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최근연재일 :
2024.09.07 16:53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719
추천수 :
2
글자수 :
162,993

작성
24.08.25 17:37
조회
22
추천
0
글자
11쪽

용사와 변경백 (1)

DUMMY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게....”

 

아공간 마법을 부수는 과정에서 다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긴 했지만, 정말로 데오니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대련 때 괜히 나서서 E반으로 승급할 여지를 준 건 나였으니까.

그러니, 이건 데오니의 말만 믿고 면접 때 교수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오지 않는 내 잘못이 컸다.

 

“용사님을 F반으로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처음에는 받아들여졌어요. 애초에 제 동생이니, 형평성 문제에 걸리지 않으려면 F반이 적격이라고 했죠.”

 

“그런데?”

 

“근데 갑자기 마법학부 주임교수님이 용사님을 E반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데려가고 싶다고? 나를?”

  

데오니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오니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잘못은 아닐 텐데, 내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보다.

 

“주임 교수님이, 그렇게 직접 학생을 요청하시는 건 처음 봤어요....”


설마.


데오니의 설명에 과거의 대화가 생각나며,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 이상한 말투의 소녀가 떠오른다.


“혹시 그 교수, 붉은 눈에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인가? 겉보기에는 엄청나게 어리게 생긴?”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카데미 안에서 만나셨으면 아마 그분이 맞을 거예요. 저희 마법학부 주임교수이신 아르테님이요.”

 

충격적인 진실에 잠시 머리가 아찔해졌다.

 

“데오니. 너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냐?”

 

“교장님 지인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법 부작용으로 어린아이 몸이 되신 걸로 아는데.”

 

여기서는 그런 설정을 쓰고 다니는 건가. 그녀의 정체를 설명 해줄까 했으나, 데오니가 내게 더 큰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었기에, 일단 함구하기로 했다.

 

“제가 책임진다고 했는데 죄송해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자, 데오니는 내가 화났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니 괜찮아. 뭐, 반 하나 바뀐 거 가지고.”

 

물론 괜찮지 않았다. 사실, 반이 바뀐 것 정도야, 계획이 틀어져서 짜증 나긴 해도, 깽판 좀 치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아르테, 그 여자가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녀가 내게 관심을 가진 이상, E반에서 도망치는 게 가능은 할지 의문이었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



데오니와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연무장으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사람과의 교류를 최소화한 채 마경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머리가 굳고 안일해진 게 느껴졌다. 적어도 용사였던 때라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머리가 더 복잡해질 뿐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연무장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저번과 달리 사람이 꽤 많았다.

20채가 넘는 연무장 건물 부지에 검, 창, 단검 등을 착용한 사람들이 오가며 몸을 풀고 있다. 하루 이용에 웬만한 호텔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하는 곳임에도 그랬다. 오히려 그런 곳이기에 사람이 많은 건가. 이런 곳에 관광을 올 정도면, 대부분은 여유로운 사람들일 테니.


나는 연무장 중, 중간 정도 크기의 건물에 들어갔다. 내가 아카데미에 간다고 하자마자, 데오니가 대여한 연무장이었다. 물론 돈은 내가 냈다. 꽤 큰 소비였으나, 수십 년간 돈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여유자금은 충분했다.


저번과 달리, 오늘은 데오니에게 특수처리된 인형을 빌려오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


"후...."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타르카에게서 받은 검을 꺼내 들었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검을 움켜쥐었다.


천천히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고, 다시 천천히 검을 내린다.

검 끝이 시선과 맞닿았을 때 쯤, 다시 검을 머리위로 들어 올린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검을 내린다.

또다시, 검 끝이 시선에 맞닿았을 때,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검을 내린다.


이 동작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했다.


딱히, 거창한 묘리가 있는 동작은 아니었다. 그저 검을 위로 올렸다 내릴 뿐.


다시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검을 내린다.

검 끝에 시선을 맞추고, 다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이 동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한다.

 평범한 인간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티끌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은 체, 최초의 동작을 기준점 삼아서 계속해서 반복했다.

옛날부터 계속해 왔던, 내게는 마치 의식과도 같은 동작이었다.


처음 이 동작을 한 건, 마경에 막 버려졌을 때였다. 뭔가 치트 능력이라도 있나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있는 건 그저 도움도 안 되는 상태창 하나.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무작정 검을 휘둘렀었다.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고, 다시 천천히 검을 내리는 동작. 

뭔가 있어 보이는 이런 동작이라도 반복하면, 상태창에서 '띠링' 소리가 나며 [하급 검술 Lv1] 이딴 거라도 뜰 줄 알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지. 그냥, 팔에 근육통만 얻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의미 없는 동작을 그 이후로도 반복했다.

최대한 정확히 그 동작을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한 결과. 나는 어느 순간 부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최초의 그 동작을 재현할 수 있게 됐다.

난생처음 검을 잡은 풋내기 용사 후보생과, 닳을 대로 닳아버린 용사의 검이 같은 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일성은 내게 닻이 되었다. 인간이라는 개념에 나를 고정시키는 닻.

초월의 반열에 한 발자국 내디뎌 방황할 때, 그 닻은 나를 인간으로 남게 해주었다.


100년을 넘게 살아가고, 절대 늙지 않으며, 검 하나로 산을 갈라도,

나는, 그때 그 무작정 검을 휘두르던 멍청이와 같은 인간이다.


인간의 틀에서 벗어났음에도 나를 인간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기 암시.

마모될 대로 마모되어 버린 정신을 붙잡는 도구.

가장 단순한 검과 나의 형태.


그저, 나와 검. 검과 인간.


눈을 감고, 그 형태를 그리며 계속해서 하나의 동작을 반복했다.....


[절그럭]


극한의 집중 상태에서, 귓가에 소리가 스쳤다. 바로 뒤, 검을 휘두르면 닿을 거리에 누군가 있다.

소리가 들린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의 근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보이는 건 중년 남자, 갑옷 입은 기사 4명, 그리고....


“시온?”


익숙한 얼굴을 보이자마자 검을 멈췄다. 새하얀 검신이 중년인의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영주님!"


한 발짝 늦게 반응한 기사들이 놀라며, 내게 검과 창을 휘둘렀다.


"그만!"


중년인이 호통치자, 내게 휘둘러졌던 검과 창이 멈추며 거둬들여졌다. 무기를 거둬들이면서도 기사들은 맞는지 긴가민가한 표정이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제가 빌린 연무장입니다."


그의 목에서 검은 거뒀으나, 아직 긴장은 늦추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상도덕을 말아먹은 새끼가 남이 수련하는 데 끼어든단 말인가?


"일단 수련 중에 방해한 건 사과하겠네."


"뭐, 아시면 다행입니다."


시온을 비롯한 기사들은 내 대답에 잠시 움찔거렸다. 내 태도가 건방지다 생각한 모양이다. 뭐, 그래서 어쩔건데. 어차피 대화의 주도권은 저 영주라 불리는 중년인과 나 사이에 있다.


"이 연무장을 꼭 빌리고 싶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자네를 부른 걸세. 다른 곳은 너무 사람이 많아서 말이지."


"그럼 멀리서 부르시지, 왜  굳이 다가와서 위험을 자초하십니까. 하마터면 제가 범죄자가 될 뻔했군요."


"아무리 불러도 자네가 반응하지 않았네. 그래서 이렇게 가까히 다가올 수밖에 없었지. 느린 동작으로 수행하고 있기에, 안전하리라 생각한 내 불찰이야. 다시 한번 사과하지."


"그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 나리의 부름을 듣지 못했군요."


주변인들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졌지만, 내 비아냥은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이만한 집중 상태를 돌입하는 건 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집중 상태가 누군지 모를 불청객 때문에 깨졌으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허나, 우리가 단순히 우리 이익을 위해 방해한 건 아니네. 원래라면 자네가 수련을 끝내기를 기다렸겠지. 그런데 자네의 상태가 좀 이상해서 말일세."


"제 상태 말입니까?"


중년인의 말에, 그제야 나는 내 자신을 둘러보았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코끝에 옅은 피비린내가 스친다. 검을 붙잡은 손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에서 나온 피는 팔을 타고 땀과 섞여 온몸에 흘러내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당장 경비병에게 신고할 만한 외견이다.


"관리자 말로는 자네가 어제저녁 7시부터 들어왔다고 하던데, 혹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건가?"


"지금이 몇 시입니까."


"9시라네."


밖에서 빛이 들어오니, 저녁은 아닐 터. 그러니 장장 14시간 가까이 이 짓을 반복했다는 뜻이다.


"그리 크게 다친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로 이곳은 빌려드리겠습니다. 정당방위라 해도 제가 영주님을 해칠 뻔한 건 사실이니."


쓸데없는 참견이긴 해도 그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건 알았으니, 못 빌려줄 이유는 없었다.


"고맙네. 사용료는 후하게 치르도록 하지. 북부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리.... 아니 내 아들 시온과 대련조차 하지 않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말이야. "


짐을 챙겨서 나가려다 들리는 중년인의 대답에 잠시 멈춰 섰다. 시온의 아버지라고?


"혹시 북부의 변경백이십니까."


"아, 정신 좀 보게. 내 소개를 안 했었군. 나는 드리컨 베르하츠. 북부 마경의 변경백이라네."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아주 두터운 손이다. 그 손을 잡고 악수하며 그를 찬찬히 뜯어봤다.


덥수룩하지만 잘 정리된 수염, 형형한 눈,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그리고 거대한 키, 옷 위에서도 드러나는 온몸에 꽉꽉 들어찬 괴물 같은 근육. 강인한 북부 전사의 전형이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놈이 도대체 왜 이렇게 컸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사후 처리 (1) 24.09.07 6 0 11쪽
29 레이비니아 노아 (8) 24.09.06 8 0 11쪽
28 레이비니아 노아 (7) 24.09.05 11 0 10쪽
27 레이비니아 노아 (6) 24.09.04 13 0 11쪽
26 레이비니아 노아 (5) 24.09.03 12 0 15쪽
25 레이비니아 노아 (4) 24.09.02 14 0 15쪽
24 레이비니아 노아 (3) 24.09.01 13 0 11쪽
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5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3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8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4 1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