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전직 용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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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아
작품등록일 :
2024.08.20 22:56
최근연재일 :
2024.09.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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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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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비니아 노아 (6)

DUMMY

소녀는 마치 태아처럼, 거대한 마력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안에서 조용히 웅크리며 자신도 세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서서히 침잠하는 기억 속에서 소녀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지나,

끔찍했던 마탑의 고통을 겪고,

절망적이었던 부모님의 죽음을 되새겼다.


재능을 질투한 스승도 떠올렸으며,

아이들을 착취했던 고아원도 회고하고.

심장을 원했던 늙은 마법사에 대한 기억도 상기했다.


그리고 소녀가 마침내 떠올린 건.


“로벤토....”


검은 세상 속에서 소녀가 속삭였다.


그저, 무관심하게 손 내밀었던 소년.

소녀의 지성도, 소녀의 마법도 관심 없다는 듯이 그저 온기만을 나눠줬던 그 소년을 떠올렸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따뜻했던 온기.

그 온기를 구원 삼아 소녀는 끝없이 침잠했다.


언젠가 찾아올 용사님을 기다리며.




#




레비의 상태를 확인하게 위해, 이상권역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악마가 설명한 위치인 거주구 중앙 교회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가는 길마다 있는 검은 괴물들이 문제였다.


내 몸은 그 끔찍했던 전투를 다시 반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한곳에 수백 마리나 모여있는 그것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그것들을 피해, 우회하는 경로를 택했다.


“추정 30마리 정도. 한 마리는 덩치가 거대한 걸로 봐서 여러 마리가 붙어있는 것 같다.”


괴물의 인식범위 바깥에서 그것들은 관찰했다. 이 길은 다른 곳보다 검은 괴물의 수가 훨씬 적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수를 지금 몸 상태로 잡을 수 있을까?


“이 정도면 괜찮겠는데. 어때? 용사 비스무리한 놈.”


“30마리라도 나에게는 상성이 너무 최악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만약 네 말대로....”


레비를 상대하려면 힘을 아껴야 한다는 뒷말은 삼켰다. 일단 그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여기서 힘을 빼는 건 위험했다. 아직 저 악마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기에.

악마의 앞에서는 언제나 배신을 생각해야 한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악마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스트레칭하듯이 기지개를 켜고는, 검은 괴물에게 다가갔다.


“그럼 이 정도는 내가 해치워 줄게!”


쾌활한 목소리로 내게 선언하는 그 악마는 뭐랄까... 도저히 악마 같아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 공간에 동화될까 두려워했던 건 어디 가고 저런 기분이 됐을까.


“어디 보자....”


자신있게 괴물의 앞에 선 악마는,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위로 향한 체, 가느다란 검지와 중지를 그것에게 겨눈다. 그러자 악마의 손끝에서 복잡한 문양 하나가 떠올랐다.


마치, 하나의 꽃송이처럼 피어난 그것은, 붉은빛이었다.

온통 흑백의 세상에 오로지 그 문양만 붉은빛이 되어 서서히 밝아졌다.


그녀가 피워 올린 문양이 너무 밝아지자, 하늘을 쳐다보던 검은 괴물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 아 ...f̴̬̫̬͑̅͊͑͝....][아..... 아...][아 à̵̗̈́. ...?빠ʤ....][아.... à̵̗̈́ .....][아à̵̗̈́... ..빠... r̶͓̱̣̞̾͐̎̈́..�͎͕..][아....◇∮?빠....][아..�͎͕ .. 아 ..�͎͕ʤ◇∮ㄴ?빠....][아... 아 ...r̶͓̱̣̞̾͐̎̈́...?�͎͕ʤ.][아à̵̗̈́... ..빠... r̶͓̱̣̞̾͐̎̈́..]


인간을 흉내 내는 기괴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 눈빛이 악마에게로 향했다.

허나, 악마에게서 동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던 검은 괴물들은, 그것을 눈치챘는지 악마를 직접 ‘동화’시키러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놈 하나는 위협적인 쿵쿵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악마에게 질주했다.


허나, 그녀는 달려오는 검은 괴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끝의 문양에 집중했다.


문양의 붉은 빛이 노란 빛으로 변하고, 노란 빛은 마침내 백색으로 변했다.


악마는 조그만 입술로 그 문양을 조심스레 불었다.


“후우-.”


그녀의 숨결이 닿자, 문양은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하얀 꽃잎이 되었다.

그 꽃잎은 숨결을 타고 날아가, 괴물의 표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백화난만(白火爛漫)]


그것은, 이윽고 불길이 되어 맹렬히 타올랐다.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백색의 불길은, 하얀 꽃이 되어 이 검은 세상에서 흐드러졌다.

어둡고 질척한 공간과 참으로 안 어울리는 마법이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묘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수 십번의 칼질을 해야 겨우 소멸했던 괴물들이, 악마의 숨결 한 번에 모조리 산화했다.


검은 괴물들을 불태운 악마는, 모든 괴물이 소멸하자 기진맥진한 체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탈진 상태처럼 보였다.


“헥... 헥.... 야... 용사... 조금만... 쉬자....”


화려한 마법에, 참으로 볼품없는 꼴이다.

그래도 검은 괴물들을 소멸시킨 공로는 인정할만했기에, 나는 별말 없이 앉아 휴식을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시간제한이 있다고 해도 서둘러서는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그나저나 그건, 용언인가?”


나는 악마의 손끝에 피어올랐던 그 문양을 되새기며 물었다.


“맞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위험한 문자는 용언밖에 없지.”


“그럼 네가 드래곤이라는 건가?”


나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이없는 표현이지만, 드래곤 악마라는 게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 세상의 악마는 별다른 생물종이 아닌, ‘악마의 씨앗’이 심장에 심어져 탄생한 일종의 변이체였기에.

엘프 악마, 드워프 악마도 존재하며, 드래곤 악마 또한 이론상으로는 존재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측이 맞았다.


“정확히는 ‘드래곤이었던 것’. 영체가 돼서, 그 검에 갇힌 상태니까. 이상권역 아니면 이 육신으로 존재할 수도 없어.”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하는 악마를 바라봤다.

드래곤 출신인 악마의 영혼이 담긴 마검이라.... 이 무슨 혼종인가.


저 악마는 하나도 가지기 힘든 희귀한 정체성을 세 개나 곂쳐서 가지고 있는, 여러모로 독특한 존재였다.

그러든 말든 지금은 대자로 누워 헥헥 거릴 뿐이지만.


나는 내친김에 저 기이한 존재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검에는 어쩌다 갇히게 된 거지? 드래곤의 영혼을 다룰 수 있는 건 아주 극소수일 텐데.”


“아, 그건 우리 가족이 가뒀어. 악마로 변한 드래곤을 감당하긴 싫다면서, 악마의 씨앗이 채 개화하기도 전에 영혼을 뽑아 검에 가뒀지. 지금 생각해봐도 좀 너무하긴 한데....”


악마는 의외로 순순히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검에 오랜 시간 갇혀있다, 오랜만에 말할 상대를 만나서 그런 걸까.


“그 가족들도 드래곤인 건가?”


“당연하지. 그럼 뭐 드래곤의 가족이 인류종이나, 귀쟁이겠냐?”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르테 교수의 지인일 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리고 저 붉은 머리카락, 뿔, 드레스, 드래곤이라는 종.


“혹시 너는 아르테 페일아사스의 가족인가?”


나는 아르테 페이나르 교수의 본명을 불렀다. 그러자 누워있던 악마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언니를 알아?”


태초의 고룡이자, 용언의 주인. 마법의 종주. 그런 이명을 달고 아카데미의 교수나 하고 있는 이상한 여자.

이 악마는 그 괴물 교수의 동생이었다.


이제 보니 왜 한 번에 못 알아봤는지 이상할 정도로 아르테와 닮아있다. 그 꼬마 교수가 성장하고, 뿔이 자라면 딱 이 악마의 모습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괴물의 동생이라면, 이 정도의 이상권역은 찢을 수 있지 않나?”


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 악마에게 물었다. 그녀가 그렇게 강대한 존재라면 왜 이곳에 갇혀있는가.


물론, 이상권역을 밖에서 찢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상권역을 안에서 찢고 나가는 것 또한 힘들다.

하지만 불가능과 힘들다는 건 명확히 달랐다. 아르테 정도의 괴물이라면, 이 불안정한 권역 정도는 손쉽게 찢고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악마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물질적인 육신도 없어서, 마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내가 드래곤 육체를 버린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데. 그리고 니가 내 마력 죄다 뺏어갔잖아. 기억 안 나냐?”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때 내게 모든 마력을 해체당한 게 어지간히도 분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악마는 드래곤이라는 종 답지 않게 너무 유치한 느낌이다. 드래곤은 자존심 빼면 시체인 종족이라, 대부분이 근엄한 척이라도 하던데, 악마인 드래곤은 다른 건가?


이후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으나, 딱히 영향가 있는 정보는 없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특성 때문에,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됐지만, 오래 살아온 세월에 비해 이 드래곤은 비정상적으로 아는 게 적었다.


“그럼 이제 슬슬 가자. 악마.”


어느새 악마도 체력을 회복한 것 같았기에, 우리는 다시 교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이상권역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피부를 찌르는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그 마기는 넓은 광장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윽....”


악마조차, 마기의 밀도에 고통스러워했다. 교회가 있는 중앙에 다가갈수록 그 밀도는 더욱 진해져,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기의 농도가 극점에 달했을 때, 우리는 고통을 참고 다시금 한 발을 내디뎠다.


[툭-]


그러자 모든 마기가 사라진 공간에 도달했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이곳이 교회인가.”


교회라고 말했지만, 그곳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 대신 순수한 마력의 폭풍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마력 폭풍은 교회를 집어삼키고, 여신의 조각상들마저 뭉개버린 후, 거대한 알과 같은 형태가 되어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대한 알의 중심에는 작은 소녀가 몸을 웅크린 체 둥둥 떠다니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하는 신생아처럼.

나는 그 소녀를 떨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죄책감과 책임감, 그리고 용사로서의 정의가 뒤섞인다.

머리가 부숴 질듯이 아파져 오며, 선택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 답을 내려주지는 못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악마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검을 쥔 오른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선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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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레이비니아 노아 (2) 24.08.31 15 0 16쪽
22 레이비니아 노아 (1) 24.08.31 13 0 13쪽
21 스승의 은혜 (2) 24.08.30 15 0 10쪽
20 스승의 은혜 (1) 24.08.29 16 0 15쪽
19 이물질 24.08.28 15 0 14쪽
18 마물 연구부 (2) 24.08.28 16 0 11쪽
17 마물 연구부 (1) 24.08.27 18 0 16쪽
16 축제의 히든피스 (2) 24.08.27 18 0 16쪽
15 축제의 히든피스 (1) 24.08.27 21 0 10쪽
14 용사와 변경백 (2) 24.08.26 20 1 18쪽
13 용사와 변경백 (1) 24.08.25 22 0 11쪽
12 입학시험 (5) 24.08.25 24 0 11쪽
11 입학시험 (4) 24.08.24 25 0 13쪽
10 입학시험 (3) 24.08.24 25 0 12쪽
9 입학시험 (2) 24.08.23 25 0 12쪽
8 입학시험 (1) 24.08.23 28 0 9쪽
7 마검 24.08.22 31 0 10쪽
6 모든 무기의 왕 24.08.22 33 0 13쪽
5 신성도시 가르티나 24.08.21 34 0 11쪽
4 패배 이벤트 (2) 24.08.21 40 0 10쪽
3 패배 이벤트 (1) 24.08.20 54 0 9쪽
2 100년은 늦은 지원생 24.08.20 60 0 10쪽
1 드디어 기어나온 주인공 24.08.20 7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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