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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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최근연재일 :
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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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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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완결)

DUMMY

한참을 울었던 연서가 조금 진정이 되었다. 연서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전혀 욕심이 없었다. 당연히 없는 존재였고, 엄마의 화경에서나 등장하는 엑스트라였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의 한 명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박 선생님이 아빠라니..


연서는 도윤에게 어떻게 알았느냐 물었다.


“사실 나도 박 선생님의 이름은 몰랐어. 어릴 때부터 그냥 동네 어르신들도 박 선생, 박 선생님 이렇게만 부르셔서 나도 그냥 박 선생님이라고 뇌리에 박혀 있었지.

오랜만에 갑자기 찾아뵈었는데도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 내가 알기로도 원래 배려심 많고 친절하신 분이셨으니까.“


아직도 멍한 표정의 연서는 도윤의 다음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너 쓰러져서 병원에 누워 있었을 때 선생님이 잠시 할 얘기가 있다고 복도에서 따로 부르셨어. 그제야 말씀하시더라고. 처음에 김유범을 찾을 때 네가 진료실에서 한수정 씨 딸 이라고 했을 때. 그때 많이 놀라셨데. 동명이인이겠지.. 했는데 볼수록 네가 어머니랑 닮았다고 하시더라구.”


연서는 잠시 도윤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도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최원철한테 간다고 했을 때도 꼭 같이 오시려고 한 거야.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도 해야 헸고 혹시라도 네가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 따라나서 신 거지. 아이러니하지. 김유범과 박 선생님이 한동네 시라니..”


사실 박 선생님은 하루라도 더 있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셨다. 분위기를 봐서 연서에게 살짝이라도 언급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셨다.


연서가 아빠라는 존재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거기에 더해 박 선생님의 욕심으로 얘기를 했다가 연서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인생에 아빠가 등장한다는 게 연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아빠라는 존재가 연서의 정서에 해가 된다면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래서 도윤에게 먼저 알렸다. 도윤이 연서를 잘 알 테니 전해야 싶다면 전해주고 아니다 싶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말씀하셨다. 


속은 그렇지 않으시겠지만 연서를 위한 선택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였다.


“연서야. 괜찮아?”

“응.. 안 괜찮아..”


휴.. 괜히 얘기를 꺼냈나..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도윤도 고민 끝에 한 말이었다. 연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연서가 조금씩 마음을 꺼내놓았다.


“나.. 사실.. 아빠.. 있으면 좋겠어. 근데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아빠는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또 아까 말한 것처럼 가정이 있으면 어떡해. 그 가정에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가정을 일구고 잘 살고 있다면 나도 마음에 서러움이 남을 것 같기도 했고. 근데 지금은 좀 갑작스러우니까. 그래서 멍해. 생각이 필요한 일인 거 같아.”


도윤은 마지막으로 편지 봉투를 연서에게 건넸다. 


“좀 전에 집에 들어올 때 우편함에 있던 편지야. 읽어볼지 말지는 연서가 결정하면 돼. 너무 애쓰지는 마. 사실 박 선생님이 편지를 보내신다고 했어. 내가 먼저 받아서 전해줄지 말지 살펴보고 아니면 그냥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라구. 근데 빨리도 보내셨어. 하마터면 너한테 들킬 뻔했다. 하하.”


도윤은 멋쩍게 웃었다. 연서는 편지를 받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발신인은 박성민. 수신인은 한연서. 그래서 주소를.. 물어보신 거였구나.. 


잠시 망설였던 연서가 용기를 냈다. 그리고 편지를 열었다. 도윤은 연서의 편지를 보지 않으려고 잠시 딴청을 피웠다.



연서에게.


연서야. 이 편지를 본다면 아마.. 도윤이가 말을 전했겠구나.. 살다 보니 이렇게 놀라운 인연이 다 있나 싶었던 며칠이었단다. 미안하게도 나는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어. 그 미련함으로 우리 연서를 지금까지 힘들게 했구나.


엄마를 쏙 빼닮았어. 웃는 모습도 똑같아. 나는 수정 씨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운명이 이어주지 않는 비극적인 사랑이라 생각하고 한때는 방황도 했었지. 잊기 위해서.. 그런데 연서와 이렇게 인연이 닿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지.


수정 씨가 꿈에 한 번이라도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랄 때도 있었어. 그러나 단 한 번을 안 나타났어.  그런데.. 한 달 전쯤에 이틀 연속 같은 꿈을 꾸었어. 미치도록 그리워할 때는 오지 않던 수정씨가 예쁘게 웃으며 꿈에 나타났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나에게 황금색 보자기를 하나 안겨주고는 사라진 꿈이었어.


이틀 내내 같은 꿈이었지. 이게 무슨 꿈인가.. 싶었지만 그냥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너희가 온 거야. 처음에는 도윤이가 와서 반갑기만 했는데 한수정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최원철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나 또한 넋이 나가버렸지. 사실 속으로 너무 화가 났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수정 씨가.. 그렇게 갔구나..


그리고 우리 연서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구나.. 많이 아팠다. 그래도 내 아픔이 우리 연서만 하겠니..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정성껏 만들었던 음식도 잘 먹어주니 예쁘고 고맙고..


하지만 연서야. 이제 와서 내가 아빠 노릇을 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연서가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면 비빌 언덕이라도 되어주고 싶구나..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오고. 혹시라도 연락을 원치 않는다면 도윤이를 통해서 전달해 주면 연서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할게. 


벌써 많이 그립구나.


예쁘고 당당하게 자라주어 정말 고맙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이틀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구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렴.


***


또르르 한 방울이 편지에 떨어졌다. 그리고 또 한 방울이 글씨를 흐렸다. 결국 연서는 테이블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날은 도윤에게 조용히 방에서 쉬고 싶다며 들어가서 다음날까지 나오지 않았다.



*******



아침이 되었고 연서는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쌍꺼풀이 눈두덩과 하나가 되어있었고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했다.


뒤늦게 일어난 도윤이 거실에 앉아 있는 연서의 얼굴을 보고 눈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푸하하하하하. 아~ 미안..하하하하하. 미안해 하하하. 웃으면 안되는데. 하하하하하. 거울 봤어?”


연서도 도윤을 따라 웃었지만 눈이 통재로 하나가 되어서 입만 웃고 있었다.


“왜! 심각해?”

“아니.. 저기.. 거울을 봐 그냥.. 더 이상 묻지 마. 웃음 못 참을 거 같으니까.”


화장실에서 거울을 본 연서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으아아아! 이게 뭐야!”

그러곤 방에 들어가 선글라스를 하고 나왔다. 물을 마시던 도윤은 그 모습을 보고 연서의 얼굴에 있는 대로 물을 뿜었다.


워터밤이냐.


“아우 이도윤 아우! 더러워! 우 씨!”

“미.. 크하하하하.. 미안.. 하하흐허허허.. 해..하하하하하.”


연서는 얼굴에 물이 묻은 김에 싹 씻고 나와 도윤에게 말했다. 


“얼른 짐 싸. 우리 여행 갈 거야.”

“으잉? 갑자기? 무슨 여행?”

“아빠 보러 가야지! 여행하면 고성 아니겠어?”


도윤은 연서의 말을 듣자마자 놀란 눈으로 연서를 안았다. 

“아.. 연서야.. 하.. 연서야..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연서야..”


도윤은 연서를 안은 채 고맙다며 훌쩍였다. 그런 도윤을 보고 연서는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네가 뭐가 고마워~ 내가 고맙지! 말 안 했으면 아빠도 못 찾을 뻔했는데. 고마워. 울지 마. 빨리 준비하고 가자.”


그렇게 연서의 이마에 입을 맞춘 도윤은 빠르게 준비를 하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으아~ 우리 장인어른은 뭘 좋아하시려나~”

“한연서. 제일 좋아하실거야. 내가 선물이지. 으흐흐하하하.”


“그 눈덩어리도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뭐?!”

“어? 아냐.”

“아빠한테 이를 거야.”

“뭐? 벌써 이러기야?”


투닥투닥 말장난을 하며 다시 박 선생님의 집으로 가는 길은 또 다른 연서의 인생의 새 출발의 정점이었다.



*******



도윤의 차가 박 선생님댁에 도착했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둘은 박 선생님을 놀래 드릴 작정으로 조용히 발을 옮겨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도윤이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배달 왔어요~”

“배달이요?” 하시며 문을 연 박 선생님은 깜짝 놀라셨다.


그때 도윤의 한마디가 모두의 마음에 울렸다.


“따님 배달 왔습니다.”


얼어붙은 듯 멈춰버린 박 선생님에게 연서가 먼저 다가가 안겼다.


“아빠. 늦게 와서 미안해요.”

그제야 실감이 나시는지 박 선생님은 조심스러운 손으로 연서를 안았다. 요 며칠은 진짜 워터밤이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데도 감사한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야 연서야.. 연서야.. 잘 왔다..”


도윤은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러다 밤새 울 것 같은 두 사람을 안으며 한 마디를 콕 짚었다.


“장인어른.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박 선생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대답하신다.

“안돼.”


연서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라 옷으로 훔쳐내면서도 웃느라 바빴다. 각자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야 뒤틀렸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하나씩 맞아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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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편지 (완결) 24.08.31 10 0 10쪽
58 소멸(消滅) 24.08.31 9 0 10쪽
57 지영아. 신지영. 24.08.31 9 0 9쪽
56 무너진 모래성 24.08.31 8 0 10쪽
55 우리 다시 만나요 꼭 24.08.31 10 0 11쪽
54 악신의 현현(顯現) 24.08.30 10 0 10쪽
53 벌전 (罰錢) 24.08.29 10 0 10쪽
52 거의 다 와간다 24.08.29 11 0 10쪽
51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24.08.29 10 0 10쪽
50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4.08.29 9 0 12쪽
49 결계 3 24.08.28 10 0 10쪽
48 결계2 24.08.28 12 0 10쪽
47 결계 1 24.08.28 12 0 11쪽
46 세치 혀 24.08.27 12 0 11쪽
45 그래도 악은 악이다 24.08.26 10 0 10쪽
44 하얀 종이 한 장 24.08.26 12 0 10쪽
43 권자영 그리고 최원철 24.08.25 11 0 10쪽
42 화투 패를 손에 쥔 뱀 24.08.25 12 0 10쪽
41 씨가 다른 아이 24.08.24 14 0 9쪽
40 순이네 수퍼마켙 24.08.23 12 0 10쪽
39 박수무당의 이름 24.08.22 12 0 9쪽
38 또 다른 계약자. 나의 엄마. [Four of Cups] 24.08.22 12 0 10쪽
37 찾긴 했다. 김주성을. 24.08.21 15 0 10쪽
36 손거울의 비밀 [The Tower] 24.08.21 13 0 11쪽
35 김주성 찾기 24.08.20 13 0 9쪽
34 그 아이의 이름은 24.08.20 13 0 11쪽
33 아픈 새끼손가락 24.08.19 11 0 11쪽
32 실종 2 [Strength] 24.08.17 15 0 10쪽
31 실종 1 24.08.16 14 0 9쪽
30 천왕 대신 할머니 24.08.16 1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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