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86)
위기는 곧 기회?
아가므네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차마 몰랐다. 주변의 환경과 동화하고 싶었지만, 심장의 박동 소리는 멈출 수 없었다.
특히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참나무 바닥이 가슴에 닿아 심장박동이 바닥을 타고 흘렀다.
손가락 끝으로 상체를 들어 올려 겨우 소리의 새어 나감을 막을 수 있었다.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이마에도 굵은 땀방울이 매달렸다.
여기서 들키면 완전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악마의 소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온두라스, 마크라스, 윌리엄 대공, 모그룩, 아그니스 공주. 제이미 백작까지 도대체 저들이 떠들고 있는 말은 모두 진실인가? 허구인가?
판단도 내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들은 적이 아닌가? 모그룩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걸걸한 윌리엄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녀들이 신봉했던 말라키는 독특한 기술이 많아.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들이지. 이브리엄이 탐내 할만한 기술을 마녀가 가지고 있는 거야. 신성불가침 조약도 순혈 마녀의 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무려 이브리엄의 힘을 봉인할 정도로 막강한 힘이었지."
"그럼 저희도 순혈 마녀를 찾아내서 성황의 힘을 봉인 할수 있다면?"
젊고 활기찬 이 목소리는 제이미 백작의 목소리다.
"성황이 마녀를 구제한다면서 주신 제국의 마녀를 모두 끌어모았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심지어 일황비 세르자비 또한 진성 마녀임을 잊지 말기 바라네. 성황은 마녀의 힘을 두려워해서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제국의 마녀를 모두 어반마르스로 모았지. 에르제베트는 그 틈에서 내가 구해낸 아이다."
"그럼 에르제베트가 순혈 마녀입니까?"
"불행하지만 그렇지 않다네. 제국에 남은 순혈 마녀는 내가 알기로는 신성불가침 조약을 만든 엘자임이 유일한 순혈의 마녀였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에요. 성황의 스파이가 운명의 등불을 밝혔다면 성군이 이 땅을 침략 했을 텐데. 다 모그룩 백작 덕분이에요."
'모그룩 백작? 모그룩이 백작의 신분이었나? 저 목소리는 아그니스 공주인데? 모그룩이 팬텀 가드너의 첩자였었나? 교주님이 그러한 사실을 모르실 분이 아닌데?'
아가므네의 머리로는 돌아가는 내용이 너무나 커서 이해 범주를 넘어서고 말았다.
이 세상에 묻혀 있던 진정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성황은 온두라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번에 포탈을 통해 맨시티로 건너온 것이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몰랐다. 큰 힘이 있어서 어떤 정보를 찾기 위해서 건너간 것이었다. 케이사르의 부탁도 있었고."
"케이사르의 부탁?"
"브레니악스와 관련된 단체가 있으니 그들을 말살시켜줬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음, 그때 마교를 급습한 일은 성황에 보고되었고 성황은 이브리엄의 존재를 알게 됐을 겁니다. 그래서 아칸을 쓸어 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마탄의 서 내용을 알고 있던 아르마할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보내왔기에 케이사르는 그를 가장 안전한 아이언 캐슬의 금고에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럼 아르마할이 살아 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마탄의 게이트를 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브리엄은 이브리엄으로 맞서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아르마할은 이미 죽었습니다. 대신 그의 지식은 제가 가지고 있지만, 마탄의 게이트는 쉽게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케이사르도 열었던 문인데 우리라고···."
"케이사르는 수십 년 전부터 이 일을 계획했고 정말 운이 좋게도 그의 손에 재료가 다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황도 마탄의 문은 열지 못했습니다. 단 하나의 재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단 하나의 재료라는 것이 드랜곤족의 피입니까?"
"그러면 그 피 없이 어떻게 마탄의 문을 열어서 온두라스와 마크라스 이 두 분을 소환한 것입니까?"
"재료가 모이면 소환식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구조입니다. 두 분은 그 소환식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덕분에 본의 아니게 끌려 오게 된 것입니다. 이브리엄의 능력을 잘 알고 있던 케이사르는 원하는 것이 이브리엄의 피였기 때문에 온전한 이브리엄은 필요치 않았죠. 소환만 시키면 되는 것이니까요. 마녀 에르제베트가 그 일을 해 주었는데 그 결과가 수인화입니다."
"그럼 수인화가 진행되어 버리면 이 두 분은?"
"저주가 풀릴 때까지 영원히 짐승의 탈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문제는 다 성공했는가 싶은데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수?"
"수인화 저주가 쓰인 그릇은 짐승의 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 그릇에 안착한 이브리엄도 오염될 수밖에 없었죠."
"그럼 지금 이 기괴한 모습이 수인화가 진행되는 단계라는 말입니까?"
"그렇다. 길어 봐야 보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그릇으로 갈아타지 못합니까? 수인화가 되면 능력은 어떻게 됩니까?"
"이건 지능과 육체적 퇴화를 말하는 거다. 우리는 두 마리의 짐승이 될 뿐이야."
"그런? 그럼 에르제베트를 이용해 저주를 풀어 달라고 하면?"
"케이사르가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다. 본인도 오염된 이브리엄의 피를 가지고 정제한다고 난리이지 않으냐? 그만큼 어려운 일이겠지. 스스로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라 할수 있겠군."
"잠깐, 조금 전에 한 말이지만 드래곤의 피가 없는데 어떻게 케이사르는 마탄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거죠?"
"소환진은 드래곤의 피로 그려야 하는데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 있었어."
모그룩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죠? 그것이?"
"악룡 데오랑크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마검 데오뜨랑이 있었지. 에르제베트는 데오뜨랑에서 악룡의 사기를 뽑아내고 있었어. 데오뜨랑의 검신은 악룡의 골수로 만들어졌다는 것, 즉 골수는 피와 같은 역할을 할수 있지. 말라붙은 골수를 검에서 채취하여 사기를 덧씌워 소환식을 그렸어."
"와,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럼 드래곤의 피를 구할 방법은 드래곤족을 재소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다시는 이 땅에 드래곤을 소환할 수는 없다. 이 땅이 멸망해도 그것은 안 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뭐요? 모그룩 백작, 지금 드래곤의 피를 구할 수 있다는 소리요?"
"피는 그렇고 골수라면···."
"드래곤의 뼈가 있는 곳을 알고 있군.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아는 사람은 저뿐만 아닙니다."
"또 누가 있다는 말인가?"
"일황비 세르자비입니다만."
"모그룩 백작!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죠?"
"그런데 왜 이런 비밀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었던 겁니까?"
"그건 삼 왕국의 알력 싸움에서 벌어진 일이야. 서로 뭉치지 못하고 견제하기 위해서지. 지금부터 25년 전 성황이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말이야."
"모든 균형이 무너져 버린 것은 황태자 때문이었다. 힘의 균형도. 인간의 미래도 모든 것이 다 무너졌어. 우리는 이브리엄족이 인간과의 결합으로 절대 씨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그릇을 찾지 못한 이브리엄은 결국 소멸하거나 윤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
"그를 다시 돌려놓을 수는 없습니까? 이브리엄이 사는 곳은 어디죠? 그들도 삶을 이어가는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이다. 우리도 우리의 세계가 존재한다. 매우 엄하고 감정이 절제된 곳이다. 우리는 삶에 끝은 없지만 기나긴 기간 동안 수행을 거듭해야 한다."
"브레니악스는 그런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그래서 이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그렇다. 하지만 이곳의 인간은 이브리엄을 감당하지 못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신성불가침 조약까지 체결하고 시간을 번 것이다."
"고대 말라키의 금서 속에서 단서를 찾은 성황은 그때부터 마녀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테일리아드에 가서 세르자비 왕녀를 납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우리는 황태자를 없애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심지어 세르자비 왕녀까지 매수하려 했지만, 그녀의 고집은 대단했지. 그래서 그녀의 오빠인 레미 후작을 끌여 들었지만 레미 후작도 왕자는 바보라고 거절해버렸어. 천하의 쓸데없는 폐물이라고···. 우리는 황태자가 태어난 것에 큰 의문점을 가졌어. 절대로 인간은 이브리엄의 씨를 받지 못해. 그건 엘자임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래서 그 비밀을 알아냈습니까?"
"정확한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어. 하지만 관계된 자는 알아냈지."
"누구입니까?"
"마지막 라다만의 후예. 아잠바크로부터다. 네크로맨서는 죽음을 관장하는 말라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성황의 은혜를 입었지. 무분별할 정도로 금서 해독을 하도록 허락해준 덕분에 금서들이 해독되었고 해독본이 암암리에 퍼져나갔지. 라다만의 정수를 품고 있던 아잠바크는 사자의 서 해독본을 구했다."
"사자의 서라. 그것이 황태자의 탄생 비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 세르자비는 자식을 원했고 아잠바크와 거래했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테드 황태자다."
"그는 삼황비 네르미온느 태생이 아닙니까?"
"그건 그들 사이에 어떤 사건이 개입한 것인지 자세히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성황이 아들을 나았다는 것이지."
"그럼 계속해서 자식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네크로맨서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그들은 추방을?"
"보게나 그들 사이에 무언가 있었어. 성황은 갑자기 네크로맨서를 죽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네크로맨서를 추방한 것은 성황이 아니라 일황비 세르자비였어. 성황은 그들을 죽였고 세르자비는 추방했어. 결국 세르자비가 네크로맨서를 보호한 셈이지 않나?"
"점점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됩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이 모르는 비밀로 가득 차 있거든."
"그 중간 틈을 케이사르는 잘 비집고 들어 온 거군요."
"인간은 강한 상대를 보면 항상 따라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무력을 휘두르는 신을 보면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라네. 나도 마찬가지고 그 덕분에 두 다리를 잃었지만 말일세."
"성황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마교를 시켜 운명의 등불을 밝히려 했습니다.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겁니다. 성황은 온드라스와 마크라스의 등장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곳은 케이사르가 휘어잡고 있어. 온두라스도 마크라스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게 돼버렸고. 그러면 내성의 방어막도 더는 유지하기 힘들지도 몰라."
"방법을 찾아내야겠죠."
"유일한 희망은 에르제베트 그 아이뿐이야."
"문제는 또 있습니다. 사저의 서를 가지고 아칸을 나간 놈이 네크로맨서 몰레이크입니다. 그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사자의 서를 찾아야 합니다."
"자네가 케이사르의 목을 잘랐다고 했지? 그런데도 살아났었고?"
"놈은 첫 번째 소환한 마족인 코발의 능력을 훔쳤습니다. 코발은 도마뱀처럼 신체가 잘려도 재생이 가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죠. 놈은 코발의 피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를 개조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말라키의 금서에서 비롯된 거야. 그 금서가 없었다면 드래곤족도 이브리엄족도 이 세계로 건너오지 않았을 것을 이건 인간의 한 없는 탐욕이 만들어낸 세상이야. 우리는 그 과오가 만들어낸 악를 짊어지고 있어."
"케이사르는 이브리엄의 피를 정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마탄의 서에 적힌 내용으로 가늠해 보면 놈이 정제된 이브리엄의 피를 마시게 되면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겁니다. 성황도 케이사르를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럼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가? 케이사르인가 성황인가?"
"케이사르 그놈이 마족을 소환한 것은 놈들을 이용할 생각에서였습니다. 인간이 마족을 누르고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놈과 맞서본 경험으로 보면 이미 마족을 넘어섰습니다. 그들의 부하들에게도 다크시럼포션을 마시게 했으니···."
"모그룩 백작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요?"
"정체 따져 묻기 전에 이 난관을 극복하고 해결한 방안을 모색해···. 잠깐!"
모그룩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아가므네는 너무나 놀라 급히 호흡을 멈추고 온몸을 경직시켰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기척을 읽어 나갔다.
"우야, 우야. 이런, 이런! 귀여운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줄이야."
"치잇!"
아가므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베란다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내성에서 탈출할 수 없을지라도 일단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은 많았다.
"어훅."
묵직한 타격음이 등의 혈도를 가격했다. 너무나 빠른 손놀림. 상상도 할수 없는 빠른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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