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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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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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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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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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 (4)

DUMMY

나를 응시하는 소녀의 붉은 눈빛은 아름다운 동시에, 온몸을 긴장시켰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라고 본능이 충동질했지만, 이내 진정하고 차분히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오늘 아카데미에 처음 왔습니다 교수님. 아까는 알아보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흠.....”

 

소녀는 한참이나 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소 부담스러운 광경에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도 우리를 힐끔힐끔 보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내가 인간의 얼굴을 까먹는 일은 절대 없는데 말이지.”

 

소녀 교수는 옆에 누가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10분가량 내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슬슬 주위의 시선이 감당 못 할 정도로 늘어날 때쯤이 돼서야 그녀는 겨우 내게서 시선을 뗐다.

 

“아마, 본녀가 착각한 것 같군. 붙잡아 둬서 미안하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었으나, 혹여나 또 그녀의 의심을 살까 최대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왜 저게 이곳에 있는 거지?’

 

밖으로 걸어가며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저건’ 아카데미에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조금 이상한 비유긴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21세기에 부활해 지방대 교수로 재직하는 꼴이다.

 

원래 드래곤이나, 하이엘프같이, 초월의 반열에 든 이들이 가끔 유희로 아카데미나 마탑에 오긴 했으나 저 소녀는 초월자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거의 엘프들의 도시에 있는 세계수와 맞먹는 존재란 말이다.

 

무엇보다 저 소녀는 과거에 나를 본 적이 있었다. 나의 외견은 그때와 매우 다를 테니,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녀에게 내 정체를 들킨다면.

 

“.....”

 

왠지 모를 한기가 몸에 감돌았다.

내가 저 소녀에게 한 짓을 생각한다면, 정체를 들키는 순간 그 자리에서 머리가 뽑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아카데미에서 나오고 나서, 소녀에게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걸어서 30분 거리 정도 떨어진, 허름한 여관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6개월 대여를 조건으로 내거니 축제 기간이라도 의외로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아카데미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시설도 나쁘지 않아, 도시에 도착한 직후 바로 계약한 곳이다.

 

문을 열자, 여관 1층에는 저녁 시간 손님을 받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테이블을 닦고 있던 여관주인이 고개를 돌려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 학생 왔어?”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며 테이블을 둘러보니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짙은 보라색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허름한 로브와,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마법사인 듯했다.

그녀는 여관주인이 내준 듯한 수프를 조심스레 먹고 있었다.

 

그나저나, 보라색 머리의 마법사면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러나 저 소녀는 앞머리가 너무 길어 눈을 덮을 정도까지 내려왔기에 얼굴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학생도 배고파? 수프 한 그릇 줄까?”

 

소녀를 빤히 바라보는 게, 배고파서인 것으로 착각한 여관주인이 수프를 권했다. 바로 숙소로 올라갈 생각이었지만, 어차피 저녁 시간도 됐겠다, 굳이 권하는 수프를 거절하지 않았다.

 

여관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수프를 한 그릇 떠 자연스럽게 소녀의 앞자리에다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이 애도 아카데미 지원생이라는데, 서로 아는 사이야?”

 

소녀는 내가 바로 앞자리에 수프를 떠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아뇨. 지금 처음 봤는데....”

 

“그럼, 뭐, 오늘부터 친해지면 되겠네! 어차피 합격하면 같은 학교 학생일 거 아니야.”

 

보라 머리 소녀는 다른 사람과 얽히기 싫은 티를 냈지만, 여관주인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우리의 대화를 밀어붙였다.

 

“아...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소녀는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한지,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동공이 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는 로벤토입니다."

 

"레이비니아 노아라고 해....해요. 이름이 좀 길어서, 레비.... 라고 부르면 돼요....“

 

레이비니아 노아, 역시나 내가 짐작한 사람이 맞았으나, 어딘가 좀 이상했다. 원작에서 레이비니아는 역천의 마법사, 천재라는 이명에 맡게 오만하고, 독선적인 캐릭터였을 텐데.

내 앞에서 이렇게 말을 더듬고 손을 덜덜 떨며 수프를 바닥에 뿌리는 이 소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저는 기사학부 지원생인데, 지팡이를 보니 레비는 마법학부 지원생 입니까?"

 

"네... 넵."

 

"어차피 1학년은 학부 구분이 거의 없으니까 합격하면 같은 반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 죠?"

 

계속해서 질문하며, 레비에게 시선을 맞췄지만, 그녀는 동공이 미친 듯이 떨리며 내 시선을 피하려고 고개를 계속 돌렸다. 도대체 성격이 왜 이리 뒤틀려 버린 걸까.

 

“같이 아카데미에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같은 여관에서 사니까 서로 도와줄 수도 있고.”

 

“네....”

 

이후로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이것저것 질문해 보아도, 레비는 계속 방어적인 태도로 대답할 뿐이었다. 어쩐지 동급생에게 작업 거는 양아치가 된 기분이다.

 

"그...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저...저녁 맛있게 드세요."

 

그 미묘한 분위기를 버티지 못했는지 그녀는 빠르게 남은 수프를 먹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본 여관주인이 왠지 모르게 측은한 시선을 보내왔다.

 

“괜찮아. 원래 그렇게 친해지는 거야.”

 

“....”

 

계속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여관주인이 부담스러워 나도 빨리 수프를 먹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하얀색의 대리석 천장이었다. 옆에는 많은 침대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그곳에 누워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여기는 아카데미 안에 있는 병원인가. 로벤토와의 대련으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시계를 보려 멍한 정신을 이끌고 몸을 일으켜 세우니 복부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파....”

 

그제야 상처가 생각났다. 나 다쳤었지.

 

"아, 일어났구나."

 

일어난 소리를 들었는지, 한 여자가 저 멀리서 내게 다가왔다. 연분홍빛 머리에, 검은색 안경을 쓰고 피곤에 찌든 표정을 한 사람이다.

누구일까. 이곳에 있는 걸 보니 성직자인가? 뾰족한 귀가 드러난 것 같은데, 엘프 성직자도 있었나?

 

"아직은 누워있는 게 좋을 거야."

 

"자.... 잠깐만요."

 

옆으로 다가온 그 여자는 능숙한 솜씨로 옷을 넘기더니 상처 부위의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부끄러웠지만, 워낙 순식간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조금 간지러워도 참아."

 

붕대를 다 풀자, 그녀의 손에서 초록빛과 하얀빛이 섞인 오묘한 형태의 마력이 상처 부위를 파고들어 갔다. 그러자 욱신거리던 상처가 진정되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성직자에게 받았던 치유 주문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때? 좀 괜찮은 것 같아?"

 

"네...."

 

치료가 끝나자, 그녀는 다시 새로운 붕대를 꺼내와 내게 감아주었다. 상처에 파고 들어간 주문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계속 상처에 남아 지속해서 치료를 하는 같았다.

 

"미안, 지금 시간에 신전 소속 성직자들은 다 퇴근했거든. 그래도 내 마법이 성직자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효과는 확실할 거야."

 

"저기.... 근데 혹시 누구시죠?"

 

"아, 맞다 내 소개를 안 했구나."

 

그녀는 옷에 가려져 있던 명찰을 꺼내어 보여줬다.

 

"난 아카데미 마법학부 교수, 데오니라고 해."

 

"에?"

 

아카데미 교수, 그것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마법학부의 교수님이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조금 낡았다고 생각한 저 검은색 안경과 와이셔츠가 지적인 연구의 상징처럼 보였다.

 

"교수님이 왜, 제 간호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묻자 데오니 교수님은 조금 곤란한 것처럼 웃었다.

 

"음.... 그게 사실. 로벤토가 내 동생이거든. 친동생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동생 때문에 다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지금 시간대에는 성직자들이 퇴근해서 다른 치료를 받을 방법이 없어서."

 

로벤토. 그 이름을 떠올리자 다시금 대련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두려움, 고통, 포기, 그리고 마지막에 내지른 일격. 상처에서 다시금 그때의 고통이 재현되고, 그의 목을 향해 휘둘렀던 마지막 검격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때의 감각은 평소에 몇 번이고 휘둘렀던 검의 평범한 감각과 전혀 달랐다.

 

"혹시 손도 다쳤니?"

 

그 감각을 재현하려 멍한 표정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자, 데오니 교수님이 화들짝 놀라 내 손을 붙잡고는 이리저리 살펴봤다.

 

"아.... 아니에요. 그냥 대련 때의 기억이 생각나서."

 

"아, 그렇구나...."

 

대련을 언급하자 교수님은 시선을 피하며 볼을 긁적였다. 로벤토가 대련에서 나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계신 걸까.

 

"로벤토를 대신해서 사과할 게. 미안해."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그저 대련이었을 뿐이니까요."

 

정말로,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험은 정당한 대련이었고, 다친 건 어디까지나 내가 무리하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니까. 오히려 정황상 그는, 나를 도우려 한 것에 더 가까웠다.

 

"혹시 따로 부탁할 거 있니?"

 

그럼에도 교수님은 내게 죄책감이 들었는지 최대한 편의를 봐주려 했다.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아, 혹시 로벤토에 대해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나와 대련한 그 소년에 대해서 궁금했다. 많이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대화는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로벤토의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으..응? 정확히 어떤 게 궁금한데?"

 

"그냥, 나이나 좋아하는 것, 취미? 뭐 그런 것들?"

 

교수님에게 로벤토에 대하여, 묻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아직도 내가 그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딴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혹시나 같이 입학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직 합격도 못 했는데 이러는 건 섣부른 거 같긴 해도....”

 

로벤토의 검술은, 나와 차원이 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가 미약한 힘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의 검술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인 동선으로 검을 휘두르는지.

그 짧은 시간의 경험만으로도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그와 친해지고 싶은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음.... 그게 목적이라면 그냥 말을 걸면 될걸? 로벤토는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네?”

 

갑작스러운 말에 멍하니 교수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동시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랑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항상 네 얘기뿐이더라.”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기차 안에서 만난 것뿐이고.....”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자, 교수님은 재밌다는 듯 조그맣게 웃었다.

이런 거에 전혀 면역이 없는 터라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래도, 네가 말을 걸면 피하지는 않을 거야. 로벤토가 너한테 흥미가 많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거든.”

 

교수님은 놀리듯이 대답하며, 로벤토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해주었다.

의외로 단 음식을 좋아한다던가, 여름에도 항상 긴 팔과 긴바지를 입는다던가, 애늙은이 같다던가, 로벤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교수님은 조금 행복해 보였다.

 

‘많이 친한가 보네.’

 

애초에 로벤토는 인간인데, 교수님은 아무리 봐도 엘프처럼 보였다. 친남매가 아니라도 인간과 엘프 남매라는 조합은, 신기한 느낌이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한창 이야기를 하던 데오니 교수님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다시 내게 치유 주문을 걸어주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좋을 거야. 경비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교수님은 간단하게 물건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교수님께 잠시 인사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치유 주문이 몸을 진정시키자, 기분 좋은 따뜻함이 몰려와, 금방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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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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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후 처리 (1) 24.09.07 5 0 11쪽
29 레이비니아 노아 (8) 24.09.06 7 0 11쪽
28 레이비니아 노아 (7) 24.09.05 11 0 10쪽
27 레이비니아 노아 (6) 24.09.04 12 0 11쪽
26 레이비니아 노아 (5) 24.09.03 12 0 15쪽
25 레이비니아 노아 (4) 24.09.02 13 0 15쪽
24 레이비니아 노아 (3) 24.09.01 13 0 11쪽
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4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5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4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5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0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19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7 마검 24.08.22 30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39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59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2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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