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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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최근연재일 :
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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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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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1

DUMMY

도윤은 그동안 말없이 속으로 눈물을 흘렸을 연서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연서가 오롯이 감당하며 걸어왔을 그 삶의 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연서는 지금껏 이렇게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의 아픔이 터져 나왔던 적은 없었다.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무의식에 숨어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높다란 댐의 수문이 열린 듯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천왕 할머니께서 토닥여 주시는 손길은 뜨겁게 그러나 부드럽게 연서의 감정을 달래 주었다.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니 가슴이 시원했다. 어머니는 연서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도윤도 어머니와 연서를 함께 끌어안았다.


한편으로는 악령에게 이렇게 퍼부어 주시는 천왕 할머니가 감사했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을 당하실까 걱정이 되었다. 눈치를 채셨는지 천왕 할머니는 걱정하지 말라며 달래 주셨다.



"저게 아무리 흉허다 해도 나는 못 건드린다. 어디 천신 제자인 나를 건드려? 나도 저것을 없애 버리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저것이 나를 건들지는 못해. 걱정 하지 마라.“


“연서는 내가 말한 것처럼 선녀님이 왕래 하신다. 무당 되고 그라는 건 아니고 가만~히 지켜주신다. 니는 신 제자는 아니지만 하늘에서 돌보시는 아이다. 전생에 너희 집안이 좋은 일을 참 많이 한거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호통을 치실 때 선녀라고 하셨던 건 그냥 하시는 말씀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정말 선녀님이 나를 지켜주신다고? 이게 무슨 뜻일까. 연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생에 좋은 일 많이 한 집 자손이면 더 잘 살게 좀 도와주시지 왜 이리 험한 삶을 지고 가게 하시는 걸까.



“연서 니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선녀님이 한 번씩 오셔서 저 악한 게 널뛰지 못하게 니한테 와따~ 가따~ 하면서 올라가시고~ 또 내려오시고 이런 거다. 그래서 저 악한 것이 너를 다 못 잡아먹은 게야. 보통 사람이었으면 벌써 일 났다."



천왕 할머니는 잠시 뜸을 들이셨다. 뭔가를 느끼시고 계신 것 같았다.


“너는 조상에서도 돕고 하늘도 돕는 아이다. 저것이 저래 혼자 지 목숨 끊고 나서 원한이 엄청 깊고 깊다. 저 흉헌 것이 너한테 계속 들러붙어 있다 보니 선녀님도 오래 머물지를 못해. 가끔 저 악한 것이 조용할 때가 있었을 거야. 그때는 선녀님이 다녀가신 거다.”


그러니까.. 내가 선녀? 아니면 선녀님이 수호신? 



*****



송민진은 열심히 김주성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기에 친한 성형외과 상담 실장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의사 라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그렇게 잘 나갔다던 청담동 건물을 통째로 병원을 올렸던 김주성이 안 나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사막에서 바늘 찾기이니 시간이 걸릴 뿐. 지윤에게는 알아보고 있지만 오래 걸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띠링’

휴대폰의 메시지 소리가 울린다. 이지윤이다. 



⌜민진아. 내가 뭐 찾았어. 그때 당시 김주성의 피해자 모임이 있었데. 링크 보내줄게.⌟


지윤이 보낸 링크를 클릭해 보니 인터뷰 영상이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같았다. 길지 않은 영상이다.

피해자 모임이라.. 민진은 피해자 모임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다. 초고대 문명까지 뒤지고 뒤졌던 나. 송민진이다! 인터넷이라는 이세계는 파고 파면 안 나올 게 없을 것이다. 



*****



벌써 어두워졌다. 산속의 밤은 눈 깜짝할 새에 도둑처럼 다가온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또 어머니와 천왕 할머니가 하루라도 같이 더 있었으면 하셨던 터라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했다.


도윤과 연서는 평상에 앉아 있으니 이제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게 실감 났다. 귓가에는 숲 속의 바람이 잔잔한 연주가 되어 울려 퍼진다. 달빛도 아름답고 개구리도 울고.. 하면서 이 낭만을 즐기고 싶었건만 날벌레가 너무 많다. 입에 몇 마리 들어간 것 같다.


“퉤퉷퉤퉤”


“왜 그래? 괜찮아?”


“하품 한 번 했더니 온 갖 벌레가 입으로 다 들어왔어. 아우~”


“하하. 가지가지 하시는 한연서다 정말. 하하하.”



웃어? 너도 곧 먹게 될 거야.



“앗! 퉷퉤퉤퉤퉤. 아우 입만 벌리면 들어오나 봐. 퉤퉷”



거봐.


***


밤 하늘의 별은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가까이서 반짝거렸다.

​천왕 할머니와 어머니는 수박을 아주 푸짐하게 가져오셨다. 먹다가 배 터져 죽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어봐서 정성스레 가져오신 수박을 야금야금 먹었다. 어머니는 모기향을 찾아서 평상에 두셨다. 지금 이곳은 우리들만의 외딴 별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와~ 수박 너무 맛있어요 할머니~! 엄청 달아요~!”


감탄하며 잘 먹는 연서가 보기 좋으셨는지 천왕 할머니는 많이 먹으라며 연서 앞에 수박을 잔뜩 놓아주셨다. 신나게 먹고 있는 동안 들고 오시기 무거우셨을 텐데 어떻게 사 오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쭤봤다.


“아 그거 요 밑에 명준이네가 알아서 사서 갖다 준다. 갸들 장에 나갈 때 되면 내가 필요한 거 사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 나랑 제일 오래 된 식구지.”



그렇구나.. 연서는 우리가 온다고 해서 괜히 무리하신 건가 싶어서 여쭤봤는데 도와주시는 이웃이 있다고 하시니 안심하고 먹는 데에 집중했다.



“희숙이 니는 니 신랑하고 아직도 잘 지내나?”


“에이~ 이모 오래 살다 보면 다 똑같지~ 근데 우리 목사님이 사람이 참 좋아. 애처가예요. 가정적이고. 이모 말대로 나는 남편 복 있는 년~”



천왕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한참을 웃으셨다. 


“야야 니 그 목사한테 시집 간다고~ 날이면 날마다~ 울며 불며 난리쳐서 형님한테 디지게 처 맞은거는 기억이 안 나나?

그때는 이모들이 다 ‘형님 화났다 우짜믄 좋노, 애 맞아 죽으면 우짜노.’ 막 이러면서 가슴이 콩닥~ 콩닥~ 했었지~

그러다가 신랑네 집도 무당이라 하니까 형님이 ‘그래? 그라믄 됐다.’ 그리고 바로 결혼하라 했다. 형님도 차~암~ 희한하다.”



“뭐야. 엄마도 아빠처럼 할머니한테 겨우 허락받은 거였어요? 와~ 나는 지금까지 아빠가 혼자 엄마 짝사랑 한 줄 알았네.”


“몰라. 기억 안나.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자존심 상해.”



"엇. 그러면 어머니랑 목사님은 일찍 결혼하신 거예요?"


"그랬지. 양가 어머니들 맘 바뀌기 전에 결혼을 확! 해버려야 안전하니까. 푸하하하. 참.. 어렸다 어렸어."



연서와 도윤은 천왕 할머니의 얘기에 푹 빠져들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목사님도 신학대 가신다고 했다가 엄청 맞았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도 그러셨구나 싶으면서도 서로 그만큼 사랑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엄마도 무당이야’ 이 한 마디가 만병통치약이라니.




그렇게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고 슬슬 잘 준비를 했다. 천왕 할머니는 어머니와 안방에서 함께 주무셨다. 짐이 좀 있는 작은방에서 도윤이 자기로 하고 남은 작은방에서 연서가 자기로 했다.



*****



연서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입은 바싹 말라 있었고 옷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허억..헉.. 헉.. 하..”


모르겠다. 무슨 상황이지 전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니 산속이었다.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몸을 살펴보니 잔 생채기가 많았다. 손까지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꿈은 아닐까? 그러기엔 상처들이 따갑고 아팠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금 연서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안개가 가득해서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연서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계속 걷고 있다.



얼마나 헤맸는지 숨을 쉬기가 힘들다. 지친 나머지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주변을 살펴보니 시야는 흐릿하고 여전히 안개가 가득했다. 마지막 기억은 천왕 할머니 댁의 작은방에서 잠든 기억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여기다. 얼마나 깊이 들어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꿈은 아니다. 내가 제 발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자 악령이 말을 걸었다.


<그때 여기 내가 보여줬던 거 기억나? 같잖은 X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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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10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9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10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10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10 0 12쪽
49 결계 3 24.08.28 10 0 10쪽
48 결계2 24.08.28 12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2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2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2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2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3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3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5 0 10쪽
» 실종 1 24.08.16 15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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