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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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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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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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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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은혜 (2)

DUMMY

시온의 눈에 푸른 빛이 스쳤다. 동시에 검날에 빛이 깃든다.


“다쳐도 원망하지 마라.”


시온은 아무래도 단단히 화난 것 같았다. 내가 첫날의 대련 때 검기를 사용해도 된다고는 했지만, 끝까지 안 쓰다가 지금 와서야 사용하다니.

교수의 참관 없는 대련에서 검기 사용은 금지지만, 그런 모범생 마인드를 버릴 정도로 화가 난 것이리라. 아무래도, 드리컨을 언급한 게 그의 역린을 건드린듯했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차분한 말투, 차분한 성격만으로는 용사에게 도달할 수 없다. 그 이면에 가려진 건, 이기고 싶다는 마음. 내가 저 녀석을 쳐부수고 싶다는 마음이 숨겨져 있기에 그가 ‘가장 용사에 가까운 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전조 없이 시온의 검날이 찔러왔다. 드리컨 때에 비해서 적어도 두 배는 빠른 일격이다.

나는 드리컨이 그랬던 것처럼, 찔러 들어오는 검에 오히려 파고들어,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이 아닌 옆면을 막대기로 밀어냈다.

시온은 그 단순한 반격에도 자세가 불안정해졌다. 그 틈을 파고들어 막대기를 시온의 머리에 휘두른다.


“큭.”


체 자세를 바로잡지 못한 시온은, 내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을 굴렀다. 그리고선, 온몸에 먼지를 묻힌 체 겨우 일어난다.


“날카롭긴 날카롭구나.”


저 정도면, 기사 중에서도 쓸만한 편이다. 저 나이에,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검술로, 기사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 노력과 재능은 괴물 같은 것이겠지.


“하지만, 너무나 단조로워.”


어디로 찔러 들어올지, 그 전조 동작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시온이 팔을 뻗음과 동시에 나도 그를 향해 막대기를 휘둘렀다. 시온의 전조 동작으로 예상한 찌르기 경로는 한치의 다름도 없이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그의 검은 닿지 않고, 나는 그에게 닿을 수 있다.


[퍽!]


막대기가 시원한 타격음을 내며 시온의 팔을 때렸다.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 나쁜 일격이다.


“언제나 똑같아. 넌 그 단순함을 버려야 해.”


내가 강해서가 아니다.

시온은 오히려 검기가 있을 때,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해서 자세가 더 불안정해졌다.

그래서 그 자세를 보완하기 위해 더 안정적인 공격을 택했고, 그런 안정적인 공격은 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다시.”


내 말에, 시온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그 눈동자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서서히 탐색하듯 나의 주위를 걷는다.


[터벅. 터벅. 터벅]


검기로 강화된 발걸음은, 그 한 발짝 한 발짝에 무게가 실렸다. 저 상태라면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른다면,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겠지만, 그건 드리컨의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는 시온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다섯 발자국하고도 반이 된 시점.


“흡!”


시온의 공격이 들어왔다.

시온은 자세가 불안정해지지 않기 위해 극단적으로 짧은 찌르기를 선택했다. 그 와중에 찌르기를 고집하는 걸 보면,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하나, 짧은 찌르기로 내게 상처를 입히려 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그의 검날을 몸을 살짝 틀어 피하고선, 오히려 그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찌르기로 자세가 불안정해지진 않았지만, 내가 달려들 것을 예상 못했는지 시온은 뒷걸음질 치는 과정에서 발을 헛디뎠다. 그리고는 꼴사납게 넘어졌다.


나는 풀썩 넘어진 시온에가 다가가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윽.”


“이제 좀 알겠냐? 네 방식 대로는 절대 네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걸.”


시온은 넘어진 자세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넌.... 어떻게 아버지의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거지?”


“뭐?”


“어떻게 단 한 번만 보고 그걸 따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야, 난 수십 년간 이 검술을 썼으니까 이새끼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변명을 지어낼 뿐.


“천재니까?”


“그럼 나는.”


“너도 천재지.”


“그럼 내가 노력하면 아버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녀석도 기본적으로 용사 후보생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겠지. 물론 평범한 용사 후보생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드리컨 또한 재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은 천재임과 동시에 용사 후보생이다.


“네가 그 이상한 검술을 포기한다면. 가능하겠지.”


“....”


시온은 계속해서 고민했다. 자신이 수년간 연습해온 검술을 바로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하지만 더 나아가기 위해선 포기해야 했다. 시온에게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 내가 이런 대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내 노력이 닿았는지, 시온은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다.


“이건 포기하겠다. 그 대신”


그는 말을 끊고 나를 바라봤다.


“네가 나를 책임져 줘야 한다.”


시온이 징그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손을 내밀었다. 곱상하게 생긴 놈이 저 지랄하니까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뭐래 이 미친 새끼가. 혼자 일어서라. 검술은 책임져 줄 테니까.”


그를 버리고 가자, 시온은 혼자서 일어서더니 피식 웃었다.


저 녀석, 진짜 머리를 잘못 맞은 게 분명했다.




#




“일주일 지나도 반응이 없네.”


“뭐, 벌써 반응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


데오니는 마검의 봉인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쪽에는 영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딱히 봉인에 문제점은 없네요. 다시 일주일 뒤에 점검하러 오면 될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마검을 허리에 다시 찼다.


“그러고 보니 용사님. 요즘 그 레이비니아? 라는 학생이랑 자주 다닌다면서요.”


“어, 요즘같이 다니고 있지.”


내 대답에 데오니가 아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거 아니죠?”


“너는 날 뭐로 보는 거냐.”


“하긴 용사님이 그러실 리 없죠. 근데 그러면 왜 그렇게 챙기시는데요? 프레아인가 그 애가 용사 후보생 아니었어요?”


나는 데오니에게 이걸 말해도 될까 잠시 고민했다.


“저한테 말 못 할 이유라도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불안정한 정신, 천재적인 두뇌, 압도적인 마법 재능. 이건 레비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레비를 보면, 왠지 네 어릴 때가 생각나서.”


“네?”


나는 데오니에게 레비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어쩌면, 데오니도 비슷한 시절을 겪었으니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용사님은 그 레비라는 학생이랑 저를 동실시 하고 있다는 거죠?”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돕고 싶은 거지.”


레비와 데오니의 상황이 비슷한 건 맞았으나, 내가 레비를 도우려 하는 건 운명을 바꿔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다.


“그럼 주말에 밖에 데리고 나가봐요.”


데오니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밖에 데리고 나가라니. 바람이라도 쐬라는 건가.


“용사님이랑 처음 만났을 때 제 상태 기억하세요?”


“기억 못할 리가.”


그녀는 엘프 도시 아발린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정신이 멀쩡했을 리 없겠지.

매일 밤 비명을 지르며, 온갖 마물은 다 불러 모았기에, 기절이라도 시켜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엘프 장로 중 한 명과 약속하지 않았다면, 분명 버리고 갔겠지.


“용사님은 몰랐겠지만, 그때도 용사님이 저를 데리고 인간의 도시에 간 날에는 편하게 잤어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좋았거든요. 무너진 도시 대신, 저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도시를 우리 도시라 생각하고 자는 거죠.”


지금 기억을 되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소녀도 지금은 괜찮다면서요. 아마, 용사님 따라 그 마물 연구부에서 행복한 기억을 가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확실히, 마물 연구부에 들어오고 나서, 레비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더 이상 소리 지르거나 발작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불안증세나, 환청, 약한 자해의 흔적 정도는 있었지만.


“뭐, 정확한 건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요. 밖에서 맛있는 거라도 먹이면서 물어봐요. 대화를 하다 보면, 레이비니아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라도 해봐야겠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는 게 좋겠지. 그게 운명을 비틀어버린 자의 도리일 것이다. 내일은 레비와 함께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나가서 뭘 할지는 어떻게 정해야 하나.


“그래도 부럽네요.”


“뭐가.”


대충 일정을 짜고 있는데, 데오니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용사님이 그 학생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있잖아요. 내가 힘들 때, 용사님은 술이나 던져줬었는데.”


“....”


데오니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내 오랜 죄책감이 다시금 떠오른다.

주위는 둘러보지 않던 시절, 약속 때문에 떠맡은 데오니는 내게 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그 여렸던 소녀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키웠지. 지금 이렇게 자란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준이다.


나는 데오니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죄책감을 느낄 뿐.


“미안하다.”


“뭐, 괜찮아요. 저도 그때 용사님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금은 아니까.”


데오니는 살짝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대신 레이비니아 한테는 실수하지 마요. 우리 마법학부의 중요한 학생이니까.”


“그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지.”


#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지키지 못했다.


가르티나 거주구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건,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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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레이비니아 노아 (6) 24.09.04 13 0 11쪽
26 레이비니아 노아 (5) 24.09.03 12 0 15쪽
25 레이비니아 노아 (4) 24.09.02 14 0 15쪽
24 레이비니아 노아 (3) 24.09.01 13 0 11쪽
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5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 스승의 은혜 (2) 24.08.30 16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3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8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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