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변증법적 유물론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11. 변증법적 유물론
세희가 정훈에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물었다.
이런 문제는 전문지식을 가진 학자라고 해도, 짧은 시간에 일반 사람에게 한 두 마디로 대답해주기엔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더구나 듣고 있는 세 사람 모두 대학은 나왔지만 전공은 인문학 계열이 아니다. 그래도 잘 모른다고 얼버무릴 수는 없고, 어차피 북한사정을 알려주려는 목적이니까 이 참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18세기 독일에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있었어요. 철학 알지요? 삶의 참된 이치나 도리를 찾는 학문 말입니다. 헤겔은 사회의 모순에서 진리를 찾아나가는 방법을 정, 반, 합이라는 변증법이론으로 설파했어요. 정체된 모순의 사회, 정을 뒤집는 게 반입니다. 반의 사회가 됐는데도 세상만사에 그릇된 모순은 생겨나겠죠? 그런 모순에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서 사는 게 합이에요. 합의 사회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조리한 모순이 쌓이지 않겠어요? 그러면 다시 정의 사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고문도 학생!”
얘기하던 정훈이, 듣다가 지겨워서 눈을 감아버리는 문도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 정이요? 또 메치기 해서 뒤집고 한판 승, 반! 하면 되지 뭐. 크크.”
“오호, 조는 줄 알았더니 열심히 듣고 있었구먼, 고문도 장학생! 흐흐.”
“그런데 너무 어려워요, 이 실장님! 영란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좀 쉽게 설명해줄 수는 없으세요? 호호.”
세희 자기도 못 알아듣겠는데 눈알만 굴리고 있는 영란은 오죽하겠나 싶어 세희가 민망한 웃음을 짓는다.
“아하, 그렇나요? 철학이란 게 원래 이해가 어렵죠! 하하. 정, 반, 합이라··· 음, 일제 강점기 시절에 우리 백성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을 심하게 당했지요. 일제는 동양척식회사를 차려 농지를 싼 값에 사들였어요. 그래서 곡창지대 김제만경평야의 곡물을 죄다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고요. 산을 덮었던 수십, 수백 년 된 소나무도 베어내고, 광산을 만들어 철이며 석탄이며 마구 캐내어서 군수물자로 가져다 썼지요. 남자들은 강제징용으로 전쟁터에 끌려가고, 심지어 젊은 여성들도 정신대모집에 동원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모순된 사회구조, 정인 겁니다.”
정훈이 예를 들어 설명하자 모두들 정반합의 정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다.
“그럼, 어떻게 한판 승으로 뒤엎고 반, 해요?”
영란이가 앞서간다.
“그렇죠! 정을 뒤집고 반, 하려고 독립운동을 한 겁니다. 1910년에 한일합병이 되자 국내에서는 무력항쟁이 불가능해져서 항일전을 벌렸던 의병들은 중국 서북간도, 연해주 등으로 옮겨갔어요. 1919년에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번지자, 100만을 헤아리는 한인이 사는 서북간도, 만주일대와 시베리아에서 독립군이 편성되고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렸어요. 김좌진, 홍범도 같은 독립군 장군들 이름은 들어봤죠?”
“난, 알아요!~ 장군의 아들, 김도깡. 히힝~”
영란이 아는 김좌진장군 얘기가 나오자 신바람이 났다.
“하하, 영란씨 비디오 많이 본 모양이네! 1940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광복군이 편성되어 흩어져있던 독립군들이 일원화 되었어요. 드디어 1945년에 일제는 항복하고 해방이 되었죠. 이것이 바로 반, 입니다. 일제인 정을 전투혁명으로 뒤집고 해방된 세상, 반을 만든 거지요. 정에서 반으로의 반전은 이해됩니까?”
“예!~” “네!~”
세희와 영란이 쌍나팔을 분다.
“그렇게 해방된 우리 한반도의 그 때 상황이 어땠습니까? 조선 왕조시대에 평민이나 상놈으로 서럽게 살다가 일제 때 그 보다 더한 압박을 받고 살던 백성들이 하루 아침에 자유인이 됐잖아요?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주종관계의 모순된 `정`의 사회에서 인권이 보장된 `반`의 세상으로 확 바뀐 거 아닙니까? 양반도 없고 상놈도 없고, 내가 무슨 일을 하던 간섭할 사람도 없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된 거지요.”
“와~ 신난다! 대한독립, 만세!~ 히힝.”
영란이가 해방되었다.
“그런데, 해방은 됐는데,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 외국 열강의 합의에 의해서 두 강대국이 슬며시 들어온 겁니다. 남한에는 민주주의 대표인 미국이고, 북한에는 공산주의 대표인 소련이었지요. 갑작스런 일제의 퇴장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한반도의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요.”
“그때도 러시아가 아니고 쏘련이었어요?”
지금의 러시아가 소련에서 이름이 바뀐걸 조금 전에 알았던 영란이 물어본다. 이정훈 강사의 맥을 자꾸 끊어놓는데 밉상은 아니다.
“그랬어요. 소련도 그 전의 러시아제국에서 이름 바뀐 지가 얼마 안된 때였어요. 1917년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이념 신봉자인 `레닌`이 노동자 농민군대를 이끌고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을 성공시켜 로마노프왕조를 몰락시켰어요. `정`의 사회인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려 인민을 해방시키고 `반`의 사회로 만든 거지요. 그래서 러시아의 과격한 지식인 집단 볼셰비키 멤버인 레닌은 사회주의공화국인 소비에트연방, 즉 소련을 창설한 겁니다.”
뜬금없이 스탠드바에서 사회주의를 설명하게 된 정훈이 맥주를 들이키고 목을 추긴다. 북한에 드론으로 훈제칠면조 나르는 문도를 격려해주려고 들렀는데, 북한얘기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아는 데까지 설명해주고 통일을 대비한 인성, 사상교육이나 제대로 시키자.
어려운 사상강의 듣던 무료수강생들도 힘들었는지 맥주로 목을 추기고 서로 웅성거리며 강의내용을 복습한다.
“자, 학생 여러분 다시 공부합시다. 돈 주고도 못 듣는 특강이에요. 하하.”
“그러니까 러시아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이나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나 `정`의 사회에서 혁명으로 반전된 `반`의 사회로 비슷했다는 얘기지? 한반도는 조금 다르지만..”
모범생 문도 학생이 세희와 영란 학생이 들으라고 요점을 정리해준다.
“바로 그 얘기지! 고문도 학생, A학점! 하하. 우리 한반도는 독립군에 의한 혁명으로 반전된 게 아니고,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강대국의 힘으로 일제에서 해방은 됐는데, 불행히도 남북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헤겔의 변증법을 기반으로 탄생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대로 혼란스러운 `반`의 사회에서 버릴 건 버리고 남북이 각자의 길로 `합`의 사회를 향해서 가게 된 겁니다.”
“지금까지 설명에는 사회주의가 나와서 이해가 되는데 갑자기 공산주의가 나와서 헷갈려요, 이 실장 교수님!”
세희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무안한 미소를 짓는다.
“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원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어요. 좋게 해석하자면 둘 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인류의 꿈을 대변한 겁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1848년에 아까 내가 설명한 헤겔의 정반합에 의한 변증법을 비판 수정하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했어요. 정반합은 맞지만 현실사회는 그렇게 관념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생산방식”이 사회제도의 성격을 규정하며, 정치와 사회적 사상의식의 기초가 된다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의 원리를 `공산당선언`에서 밝혔어요. 또한 자본주의는 자체모순에 의해 멸망하게 되며 계급 없고 생산물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회 즉,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된다고 주장했어요.”
“생산방식이요? 생산방식이 뭔데, 사회를 바꿔서 평등한 사회를 이룬답니까?”
영리한 세희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정훈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핵심을 빨리 캐치한다.
“여기서 생산방식은 사유재산의 인정 유무를 의미합니다. 사유재산은 말 그대로 개인이 갖는 재산입니다. 농사를 예로 들면, 농사짓는 경작권은 개인이 가질 수 있어도 그 땅의 소유권은 가질 수 없는 것이 사회주의 생산방식입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개인이 세워서 공장을 사고 팔 수는 있어도 그 공장부지인 땅은 개인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방식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지주와 자본가들이 없어지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뭐야? 말도 안돼! 결국은 국가 권력집단이 지주와 자본가를 대신하고, 일반 농민과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려먹겠다는 술수 아니야? 순 엉터리요, 이 교수! 크크.”
“내가 그랬나? 마르크스가 그랬지. 고문도 학생, D학점!”
“맞아요! 순 사기꾼이에요, 말코스! 히잉~”
영란이까지 나섰다.
“그러네요. 제가 들어봐도 사회주의는, 계급을 없애고 평등사회를 만든다면서 전체를 하향 평준화시킨 엉터리 이론 같은데요.”
세희 발표력이 보통수준을 넘는다.
“아하, 모두들 열심히 듣고 사회주의 이론의 모순점을 금세 캐치했네요! 전부 다 A학점! 하하.”
학생들 반응이 이 정도면 실력 없는 강사라도 없던 실력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1875년에 저술한 `고타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마지막 단계이며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작단계라고 말하고 있어요. 즉, 공산주의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결과이며 사회주의는 그 과정이나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라고 했어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라고 했어요. 차이점을 알겠어요? 애매모호 해요?”
강의하는 강사 자신도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는 거 아니야?
“그 차이점은 바로 “분배”에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생산기반만 통제하고, 공산주의는 생산기반뿐만 아니라 분배까지 통제하는 겁니다. 사회주의는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서 부의 편중을 막고 빈부격차를 해소해서 피폐했던 민중의 경제적 평등을 보장한다는 겁니다. 사회주의에서의 분배는 일한 만큼, 즉 노동에 따라 가져가는 구조이므로 생산물의 개인소유가 인정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에서는 사유재산 자체를 철폐하고 모든 재산을 공동소유로 합니다. 즉, 생산물이 전부 국가의 소유가 되고 개인은 국가가 분배해주는 것만 가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제는 차이점이 이해됩니까?”
“공산주의는 생산물까지 국가가 다 가져가 버리면, 오히려 열심히 일한 개인이 생산물을 더 가져갈 수 있는 사회주의가 나은 거 아니오? 이 강사님!”
정의파 문도가 태클을 건다.
“얼핏 보면 그런데, 공산주의에서는 능력이 없고 생산에 기여를 적게 한 사람에게도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높은 단계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훈이 결론을 맺으며 열심인 수강생들을 둘러본다.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영란이는 맨날 앉아 놀고 쟤들만 일하는데, 똑같이 봉급 주면 아주 불공평해서 쟤들이 다 나갈 거 같은데요. 호호.”
세희가 영란을 쳐다보고 짓궂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단골손님이 많아서 맨날 앉아 놀아도 쟤들보다 매상이 세배도 넘어요! 봉급 똑같이 주면 안되지, 언니! 그러기만 해봐요, 내가 나가버릴 꺼야! 잉~”
영란이 앙칼지게 대꾸하고는 입을 삐죽거린다.
“크흐, 이런! 공산주의 하다가는 `바-붐` 문닫게 생겼네! 공산주의 망했다, 망했어! 크크.”
문도가 재미있어 킥킥거리고 웃는다.
그런, 사람의 본성도 파악 못한 조잡한 이론과 사상으로, 국가는커녕 가게도 하나 제대로 경영 못하겠다.
“그런 엉터리 이론을 따르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세희가 영란에게 눈을 흘기고 정훈에게 시선을 돌린다.
“공산주의를 신봉해서 종주국 소련을 따르던 동유럽의 체코, 항거리, 폴란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다 망했고 지금은 북한 외에 카스트로가 지배했던 남미의 쿠바가 유일하게 남아있어요. 쿠바도 최근에는 미국하고 관계개선을 도모하면서 서서히 자본주의를 따르려고 한답니다. 공산주의 강국이면서도 빈곤했던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이론을 반입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하는 걸 지켜봤으니까요.”
“그러면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소련도 마음을 바꾸고 자본주의를 따르려고 나라이름까지 러시아로 바꾼 건가요?”
“아, 예.. 그런 점도 있겠지만, 한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체제에서 국력으로 미국과 쌍벽을 이루던 소련이 갑자기 연방을 해체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로 짐작하고 있어요.”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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