틀고 나를 농락하던 악마조차 내 손아귀에서 머리통이 부서져 갔다.

그럴 때마다 더, 더, 내게 새로운 죽음을 선사할 상대를 찾아 나섰으며, 그들 또한 모두 내 발밑에 스러졌을 때쯤.

 

나는 비로소 마왕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이세계 생활이나, 지구로의 귀환이 아닌, 여전히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과 인내의 나날들이었다.

그 나날을 보낸 지도 어느새 100년이 다 되어갈 무렵.

 

하나의 소식을 전해 받았다.

 

“이번 학기에 용사 후보생들이 들어온다고?”

 

“그렇다는데요?”

 

내 앞에 서 있는 소녀, 데오니는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잘못된 일이 있나요?”


데오니의 뾰족한 귀가 떨리며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어찌나 떠는지 그녀의 콧잔등에 올려진 안경이 흘러내릴 지경이다.

 

아무래도 내 표정이 조금 험악하긴 한 모양이다.


“결국, 이 세상도 아카데미물이긴 했다는 거네.”


“네?”


안경을 고쳐 쓰느라 나의 혼잣말을 듣지 못한 그녀는 얼빠진 소리만 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별말 아니다.”


진실로, 딱히 별말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 실제로 닥치니 조금은 놀랬을 뿐.

 

그저 그뿐이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죠? 용사님이 아직 살아계신 데 또 다른 용사 후보라니.”


“그리 이상한 건 아니야. 지금의 나는 용사라기에는 너무 망가졌으니까.”


그녀는 무슨 소리냐며 놀라지만 현실이 그렇다.

마법사의 마법, 기사의 검기, 그 모든 걸 못쓰게 된 내 몸뚱이로는 더 이상 용사라는 무게를 짊어질 수 없었다.

 


 

               <St∂●▽s>


               힘: 9§◆


               ⊆■¿첩: ▽§◎


               ㅁ◇‽ʤㄱ: 0


               ⎐%◎●⏁⎏●


               ⎏●¥¤◀▷


               ▷♠ʤ◇♡‽ʤ◇Œ≙≹⊙

               .

               .

               .

                                                            』

 

그것을 증명하듯 눈이 아플 정도로 깨져버린 상태창은 이 세계가 나의 근간마저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 또한 어딘가의 신의 산물일 진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 신조차도 나의 존재를 지워버린 것인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깨진 상태창은 꺼버리고 나는 데오니가 준 입학 지원서 중 하나에 적힌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프레아 하이안.”

 

용사 후보생, 마왕의 대적자, 여신의 사도, 인류의 희망,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검. 미래에는 찬란한 수식어들이 그녀를 가리키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세계의 주인공.”


이 세계에 떨어진 지 100년, 드디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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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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