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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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최근연재일 :
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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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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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이름은

DUMMY

천왕 할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서울로 오니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 어머니는 집 앞에 모셔다 드렸다. 늦었으니 자고 가라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신경도 쓰이실 테고 연서와 도윤도 좀 더 편하게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둘은 연서의 집으로 향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도윤이 피곤할까 봐 연서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괜찮다며 왕복 운전을 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도윤은 간간이 연서의 손을 잡기도 했다. 친구라고만 생각 했을 때는 마냥 따뜻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연서도 도윤의 손길에 설렘을 느낀다. 



*****



“으아~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연서는 환호했다. 그런 연서의 모습을 보며 도윤은 미소를 지었다.

그 난리를 겪고도 또 이렇게 밝은 연서가 대단했다. 아무래도 노력하는 것이겠지.. 



“도윤아. 배 안 고파?”

“어? 배고파. 뭐 좀 먹고 자야 할 텐데..”

“간단하게 라면 어때? 내가 끓여줄게.”



안돼! 그것 만큼은! 연서가 라면을 끓이는 건 절대 안 된다! 도윤은 피곤할 테니 본인이 특제 라면을 준비해 주겠다고 둘러댔다. 제발.. 그것만은 포기해 주길 바라는 도윤이었다.


“머. 먼, 먼저 씻어. 연서야. 나는 라면 먹고 씻을래.”

“알았어~ 고마워~”


‘미안해 연서야.. 내가 널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한강 라면은 안돼..’


***


씻고 나온 연서는 맛있는 라면 냄새가 황홀할 지경이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도윤은 냉장고에 있던 콩나물과 치즈로 먹음직스러운 특제 라면을 만들었다.



“와~ 맛있겠다~ 몇 개 끓였어?”

“3개. 많이 먹어~”



아무렴. 아무렴. 기본 3개는 끓여 줘야지. 

몇 젓가락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순삭이었다. 연서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도윤도 씻고 나와서 둘은 편하게 거실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



연서는 잠시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도윤에게 타로 카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제.. 그 산속에서 말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숨이 목 끝까지 차서 힘들었었어. 그리고 도윤이 네가 날 발견했던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거든.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나 해서 카드를 보려고 주머니를 뒤져도 아무것도 없는 거야. 내 정신이 아닌 상태였으니 몸만 나왔던 거지. 휴대폰도 타로 카드도 없었어. 근데 한 장의 카드가 손에 잡혔어.”


“한 장? 나머지는 다 놓고 왔는데?”


“응.. 이상하지. 그때는 뭐 이상하고 그런 것도 생각 못 했었어. 어쨌든 꺼내봤더니 [The Strength. 힘 카드] 인 거야. 그때의 그 공포감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의 무의식, 감정을 잘 컨트롤하면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 거라는 거였어. 그런데 중요한 게 생각났어.”



도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서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했다. 뭘까. 중요한 것이라..


“그때 처음 네가 한국에 와서 타로 샵에 왔을 때. 엉망이었잖아. 다음날 정리하러 갔을 때는 카드 한 장을 못 찾았었지.”



아. 그거. 별일 아닌 것이어서 도윤은 새까맣게 있고 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도윤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타로 카드를 정리하면서 그 한 장만 사라졌기에 카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힘 카드]다.


“그때.. 없어진 카드가 [힘 카드]였어! 내가 똑똑히 기억해. 사소해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카드가 그때 거기서 나왔다고?”



연서도 놀랐다. 그 카드가 그때 나타날 것이라는 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 이 전체적인 모든 것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즉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힘 카드]도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나도 신기했어. 자려고 갈아입었던 편한 옷 주머니에. 거기다 딱 그때 그 카드가 등장하다니.. 결국 카드는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차분히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이기도 했어. 그래서 네가 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되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진짜 이도윤이 나타났어.”


“······"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놀라웠다. 이 모든 일들은 마치 우리가 판타지 소설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와 닿지 않는 현실이다.


“땡!”

“어?”


“얼음 땡! 너 얼음 됐어. 푸하핫. 나도 놀라긴 했지만 이도윤 표정은 놀람을 뛰어넘었네. 하하힛. 사진 찍어 놨어야 되는데. 아쉽군!”


그제야 도윤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한 치 앞도 예상이 되지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도 이 정도면 시청자들이 반은 맞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매일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연서의 옆에 나란히 앉은 도윤은 연서의 허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응?”

“잠깐만. 이대로 있자. 샴푸 향이.. 너무 좋다.”



연서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도윤의 손길이 느껴지니 갑자기 긴장이 됐다. 워낙 운동을 평생 하던 몸이라 단단한 근육이 느껴지기도 했고 너른 어깨는 연서가 몸을 맡기기에 충분히 안락했다.


잠시 그렇게 있던 도윤은 연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딱 여기까지. 모든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이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CCTV의 악령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벌써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피곤하니 자러 갈 시간이다.

연서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도윤에게 달려가 다시 한번 안았다. 도윤이 연서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커서 안았다기보다는 안겼다는 게 맞을 것이겠지만. 



“잘자 도윤아. 오늘은 우리 둘 다 푹 자자.”

“그래. 그러자. 잘 자”



연서의 바람은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는 것 그거 하나였다. 방에 들어가 누우니 한동안 조용했던 악령이 또 말을 걸어온다.


<미친 XX들. 목숨이 위태로운데 어디서 사랑 놀음이야~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이것들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자고 싶었던 연서는 악령의 목소리에 신경질이 났다. 무시하거나 조용히 하라고 할까 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야. 쥐새끼.”

<왜 불러 짜증 나게.>


“너 말이야.. 너는 어떤 인생을 살았어? 힌트 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생각이 나서..”

<······>


“묻잖아. 너도 나처럼 외로웠어?”

<··· 갑자기 돌았냐?>


​“네가 나한테 악한 영인건 맞지. 그런데.. 네가 보여주는 힌트들.. 그거 말고. 넌 어떤 아픔이 있었던 거야? 네 지난 삶이 궁금해서.”


​악령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싫은 소리를 하면 욕을 해대던 악령이 어쩐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난 건지 무시하는 건지..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려나 보다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외로웠지.>


무시도, 화가 난 것도 아닌 어떤 말을 할지 고르고 골라서 내 뱉은 말 같았다. 악령이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드러내다니.. 연서는 놀라웠다. 그러면 다시 대화를 이어가 보자.




“나처럼?”

<······ 글쎄. 아마도.>


“너도 나처럼 가족이 없었어?”

<········· 있긴 했지.>


​어떤 걸 더 물어봐야 할까. 개인적인 이야기이되 힌트처럼 보이지 않는 질문이 뭐가 있을까. 질문을 패스한다.



“그럼 너도.. 많이 외로웠겠네..”

<······>


​악령이 대답을 멈추더라도 말을 이어가 보자.


“나야 뭐.. 네가 잘 알 거고.. 넌 왜.. 혼자 떠났어? 가족이 있었다며..”

<······>



다시 침묵하는 악령. 그래도 연서는 기다렸다. 너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작은 것이라도.


​<내가 죽고 싶어서 죽은 거 아니야 이 년아! 쳐 자라!>


“그런데 있잖아 난.. 나 어릴 때 기억나지? 7~8살 쯤.. 나는 그때.. 네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요정 같은 내 비밀 친구인 줄 알았어... 그래서 그렇게 너랑 대화하고.. 할아버지가 보시기에 이상할 만큼.. 그랬지."



또다시 침묵이다. 이젠 진짜 자야겠다. 그리고 연서는 처음으로 악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자.”

<··· ? 이 미친 X이! 귀신이 밤에 자는 거 봤냐!>


​그 말 한마디 이후 계속 욕이 들리는 것 같았는데.. 연서는 잠에 빠져들었다.


*****



지겨운 꿈. 또 꿈이다. 이번엔 뭘까. 어떤 할머니와 어린 여자아이였다. 나는 그 집이 전체적으로 다 보인다. 마치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큰 한옥 집이었다. 나의 시선은 조감도처럼 위에서 전체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움직여 점점 내려왔다. 드디어 할머니와 아이가 보인다. 바싹 마른 여자아이는 한복 치마를 들고 버선을 신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머리가 하얗게 센 완고해 보이는 할머니는 그 아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라고 있었다.


엄청 아파서 소리를 내거나 울 만도 한데 아이는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맞고 서야 할머니는 회초리를 거두었다. 아이는 돌아 서서 할머니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와 한옥의 끄트머리에 있는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


장면이 아이의 방안으로 바뀌었다. 그제야 아이는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무릎을 감싸 앉고 벽에 기대어 울었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어린아이가 제법 고집이 있어 보인다. 독기가 가득 오른 눈으로 입술을 꽉 물어 짓씹으며 눈물을 참아내고 있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종아리에 핏물이 맺혀 새빨갛게 되도록 맞은 것일까?


나는 그 방의 모서리 쪽에서 잠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는 누굴까? 낯이 익었다.


아! 굿 하는 화경에서 봤던 두 번째 아이가 확실했다. 악한 것을 옮겨 담는 그릇이 되었던 아이다. 그 두 번째 아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로 보였다. 그 굿에서는 십 대로 보였었지만 지금은 키도 작고 어리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이가 갑자기 내 방향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눈을 마주쳤다.


설마.. 꿈인데.. 아니겠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나를 바라본다. 이상했다. 날 보는 거 같았다. 꿈인데? 이건 꿈이야. 날 보는 건 말이 안 돼.

그때 누군가가 아이를 부른다.


“지..~..아!”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급하게 방을 나갔다. 지.. 뭐라고 했다. 정확히 듣지 못했다. 이름이.. 뭘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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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9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8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9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9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0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9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9 0 10쪽
48 결계2 24.08.28 11 0 10쪽
47 결계 1 24.08.28 11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1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1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1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1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4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2 0 9쪽
»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4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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