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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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최근연재일 :
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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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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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비니아 노아 (3)

DUMMY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질척한 어둠. 이건 빛이 사라져서 생기는, 평범한 어둠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어둡게 물들었다.

마치 세상에 검은색을 덧칠한 듯, 모든 색이 사라지고 오로지 흑백만이 남았다.


'마법인가?'


아니다.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 어떤 마법사도 이런 어둠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짓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악마. 그 가증스러운 것들뿐이었다.


마치 세계 그 자체가 변화한 듯한 감각.

마왕에게서 권능을 내려받은 악마만이 재현할 수 있는, 마법보단 법칙에 가까운 기예.


[이상권역(理想圈域)]


세계에 악마의 이상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


허나 분명, 이상권역은 악마조차 마경에서 밖에 펼치지 못한다.

마왕과 마물에 의해 변질된 그 공간에서만이, 악마는 이상을 현실에 덧씌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가르티나. 이상권역이 도대체 어떻게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대답은, 창문 밖을 바라보니 알 수 있었다.


하늘이 파도치고 있다.

거대한 돔처럼 거주구를 뒤덮은 하늘은, 검은 바다가 되어 불길한 마기(魔氣)가 파도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지가 박동하고 있다.

마치 원래의 세계를 집어삼키듯,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박동하는 검은 핏줄이 모든 땅과 건물을 뒤덮고 있었다.


이건, 마경이다.

그 지긋지긋한 그 풍경이 가르티나 거주구에 덧씌워지고 있었다.


이상권역 자체가 마경인 악마. 그런 게 가능하다고는 상상조차 안 해봤다.

내 세대의 모든 악마를 죽이면서도 비슷한 악마조차 보지 못했다. 또한, 현세대의 악마가 나타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구세대 악마의 짓인가.


그 순간 내 옆구리가 허전한 걸 깨달았다.

마검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레비마저 사라졌다.


“설마....”


모든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마검에 봉인돼 있던 게 악마였다면. 만약 레비가 듣던 환청이 그 악마의 소리였다면. 만약 그 환청을 듣고 레비가 악마와 접촉했다면.

논리적 비약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가능성이기도 했다.

악마에게, 레비의 육신이란 그야말로 완벽할 테니.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이상권역을 밖에서 해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안에서 억지로 나가는 것도 힘들다.

권역의 해제 방법은 악마의 마력이 떨어지길 기다리거나, 악마가 권역을 해제하거나, 권역 내의 악마를 죽이는 것뿐.

허나, 만약 악마가 레비의 육신을 차지했다면, 첫번째 방법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검을 들었다.

저번에는 천사를 죽였지만, 나는 원래 용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사람이다.

당연히 악마를 죽이는 게 더 익숙하다.


다행히, 여관의 모든 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아마, 웬만한 이들은 이상권역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을 것이다.


짙은 마기도, 어째선지 집 안에 침범하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든 건물을 투명한 벽이 격리하고 있었다.

아마, 이건 신성도시의 방위 마법. 보통의 도시라면 영주가 기거하는 구역에나 설치됐을 마법이 가르티나에서는 모든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법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회로에 남은 마력의 잔량으로 볼 떄, 그 시간은 아마 3시간 정도로 추정된다.


인질은 권역 안의 모든 사람

제한 시간은 3시간.


나는 그 안에 악마를 죽여야 한다.




#




붉은 머리칼의 악마가, 소녀를 안고서 거주구 중앙 교회에 안착했다. 계획이 틀어진 이상 숨어서 마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악마의 원래의 계획은, 소녀의 마력을 활용해 이상권역을 펼쳐 가르티나의 괴물들로부터 격리된 공간을 만든 후, 소녀의 몸을 차지해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계획은 완벽했으나, 이 소녀 자체가 너무나 큰 변수였다. 마치 그 용사의 재능을 가진 소년처럼.


‘왜 이런 괴물 새끼들만 걸리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두 번이나 연달아서 벌어졌다는 것에 악마는 한탄했다.


웬만한 용사보다 마력 감응이 뛰어난 이 소녀는, 분명 악마에 최적화된 신체였을 터.

실제로, 소녀의 마력으로 이상권역을 전개하고 몸을 빼앗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였지.

악마는 소녀의 몸을 차지했을 때의 그 감각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저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악마가 소녀의 몸을 차지했을 때 목도한 것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성.

소녀는, 인간이라기보다 마치 거대한 기계장치와 같은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의 몸을 차지한 순간, 감각되는 모든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소녀의 지성은 그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계산하고, 예측한다.

하나의 미래를 예측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시간이 불과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손을 내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말을 내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마법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수많은 분기점에서 파생된 미래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행동 하나에, 그 수많은 미래가 관측되는 감각은 한낱, 한 명의 지성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괴물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이런 지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악마라도 몇 시간도 못가 미쳐버리리라.

겉보기에는 멀쩡한 소녀가, 그 안은 이토록 뒤틀린 심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가.


소녀를 지켜보던 악마는, 고개를 돌려 지상에 펼쳐진 이상권역을 바라봤다.

분명 마경은 악마의 이상권역이었다. 하지만 이 흑백의 세상과 마경을 가득 채운 저 기괴한 괴물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저건 악마가 펼친 이상권역을 탈취하여 재구성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탄생한 괴이경(怪異境)이자,

저 작은 소녀가 현실에 구현한, 자신의 이상(理想)이다.




#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엄청난 밀도의 변질된 마력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호흡만으로 미미한 저주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살이 서서히 타들어 가는 고통은, 격렬하진 않지만 움직임을 제약하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서히 공기에 적응해갔다.


마침내 어느 정도 호흡이 편해졌을 때, 뒤편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빠...?”


혹시 잠들지 않고, 격리 지대에서 빠져나온 생존자일까.


[아빠....]

[아..... 아..빠... 아 ...?빠....]


그러나, 돌아본 곳에 있는 건,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띤 무언가다.




[아..... 아..빠..�͎͕아 ½ºÆ.?빠....][아..아...t̸̛̙̚͜r̶͓̱̣̞̾͐̎̈́빠....][아....�͎͕빠....][아..f̴̬̫̬͑̅͊͑͝....][아....à̵̗̈́ṭ̸̖̓̾.빠....][아..... 아..빠..][아..... r̶͓̱̣̞̾͐̎̈́..빠.....][아....h̵̭͓̓̒아..빠... 아빠....][아....�͎͕아..빠... 아 ...?�͎͕....][아. 아빠.. ...?빠....][아r̶͓̱̣̞̾͐̎̈́... 아..빠... 아 ...�͎͕빠....][아.f̴̬̫̬͑̅͊͑͝.�͎͕..빠.�͎͕.. ....][아..... 아. ...?빠....][아 à̵̗̈́. ...?빠....][아.... à̵̗̈́ ...?빠....][아à̵̗̈́.... 아..빠... r̶͓̱̣̞̾͐̎̈́...�͎͕빠....][아.....아 ...?빠....][아..�͎͕ .. 아 ..�͎͕?빠....][아... 아 ...f̴̬̫̬͑̅͊͑͝?�͎͕.]




끈적한 어둠으로 이뤄진, 무언가가 거리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오로지 ‘아빠’만을 애타게 찾고 있는 그것은, 마치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어린아이처럼 슬피 울고 있었다.


수백의 울음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을 연기하려고 한다.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인간인 것처럼.


“이건....”


마물인가? 언뜻 마물처럼 보이지만, 마물 같지 않다.

도대체 어떤 마물이 인간을 흉내 낸다는 말인가.


[아....빠?]


내가 내뱉은 말에 반응하여, 그 존재 중 하나가 나를 돌아봤다.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그것은, 너무나도 인간 같았다


[미...안..해] [미.•안..�] [미•.안..�] [미.�.안..•][�■...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나의 개체에 이어, 다른 모든 개체가 일제히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 공허한 검은 눈빛이 내게로 향한다.


마치, 모두가 한 몸인 것 같은 움직임에, 나도 무심코 그것을 따라 했다.


“아빠....”


폐가 숨을 쉰다. 입이 움직인다. 무언가를 외친다. 발걸음이 앞으로 향한다.

서서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것은 마치 고행과도 같았다.

동시에 구원이었다.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아프다. 너무나 아프다.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저 존재가 나를 죽여버릴 것 같다. 아니, 분명 죽일 것이다. 나는 죽고 싶나? 아니다 나도 살고 싶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고 싶다. 가족과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무서워 나는 빌었다.


“아빠....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


눈물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서 아빠를 바라봤다.

아-,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이건 아빠를 향한 눈물이다. 나는, 우리는 그를 바라보며 울었....


[푹-.]


검으로 왼팔을 찔렀다. 찌르는 것만으로 부족했기에, 나는 그 밑으로 검을 그어버렸다. 팔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난다.

이것은 생명의 흔적.

내가 저들과는 다르다는 증거였다.


“씨...발....”


머리가 불에 타듯이 뜨거웠다. 지직거리는 저주문이 나를 세뇌하려는 마력을 계속해서 해체해갔다.

너무 방심했나. 내게 새겨진 저주만을 믿고 정신적 공격에 대한 대비를 안 하고 있었다.

덕분에 왼팔이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깨어날 수 있었다.


초월에 발을 걸친 신체답게, 피는 금방 멎었으나 내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왼팔에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악마 하나 정도는 오른팔로도 충분했으나, 문제는 내 머릿속에 새겨진 동화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머릿속을 끈적하게 배회하며 나를 괴롭혔다.


‘고통, 아빠, 마법, 괴물, 희생’


그 단어들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저 존재들에게 동화되었을 때 보였던 건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그 단어들로부터 서서히 그 기억들이 조합되며 떠올랐다.


어린 소녀, 마법, 그리고 죽음.


이건, 레이비니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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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레이비니아 노아 (4) 24.09.02 14 0 15쪽
» 레이비니아 노아 (3) 24.09.01 14 0 11쪽
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5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6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3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8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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