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테스2
기간테스2
거대한 강철 문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하다. 이 강철 문 앞에선 인간은 한 마리 파리와도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이 강철 문은 크기와 무게감이 주는 위압감은 상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말이 없자 단 한 사람만이 발걸음 소리를 터벅터벅 내며 걸어 나왔다.
불사왕 모건 백작
그는 한 치의 말 설임 없이 문 앞에 섰다.
"으하합."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불사왕의 상체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의 등 근육이 커다랗고 화난 얼굴을 만들었다.
팔뚝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붉게 물들었다.
양발로 바닥을 밀고 악을 쓴다.
이 꼼짝도 하지 않을 거대한 강철 문에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붙은 것 같았지만 그 개미는 보통 개미가 아니었다.
-키키키키킥
쇠와 쇠가 갈리는 소리에 콜베르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
조금씩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라합!"
마지막 괴성을 토한 불사왕의 양팔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릉
불사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췄을 때 사람 한 명 통과할 정도의 틈이 벌어져 있었다.
칠무신 중 힘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불사왕이 모든 힘을 쥐어 짜내 겨우 벌인 틈이다.
불사왕을 선두로 문틈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같은 구조의 통로가 보였다.
길게 늘어선 통로.
다른 것이 있다면 색상이다.
위쪽과 강철 문 반대편의 바닥색은 그냥 돌이었는데
이곳의 통로는 거대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실의 굵기가 어른 손목만 했다. 씨실과 날실로 엮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겨우 눈치챈 콜베르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카펫인지조차 인지 하지 못했다.
화려한 붉은색 카펫 위를 걷고 있으니, 피의 강에서 헤엄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다들 기분 좋은 일은 아닌 표정이었다.
저 멀리 무언가 보인다.
구조가 비슷하다면 아마도 또 왕좌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다가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화하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요즘 웬일인지 성안에 쥐새끼가 갈수록 늘어 가는군. 쩝."
"그러게, 양도 차지도 않는 것들이."
순간 이게 사람의 목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온 통로를 꽉 메우고 쏟아져 내렸다.
사람 목소리가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일행은 처음 느꼈다.
목소리에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은 그 무게에 짓눌려 콜베르의 허리가 숙어졌다는 거다.
"뭐지? 이 미친 소리는?"
발렌도의 외침에 레베카가 응답했다.
"조심해요. 기간테스예요."
"으악, 거인, 거인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거인 석상인 줄 알았다. 그것 중 하나가 고개를 돌리자 콜베르는 기겁하고 프랜시스 뒤로 숨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노번의 말에 레베카가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다시는 담을 수 없겠지요."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군."
불사왕은 등에 짊어진 임페리얼 파이어 소드를 뽑아 들었다.
"먼저 움직일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저들의 입장을 들어봐야 하니까요."
일행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괴물과 조우했다.
"세상에나! 몇 번 읽은 적이 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거인, 말 그대로 거인이다. 그들은 왕좌에 앉아 있었는데 불사왕은 겨우 거인의 발목 복숭아뼈 높이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네 명이다.
가운데 의자는 비어 있고 그 좌우로 두 명씩 반원 형태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왕좌 또한 가운데 비어 있는 왕좌와 같은 크기에 같은 디자인이었다.
거인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덥수룩한 수염이 났으며 심지어 수염은 가슴까지 드리워져 있었고 그 머리카락은 길고 길어 바닥에 쓸릴 정도였다.
실로 말도 안 되는 덩치를 가진 괴물이었다. 모두 알몸에 남자다. 거대한 양물이 그대로 보였으니까.
몸에 털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인간의 모습과 흡사했다.
"저길 보시죠."
발렌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거인의 뒤쪽에 새장 같은 것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인간이 갇혀 있었다.
칼멘은 단번에 그곳에서 세렌을 찾았다.
그녀가 크게 외치려 하자 레베카가 즉시 제지했다.
"저들을 건들지 마. 어떻게 나오는지 먼저 보자고."
"구경났나?"
우렁찬 한 마디에 레베카가 바로 응수 했다.
"우리 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가? 언어 하나 익히고 남을 시간은 차고 넘쳤어."
"당신은 기간테스죠?"
"우하하, 이봐 우리보고 기간테스라고 하는군."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단번에 귀에서 이명이 터졌다.
콜베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있었던 것 같은가?"
"우매한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통이었다. 이명이 일고 이젠 심장까지 압박이 전해졌다.
그런데 새장 같은 우리 속의 사람들은 이 우렁찬 목소리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른쪽 거인이 옆 거인에게 물었다.
"얼마나 됐지?"
"난 세지 않았어."
"멜리아데스 넌?"
"글쎄 한 팔천 년 아니지 구천 년은 다 된 것 같은데?"
"귀찮아. 그걸 왜 세고 있어?"
레노번이 용기 내어 외쳤다.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습니까?"
"저놈들 똑같은 질문을 하네?"
"우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대충 8에서 9천 년 정도 이 성에 머문 것 같은데 아무거도 먹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생명체의 본질을 뛰어넘은 신의 영역에 들어간 자들이었다.
"저는 인간의 대표로 이곳에 온 레베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오른편 앞쪽에 있던 거인이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말했다.
"인간의 대표로 이곳에 왔다고? 그럼 왕좌에 쓰인 글귀를 읽었는가?"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이미 사라진 언어입니다. 불행히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미련한 것. 그곳에는 우리에게 도전할 용기와 가치가 있는 자만 이곳에 올수 있다고 적혀 있어."
"아니면 알아서 저곳에 들어가든지?"
왼편 앞쪽에 있던 조금 전 멜리아데스라 불렸던 거인이다.
그가 가리킨 것은 새장처럼 생긴 우리였다.
레베카는 그곳에 갇힌 사람이 네크로맨서와 기사 몇 명 그리고 세렌과 조그만 소녀 한 명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수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우리 안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살아 있습니까?"
"물론!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만에 맛보는 고기다. 성에 찰 리야 없겠지만 싱싱할 때 먹어야 한다. 몇 마리만 맛보고 남겨둔 상태다. 죽으면 상하니 살려 두는 거다."
그 말에 소름이 돋아 콜베르는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당신들이 여기 갇혀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네놈들 인간에 속은 것이지. 넌 이곳이 어떤 곳으로 보이느냐?"
"당신들을 가둬 놓은 감옥처럼 보입니다."
"정확히 봤다. 우리는 이곳에 갇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우리를 속인 놈은 갈가리 찢어 버릴 것이다. 놈이 없으면 피를 이은 후손이라도 말이다."
"메르데이아스 찢어 버리면 어떡하나? 그렇지 않아도 작아서 몇 번 씹으면 녹아 없어져 버리는데."
"이제 밖으로 나가면 너희들 인간을 모조리 먹어 버릴 테다. 이곳에 갇혀 있던 나날의 보상을 받아 내야지."
레노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마단이 이들을 이곳에 가둬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이들이 풀려나면 주신 제국은 끝장입니다."
레베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갈 방법을 모르시기에 지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랬지. 지금까지는···. 하지만 나갈 방법을 아는 놈이 왔으니 그놈이 문을 열어 줄 거다."
"누구죠? 그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는 걸로 아는데요?"
오른쪽 앞쪽 거인은 메르데이아스이다. 그의 맞은편 왼쪽 앞쪽 거인이 멜리아데스
"이봐 에리니에스 녀석을 깨워봐."
왼쪽 후미에 앉아 있던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이다. 아마 네 명 중 가장 키 큰 거인일 거다. 그는 천장에 매달린 우리 하나를 손톱으로 집어 들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움직임 보는 일행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이건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레벨의 괴물이 아니다. 과거 드래곤 전쟁 때의 드래곤보다 훨씬 큰 괴물이다.
도대체 라마단은 어떻게 이들을 이곳에 가둘 수 있었을까? 믿기 힘든 노릇이다.
에리니에스라 불린 거인이 고개를 숙이더니 새장 안을 향해 입김을 뿜었다.
새장이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어이쿠"
새 장 안에 뒤엉켜 있던 몇 명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들은 입김에 날려 새 장 우리에 강하게 부딪쳤다.
"네 이름이 몰레이그라고 했지?"
그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새장에 쏠렸다.
"켁, 켁. 그, 그렇습니다. 제가 몰레이그입니다. 이 차원에서 나갈 수 있는 포탈을 반드시 반드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대신 저와 약속하신 거래는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음, 너와 관계된 사람은 살려 달라는 부탁 말이냐?"
"그렇습니다. 인간은 만 년 동안 엄청나게 번성하여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먹을 인간이 대지 위에 넘쳐나고 마실 물 또한 끊이질 않고 흐릅니다. 제가 부탁드린 사람만 먹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 모두를 드셔도 됩니다. 자고로 식량이 떨어지면 또 재배하여 키워야 합니다. 싹 다 드시면 영원히 먹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종자용으로 일부는 남겨 두셔야지요."
"음, 네 말이 일리는 있어. 하지만 이곳을 벗어날 포탈인가 뭔가를 만들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겠습니까? 저놈들 또한 제가 만든 게이트를 이용하여 이곳에 온 것입니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뿐입니다."
"알고 있어. 그러니 넌 먹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너도 언젠가는 내 위장 속에서 녹을 거란 말이지. 대신 아프지 않게 씹지 않고 삼켜는 주겠어."
"저만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 레베카가 말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요. 물론 그가 포탈을 만든 것은 인정합니다. 저희도 그 포탈을 통해 들어왔으니까요."
"그럼 이 녀석 말이 사실이란 거군."
"네 맞아요. 하지만 큰 맹점이 있죠. 그 포탈은 우리 같은 소인인 인간도 겨우 통과할 정도예요. 그것도 소수의 인원만 가능하죠."
"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어. 우린 바보가 아니야. 통로를 넓히려면 더 많은 인간이 필요해. 특히 마나를 잔뜩 품은 녀석일수록 좋은 거지."
레베카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들을 살려 놓은 이유를 알겠군요. 인간의 몸에서 마나를 쥐어짜려 해요."
"거인이 통과할 만큼의 포탈을 만들려면 5성 이상 마나를 가진 마법사 백 명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렇죠! 그걸 원했어요."
레베카는 다시 거인을 향해 고함을 쳤다.
"여기 모인 사람 전부를 쥐어짜 봐야 턱도 없습니다. 마나를 보유한 마법사 백 명 정도가 붙어야 포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저 말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마나만 가능한 것이 아니죠. 제 기술만 있으면 저 인원으로도 충분히 포탈을 넓힐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저를 믿지 못하면 영원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포탈을 여는 소환진이 기록된 지식은 오직 제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그때 거인 한 명이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후미에 앉은 자로 지금까지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는 거인이다.
-쿵, 쿵, 쿵
그가 왕좌에서 내려와 걸을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바닥이 울렁거렸다.
"왕좌의 내용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을 보니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너희는 도전자의 자격으로 이곳에 온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불사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도전하여 승리하면 어떤 보상이 있는가?"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되고 여기 눌러살고 싶으면 살아도 돼. 네 놈들 목숨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보상을 대신한다."
"그건 싱거워. 차라리 내 부하가 되어라. 나를 주인으로 받들고 모셔라."
"우하하하하하"
거인의 웃음소리에 온 공간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불사왕은 눌리지 않고 당차게 말했다.
"내 부하가 되면 어떻게 하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지."
"간덩이가 부은 놈이군. 네 녀석의 자존감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사실 너희가 이곳에 갇힌 것도 라마단이라는 인간에게 패한 것이 아니냐? 이미 인간에게 한번 졌던 놈인데 내가 질 이유가 없지."
"이놈이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쿵, 쿵, 쿵
거인이 달려온다. 불사왕의 임페리얼 파이어 소드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무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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