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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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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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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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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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 (2)

DUMMY

조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원작에서 뒤틀렸다고 한들, 굵직한 사건들을 어떤 식이든 비슷하게 일어났기에, 내 머릿속에서는 시온이 중반부 참가자로 나올 거라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었다.


“벌써 10명이 넘게 상대했는데도 지치는 기색조차 없네요.”


프레아는 그가 도전자들을 차례로 꺾어버리는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첫 번째 도전자였던 푸른 머리 용병은 채 5초도 되지 않아 항복을 외쳐야만 했다.

나머지 도전자들이 경기장에서 내려오는 것 또한 1초 내외.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급소로 찔러 들어오는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도전자도 안 나올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처음에는 시온의 수준을 느끼지 못한 자들이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허무하게 무너지는 도전자들이 열 명을 넘어서자, 이후로는 한명 한명 나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기색이 강했다.

 

자신이 나가지 않으면, 남은 지원자들은 모두 탈락이니까.

이제는 그조차 나오려는 기색이 없다.

 

집요하리만치 급소만을 노리는 그의 검술, 그리고 그 검술의 수준에 혹시 교수조차 중간에 제지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 지원자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실제로 그의 검에 찔려 상처를 입은 도전자가 하나둘 생기자, 그 불안감은 서서히 증폭되어 한동안 시험장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더 이상 도전자가 없게 되면, 나머지 지원자들은 전부 탈락입니다.”


머뭇거리는 지원자들을 향해 교수가 마지막 통보를 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지원자는 없었다.

다들 금의환향의 꿈을 품고 아카데미에 지원했으나, 부상을 감수할 용기조차 없는 것이다.


“어떡하지....”


프레아는 계속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꼭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다음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녀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계속 불안감에 떨고 있던 프레아가 결국 손을 들고 도전하려 했다. 


“제, 제가 지원....”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아 도전을 제지했다.

 

그녀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프레아가 시온을 상대로 분전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려면 이 방법뿐이다.

다소 눈에 띄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한동안 침묵만이 오가던 시험장에서, 새로운 도전자가 나오자 다시금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나를 바라보는 프레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한번 웃기만 하고는 시험장에 입장했다.

저놈이 있는 곳으로.


시험장에 걸어나가자, 나를 바라보는 시온의 시선이 느껴졌다. 벌써 십 수명을 상대했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상상했던 것과 똑같이 생겼던 프레아와 달리, 가까이서 본 시온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뭔가 좀 비실비실 하다고 해야 하나.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네?”

 

시온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투로 반문했다. 가까이서 들으니, 변성기도 좀 덜 온 것 같고.

예전에 이놈 아버지를 두들겨 팼던 게 나비효과로 돌아온 건가?

그때 성기능에 문제 생길 정도로 때리지는 않았는데.

 

“너희 아버지는 잘 계시냐?”


“그 질문은 무슨 의미입니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시비 거는 것으로 들렸는지 그가 내게 적의를 내비쳤다.


“쓸데없는 도발 하지 말고, 대련 준비나 하시죠. 어차피 마지막 도전자일 것 같은데.”


“그러게 좀 살살 하지 그랬냐.”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그렇게 보이지는 않던데.”


내가 알기로는 그는 벌써 검기를 깨우쳤다.

그 말은 적어도 아카데미 학생의 수준은 벗어났다는 소리이며, 동시에 일반적인 지원자들 수준으로는 차례 차례가 아니라 한 번에 전부가 덤벼도 이기기 힘든 상대라는 소리다.

 

물론 시험장에서 검기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만한 경지에 이르렀으면 이런 같잖은 장난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뭐가 말입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첫 번째로 도전했냐는 말이다.”


내 질문에 그는 잠깐 고민했다.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뭘 말이냐.”


“아버지께, 제 가치를요. 탈락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쉽게 되었습니다. F반은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겠군요.”


“그거참 건방진 대답이구나.”


원작에서의 그는, 용사가 되기 위해 자신을 증명한다고 했다.

그런 녀석이 왜 갑자기 아버지 타령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녀석의 콧대를 한번 꺾어 놓을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이 녀석은 프레아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으니.

벌써 이렇게 헛바람이 잔뜩 들면 곤란했다.


“그럼, 이제 대련을 시작하겠다.”


교수는 우리에게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시온은 검집에 있던 검을 서서히 꺼냈다.

나는 그냥 평소처럼 검집에 검을 넣어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교수의 입에서 시작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린다.


[3]


[2]


[1]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검이 내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오로지 속도에만 집착한 동작.

단 한 번에 끝냈다는 마음가짐으로, 방어를 도외시한 채 얻은 속력은 필살의 일격이 되어 어지간한 기사들도 막지 못할 찌르기를 만들었다.

 

[팅-]


그러나 그의 일격은 내가 검집 채로 휘두른 단 한 번의 방어에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검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관객도, 교수도, 시온도 그 광경에 침묵했다. 한동안 경기장 내에는 정적만이 흐른다.

일반적이라면, 내가 당장 달려가 그를 제압하고 항복을 받아내야 했으나,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쉽게 대련을 끝낼 마음은 없었기에.

 

“뭐해, 검 주워 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온에게 말했다.

그 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린 듯 급히 달려가 검을 줍고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그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일격을 날리기만 했던, 이전까지의 대련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나를 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팅-]


그러나 딱히 변한 건 없었다. 이번에는 목 대신, 몸쪽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지만, 그 시도 또한 내 휘적거림 한 번에 튕겨 나갈 뿐이다.

그래도 그는 필사적으로 검을 부여잡아 이전처럼 꼴사납게 검을 주으러 가는 일은 없었다.


“간다.”


이번에는 내가, 간신히 서 있는 시온에게 순간적으로 달려갔다.

용사 후보생이니 어제 연습용으로 사용했던 인형보다는 튼튼할 거란 생각에 조금 힘을 실어 검집 채로 어깨를 향해 휘두른다.

 

그는 균형이 흐트러진 자세로 무리하게 검집을 막으려 시도했으나, 애초에 완력 자체가 달랐기에 검집은 그대로 그의 검을 짓뭉개고 어깨를 가격했다.


“큭”


억지로 방어 동작을 취하느라 어깨뿐만 아니라 손목조차 무리가 온 것처럼 보였다.

항상 무표정이던 시온의 얼굴이 고통 때문에 한껏 찡그려져 있었다.

 

이 와중에 그는 부상보다,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 했다는 것이 더 분한지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다.

상당히 건방진 눈이었으나, 흐리멍덩하고 재수 없었던 전보다는 나았다.

나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졌으니.

 

물론 건방진 건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계속해서 검집을 휘둘렀다.


“머리”


“다리”


“어깨”


“왼팔”


“다시, 머리”

 

검집 채로 휘두르는 검이 그의 전신을 가격한다. 어디를 향해 검집을 휘두를지 예고했음에도 그는 단 한 차례도 피하거나 막지 못하며 허덕거릴 뿐이었다.

한 발짝 물러날 때마다 한 차례씩, 정박으로 들어오는 공격조차 제대로 막지 못했다.

궁지에 몰려 자세가 흐트러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겨뤄 온 상대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아래였기에.

 

마침내 구석까지 몰린 그는 더 이상 검을 들 힘도 없어 보였다.


“거기까지.”


보다 못한 교수가 더 이상 대련이 과열되지 않게 나를 막아섰다.

그것으로 대련은 종료되는 듯했으나, 시온은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직....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선언과 함께 한순간 그의 분위기가 변했다. 눈동자에 푸른 빛이 스치고 검의 예기가 달라졌다.

자세 또한 원래는 검을 붙잡기도 힘든 상태였으나, 지금은 놀랍도록 안정되어 있다.

 

검기를 사용한 것이다.


“이제 조금은.... 다를 겁니다.”


한순간 땅을 박차며 접근하는 시온의 속도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시야의 사각을 노리듯 왼쪽으로 발을 딛고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튀어 오른 그는 유려한 궤적으로 내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정확하고, 허를 찌르는 궤도. 그러나 그의 검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만.”


검기 사용은 명백한 규칙 위반. 나른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던 교수가 깔끔한 발도로 시온의 검격을 막았다.

 

겉보기와 달리 실력자였는지, 교수의 검은 검기를 담지 않았음에도 시온의 검을 손쉽게 막아내었다.


“승자는 로벤토.”


교수의 담담한 선언에 시온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건지 깨닫고는 순순히 검을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얌전한 모범생을 연기하며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중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천천히 시험정 밖을 나가는 시온을 바라보며, 교수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는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희미한 눈동자가 나를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나쁜 취미더군?”


“최선을 다한 겁니다.”


나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피식 웃고는 다음 도전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쉽게 도전자가 나오지 않았다.

모두 검집에 처맞으며 농락당하기는 싫다는 거겠지.

다들 눈치 싸움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머뭇거리는 프레아가 보였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저요?]


프레아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도전자는 나오지 않았기에, 결국 지원하는 건 그녀가 될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전과 같은, 교수의 더 이상의 도전자가 없냐는 물음에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프레아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지원자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눈, 검은색의 케이프,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이 세상의 주인공답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시험장에 들어왔다.

 

비록,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해도 그녀의 외모는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아, 시험을 참관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프레아에게 딱히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 대련은 그녀에게 조금 힘든 시간이 될 터이니, 더 이상의 대화는 그녀에게 기만처럼 들릴 뿐이리라.

그녀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들 뿐. 좋은 태도였다.

 

나 또한 이번에는 검집이 아니라, 직접 검을 들었다.

서서히 검집을 빠져나오는 은색의 검은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제야 이것은 오롯이 검이 되어, 살의와 예기를 머금었다.

 

그 앞에서 프레아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움켜쥐고는 내게 겨누고 있다.

용사와는 조금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끝까지 검을 놓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나와 같은 모습이 되겠지.

그렇기에 이 대련은, 전대 용사가 후대의 용사에게 건네는 첫 번째 수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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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5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4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5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7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0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19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4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4 0 12쪽
»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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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2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39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5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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