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하는 자
죽어야만 하는 자
벌떡 상체를 일으킨 머리 없는 몸이 모래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바닥을 파헤쳐 잘린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목에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푸핫."
한동안 기침해대던 소년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크흡! 목에 묻은 모래 때문에 붙지를 않아. 이런 제기랄."
소년은 다시 머리 위에 올려놓은 목을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환장하겠군. 이러다 또 죽겠는데."
그 말을 끝으로 소녀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렇기 쓰러지고 깨어나기를 반복해서 겨우 목이 붙자 벌벌 기다시피 해서 모래 언덕을 올랐다.
"오아시스를 찾아야 해. 무, 물이 필요해."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소년은 그 틈에 정처 없이 움직였다. 날이 밝고 다시 열사의 기운이 모래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모, 목이 너무 탄다."
소년은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었다. 피라도 마셔볼 심산이었던 거다. 몇 모금의 피를 마셨지만, 그것은 오리혀 갈증을 더욱 부채질했다.
-퍽
화살 하나가 소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소년의 눈은 흰자위를 보였고 몸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잠시 뒤 나타난 청년과 중년인은 그런 소년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년은 소년의 머리에서 화살을 뽑아냈다.
"살펴보자."
중년인의 말에 청년은 소년의 상위를 벗겼다.
소년의 몸에는 이상하고 기이한 문양이 앞뒤로 가득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은 찬찬히 소년의 문양을 살피더니 청년이 말했다.
"백십, 백십 하나···. 백 열여덟. 맞네요. 어제 열두 번 죽었으니까 딱 맞아떨어지네요."
"음, 교주님 말씀이 맞는 것 같군. 결국 발현하려면 아직···."
"네, 막막합니다. 끝없는 고행길이네요."
"이걸 참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지?"
"글쎄요. 고행 끝에 낙이 온다고 하면 어떨지."
"이대로는 힘들 것 같으니 일단 데리고 가자."
"이왕 이렇게 된 거 러너의 소원이라도 들어주시면 어떨까요?"
"그럼 죽이는 게 더 귀찮아져.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어휴. 이러니 도망칠수 밖에요. 이게 인간이 할 짓입니까?"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의 운명이지. 내가 매랴?"
"아뇨. 제가 맬게요."
두 사람은 소년을 들쳐 매고 한참을 달렸다.
"어? 심장이 뛰네요."
"잠시 내려놔."
"잘하세요. 옷에 피 묻는 것 싫습니다. 옷 구하기 힘든 거 아시잖아요."
"알았으니까 저리 비켜."
소년이 벌떡 일어나 눈을 껌벅댔다.
소년은 중년인을 발견하고 뭐라 말하려 했다.
"일단은 미안하다."
-쉭
검은 무자비하게 소년의 목을 잘라 버렸다.
"아니. 피! 하. 그냥 깔끔히 못 죽여요?"
"목을 자르는 편이 가장 확실하니 그러지."
"미치겠네! 정말."
"알았어. 피 좀 마르면 가자고 이 날씨면 금방 마를 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살아나면 죽이고를 반복하며 저녁놀이 우울하게 내려앉을 때야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러너 잡았어요?"
중년인은 한쪽으로 물러났다.
"호되게 당하는 중입니다."
청년은 어깨에 맨 몸체와 손에 들고 있는 머리통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휴, 소름 끼친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팽 장로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분의 명이니."
실버팽은 중년인을 돌아보면 말했다.
"두 분이 자릴 비워서 교주님께서 연락만 남겨 주시고 가셨습니다. 반드시 테드버드 장로만 보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런가? 루안, 러너가 깨어나면 또 행패를 부릴지 모르니 가둬 놔."
"알겠습니다."
테드버드가 오아시스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은 존경심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들은 사라센의 사제로 불리는 네크로맨서 집단으로 테드버드를 비롯한 많은 수의 마교 일행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곳의 우두머리는 자라크로 사라센 최고의 네크로맨서였다.
"테드버드 장로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께서 전해 주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테드버드는 자라크에서 여러 번 접힌 쪽지를 건네받았다.
쪽지 위에는 테드버드 장로가 직접 확인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쪽지의 접히는 부분에는 작은 낙인이 찍혀 있어 함부로 개봉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테드버드는 심호흡을 한 번 하며 엄지와 검지로 낙인을 눌러 부러뜨리자 반짝하고 불똥이 튀었다.
"허, 마법까지 걸어 놓으셨군."
자라크의 말에 테드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적혀 있다는 거겠죠."
쪽지를 다 읽은 테드버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무슨 일이기에?"
"금서와 관계된 이야기라···."
"하하 곤란하시다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기, 메이지 스켈레톤 소환할 수 있는 인원 전부 광장으로 모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테드버드는 길게 한숨을 한 번 내 쉬더니 쪽지를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었던 실버팽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뭐랍니까?"
"뭐라긴 뭐래 발동을 빨리 시키라고 하시지. 아르마할이 거의 해독을 끝마쳤는데 반만이라더군."
"반만? 그러니까 반만 해독했다는 겁니까? 가진 것이 반이라는 겁니까?"
"후자 쪽이야. 우리더러 나머지 반을 베껴 놓으라고 하시네."
"에? 러너 몸에 적힌 것은 이미 다 베껴 놓은 것 아닙니까? 어디에 또 있다는 겁니까?"
"후, 미치겠네. 뼈에···."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발골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끔찍한 상상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더 좋은 방법을 적어 놓으셨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는데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쩝."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오아시스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오아시스 마을 광장 한가운데 잉겔리움으로 만든 우리 속에 갇힌 윈드러너는 계속 고함을 치고 떠들어 댔다. 철장이 보통 금속이 아닌 만큼 특별히 각성자를 가두기 위해 만든 일인 감옥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테드버드가 걸어왔다. 테드버드를 발견한 윈드러너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저 죽여도 좋으니 제발 시원하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타는 고통보다 이것이 훨씬 나을 거야. 그만큼 설명해 주었으니 더는 할 말이 없어. 이것도 수련의 한 과정이고 너는 그때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었잖아. 그 책임은 네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아, 그렇지 넌 죽을 수 없는 불사의 몸을 얻었잖아. 영원히 죽을 수 없잖아."
"그래도 끔찍하다는 말입니다. 고통은 고스란히 제가 느끼는걸요. 이제 죽음이라는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네 고통을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천 번을 죽는 거야. 우리는 뭐 맘이 편해서 이러는 줄 아느냐? 넌 재미로 널 죽인다고 생각해? 우리도 미칠 노릇이다."
"그냥 두면 되잖습니다. 마교에 가입해서 장로님의 제자가 되고 명성을 떨쳐 가족을 돕는 것이 제 작은 바람일 뿐입니다."
"그래, 알아. 하지만 네 몸에 깃든 것은 보통 물건이 아니야. 저주받은 물건이지.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것은 모두 내가 만진 금서 때문이다. 너는 그때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지금까지 살아있지. 무덤에서 기어 나온 것도 잊었느냐?"
"천 번 이나 어떻게 견딥니까? 아주 미쳐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사막으로 도망을 쳤더냐? 조금만 더 참고 버티면 되는 것이다."
"전 아직 마교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절 마교에서 이용만 하려는 것입니까?"
"이용? 넌 분명히 나의 제자다.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단지, 네 몸에 깃든 금서 때문에 어쩔수 없는 고행을 해야 할 뿐이다. 영원불멸의 신체를 손에 넣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저주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테드버드가 횃불을 들어 올리자 주변에서 소환진이 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그려졌다. 소환진 속에서 스켈레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메이지 스켈레톤은 리치의 하위 버전 몬스터다.
메이지 스켈레톤답게 4원소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소환자의 능력에 따라 소환된 스켈레톤의 능력도 제각기 다르다.
"잠깐. 뭘 하시려는 겁니까?"
"지금 이 고통이 차라리 나을 거다."
-핏
테드버드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콜라다를 발도하여 순식간에 윈드러너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느 날 테츠가 한 소년을 데리고 이곳에 찾아왔다.
그 소년의 이름은 윈드러너. 테츠는 테드버드에 러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마교인으로서 가르침을 주라고 했다. 그리고 윈드러너의 몸에 새겨진 금서 이야기도 했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오크로 제 환생한 아르마할은 테츠로부터 받은 여섯 번째 금서의 해독 작업을 시작했다. 그건 여섯 번째 금서를 발동시켜야 일곱 번째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황제 잉그람이 왜 그토록 금서에 집착하는지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여섯 번째 금서를 해독하고 그 지식을 발현시키면 일곱 번째가 반응한다. 황제 잉그람이 먼저 알아냈던 비밀이었다. 또 아르마할은 이 여섯 번째 금서를 해독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금서는 총 일곱 권인데 그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말라키가 만든 금서는 각기 개개인이 따로 만든 것이지만 묘하게 이들 금서는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마할 즉 현 아울의 말을 빌리면 다섯 번째가 에우리의 서이고 여섯 번째가 소생의 서라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왜냐하면 윈드러너의 겉 피부에 적힌 것은 반쪽 즉 완벽한 한 권이 아니라 반 권짜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반쪽의 내용에는 천 번의 목숨을 바쳐야 소생한다고 되어 있고 소생의 서가 발동되어야지 일곱 번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소생의 서에 적힌 대로 천 번의 목숨을 위해 불사가 된 윈드러너는 매일 수도 없이 살해와 부활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해독되지 못했던 부분을 완벽하게 해독한 아울은 나머지 반쪽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겉에 반쪽이 있다면 나머지는 속에 즉 뼈에 기록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불을 붙여라."
테드버드의 외침에 따라 메이지 스켈레톤은 윈드러너가 갇혀 있는 잉겔리움 우리를 향해 일제히 불의 기운을 담은 마법을 쏟아 냈다. 불길은 금방 우리를 집어삼켰고 밤하늘 위로 시뻘건 불기둥을 뽑아 올렸다.
잉겔리움이 벌겋게 달아 올라올 정도이니 인간의 몸은 단숨에 잿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루안과 실버팽은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팽누님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리 불사의 몸이라고 하지만 살점 하나 없이 다 태워도 살아날까요?"
"교주님이 그렇게 명하신 건데 당연히 살아나지 않겠어."
"금서란 정말 무시무시한 거군요. 사람을 어떻게···."
"쉿! 우리 같은 레벨에 금서 이야기는 금해야지. 너도 속으로만 삼켜 입 밖에 내서 이로울 게 하나 없는 거야. 왜? 너도 불사의 몸을 가지고 싶으니?"
"전혀요."
"왜? 좋잖아? 영원히 빵빵한 여자를 마음대로 끼고 살아도 되는데?"
"아이고 말 마세요. 전 하나로 충분합니다. 함께 애도 키우고 같이 늙어가야 그게 인생이죠."
"피이. 말은 잘하네."
그때 밑에서 테드버드의 고함이 들려왔다.
"준비해. 완전히 다 탔어. 뼈만 남았다고."
"가자."
실버팽과 루안은 천마비행으로 달려 내려갔다.
이번에 냉기를 뿌리는 메이지 스켈레톤이 주변에 얼음 안개를 만들었다. 벌겋게 달궈진 잉겔리움 우리가 급속도로 식어 갔다.
우리가 완전히 식은 것을 확인한 테드버드는 우리 안으로 횃불을 비추었다. 타기 전에 심장을 찔러 죽였기에 불에 타는 고통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 보세요. 뼈에 정말 문양이 있어요."
"이거 난해한데? 자 다 달라붙어 한 짝씩 맡아서 빨리 베껴 적어. 아니면 이걸 끝날 때까지 애 계속 태워야 해. 난 두개골을 할 때니까 실버팽은 갈비뼈를 루안은 일단 양팔부터 시작해."
"인원이 더 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이건 금서라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하는 편이 좋아. 괜히 문젯거리를 만들 이유가 없지."
"루안 지껄일 시간이 있으면 한 자라도 더 베껴 적어."
세 사람은 횃불을 의지해 뼈에 적힌 문양을 옮겨 적었다. 그렇게 해서 날이 밝았다. 그러나 문양이 워낙 촘촘히 적혀 있었고 처음 보는 도형과 문양을 똑같이 옮겨 적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뼈에서 점점 살이 차올라 글씨가 묻혀가기 시작한 것이다.
"얼씨구. 이거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이거 부활하려고 하는데요?"
"어쩌지요? 문양이 묻혀서 보이지 않아요."
"할수 없군. 일단 살아나야 한 죽음 채우는 거니까 살려 놓고 또 태워야지."
"저라면 자살 했을 겁니다."
"그럼 우리야 편하지 제발로 죽어주면 오히려 고맙지."
"그러네요. 쩝.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고통은 고통대로 받고 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
"어쩔수 없지. 금서에 손을 댄 자신의 운명을 저주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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