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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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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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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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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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은 늦은 지원생

DUMMY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

 

그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지 100년이 넘었지만, 슬슬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 내 신체는 바로 어제의 일처럼 게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엔딩 조건, 히든피스, 특수 이벤트, 히든 장비의 습득 방법까지.

원한다면 아카데미 안의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군.’

 

이대로는 마왕을 저지하지 못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모든 히든피스를 독식해서 마왕의 대적자가 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현재 시점에서 내 영혼에는 온갖 금제가 덕지덕지 발려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히든피스들은 내가 사용할 수 없다.

 

사실 이것도 원래라면 이런 건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내 한 몸 건사할 힘은 있고, 돈도 충분하니. 주인공이 마왕을 잡을 때까지 어딘가에서 죽치고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하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게임 스토리 상에서 주인공의 진행에 필수적인 보스나, 조력자들 몇몇을 내가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즉 내가 용사의 성장을 위한 발판들을 없애 버렸다는 뜻이다.

내가 망했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저절로 마왕의 대적자로 성장하길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짓이겠지.


그러나 여전히 마왕과 맞설 잠재력이 있는 것은 주인공뿐이었다.

 

아무리 히든피스를 퍼붓고 모든 것을 독식한다 하더라도 마왕에게 닿는 것은 압도적인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

세상이 좆되는 꼴을 보기 싫다면, 내가 뒤틀어 버린 이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을 어떻게든 마왕의 대적자로 키워야 한다.

 

“데오니, 아카데미 개학일이 언제지?”

 

“다음 달 2일에 개학 예정이에요.”

 

데오니는 내가 살펴보던 서류들을 정리하며 안경을 쓸어올렸다.

 

“학기 초는 바빠서 저도 한동안은 마경에 못 돌아올 것 같은데, 그때까지 밥 잘 챙겨 먹어야 해요.”

 

그녀는 아카데미의 마법학 수석 교수의 위치에 있기에, 수많은 유망주가 들어오는 올해는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마냥 이곳에 죽치고 앉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혹시 아카데미에 교수 자리나 조교 자리, 남는 곳 있나?”

 

“네?”


반문하는 데오니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물어보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용사 후보생들을 직접 보고 싶은데.”

 

“갑자기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내 표정이 진지했기에 그녀도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제가 교수로 있는 마법 학부에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용사님은 마법을 못 쓰잖아요.”

 

데오니가 아픈 곳을 찔렀다.

 

확실히, 단순한 기초 마법은 물론, 마도구도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하니 마법학부에는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일반인보다 못한 마법 실력으론 낙하산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기사학부 쪽에는 제가 추천장을 써줄 권한이 없어서.”

 

“그렇군....”

 

명백한 내 실책이다.

 

과거에 워낙 깽판을 쳐놔서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의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생각했다.

게임 속 주요 인물 중 몇몇이 죽거나, 태어나지도 못했기에, 당연히 이야기도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주인공과 마왕이 다시 나타났을 경우를 대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데오니가 용사 후보생이 나타났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주인공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학생으로 들어가야 하나.”


“네?”

 

데오니는 다시 한번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긴, 나라도 100살은 족히 먹은 노인네가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말하면 그놈의 대가리를 후려쳐 버리겠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내 머리를 후려치는 일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별수 있나. 교직원으로 들어가는 게 힘들다면 학생으로 들어가야지.”


“그건 그렇지만..... 아니, 애초에 왜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게 전제인 건데요?”

 

그 점에 있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유를 설명하려면 내가 온 세상부터, 게임 이야기까지 다 꺼내야 할 텐데, 그녀가 과연 그 얘기를 믿을까?

아무리 데오니라도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미친놈 비슷한 것이긴 했고.

 

그러니 나는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그 모습에 데오니도 다시 한숨을 쉬더니 새로운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에휴.... 알겠어요. 용사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이유가 있겠죠. 관련 서류는 제가 준비해 둘게요. 입학시험에 넣어 놓으면 되죠? 기사학부 인가요?”

 

“그래, 기사학부.”


“마법학부로 들어오셨으면 제가 한껏 부려 먹었을 텐데 아쉽네요.”


찡긋 웃으며 농담하는 데오니의 모습은 그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항상 부탁만 해서 미안해.”


사과하며 데오니의 연분홍빛 곱슬머리를 한껏 헝클어뜨리자,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지금은 그저 머리 하나 정도 작을 뿐이지만, 그녀의 소녀 시절을 더 많이 바라본 입장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이 마냥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나와 관계되는 것은 하등 손해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탁을 들어주는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더욱.


“알면 아카데미에서 사고나 치지 마세요.”


그녀는 입을 삐쭉 내밀며 서류를 정리하러 내려갔다.

 

그 부탁은 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는 나의 마지막 대답은 듣지 못한 체.

 

 

#

 

 

이 세상의 용사 육성은 기본적으로 스파르타식이다.

대충 시련이 있어야 용사의 성장이 있고 그래야 진정한 용사의 힘을 깨울 수 있다나 뭐라나.

 

그 광신도들이 신봉하는 경전에 쓰여 있는 걸 보긴 했는데, 그 때문에 개 같이 굴려지다 죽어가는 용사 후보생 입장에서는 그저 개소리일 뿐이다.


‘내가 아마 172번째 용사 후보생이라 했나.’


처음 소환되었을 때 아무것도 없이, 그저 검 한 자루만 들고 마경을 100일 동안 헤맸던 것을 생각하면 내 앞의 171명의 용사 후보생이 역사에 남겨지지도 않은 채 죽어버린 것도 이해는 갔다.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운이 없었으면 나 또한 그냥 스쳐 지나가는 172번째 용사 후보생이 되었을 테니.

그리고 내 앞의 이 소녀는 이번 시대의 용사 후보생. 어두운 은발에 깊은 흑안, 검은색 케이프를 두른 소녀는 눈매 때문에 다소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 모습은 RPG 게임의 표지에 당당히 그려져 있던 주인공의 모습과 같다.

비록 주인공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늑대 털 망토와 성검은 없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소녀는 분명 그녀가 맞았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다소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과거의 추억이 떠올라 한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심기에 거슬린 것처럼 보였다.


“아, 미안합니다. 혹시 아카데미 지원생인가 해서 말이죠.”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하자 그녀의 기세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쪽도 아카데미 지원생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다소 차가운 태도였지만, 그녀로서도 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용사 후보생으로 발탁된 이후 얼마 동안 높으신 분들의 지시와 주의 사항을 들어왔을 테니까.


“열차 안에서 제 앞자리에 저와 같이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귀족은 대부분 특별 입학 아닌가요?”


“아. 저는 딱히 특출난 집안 출신은 아니어서요.”


“아....”


그녀는 비교적 깔끔한 내 외모와 복장을 빤히 바라봤다.

보통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이들은 평민 또는 최하위 귀족. 긴 여행 동안 그리 멀끔한 외모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당연하리라.


“저는 프레아라고 해요. 당신과 같은 아카데미 지원생.”


“저는 로벤토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한 후, 프레아는 별말 없이 열차의 창밖을 바라봤다.

 

나 또한 그러고 싶었지만, 그녀와는 어느 정도 친해질 필요가 있었으니 최대한 말을 걸어 보았다.


“혹시 어떤 학부로 지원하시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그쪽은? 아무것도 안 들고 다니는 걸 보니 마법 학부? 신학부?”


“아니요. 기사학부로 지원하려 합니다. 머리 쓰는 건 영 자신이 없어서요.”


내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당연하게도 그곳은 그녀가 지원하는 학부니까 의심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 학부는 원래 입학시험 지원생이 가장 많은 학부.

내가 그곳에 지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 입장에서는 조금 찝찝할 뿐.


“혹시 프레아 씨도 기사학부에 지원하시나요?”


“뭐. 그렇죠.”


그녀의 미적지근한 대답을 듣고 나는 다시 그녀의 검은 눈을 바라봤다.

 

프레아 하이안, 이 세계의 주인공. 그림에서 현실로 옮겨졌음에도 단번에 알아볼 만큼 완벽히 게임과 동일한 외모다.

분명, 외모는 완벽하다. 그러나 나는 지구에서 소환된 이계의 존재. 그렇기에 떠올릴 수 있는 의문이 있다.


‘그녀의 내용물 또한 주인공일까?’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계속 떠올렸던 의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마법의 힘으로 지구로부터 소환되었다. 그리고 이계에서의 소환이 존재한다면, 빙의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나는 오로지 나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통 플레이어와 동일시되는 것은 주인공.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과연, 내 앞에 있는 이 소녀는 진짜 ‘프레아 하이안’이 맞는가.

 

아니면, 이 게임을 플레이하다 갑자기 소환된 나처럼, 이 게임을 플레이하다 주인공의 몸을 차지하게 된 빙의자 일까.

 

그 의문을 해소하려 나는 그녀에게 하나의 언어를 말했다.


“아카데미 F반의 잿빛 용사님”


의문을 풀기 위해 내가 내뱉은 것은 제국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규모 왕국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며, 용언 같은 거창한 언어도 아니다.


“혹시 이 문장의 의미를 아십니까?”


그것은 이 세상을 본뜬, 아니면 이 세상이 본뜬 게임의 제목.

 

나는 지구의 언어로 된 제목을 그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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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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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7 0 9쪽
7 마검 24.08.22 30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39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2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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