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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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최근연재일 :
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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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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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 혀

DUMMY

“도윤아. 근데 얼굴 거기 상처는 뭐야? 뾰루지 났어?”


앗.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별거 아니야. 작게 상처 난 건데. 생각난 김에 가는 길에 병원 잠깐만 들르자 형.”


도윤은 유정 스님과 함께 결계로 향하던 중 잠깐 병원에 들러 진단서를 뗐다. 후에 상해의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 사실 무딘 칼이어서 다행이었다. 


날카로웠다면 찢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연서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들면 팔 하나 정도는 못쓰게 할 생각이었...


유정 스님은 궁금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듣자고 생각했다. 도윤이 말하고 싶을 때가 되면 알아서 얘기해 줄 테니.



*******



다시 출발하여 도착한 그곳은 경사가 조금 있는 산이었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니어서 도윤과 유정 스님은 많은 짐을 가지고 올라가야 했다.


“여길 엄마가 오시겠다고 하셨다니.. 우리 엄마도 참 대단해. 그냥 등산로도 힘든데.. 하하.”


유정 스님의 말에 도윤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다.

“엄마가?”


“응. 하하하. 멋지지. 우리 어머니.”


역시. 여장부 시다. 다행히도 남자 둘이서 짐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높이는 되었다. 산이 더 높았다면 꽤 어려웠겠구나 싶었다. 


인적이 없는 산자락을 따라 올랐다. 길이라고는 두 사람이 밟는 것이 곧 길이 되는 산이다. 조금 올라가서 큰 바위들 사이를 지나 들어가니 그 바위들 사이에 유독 나무들이 모아져 있는 곳이 보였다. 


잘도 숨겨놨다. 이걸 어떻게 찾아..


둘은 나무들 앞에 서서 짐을 내렸다.


“와······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았데?”


“나도 잘 몰라. 후훗. 큰 스님이 이미 알고 계신 곳이었어.”


도윤은 신기했다. 이런 산중에 뜬금없이 숨겨진 동굴이라니..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나서야 보이는 곳. 그 나무숲은 마치 허락되지 않은 불청객들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빽빽한 나무의 성벽을 쌓아 놓은 듯했다. 


둘은 먼저 동굴 앞의 나무들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내부를 보니 낙엽과 흙들이 뒤섞여 있었다. 확실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역력해 보인다.


입구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널찍한 공간이 있다.


이 산중에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 둔 것만 같은 동굴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람을 금치 못했다.


“도윤아 빗자루 좀 줘봐.”

유정 스님의 말에 도윤은 빗자루를 가져왔다. 역시 두 개를 준비해 오길 잘했다. 두 사람은 열심히 동굴의 바닥을 쓸었다.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형. 한 번 더 차에 가서 짐 가져와야 해. 어둡기 전에 빨리 내려갔다 오자.”


“어. 그래. 짐 마저 가져와야겠다.”


두 사람은 그렇게 두 번을 더 짐을 날랐다. 결계 안에서의 시간은 두 시간에서 길어봐야 세 시간 정도로 잡고 있다.


그것만 생각하면 굳이 많은 짐은 필요가 없지만 둘은 오늘 밤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침낭과 기타 먹을거리들이 필요해서 짐이 많아졌다.


“휴······ ”

한숨을 돌린 도윤과 유정 스님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정리에 들어갔다. 바닥을 빨리 깨끗하게 해야 해가 지기 전에 결계의 선을 깎아낼 수 있다.


열심히 바닥을 쓸어내니 만다라의 형태가 보인다. 다른 문양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복잡한 ‘진’ 이었다. 마치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 같은.. 그리고 오래되어 보이면서도 신성한 느낌이었다.


“봐. 이 선들 보이지? 이걸 너무 깊게 파지는 말고 여기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보수하면 돼.”


드디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동굴 안은 쇠와 망치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메아리를 치며 귀를 울리는 소리가 꽤 큰 소리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있었다.


도윤은 하나하나씩 선을 이어가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한연서. 하늘에서 굽어살펴달라는 마음으로 연서의 이름을 수백 번이고 불렀다. 


그렇게 보수작업이 대략 끝났다. 이제는 수성 페인트를 이용해 작은 붓으로 선을 그리면 된다. 채워야 할 문양이 상당했다.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산속의 밤이 찾아왔다.



*******



연서는 조용히 엄마의 화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주겠다는 악령의 약속. 기간은 세 달. 그리고 미심쩍은 제안. 


생각에 빠져 있는 연서에게 메시지가 왔다. 도윤의 어머니셨다.


⌜연서야~ 혼자 괜찮니? 유정 스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내일 오전에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아. 8시까지 데리러 갈게.⌟


아. 결계가 완성이 된 모양이구나.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는 탈 없이 잘 있어요~^^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되세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 8시까지 준비하고 있을게요~ 참 그리고 주소 보내드려요~.⌟


내일이다. 아침에 출발하면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다. 아침에 늦지 않으려면.


연서는 7시로 알람을 4개나 맞춰두었다.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지 생각한 연서는 혹시 몰라 노트 몇 개와 펜도 몇 개를 챙겼다. 빠트린 정보는 없는지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몸이 상당히 긴장된 상태라 심박수만 빨라지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냥 자자. 자고. 내일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무슨 속셈일까 우리 연서X이~? 꿍꿍이가 있는데~ 내일이면 뭐가 달라질 거 같아? 이 병XX아!. 내가 그리 만만 하디?>


악령은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다. 오늘은 이 쥐새끼한테 넘어가면 안 된다. 


“그런 거 생각할 여유 없어.”


<딴청 피우지 마. 이 여우 같은 X. 계약은 신경 안 쓰나봐? 왜, 목숨이라도 버리고 싶어? 니 X의 유일한 재산인 그 목숨. 가져가 주리? 개XX아! 니 목을 X서 믹서기에 갈아버려 줘? X병X 같은 X.>


“꺼져.”


말을 섞지 말아야 한다. 지금 악령은 자신에게 위험이 있음을 감지했다. 아직 그것이 정확한지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분을 쏟아붓는 것이다.


“계속 지껄이든가 말든가..”



*******



수녀님은 내일 아침 출발을 위해 도윤의 집으로 왔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각자의 방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모두 다 같은 마음이다. 연서를 아끼는 그 마음이 기도를 통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그것 하나뿐. 내일의 시간이 모든 걸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령을 피해서 서로의 정보를 맞추고 부족한 나머지 페이지들을 맞춰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일 결계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하고 있다.



******* 



김유범과 엄마의 모습.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김유범은 엄마가 그렇게 좋은지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엄마의 한 손을 잡는다. 엄마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렇다고 김유범의 손을 놓지는 않는다. 


데이트를 하나 보군. 저렇게 다정했던 남자가 얼음보다 더 차갑게 대하는 남편으로 변하게 된다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김유범은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모든 비용은 자신이 부담할 테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엄마는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겠지.. 미안하기도 할 거고.. 


“괜찮아. 이 생각은 나도 하기는 했지만 먼저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구. 수정이 부담되지 않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하라고..”


“아.. 어머니께서..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김유범은 따뜻하게 엄마를 달랬다. 그리고 꼭 잘 살자며,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보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잘난 입을 잘도 놀린다. 권자영의 친절한 시어머니 코스프레를 한 세치 혀에 두 사람 다 놀아났다.


그렇게 김유범과 엄마는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


웨딩드레스 샵. 커튼이 열리니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서있었다.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권자영과 김유범 모두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희고 고운 살결과 반짝이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순백의 신부의 표본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참으로 고왔다. 


김유범은 엄마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권자영의 표정은 좀 전과는 다른 차가운 눈빛으로 변했다.


그래. 너 또한 뱀의 눈을 가졌구나. 권자영의 독기가 나에게까지 퍼지는 것만 같았다.



*******



결계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금세 날이 어두워져서 동굴 안에 작게 불을 피웠다. 캠핑용 랜턴도 켜두고 바닥의 선이 잘 보이도록 하고 작업을 했다. 


“와~ 완성했다!”

유정 스님의 말이 큰 소리로 울려 퍼진다. 허리가 뻐근했던 도윤도 기지개를 폈다.


“다행이다. 내일까지 그대로 있겠지 형?”


“그럼 그럼 비만 안 들어오면 괜찮지. 내일 비 안 온데. 일기예보 보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다. 형! 아니, 이제 스님이라고 해야겠다. 혹시 모르니. 유정 스님~ 배가 고픕니다. 뭐 좀 드시죠~.”


“아이고.. 도윤 보살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사 온 것 좀 다 털어 보시죠.”


산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작은 모닥불을 계속 피웠다. 그렇게  산속의 밤은 내일을 향해 흘러갔다.



*******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맞춰 연서는 눈을 떴다. 아침이다. 늦지 않게 서둘러야 한다. 씻고 어제 챙겨 놓았던 것들을 가방에 넣고 나니 벌써 7시 50분이다. 


바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는 이미 목사님께서 도착해 계셨다.


“안녕~ 연서야~”

반갑게 연서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세 사람의 모습에 울적했던 연서의 기분도 밝아졌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연서에게 뒷자리의 수녀님은 이리 앉으라며 자리를 비켜준다. 그렇게 수녀님과 연서는 함께 앉았다. 그리고 어머님이 연서에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건네주셨다. 


“오와~ 직접 만드신 거예요?”

연서의 질문에 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럴 리가~! 산 거야~! 우린 오면서 다 하나씩 먹었어. 어서 먹어~ 아하하하,”


멋쩍게 웃은 연서는 감사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천왕 할머니 댁에 갈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모이니 오늘도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이었다.


<지X하네. 배가 불렀네 이 X아! 다 같이 미친 거야? 씨X.>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악령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족들과 함께 도윤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오늘이다. 유일하게 악령에게 벗어난 시간을 갖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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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9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8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9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9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9 0 10쪽
48 결계2 24.08.28 11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 세치 혀 24.08.27 12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1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1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1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2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4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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