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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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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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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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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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이벤트 (1)

DUMMY

과연 그녀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나는 조금의 움찔거림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음.... 조금 이상한 발음인데. 무슨 마법 주문 같은 건가요?”


“....”


그녀가 아주 미세하게라도 해당 문장, 또는 언어를 아는 기색을 보였다면 당장 내 감각에 잡혔을 테지만, 그녀는 그저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만 보일 뿐이다.

 

그 외에도 게임의 영어, 일본어 번역명, 그리고 콜라, 낙타 등과 같은 저쪽 세상의 단어를 섞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도 그녀에게서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일단 빙의자는 아닌 건가.’

 

검증은 성공했으나, 그것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영문모를 말을 혼자서 떠들어 대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며 창밖에 집중하는 그녀를 따라 나 또한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밖은 푸른 들판과 숲이 펼쳐져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내 시력은 들판에 있는 동물들을 포착해냈다.

아카데미가 있는 신성 도시 가르티나에 가까워졌는지 마물 대신 토끼, 사슴과 같은 비교적 정상적인 생물들이 많이 보였다.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은 그리 만만한 게임이 아니기에. 아무리 지금이 초반 프롤로그 시점이라 해도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어?”


아니나 다를까 열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프레아, 그리고 다른 좌석의 손님들은 당황한 듯 주위를 살피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열차가 멈추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윽고 나의 감각권에 열차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가 잡혔다. 다른 승객 중에 이를 파악한 자는 없었는지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3’


‘2’

 

‘1’

 

그리고


[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원래라면 위기감을 느껴야 할 상황이었으나, 예정된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무리 사건들이 뒤틀려도 이 이벤트는 진행되는구나 하는 짧은 감상뿐.

거창해 보여도 화면 너머로는 수백, 수천 번은 봐 왔던 장면이다.

 

폭발의 여파로 열차는 탈선되어 쓰러졌다.

무언가 낌새를 느낀 기관사의 조치였는지 열차의 속도가 미리 줄어든 덕에 큰 피해는 없었다.

승객들은 어수선한 열차 안에서 상황을 파악하려 아티펙트를 작동하거나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프레아는..... 게임 시나리오와 똑같이 누군가에 의해 열차에서 사라졌다.

 

그녀를 찾기 위해 나는 머리 위에 있는 열차 출입구를 붙잡고 올라갔다.

열차를 딛고 일어서니 보이는 것은 검은 장막.

 

마찬가지로 수천 번은 봐 왔던 장면이며,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의 프롤로그이자 패배 이벤트가 펼쳐지는 무대였다.

 

 

#


 

보통 게임의 프롤로그는 배경과 조작 설명이 기본적이다.

그 외에 고블린이나 슬라임을 잡는 간단한 전투가 동반되거나 주변 인물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나,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높은 몇몇 게임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이 사용되곤 한다.

 

속칭 ‘패배 이벤트’.

 

현시점에서 승리가 불가능한 전투를 배치하고 플레이어의 패배를 통해 스토리를 진행하는 방식.

한마디로 주인공의 패배가 확정된 전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프롤로그에서 주인공과 조우하는 악마를 통해 주인공을 패배시키고 저주를 심는 이벤트.

그 저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며, 이를 약화시킬 방법은 악마들을 죽이고 최종적으로 마왕을 죽이는 것뿐이다.

 

이는 주인공이 그들을 잡아야 할 동기로 작용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성장에 타임리미트를 부여한다.

게임 내에 수많은 전투 외 컨텐츠가 존재함에도 결국은 전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적들을 죽이지 않으면 주인공이 서서히 죽어가니까.

결국은 용사가 되어 마왕을 죽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배드엔딩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게임이었을 때야 대충 넘어갔으나, 게임이 현실이 되었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여신의 흔적만 보이면 잡아 족치려 드는 악마 새끼들이 왜 굳이 용사 후보생인 프레아에게는 저주를 심는 번거로운 짓을 하는가.

 

또한 프롤로그에서 저주를 거는 악마는 왜 이후에 나타나지 않는가.

게임에서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저주를 걸었던 악마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악마라는 존재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용사가 아닌 이들에게 죽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으므로.


“뭐,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나는 열차에서 내려가 장막 속에 손을 뻗었다.

아무리 승리 불가능의 패배 이벤트라 해도 그건 게임 속의 이야기.

수도 없이 뒤틀린 현실 속에서는 절대적 패배란 그저 허상일 뿐이다.


손을 집어넣으려 하자 장막은 검은 불꽃을 터뜨리며 침입에 저항하였다.

이럴 때는 그들이 내게서 박탈해 간 마력이나 검기 같은 것들이 그리워졌다.

옛날이라면 이런 개고생을 안 했을 텐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손에 힘을 줬다.

 

그러자 미친 듯이 터지던 불꽃조차 압도적인 완력에 억눌리더니 이윽고 출입을 허용하였다.

들어오자마자 목격한 것은 예상했던 광경이다.

 

예상대로 프레아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구석에 기절해 있었고, 이 사태의 주범처럼 보이는 존재는 거만하게 하늘을 부유하며 저주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수많은 검은 구체들이 위협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그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는 사이 나는 프레아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여기서 그녀가 죽어버린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너는 누구지?”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둔 장막에 부딪히며 웅웅 울렸다.

위협적인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존재를 빤히 들여다봤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 거대한 검은 날개, 붉은 눈동자, 흰자위가 없는 눈, 그리고 길게 뻗은 뿔을 가진 그는 꽤나 미형의 생김새였다.


“그러는 넌 누구냐.”


나는 진심을 담아 물었다. 저놈은 도대체 누굴까.

내 질문에 그는 친절하게도 답해주었다.

 

“나는 마왕님의 심복이자, 대악마인 이올라. 인간, 너는 누구지?”

 

그의 대답에 나는 의문을 표한다.

 

“악마?”


“그렇다.”


“아니, 넌 악마가 아니야.”


단언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이올라는 당황한 듯 날개를 펄럭여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나는 그대로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땅에 내리꽂는다.

 

땅이 박살 나는 동시에 수많은 파편이 튀어 올랐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붙잡고는 땅에 처박았다.


“내가 악마를 잘 알거든? 근데 넌 악마가 아니야.”


손아귀에 붙잡힌 베르제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땅에 얼굴을 박았다.

 

“그만! 그만!”

 

안면이 갈려 피가 줄줄 흘러내리자 드디어 캐스팅이 취소되고, 프레아를 위협하던 검은 구체가 사라져갔다.

 

그 과정은 순식간이었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구체가 사라지는 와중 드러난 반짝거리는 무언가. 그것은 분명 신성의 흔적이다.

 

“너, 그 새끼의 끄나풀이구나?”

 

마경에서 수도 없이 죽였던 악마들이다.

힘을 박탈당했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지.

더군다나 신성을 쓰는 악마? 그야말로 개소리다.

 

그 빌어먹을 새끼는 악마에게까지 자신의 권능을 내릴 만큼 자비롭지 않다.

 

“그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지어다!”

 

이올라는 그 새끼라는 말에 격렬히 반응하며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제 정체를 숨기는 것조차 포기한 건지, 서서히 그의 날개는 흰색으로, 눈동자는 금색으로 물들며, 뿔은 빛나는 헤일로로 변모해 갔다.

 

“천사?”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래 봤자 성국의 성기사와 고위 성직자 몇명이 힘을 합쳐 연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천사가 튀어나오다니.

 

그가 변신으로 억누른 신성을 해방하니 그 존재감이 몇 배는 증폭되었다.

 

어느샌가 공간을 격리한 검은 장막 또한 흰색으로 변모하여 마치 거대한 신전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신을 모시는 천사, 그중 11번째 별에 속한 베르제. 현재 신의 의지를 집행하기 위해 이곳에 현현했다. 네놈은 누구길래 신의 의지를 막아서는가!”


지금까지 줄 곳 처맞던 놈이 다시금 풀려났다고 근엄한 척하는 꼴에 웃음이 나왔다.

 

저쪽 양반들은 항상 그랬지. 항상 근엄하고, 자비롭고 성스러운 척은 다 하지만 하는 짓을 추잡하고 위선적이기 그지없다.

 

저 역겨운 꼴을 오랜만에 보려 하니, 아무래도 데오니와의 약속은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깨질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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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4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5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4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5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7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0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19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4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4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4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7 마검 24.08.22 30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2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39 0 10쪽
»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59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2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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