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프리피야트의 관람차(7)
해동일보 사회부.
조진상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연분홍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파장이 크겠는데?”
연분홍이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요, 우리 지역네트워크부도 이것 때문에 비상이에요. 과거 기사 전부 다시 확인하면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 찾는다고 다들 토끼 눈이 됐어요.”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나? 보통은 조금 시끄럽다 말잖아.”
“곪았던 게 터진 거죠. 그동안은 비하 댓글 쓰는 사람들만 비난했는데, 그런 댓글로 클릭 장사를 하고 있던 게 밝혀진 셈이니까.”
조진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길래가 설문 형식의 취재 요청서를 지자체에 뿌렸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말이 요청서지 그냥 꼰지른 거나 다름없어요. 똑같은 교통사고도 지역명이 박히는 순간 클릭수가 달라지는데, 의도적으로 마사지까지 한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으니까······, 여하간 지금 지자체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뉴스25를 고발하네 마네 하고 있어요.”
“고발까지 할 일은 아니잖아.”
“액션이죠. 이렇게 으름장을 놓아야 다른 언론사에서도 뜨끔할 테니까요. 지역 시민단체들도 성명 낸다고 난리예요. 쌓인 게 많았는지 지역 신문사들도 들고일어나는 중이고.”
“뉴스25가 대응은?”
“어떻게 대응해요, 시기도 놓쳤고, 과거에 한 짓도 다시 공론화되고 있는데.”
“과거 한 짓이라니?”
“초창기에 인지도 높인다고 지역 기사 가지고 장난친 게 많아요. 한 대로 받는 거죠, 뭐. 간단히 안 끝날 것 같은 게 여기저기서 포털에도 푸시하는 모양이더라고요.”
피식 웃은 조진상이 고개를 저었다.
“재밌네, 이런 일도 다 있고.”
연분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어떻게 뭐만 하면 시끄러워지니, 참······.”
“이길래 스피커 파워가 많이 커졌겠어.”
“그건 모르겠고, 동종 업계 사람 잡는 거라 슬슬 말들이 나와요. 뉴스25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듯도 하고요. 어쨌든 대전타임즈만 신났어요. 거기 종이 신문 구독자도 늘고 있다더라고요.”
“별일이네.”
“그러니까요.”
“타사 걱정은 여기까지 하고, 아까 하던 특집 얘기 마저 하지.”
“네.”
*
특허법원의 취재를 마치고, 동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취재를 하러 갈 때, 빨리 전화를 달라는 정사부장의 톡이 날아왔다.
택시를 기다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이 기자, 어디야?
“지금 용운동 음주 교통사고 취재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거 가 기자한테 토스할 테니까 회사로 일단 들어와.
“예? 가 기자 지금 계룡대 육군본부에 있을 텐데요?”
-아니면 다른 사람 시킬 테니까 빨리 회사로 좀 와. 급해.
“네.”
뭔 일이지?
기자가 취재보다 급한 일이 있나?
설마 뉴스25 놈들이 쳐들어온 거 아냐?
갑자기 흥미가 확 동했다.
예약한 택시 기사에게 양해부터 구했다.
여차저차 해서 대전타임즈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한 정사부장이 날 소개했다.
“이 친구가 이길랩니다.”
바로 대전타임즈의 대표였다.
오십 대 초반의 남자로 지역 신문사 대표라기보다는 중소기업 사장처럼 보였다.
작지 않은 키에 군살 없는 몸매, 자연스러운 컬러로 염색을 한 건지 흰머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표는 손을 내밀며 악수부터 청했다.
“반가워. 온 김에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뭐?
“아, 네.”
“나만 반갑나? 별로 안 반가워 보이네?”
그럼 좋겠냐?
취재하러 가다 급한 일이라고 소환된 일이 고작 대표 얼굴 보는 일인데?
배알이 꼴려 툭 한마디 했다.
“일하다 끌려와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정사부장이 헛숨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대표라는 양반에게 물었다.
“얼굴 다 보셨으면 가도 될까요? 취재 가던 중에 온 거라 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하하하. 듣던 거 보다 더 재미있는 친구네.”
내가 왜 네 친군데!
그래도 가족이 아닌 게 다행이네.
그때, 국장이 헐레벌떡 국장실에서 뛰어나왔다.
“죄송합니다. 통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대표란 양반은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하는 데 괜히 방해만 했네, 잡상인 취급 받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하하하.”
웃어? 이게 웃겨?
어디가?
뻣뻣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후딱 교통사고 취재만 끝내고 일찍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밥이라도 먹자고 할 판이다.
하얗게 얼굴색이 바뀐 국장이 입을 열었다.
“잡상인이요?”
“아냐, 그냥 한 소리야. 어떻게······, 회식하기로 한 건 어떻게 됐지?”
국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놓으며 말했다.
“아직 전체 공지는 안 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이라도 ······.”
“됐어. 다들 일이 있을 텐데.”
대표가 웃는 낯으로 날 보며 물었다.
“괜찮으면 둘이 식사나 할까?”
“오늘이요?”
“왜, 따로 약속이라도 있어?”
“네.”
있다.
약속은 아니고 어디 좀 가 봐야 하거든.
거절은 대표가 당했는데, 국장하고 정사부장의 얼굴이 썩어가고 있다.
대표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할 수 없지. 나중에 한번 보자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할 얘기?
혹시 이번에 대전타임즈 종이 구독자가 늘어난 일 때문인가?
서로 불편하게 밥을 사지 말고 돈을 줘, 좋은 거 있잖아, 금일봉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해야 하는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피식 웃은 대표가 국장과 정사부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바쁜 거 같은데, 난 이만 가도록 하지.”
국장이 냉큼 입을 연다.
“괜찮으시면 차라도······.”
“아냐. 좀 있으면 마감 회의 시간인데 내가 생각이 짧았네. 수고들 해.”
대표는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문으로 걸어 나갔다.
뭐야, 싱겁게.
국장은 날 매섭게 쏘아보고 대표를 따라나섰다.
우물쭈물하는 정사부장에게 말했다.
“선배, 용운동 음주 사고요, 제가 가겠습니다.”
“응? 뭐? 방금 뭐라고 했어?”
이 양반이!
“용운동 음주 사고 취재하러 가겠다고요.”
“아, 그래. 그렇게 해.”
왜 이렇게 얼어 있지?
대표가 갑질을 많이 하나?
이거 신경 쓸 때가 아니라 부랴부랴 대전타임즈를 빠져나왔다.
서둘러야 한다.
늦지 않으려면.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유진케미칼 본사.
7층에 마련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부 산하의 대미 파트.
크지 않은 사무실에는 책상이 단 하나만 놓여 있었다.
건물 사이로 살짝 보이는 테헤란로를 팔짱 낀 사내가 내려다보고 있다.
등판이 넓은 사내의 무심한 눈에는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다.
지이잉.
평소 좀처럼 울리지 않던 전화가 진동하자 사내는 팔짱을 풀었다.
책상에 올려둔 전화를 든 사내가 미간을 좁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어떤 걸 말이지?”
-대전타임즈 이길래에 관한 지시······, 혹시 잊으셨습니까?
“단순 조사에서 끝낼 일이 아니었나? 그거라면 단말기로 보냈을 텐데?”
-SIEM 자료가 이길래에게 흘러간 정황이 있습니다. 회수지시가 내려졌고요, 해당 지시 사항이 내려간 것으로 아는데요?
“자료의 전량 회수는 불가능해. 이미 해동에도 들어가서.”
-해동이라면 해동일보를 말하시는 건가요?
“해동은 그쪽에서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보군.”
-여의도 중진이 브레이크를 건 것까진 확인했습니다만 자료가 해동까지 흘러간 사실은 몰랐네요.
“확인까지 한 건 아니지만 맞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만둔 이길래가 굳이 해동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이건 다른 경로로 체크해 보도록 하죠.
“다른 건?”
-이길래를 정리하라는 지시입니다.
사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길래를? 괜히 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변수를 최대한 줄이라는 지시입니다. 인지도를 높여가는 이길래가 가여린과 함께 있는 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니까요.
“그럴 거면 가여린을 정리하는 게 낫지 않아?”
-아직 연구원의 행방을 찾지 못해서 그건 안 됩니다.
“아무리 고스트서버가 다시 나타났다고 해도 너무 성급하군. 사고로 위장한다고 해도 시끄러울 텐데.”
-오히려 간단할 거예요. 이번 이길래의 경우에는.
“무슨 소리지?”
-라자루스 신드롬, 이길래의 사인은 라자루스 신드롬으로 인한 급사로 처리될 테니까요.
“······.”
-관련 자료는 단말기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필요한 약물이 있다면 별도로 요청하세요.
“기한은?”
-1월 중으로 정리되길 원하십니다.
“촉박하군.”
-내일부로 이길래의 밀착 감시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동선과 이동패턴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죠.
사내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사내가 다시 팔짱을 끼려 할 때였다.
띠리리링.
사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금껏 울린 적이 없는 내선전화가 울렸기 때문이다.
눈살을 구긴 사내가 내선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네.”
-홍보실의 정미경입니다. 차장님을 찾는 사람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나를요?”
-네, 그······, 대전타임즈의 이길래 기자라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인터뷰요? 나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도 당황스럽긴 했는데, 차장님의 이력이 독특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내가 인터뷰할 만한 일을 한 게 없을 텐데요?”
-그게······.
홍보팀 직원이 머뭇거림에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혹시 홀트 복지 재단과 관련된 취재라고 하던가요?”
-네, 맞습니다. 일단 어려울 거라고 거절하긴 했는데······, 자기 이름을 전하면 응하실 거라고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해서요.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기자 이름이 뭐라고 했죠?”
-대전타임즈 이길래 기자라고 하더군요. 차장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요즘 언론사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이름이 들리는 기자예요.
“그렇군요. 앞으로 계속 거절해 주십시오. 제 개인사가 뉴스로 되는 건 사양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사내가 눈을 빛내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추가로 요청하실 것이 있나요?
“이길래가 연락을 해왔어.”
-네?
“그것도 유진케미칼 홍보팀을 통해서. 나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더군.”
-인터뷰요?
“내가 해외 입양아란 사실을 알고 있나 봐.”
-그건 불가능합니다. 관련 자료는 전부······, 그것보다 어떻게 이길래가 연락할 수 있었던 거죠?
“그건 내가 물어야 할 질문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사내가 옷걸이에 걸린 슈트 재킷과 코트를 집어 들었다.
손목의 시계는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옷을 갖춰 입은 사내가 서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으로 내려간 사내는 출입 관리를 하는 보안팀 직원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목에 건 신분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만약 제 이름을 대고 찾아오는 기자가 있으면 출입은 거절해 주시고, 연락 좀 부탁합니다.”
보안팀 직원은 빠르게 메모하고 대답했다.
“요구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사내가 출입구를 지나 로비 회전문으로 향할 때였다.
검은 패딩에 백팩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사내에게 명함을 내었다.
“안녕하세요, 대전타임즈의 이길래 기잡니다.”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길래가 웃으며 말했다.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인터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이슨 터커 씨.”
사내는 무심한 표정으로 이길래를 바라봤다.
이길래는 사내의 무심한 눈을 담담하게 마주 보며 다시 말했다.
“오늘이 불편하시면 다음에도 괜찮습니다. 서울에 온 김에 인사나 드리면서 인터뷰에 응해 달라고 말씀드리려고 기다린 거니까요.”
사내는 이길래가 내밀고 있는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이길래 냉큼 물었다.
“안 주십니까? 터커 씨 명함은?”
제이슨은 피식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명함케이스를 꺼냈다.
얇은 금박으로 장식된 유진케미칼의 명함을 받는 이길래를 향해 제이슨이 말했다.
“용감하군요. 무작정 찾아와서 인터뷰 막무가내로 요청을 하다니.”
이길래는 씩 웃으며 제이슨의 말을 정정했다.
“미국에 오래 사셔서 그런지 단어 선택이 어색하네요, 용감이 아니라 무모하다고 해야 맞을 거 같은데요. 뭐, 어쨌든 다음에 뵙죠. 홍보팀으로 제안한 인터뷰 꼭 응해주세요.”
눈썹을 들썩이며 빙긋 웃은 이길래는 몸을 돌려 회전문으로 향했다.
사내는 이길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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