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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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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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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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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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전 (罰錢)

DUMMY


“참 질긴 인연인데 말이죠. 저는 한연서 입니다. 김유범 씨의 아내였던 한수정 씨의 딸입니다. 이쪽은 제 친구이구요.”


그리고 연서는 이어서 김유범을 소개했다.


“여기는 권자영씨의 아드님 되시는 김유범씨 되시구요.”


“안녕하세요. 김유범이라고 합니다. 한 지역에 사시는 박 선생님도 동행했습니다.”


최원철은 김유범이라는 이름에 눈빛이 흐려졌다. 당혹스러움과 긴장감에 잔뜩 휩싸여 보였다.


우선 마당의 평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방으로 들어가자니 모두가 앉기엔 좁아 보였다.


최원철은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연서에게 처음 내뱉은 한 마디는.


“미안하네.”였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있을까. 지난 삶의 모든 시간에, 사실은 이것 하나가 빠져있었다.


미안하다. 이것이 없어서 모두가 탐욕에 눈이 멀었고 지독하게 이기적일 수 있었다. 그 미안함이 뭔지 몰랐기에. 


“팔과 눈은 어쩌다..”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최원철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전. 신의 벌이지.”


“벌전. 하.. 말씀드렸다시피 전 한수정씨 딸입니다. 지금 저도 위태로워요. 당신이 옮겨놓은 그 악령과 목숨을 걸고 근원을 추적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당신이 지금까지 목격해 온 권자영, 그리고 관련된 모든 사람, 거기에 저희 엄마까지의 역사를 알아야 해요. 모든 것을요.”


최원철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들며 먼 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신기가 좋았어. 일찌감치 무당 그릇이었지. 그런데 제대로 된 신 선생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았고 돈도 없었어. 그러다 권자영의 할머니인 신해주를 찾아갔지.”


김유범은 엄마의 이름과 증조 할머니의 이름까지 나오니 멍해진 얼굴이었다. 


그 당황스러움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당신은 더하겠지.


최원철은 신병으로 몸이 아프고 집에 줄초상까지 나버리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찾아간 것이 신해주였다. 무업의 길을 가게 도와달라며 사정 사정을 하며 문 앞에서 버텼다. 


돈은 나중에 열심히 굿하고 일하면서 갚겠다고 빌었다. 그때의 나이가 16살이었다. 할 줄 아는 건 없고 보이고 들리고 아는 것은 많았다. 끙끙 앓아누워서 아플 때면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신이라는 것이 죽이지를 않는다. 어떻게든 신을 찾아오게끔 했다. 그래서 신해주에게 몇 날 며칠을 빌다가 문 앞에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신해주의 집안이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됐고 신제자가 될 준비도 했다. 나는 신해주가 다른 무당들과 똑같은 그런 무당인 줄만 알았다. 어렸으니까. 


그렇게 그 집안의 일을 하면서 신어머니를 따르다 보니 굿이 이상하게도 많았다. 굿을 많이 하는 무당은 허다하다. 그런데 단순히 양이 많다의 수준이 아니다. 일을 배우면서 알고 보니 사람을 죽이는 굿을 하고 저주 굿도 하면서 큰돈을 벌고 있었다. 


나는 그때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신해주한테만 잘 붙어있으면 나도 부자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신해주가 나를 꿰뚫어 본 것을. 악신의 제자가 될만한 그릇임을 신해주는 이미 알고 내가 간절하게 매달리게 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집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뒤처리도 하고 신제자도 하는 역할이 되었다. 그래도 속속들이까지 알려줄 엉성한 여자는 아니었다.


신해주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박이선. 딸은 이미 신해주와 함께 무업을 하고 있었다. 손녀도 있었다. 그 손녀가 권자영이다. 권자영은 집안에서 사랑도 많이 받았다.


애가 커갈수록 신기가 동하니 신해주도 고민이 많았다. 딸인 박이선도 악신을 모시는 무업을 하는데 손녀까지 또 하게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 집은 대대손손 무당집안이다.. 그 말인즉슨.. 대대손손 악신을 모셔 온 것이다. 


큰 신은 악신이지만 대대로 악행을 한 집안인지라 악신 아래의 악귀들도 많이 있기도 했다. 


권자영은 한 번씩 떼를 쓰며 울었다. 무당이 싫다고. 무당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그냥 피해버리기에는 권자영의 신기도 대단했다. 권자영의 엄마 박이선은 딸만은 좋은 집에 시집가서 평범하게 잘 살기를 바랐다. 


권자영이 10대 중후반쯤에 최원철에게 신어머니인 신해주가 큰 굿을 할 거라고 말했다. 신을 옮기는 굿이라고 했다. 굿 준비가 한창이었고 드디어 당일에 어떤 여자아이를 데려왔다. 그 아이는 권자영과 똑같은 한복을 입고 머리마저도 똑같이 쪽 찐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굿이 시작되었다. 권자영에게 내려온 악한 것들과 악신을 그 아이에게 옮기는 굿을 했다. 그날의 굿은 아무 문제 없이 끝났다. 


***


“아무 문제 없이요?”

연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보기엔 그랬어. 겉보기엔.”


최원철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신해주와 박이선은 뭔가 잘못된 걸 눈치챘다. 권자영에게 여전히 신이 있는 것이다. 그때 함께 왔던 아이는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 열린 귀문으로 잡신이고 허주고 원한령이고 다 붙어서 악귀가 되었다. 그렇게 어느 날 사라진 그 아이가 산의 나무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들었다. 


연서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아이가.. 권자영의 이부 자매였어요. 알고 계셨나요?”


“나중에 들었지. 그 아이에 대해서는..”


“그 아이는 박이선이 결혼 직전에 몰래 낳아 박이선의 외증조 할머니께 맡겨진 사생아였어요.”


도윤과 연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자신이 실수로 낳은 딸을 제물로 삼으려는 그 집안의 여자들이 구역질이 났다.


“그 아이는 그 집 외증조 할머니 댁에서 갇혀 살았어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쥐 죽은 듯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어요 아이가. 이미 할머니 신해주도 엄마인 박이선도 권자영의 신을 옮길 그릇으로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웠어요. 엄마 박이선은 오며 가며 가끔 얼굴만 보이는 정도였구요.”


“허어.. 그랬었군. 그건 몰랐네.”


권자영은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된 내림굿을 받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따로 나가 서울에서 신당을 차렸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권자영이 찾아왔을 때는 무당의 모습이 아닌 일반인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최원철도 무당으로써 신어머니를 떠나 따로 신당을 차려서 운영할 때였다. 


권자영은 자신의 신당을 없애고 새 출발을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최원철에게 누름 굿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곧 날이 잡히고 권자영의 엄마인 박이선과 함께 누름굿을 했다.


권자영은 그 이후에도 종종 최원철에게 굿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은 권자영이 신분세탁을 하고 맞선으로 의사와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학력도 모두 가짜였다.


이때쯤부터 김유범은 얼떨떨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집에 돈이 넘쳐나니 의사 남편에게 병원을 지어주겠다고 하고 결혼을 했다. 후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자랄수록 신기가 있어서 권자영은 매해 아들을 위한 굿을 크게 했다.


“저를 위한 굿을 매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자네를 위한 굿이었지. 지나친 모정일지도 모르겠네만..”


“어떤 굿을 한 겁니까?”


최원철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히 말을 했다.


“나 같은.. 박수무당이 되지 말라고 굿을 한 거야. 자네도 외가쪽을 닮아 신기가 있었거든. 어릴 때 종종 귀신을 보지 않았나?”


최원철의 이야기에 김유범은 숨이 턱 막혔다.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어릴 때 종종 보았던 형체들. 그 얘기를 엄마에게 자주 했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김유범을 보며 최원철은 당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후에는 몰래 찾아오는 것 같았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모든 걸 바꾸고 얻은 자리였으니..”


권자영이 몰래 찾아와서 굿을 할 때마다 최원철에게 지불한 돈은 무려 1억이었다. 입막음 비용까지 추가 된 금액이었다. 최원철 입장에서는 권자영만 잘 잡고 있어도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최원철은 권자영의 눈엣가시였다.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굿만 주구장창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되고 혼기가 차니 권자영이 안달이 났다. 


매번 부적도 쓰고 굿도 했지만 더 이상 누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최원철을 달달 볶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비방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최원철은 기도를 올리고 또 자신과 같은 무당들을 물어물어 찾아서 최종적인 비방을 권자영에게 알려줬다.


결혼을 시켜라. 그리고 살을 맞대고 살면 2년 후에 악한 것들이 그 여자에게 옮겨가 그 집안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비방이었다.


결국 그 상대방 쪽으로 악한 것들이 대물림이 되게 하는 것. 사람 한 명만이 아닌 그 집안 자체에 봉인을 해버리는 사술을 썼다.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굿도 해야 했고 수시로 부적도 써야 했다. 그때 권자영은 배경도 조건도 별 볼일 없고 순종적인 여자. 하지만 아들인 김유범이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흥신소를 통해서 찾았다.


그것이 한수정.

연서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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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9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8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 벌전 (罰錢) 24.08.29 10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9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9 0 10쪽
48 결계2 24.08.28 12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2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2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2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2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2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4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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