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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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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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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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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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 (5)

DUMMY

자고로 이 세계에서 아카데미, 그리고 신성 도시 가르티나란 무엇이냐.

 

평화유지 기관인 동시에 군인 양성 기관이며, 자치령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가장 세속적인 도시라 말할 수 있겠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역사서를 조금 뒤적거려 봐야 한다.

 

 

멀고도 먼 옛날. 그러니까 고대 용이 연초 피던 시절에, 마물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검고 질척하고, 딱 봐도 더럽게 생긴 그것들은 모든 종족의 본능적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으며, 하는 짓도 생긴 것과 비슷했다.

그 압도적인 물량을 위시하여 모든 국가에 대한 무차별적 침략을 감행한 것이다.

 

마치 이 땅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모조리 절멸시키려는 악의로만 뭉친 듯한 마물들은, 지나간 자리를 검게 물들이고, 다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부패시켰다.

 

그러나 짝퉁 중세의 빡통 군주들은, 특히 마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동시에 가장 강성했던, 크라시아스 제국의 군주들은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마물을 그저, 동네 개새끼가 조금 검게 변한 것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다른 국가의 국민들이 아무리 마물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바스러져 가도, 크라시아스 제국은 전쟁 중인 국가에게 병장기, 마도구, 식량 등 고가에 팔아 이익을 챙길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마물은 단순한 동네 개새끼가 아닌, 하나의 국가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기에, 충분한 괴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도 국가 코렌트를 시작으로 데르몬드, 론다 연합왕국 등 그 시기에 가장 번성했던 국가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앞마당까지 마물이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가 돼서야, 후방의 국가들은 위험성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늦었다고, 마물은 이미 수많은 지역을 침식시켜 도저히 한 국가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세력으로 번진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마물이 침식한 곳에서 지성이 있는 '마족'이 태어나기 시작하고, 마경의 법칙을 조작하는 '악마'와 그 모두를 통솔하는 '마왕'까지 탄생하여, 인간 국가의 운명은 드래곤 앞의 쥐새끼 정도로 전락했다.

 

다행히도 인류의 절멸을 방치할 수는 없었던, 우리 자비롭고도 자비로운 여신님께서 인류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시니, 바로 ‘용사’라는 이들이었다.

 

때로는 검, 때로는 창, 때로는 마법으로 마물을 도륙하고 악마의 머리통을 쳐부수는 용사는 인류의 희망이 되어 최전선에서 인류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마물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용사들은 별다른 지원조차 없이, 마경이 된 국가의 패잔병을 이끌고 세상을 정화해 갔다.

 

그러나, 짝퉁 중세의 빡통 군주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용사들이 영웅이 되자, 정치적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실존하는 신의 대리자인 동시에, 전쟁영웅이라는 업적은 그 어떤 국가의 귀족도, 왕도, 황제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앞에선 병사인 동시에 가장 높이 선 영웅이었다. 그런 용사의 말 한마디는 국민을 감화시켰으며, 그런 용사의 말 한마디에 필사의 돌격을 감행할 군인들도 넘쳐났다.

 

용사와 군인들은 그들이 버렸던 최전방 국가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용사 연합이 자신들의 머리통을 깨기 전에 먼저 처리해 버리자는 생각이 든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러나 용사의 뒤통수를 친 이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용사가 단순한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실존하는 신’의 대리인이었다.

 

용사가 마왕을 베고, 악마를 두 동강 내며, 마족을 갈아 마실 때마다 부르짖던 그 신의 이름은, 결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지구의 군주들이 배교자가 된다면, 그냥 양심에 찔리고 머리가 좀 아플 뿐이겠지만, 짝퉁 중세 판타지인 이곳에서 배교자가 된다면 말 그대로 심장이 찔리고 머리가 터질 수 있었다.

 

인류의 전승 기념일이자, 초대 용사들의 귀환 일인 동시에 초대 용사들의 기일인 그날.

배교자에 의해 용사들의 심장이 멈추고, 입에서 피를 쏟아내기 시작한 그때, 크라시아스 제국의 수도에 빛이 내렸다.

 

그 이상의 서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천벌에 겁을 먹은 시민들이 황성에 직접 쳐들어가 군주들을 효수했다 말했으며, 누군가는 숨이 끊어진 용사들이 부활해 직접 그들을 단죄 하였다 전했다. 또 누군가는 하늘에서 천사가 강림해 그들의 머리를 가져갔다 했고, 누군가는 빛에 귀의한 군주들이 스스로 목을 그었다고 증언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을 기점으로 크라시아스 제국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물을 도외시하고, 인류를 이간질했으며, 신을 배신한 배교자들에 대한 천벌이었다.

 

이후, 제국이 남긴 영토는,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 그리고 주변 경쟁국들이 나눠 가졌지만, 차마 빛이 직접 내렸던 수도만큼은 그 누구도 점령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 세워진 게 아카데미이다. 그 옛날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이상 마물과의 전쟁이, 인간들의 배신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크라시아스 제국을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는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마물에 대항하기 위한 인류의 화합을 상징했다. 그리고 신께서 인세를 지켜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

 

물론, 아카데미 설립 당시에 이념이 이랬다는 거고. 지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그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현재에서 와서 아카데미는 가장 많은 귀족이 이곳에 머물기에, 가장 많은 정치적 모략이 오가는 곳이 되었으며, 아카데미를 졸업한 기사와 전투 마법사들은 마물보다 사람 죽이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또한, 신성 도시 가르티나는 가장 부유하며, 가장 평균 연령이 낮은 도시이기에 온갖 환락가와 유흥거리가 발달한 세속적인 도시가 되었다.

 

여러모로 '신성 도시'나 '지식의 요람'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

 

 

"면접관 앞에서 그렇게 말하게요?"

 

"그럴려고."

 

"아니, 무슨 아카데미의 설립 이념과 목적을 설명하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요. 그냥 평화와 화합, 그리고 마경 수복 같은 거만 말하면 되지 사람 죽이는 일을 더 많이 한다느니, 환락가가 많다느니, 같은 소리를 교수님들이 들으시면 정말 좋아하시겠네요."

 

"어차피 대련에서 시온을 이겼으니, 합격은 확정이야. 잘못해서 E반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면 면접은 망치는 게 낫지."

 

그런고로 이번에 잡은 컨셉은 중2병에 걸린 염세주의 사춘기 소년이다.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학생을 연기해서, 귀족계층인 E반에 들어가지 않는 게 목표였다.

 

교수들도 귀한 집 자제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싶진 않겠지.

 

"용사님은 제 동생인 설정인데, 제 가족이 밖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면 다른 교수들이 절 어떻게 보겠어요?"

 

"이상한 소리 하는 교수 있으면, 내가 처리해 줄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데오니는 내 중2병 소년 작전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F반으로 들어가는 건 제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니까 제발 면접은 정상적으로 보고 와 주세요."

 

어찌나 간절한지 데오니는 내 두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전 용사님이 제발 정상적인 아카데미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목적 자체가 아카데미 생활이 아닌 내게 정상적인 아카데미 생활을 권유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말에 토 달지 않았다.

 

뭐, 데오니가 알아서 해주겠지.

 

 

#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최종합격자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의 시절이다.

 

『F반 최종합격자 명단

 

리하나 - F반

 

필레온 - F반

 

에녹 사란달 - F반

 

아몬 드리카 - F반

 

베리안 - F반

 

렉스 - F반

 

프레아 하이안 - F반

 

록시아 글렌 - F반

 

.

.

.                                     』

 

 

 

F반에 합격한 이들의 명단을 찬찬히 확인했다. 중간에, 프레아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것도 잠시. 아무리 명단을 살펴봐도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그 옆의 명단을 봤을 때 나는 오랜만에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

 

『E반 최종합격자 명단

 

 

로벤토 - E반

 

시온 베르하츠 - E반

 

레이비니아 노아 - E반』

 

"씨발"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벽을 내려치는 걸 참았다. 아니지, 여기서 난동 한번 부리면 F반으로 강등당하려나? 진지하게 그 방법을 검토해 보니, F반보단 감옥에 갈 확률이 높았기에 그만뒀다.

대신 당장 데오니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데오니는 교수 연구동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최근 들어 마검의 연구 때문에 항상 바빴으니.

그러나 방문증을 차고 데오니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집에 있는 건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데오니가 건네준 연구실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었다. 종종 내가 그녀의 연구실에 물건 심부름을 다녔기 때문에 전해 받은 건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데오니?"

 

안은 비어있었다. 조명은 꺼져있고, 오로지 실험 물품들의 유지장치만 웅웅 소리를 내며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천천히 감각을 깨우자 조금 다른 흔적들이 느껴졌다.

 

의자의 미미한 온기, 바닥의 먼지가 눌린 자국, 바깥과 다른 공기 중의 마력 농도, 그리고 마치 아주 얇은 유리처럼 빛이 미세하게 굴절되는 연구실의 구석.

 

그 굴절을 확인하자마자 한순간에 도약해 허공에다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허공에 닿는 순간 공간에 균열이 일며 마치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절반 정도 부서지자, 그 사이로 데오니가 보인다.

 

"요....용사님, 안녕하세요오...."

 

마치 그녀가 어릴 적에, 내가 아끼던 초콜릿을 몰래 먹었던 때처럼, 데오니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구석에 숨어 있었다.

커다란 돌 뒤에 숨었던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아공간 마법을 사용하여 숨었다는 게 차이점일까.

 

"나와."

 

"네...."

 

나는 조심스럽게 나오는 데오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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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4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6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3 0 11쪽
» 입학시험 (5) 24.08.25 25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8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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