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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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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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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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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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시험 (3)

DUMMY

한순간 로벤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항상 담담하고, 조금은 친절하게도 보였던 그가, 검을 꺼내자, 주위의 공기가 이상하리만치 무거워졌다. 담담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지독할 정도의 살의가 느껴진다.

 

‘무서워.’

 

너무나도 무서웠다. 마물을 처음 봤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당장이라도 저 남자가 검을 휘둘러 내 살갗을 조각내버릴 것 같다.

 

교수님의 시작 신호가 울리자마자 뛰쳐나올 것만 같던 그는 신호가 들렸음에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은색의 검을 늘어뜨린 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 모습이 더욱 공포감을 자아냈다. 다가가면 베일 것 같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에게서 네 걸음 정도 남겨놨을 때쯤, 다시 한 발짝.

 

[푹]

 

마지막 발자국이 땅에 닿자마자, 현실감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몸을 비틀었음에도,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로벤토의 검이 가죽 갑옷을 뚫고 옆구리를 찔렀다.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그 고통에 짓눌려 뒷걸음질 치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피가 새어 나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도 로벤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교수가 내게 눈으로 포기할 건지 묻는다. 흘러나오는 피와 죽음의 공포가 나를 계속해서 몰아세웠지만, 여기서 항복한다면 그대로 탈락이겠지.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했으니.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다시금, 검을 붙잡고 로벤토의 눈을 응시했다. 여전히 느껴지는 살의, 그는 정말로 나를 죽이고 싶은 것일까.

 

알 수 없는 질문은 뒤로하고, 다시금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이전에 로벤토가 반응했던 위치까지 걸어간다. 여기서 앞으로 한발,

 

“후우....”

 

한번 숨을 내쉬고는 다시 발을 내디뎌 본다.

 

[슥-]

 

발걸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로벤토의 검이 팔을 베었다. 그의 검이 올 것을 의식하고 있어도 피하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그가 가죽 갑옷을 완전히 뚫지 못하고 팔의 절반만 베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힘으로 시온을 제압했던 그가 진검을 들고, 겨우 가죽 갑옷조차 베어내지 못했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그걸 따질 거면, 애초에 땅에서 발을 떼지 않는 것부터 이상했지만.

 

다행히도 두 번의 시도 끝에 그가 검을 휘두르는 범위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단 세 걸음. 그 영역을 가늠하며 다시금 그 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실패로 인해 한 발짝 내딛는 과정이 두렵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었다. 배와 팔의 상처가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시간 끌기는 불가능했다.

그의 범위 안으로 들어가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검이 날아온다. 이번에는 어깨. 이번에는 피하는 것을 택하는 대신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옆으로 내질러 막아냈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불안정한 자세로 막을 수밖에 없었으나, 검과 검이 닿자마자 그의 검은 아무런 힘도 없이 허무하게 튕겨 나가버렸다. 그럼,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찌르기를....

 

“아.”

 

복부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미 상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그가 형편없는 힘을 줘서 휘두른 칼이라곤 해도, 그 속도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인데, 무리하게 반격하려다 배를 깊게 찔렸다.

 

이때까지 당한 상처들과는 결이 달랐다. 내장을 다쳤는지 피가 울컥울컥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느껴본 적 없는 한기. 죽음이 근접한 게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본 교수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대련을 중지하려 했다.

 

“여기까지 하지. 승자는....”

 

“아직... 아직 할 수 있어요.”

 

나는 손을 들어 교수의 선언을 막았다. 아직, 아직 할 수 있었다. 한 손으로 복부의 상처를 막고 비척비척 걸어갔다.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기 전에, 그를 이겨야 했다.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붉은 피가 떨어져 흔적을 남겼다.

신비로웠던 은색의 머리칼조차 붉은색으로 물들어 기괴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도달한 그곳에는 여전히 그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체, 석상처럼 서 있었다.

 

나는 그를 꺾어야만 했다. 이곳에서 쓰러지더라도, 나는 용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내가 나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갈게요.”

 

조그맣게 읊조린 그 말은, 로벤토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더 이상 발을 딛기 두려워하는 나를 위한 선언이다.

 

아마 죽어버릴 수도 있겠지. 악마와의 혈투도 아니고, 겨우 대련에서 죽어버리다니, 꿈꿨던 용사의 최후라기에는 좀 많이 처량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리 잘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라, 이런 일에도 목숨을 걸어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쥔다.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한순간 뛰어올랐다. 어설픈 자세였지만, 어쨌거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반면, 로벤토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정확한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분명 그의 검이 나에게 먼저 닿을 게 분명했으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막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가 휘두른 검이 몸에 박힌 체, 그대로 로벤토에게 달려들었다. 어깨에 박힌 검이 더 깊숙이 파고들어,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다.

 

그와 동시에 로벤토의 목을 향해 쓰러지듯 검을 내질렀다. 닿았다. 이건 분명 그에게 닿았다. 그리고

 

“기권입니다.”

 

그의 목에 닿기 직전에 들린 기권 선언에, 나의 검은 결국 그에게 닿지 못했다.

 

 

#

 

 

시험을 마치고, 데오니와 나는 타르카에게서 온 마검의 봉인을 조정하고 있었다. 그 서늘한 검신을 특수 봉인구에 집어넣고 최대한 안전하게 연구를 진행하려 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요.”

 

“뭐가.”

 

“그 용사 후보생 말이에요. 대충 상대하고 넘어갈 수 있었잖아요.”

 

내가 용사 후보생을 챙기는 것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데오니는 마음이 여렸다. 내가 프레아를 상대로 손속이 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요했던 일이야.”

 

별다른 설명 없이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필요한 일이라고.

 

“이동 금지, 급소 공격 금지. 평균 이하의 힘. 이 모든 제약을 걸고 대련했다. 이 정도도 넘어서지 못한다면, 진작 그만둬야지 용사 같은 건.”

 

그러나 프레아는 무의식적으로 이 제약들을 파악해 마침내 내게 닿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죽음을 감수하고 내게 도전했다.

만약 제약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찔렸던 상처들에 겁먹어 대련을 포기했다면, 나 또한 그녀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알던 프레아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너도 알잖아. 용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용사는 언제나 죽음을 품고 살아간다. 죽음은 마치 용사가 되기 위한 담금질과 같아서,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힘을 담기 위하여 수십, 수백 번은 경험해야만 한다.

 

“....”

 

데오니가 아무 말 없이 나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꼰대 같아요.”

 

그녀가 뾰루퉁하게 내뱉은 말에 내 흠칫 몸이 떨렸다.

 

“그거야 용사님이 워낙 무식하게 용사가 돼서 그렇죠. 옛날처럼 무작정 마경에 집어넣고 보는 시대는 지났다구요.”

 

실제로 나이는 100살이 넘은 인간이었으니, 꼰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데오니에게 듣는 그 단어는 파괴력이 달랐다. 꼰대, 무식, 그 두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아무튼, 교육을 핑계로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뜻이에요.”

 

“알겠어....”

 

다소 시무룩해진 나를 뒤로하고 데오니는 마검 봉인구를 완전히 안정시켰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님에도 대화 도중 끊임없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이 검에 든 영혼은 도대체 뭘까.”

 

한순간이지만, 신격이 새긴 저주마저 압도하는 마력량은 적어도 드래곤은 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검에 담긴 인격은 온전하다 못해 주인을 집어삼킬 수준으로 자유분방하다.

이처럼 정교한 영혼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에고 소드용 인공영혼이 아닌, 실제 존재하였던 이의 영혼이 검에 봉인된 것이라 보는 게 맞았다.

 

“모르죠. 그게 앞으로 제가 밝혀내야 할 일이고요.”

 

데오니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여러 가지 서류를 꺼냈다. 안정된 마검을 당장 지금부터 연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응?”

 

“어차피 마법 관련 연구라 도움도 안 될 텐데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요. 아무리 학부가 다르다고 해도 1학년이면 마법학도 들을텐데, 교수 연구실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 거에요.”

 

마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 데오니의 말투는 쌀쌀맞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에 나는 군말 없이 그녀의 연구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아카데미 연구동의 복도와 계단은 실용성을 중시한 것인지 아무런 장식 없이 쭉 뻗어 있었다. 물론 복도와 계단 모두가 마법으로 강화된 대리석으로 이뤄진 걸 생각하면, 돈을 아껴 건물을 지은 건 아니었다. 그저 실용성을 중시한 것이겠지. 이 정도면 웬만한 마법으로는 생채기도 나지 않을 터였다.

 

대리석의 강도를 시험해보기 위해 괜히 벽을 꾹꾹 눌러보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긴 복도를 지나 마침내 내려가는 계단에 도착했을 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아.”

 

나는 그 소녀를 보자마자, 짧은 탄성과 함께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 잠깐의 멈칫거림이 실수였다.

 

“너는 누구지? 이곳은 교수 연구동인데.”

 

화려한 프릴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이상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묘한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

나는 잠시 굳었던 정신을 깨우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길 가다가 어린 소녀를 만난 친절한 사람처럼 대답했다.

 

“난 아카데미 교수님의 가족인데. 넌 누구니? 혹시 길을 잃었니? 도와줄까?”

 

어린애 취급하는 듯한 말투에 소녀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본녀는 이 아카데미의 교수다.”

 

“어?”

 

소녀가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말에,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금 굳었다.

이 소녀갸? 이 괴물 딱지가 아카데미 교수로 있다고?

 

“아카데미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근무하고 있으므로 다음부터는 겉모습으로 남을 재단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교수 연구동에 출입할 때는 방문증을 꼭 패용하도록.”

 

다행히도 자신을 교수라고 주장하는 이 소녀가 나를 알아본 것은 아닌 듯, 별다른 추궁 없이 가라며 손짓했다. 나는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건넨 후, 이 현장을 벗어나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1층에 다다랐을 때.

 

“잠깐만.”

 

소녀의 형체가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 지나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앞에서 튀어나온 걸까.

 

“혹시 자네, 본녀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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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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