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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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최근연재일 :
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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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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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비니아 노아 (7)

DUMMY

“네 눈으로 확인한다며, 여기 있잖아.”


애초에,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게 밝혀진 이상 내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드래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저 외면하고 있었다.


“대화가 통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


“너는 지금 이게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냐? 안 그래도 정신이 불안정한데 마기까지 흡수하고도 정신이 멀쩡하길 바라는 거야?”


어쩌면 지금도 외면하고 있을지도. 계속 의미 없는 질문만 반복하는 걸 보면.


그런 내 태도가 답답했는지, 악마는 한숨을 쉬고선 마력 폭풍에 손을 겨눴다. 그 끝에서 용언이 피어오른다.


“네가 안 한다면, 나라도 할 거다. 기습하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악마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악마에게 다가가 손끝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용언을 움켜쥐었다.


[치익-.]


채 만개하지 못한 그것은 힘없는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선택은 내가 한다.”


악마 따위에게 맡길 수 없다. 살린다면 내가 살리고, 죽인다면 내가 죽인다. 적어도 그게 맞을 것이다.


나는 마력 폭풍에게 다가가,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내린다.

검 끝에 시선을 맞추고, 다시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다시 내린다.

모든 잡념은 없애고, 오로지 한 문장만을 머릿속에 남겼다.


‘저것을 벤다.’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붙잡은 오른손에 핏줄이 돋아나며, 인간을 넘어선 완력이 검에 실렸다.

그저 검으로 저 거대한 마력의 폭풍을 베어낼 뿐이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


허나, 운명은 내게 그 간단한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콰가가가가각!]


알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마력 폭풍이 억지로 갈라지며, 마기를 집어삼켰다.


“이런 미친!”


당황한 악마는 욕설을 내뱉으며, 용언을 사용했다.


"달려!"


악마의 발밑에서 전격이 튀어 올랐다. 그녀는 내 뒷덜미를 붙잡고선 빠른 속도로 마력 폭풍의 범위에서 빠져나갔다.


마력 폭풍이 광장을 가득 채운 마기를 모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광장을 완전히 벗어난 후에야, 그것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 머뭇거리다가 결국 일 났네.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짝퉁 용사.”


악마는 마력 폭풍이 서서히 줄어드는 걸 바라보며 내게 추궁했다.

저 멀리, 마력 폭풍이 줄어들고 있는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쩔 거냐는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아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대답 대신, 검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갔다.

레비의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할 수 있냐?”


“몰라.”


모른다. 내가 레비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레비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




이상권역의 중심에서, 가만히 서 있는 레비는 언뜻 멀쩡해 보이기도 했다.

보라색 단발머리에 작은 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내가 알던 그 레이비니아 노아가 맞았다.

항상 말을 더듬고 낯을 가리던 소녀.


하지만, 레비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마치, 요정처럼 땅 위를 떠다니며, 세상을 관조하는 그 눈은 너무나도 공허했다.


그 눈빛이 서서히 내게로 향한다.


“로...벤토?”


나와 눈이 마주친 레비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모습에서 이성이 느껴졌다.


“레비?”


한순간 비친 희망에 나는 레비에게 뛰어갔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레비가 정신을 차린다면 이 악몽도 모조리 끝날 테니까.


"로벤토....”


“그래, 로벤토 여기 있다. 정신이 들어?”


레비는 혼란스러운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나를 죽일 거야?”


“뭐?”


소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레비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레비의 불안은 증폭되어 갔다.

눈빛이 흔들리고, 몸이 비정상적으로 떨렸다. 그리고, 불안이 어느 임계치를 넘어서자, 갑자기 레비의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이성의 편린이 사라진 것처럼.


무표정된 레비가 천천히 손끝을 들어, 내게 겨눴다.


하늘에 문양이 떠오르며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그 시간은 0.1초도 안 되는 찰나였지만, 본능적인 감각이 내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천뢰(天雷)]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세상이 한순간 백색으로 점멸했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내려친 번개는, 내가 서 있었던 자리에 커다란 파괴의 흔적을 남기고 소멸했다. 굉음은 뒤늦게 도착해,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을 냈다.


이건 용언이다. 레비는 악마와 만난 그 잠시동안, 이상권역 뿐만 아니라 용언마저 이해한 것이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재능이다.


레비는 그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저를... 죽일 거예요?“


“....”


나는 이제,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초점 없는 레비의 눈빛에서, 더 이상 이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미안해요....”


소녀가 내게 사과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를 내게 비춰보고 있는 것일지도.


“내가 미안해요....”


레비는 초점 잃은 눈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 죽어버린 눈은, 하늘을 담고 있었다.

마경의 하늘은 여전히 마기로 넘실거린다.


“레비, 제발 이상권역을 해제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쳤지만 레비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발, 해제하라고!”


차마, 포기할 수 없어 몇번이나 소리쳐도 똑같았다.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마기가 레비의 주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소녀의 의식이 서서히 침잠하고 있었다.

마치, 거주구에서 떠돌고 있던 검은 괴물처럼. 소녀는 같은 행동과 말을 반복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자, 내 머릿속의 단어들도 다시금 조립되기 시작했다. 내게도 동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나는 다시금 검을 움켜쥐었다.

이성을 잃은 레비는 듣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건 내게 하는 말이었다.


“모두 내 잘못이다.”


레비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럼에도 레비는 가만히 서서 하늘만을 바라봤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검을 휘둘렀다.


[캉!]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이 튕겨져 나왔다. 투명한 벽이 레비를 보호하고 있었다. 미리 마법을 사용해둔 건가.


다시 검을 갈무리하고, 다시 레비를 쳐다봤다.

소녀는 아직도 무표정이다.


“나는 왜 죽어야 해?”


소녀가, 이전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아, 나는 전력을 다해 벽을 내리쳤다.


[콰아앙!!]


레비가 생성한 실드가 거세게 진동하며,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기초마법인 실드는 레비의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인해. 마치 성벽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쾅! 콰앙!]


그러나, 계속해서 내려치자, 그것조차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드의 균열 사이로 가만히 서 있는 레비의 얼굴이 비쳤다.

계속 무표정이던 레비의 얼굴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실드를 내리쳤다.


[쩌저저적-]


마침내 실드가 갈라지고 그 파편이 흩날렸다.


동시에 레비의 입에서 용언이 흘러나왔다.


[백화만상(百花萬想)]


그 목소리에, 떨어지던 파편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내게 쏘아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뛰어올라 파편을 피했지만, 몇 개의 파편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방향을 틀어 내게 꽂혔다.


“큭....”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도, 멈출 수 없다.

대기의 마력이 진동하고 있었다.


레비의 손짓에 수십 개의 회로가 허공에 떠오르며, 나를 겨눴다.


‘이건 못 피한다. 그러니’


벤다.


용언이 아닌 마법은 벨 수 있다.


회로에 시각을 집중하자, 대기 중에 얽힌 복잡한 마력 흐름이 드러났다.

모든 회로를 베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장 까다로운 전격 계열 마법을 향해 뛰어올랐다.


[파지직-]


거의 완성된 마법은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처럼 당장 쏘아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복잡한 회로의 곁가지는 쳐내고 그 핵심을 파악했다.


종류는 연쇄, 위력은 보통, 체인 라이트닝의 변형이다.

회로의 핵심은 12시 방향의 문자.


오로지 물리력만을 담아 단숨에 베었다. 한 번의 검격에, 총 7개의 전격 마법 회로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멸했다.

그 시간에, 나머지의 회로들은 완성되어, 발사 대기를 마쳤다.


저것들은 더 이상 벨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마법 회로 대신, 레비에게 돌진했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부수고, 앞에서 날아오는 바람 칼날을 피했다.

다시 마법을 시전할 시간을 주면 안 되었기에, 마법에 대처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간다.


[콰득!]


빙결 마법에 다리가 얼어붙어도, 억지로 떼어내며 달렸다. 발목의 살점이 뜯어진 것 같지만, 아픔을 느낄 틈도 없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레비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허나, 더 이상 안일해질 수 없다.

전력을 다한 각력으로 가속을 받은 체, 그대로 검격을 실드에 부딪혔다.


꽈드드드드득!


검에 담긴 압도적인 물리력이 강화된 실드를 뜯어내며, 부서뜨렸다.

소녀는 다시 한번 용언으로 그 파편을 쏘아냈지만, 나는 더 이상 그걸 피하지 않았다.


실드의 파편이 몸에 모조리 박혔다.

파편이 박힌 곳에서 피와 함께 저주문이 흘러나왔지만, 내게 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기에.


나는 그대로 검을 뻗어 레이비니아의 목에 겨눴다.

검날이, 레비의 목에 닿았다.


“레이비니아 노아.”


그 이름을 불렀다.

눈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레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째선지 나의 표정도 떠올리기 힘들었다.


너를 죽이려는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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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레이비니아 노아 (4) 24.09.02 13 0 15쪽
24 레이비니아 노아 (3) 24.09.01 13 0 11쪽
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4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5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4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5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0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19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4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7 마검 24.08.22 30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39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59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2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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